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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9화 (29/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9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9화

29화

“마족이 왜…….”

피의 연회로 인류에게 큰 피해를 주기는 했지만 그건 마족들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이후 전쟁에서 인류는 마족들을 철저하게 박멸했으니까.

아예 전멸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건 분명했다.

“세상에 알려지기는 인류의 대승이나 마찬가지였다. 피의 연회를 빼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플레턴이 갑자기 자신의 소매를 들추었다.

그렇게 드러난 왜소한 팔에는 끔찍한 흉터들이 가득했다.

“마족의 수뇌부가 살아남았다. 그놈들 중에는 나 역시 이기기 힘들 만큼 강대한 힘을 가진 놈들도 있지.”

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절대군주라는 게임을 통해서 알고 있던 것들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대영주 세력에 의해 빠르게 통합된 국가라고 알려진 크레시안 왕국에서 레일리 왕녀가 살아 있지를 않나.

루안은 알려진 출신 국가와는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지를 않나.

심지어 이제는 배경으로만 나오고 끝날 줄 알았던 마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왔다.

‘대영주들이 피의 연회의 배후에 있다는 것 빼고는 다 나왔군.’

“그래 봐야 잔당이 아닙니까? 발각되는 순간 인류의 손에 죽을 놈들입니다.”

하지만 그게 플레턴이 마족들을 경계하는 이유는 될 수 없었다.

마족들은 이미 세력을 상실했으니까.

4티어 마법사인 플레턴이 경계할 정도로 강력한 마족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딱히 두렵지는 않았다.

그들이 큰 세력을 갖추고 있을 때도 인류를 이기지 못했으니까.

지금 와서야 나타나더라도 바로 척살당할 처지였다.

“그래, 그 말은 맞다. 아무리 강한 마족이라도 무수한 군대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지.”

플레턴 역시 내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말과 달리 표정이나 어조는 전혀 긍정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몇몇 녀석을 제외하고 말이다.”

“몇몇 녀석이라면?”

“마족들 중에서 특출나게 강한 것들이 있다. 그 녀석들의 힘은 상식을 초월하지.”

플레턴의 목소리에서 마족에 대한 두려움을 읽어낼 수 있었다.

4티어 마법사인 플레턴이 이 정도로 두려워한다면 그 마족이란 것들은 5티어에 준한다고 생각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5티어가 끝은 아니니까.’

일반적으로는 5티어가 영웅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이다.

절대군주에서도 5티어 영웅을 가진 건 극소수의 최상위 랭커뿐이니까.

하지만 절대군주가 어디까지나 6개월밖에 안 된 게임이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는 이 세계에 오기 전에 5티어를 넘는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VIP 시스템.’

밸런스에서 내가 가장 우려를 표했던 부분이 바로 영웅의 성장이었다.

5티어 영웅이 네임드 장비를 갖추면 그 힘은 족히 일천의 병사에 준한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 있던 P2W 패치에서 그마저 넘는 방법이 나왔다.

오직 과금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6티어 승급권.

그것도 그냥 과금이 아니라 랜덤 상자에서 튀어나온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흑우들은 넘쳐난다.

돈이 썩어나는 누군가는 무지막지한 확률의 벽을 뚫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쏟을 것이다.

그렇게 6티어 영웅이 풀리게 된다면 그때부터 절대군주는 전략 게임이라는 방향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전략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을 규격 외 괴물들이 나타날 테니까.

“마법사 협회가 중립을 지키는 건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내전에 끼어들게 되면 영주 개인은 힘을 키울지언정 인류 전체의 힘은 깎여나갈 수밖에 없지.”

확실히 그렇다.

나는 내전을 통해서 도미닉 남작가를 흡수했다.

그렇지만 그게 네패스 남작가와 도미닉 남작가를 온전히 합한 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도중에 죽은 사람들의 수만큼 인류 전체의 힘은 줄어들었다.

“그렇게 싸움이 거듭되었을 때 놈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인류는 놈들에게 맞서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겠군요.”

이 사실을 알린다고 해서 내전을 멈출 수는 없다.

애초에 대영주들 중에는 이 사실을 아는 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플레턴만 마족들에 대해서 아는 건 아닐 테니.

하지만 결국 피의 연회는 일어났고 내전까지 이어졌다.

이미 인류는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마법사 협회는 마족들에게 맞서기 위해 준비할 셈입니까?”

“그래. 그러나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난 네가 그 문제를 해결해 줬으면 하는구나.”

“제가 말입니까?”

“나쁜 놈이지만 실력은 확실하잖느냐?”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자꾸 나쁜 놈 소리를 듣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틀린 말이 아니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네가 얼마나 잘 활약했는지를 익히 들었다. 그래서 이참에 네 재능과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확인하고 싶구나.”

“확인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닐 테고, 뭘 바라십니까?”

“뭐긴. 네가 나중에 그 마족들이랑 싸우라는 소리지.”

“그렇게 강한 놈들과 말입니까?”

“너한테는 그만한 자질이 엿보였다. 그리고 네가 정점에 서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면 어차피 자연스럽게 인류의 수장으로서 마족들과 싸우게 될 거다.”

난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크레시안 왕국만 평정해도 이전의 왕가가 그러했듯이 마족과 싸워야 한다.

하물며 대륙 통일까지 노리는 입장에서야 마족과의 싸움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음.”

하지만 이렇게 코가 꿰이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은 넘보지도 못할 만큼 강대한 놈들일 텐데.

어쩌면 절대군주가 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길일지도 모른다.

“뭐냐? 겁먹었냐?”

“스승님보다 강하다면서요?”

“걱정 마라. 너도 잘 크면 나보다는 강해질 테니까.”

“여럿이라면서요?”

“그거야 뭐 같이 싸우면…….”

“스승님께서요?”

플레턴은 당장 오늘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였다.

나중에 살아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마족과의 싸움에 나설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때쯤이면 나야 이미 죽고 없지.”

역시나.

플레턴은 자신이 직접 나설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마족과의 전쟁에서 내가 얼마나 활약했는데. 그 정도면 됐지, 뭘 염치도 없이 늙은이를 끌어들이려고 하느냐?”

“그래서 제자한테 짐을 다 떠넘기실 겁니까?”

내 물음에 플레턴은 능글맞게 웃더니 내 어깨를 두드렸다.

“뭐, 다 그런 거 아니겠느냐? 어차피 넌 지금 영주를 때려치우지 않으면 결국 싸워야 할 운명일 테고.”

“하아.”

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갑자기 급격하게 영주를 그만두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내전을 경험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사람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사는 게 최고 아닐까?

“자, 너무 그러지 마라. 이번 일로 네가 마법사로서도, 영주로서도 능력 있는 귀족이라는 건 알았다. 그러니 내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마.”

탁.

플레턴은 그대로 탁자를 치며 일어났다.

“따라와라.”

노쇠한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힘이 넘쳐나는 모습이었다.

쉽게 말해 신난 상태였다.

“마법서라도 더 주실 겁니까?”

“마법을 많이 배운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니다. 기존에 익힌 마법들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럼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어디긴. 마법사라면 당연히 수련을 해야지.”

플레턴의 뒤를 따라간 곳은 정말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었다.

규모로 봐서 협회 건물의 절반 정도는 될 거 같았다.

‘이전에 봤던 이상한 설비들이 있는 곳보다 훨씬 넓네.’

그러나 그 넓이에 비해 특별한 설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황량하다고 생각될 만큼 텅 비어 있는 장소였다.

“그냥 빈 공간 아닙니까?”

“맞다.”

의아해서 물어보니 플레턴은 쉽게 긍정해 주었다.

정말로 빈 공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유 없이 비워둔 건 아니지.”

화르륵!

다음 순간 플레턴의 뒤로 거대한 화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서야 이 공간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설마?”

“그래. 마법 수련을 하는 장소다.”

쩌저적!

멍하니 화염을 바라보는데 그 옆에서 이번에는 얼음으로 된 송곳이 만들어졌다.

그 송곳은 틀림없이 나를 노리고 있었다.

덕분에 이후에 펼쳐질 일을 알 거 같았다.

하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마법사로서 힘을 키우고 싶은 건 맞지만 왠지 이 방법은 날 고생시킬 거 같았다.

내가 라이언을 상대로 했을 때처럼.

“자고로 최고의 수련은 실전이란다.”

“아, 젠장…….”

역시나.

“뭐라고?”

“아닙니다.”

아무리 봐도 진심이었다.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원로인 플레턴의 뜻을 꺾을 수도 없을 테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하면 되겠습니까?”

“날 이길 때까지.”

마법사로서의 역량을 보자면 플레턴은 나보다 몇 수는 위에 있을 것이다.

익히고 있는 마법의 종류부터 숙련도, 경험까지 모두.

“바로 이겨드리죠.”

하지만 내가 플레턴보다 앞서는 것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마나 블래스트였다.

거기에 가문의 비전인 네패스 마법 이론으로 얻은 마나 가속을 더하면.

‘기습이라면!’

난 기다리지 않고 먼저 선공을 취했다.

단숨에 마나의 흐름을 가속시키고 보통 사람이라면 중상을 입을 정도의 위력을 담은 일격을 빠르게 가했다.

플레턴이 목표를 자신을 이길 때까지로 잡았으니 단숨에 이겨서 이 수련을 끝내기 위해서였다.

콰아앙!

“됐다!”

플레턴이 반응하기도 전에 내 공격은 성공적으로 들어갔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역시 나쁜 놈답구나.”

그러나 내가 사용한 마나 블래스트는 플레턴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 상태였다.

“뭐야?”

“마나 실드다. 미리 깔아뒀는데 못 알아차리다니, 아직 많이 미숙하구나.”

“이 미친!”

플레턴은 내가 기습을 할 것조차 예상했던 모양이다.

역시 전쟁을 경험한 마법사는 수준이 달랐다.

“그래도 그 잠깐 사이에 실드에 손상을 줄 위력이라. 미리 준비 안 했다면 통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스승님, 그게 아니라…….”

“괘씸한 놈.”

쐐액!

플레턴이 미리 만들어둔 얼음 송곳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난 다급히 옆으로 피하며 플레턴을 향해 한 번 더 공격을 날렸다.

그래도 5티어 마법사에 마나 가속까지 쓰는 이상 마법의 출력인 마력에서는 내가 플레턴을 이기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실제로 아까 기습으로 플레턴의 마나 실드가 조금 손상된 것 같았고.

콰앙! 콰쾅!

“이놈 봐라. 마나 블래스트를 이렇게까지 잘 다루다니.”

그러나 이번에도 내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손상된 실드는 플레턴의 마나를 주입받고는 그대로 복구되었기 때문이다.

일격에 부술 정도가 아니라면 필연적으로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그러나 장기전으로 가면 내가 불리했다.

마나의 양에서는 내가 앞설지 몰라도 경험 면에서 나는 절대적인 열세였으니까.

분명 플레턴은 내가 모르는 온갖 마법들로 날 공략해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걸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당장 저 마나 실드도 못 배운 입장이었으니까.

“마나 블래스트에 너희 가문 이론 말고 다른 건 없느냐?”

“딱히 다른 건 없습니다.”

마나 파장은 애초에 전투 용도가 아니다.

부상을 입지 않은 지금 치유도 쓸 수 없다.

남는 거라면…….

‘마나 쇼크!’

아직 제대로 써본 적이 없지만 일단 익혀두기는 했다.

마법사를 사냥하는 마법.

그러나 이게 플레턴에게도 통할지는 의문이었다.

숙련도가 높은 것도 아니니까.

“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하긴, 어차피 가릴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이를 악물고 플레턴을 향해 마나 쇼크를 사용했다.

우웅!

언뜻 마나 파장을 사용할 때처럼 기이한 소리와 함께 내 공격이 플레턴에게 닿았다.

애초에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나와 달리 플레턴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마나 쇼크는 마나 실드를 뚫지 못했다.

“역시 안 되나.”

“마나 쇼크는 기습용으로 써야지, 실드를 펼친 마법사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게임에서는 나오지도 않았던 마법이었다.

난 눈앞으로 날아오는 플레턴의 마나 블래스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졌다.

콰앙!

“크악!”

* * *

“단죄의 서를 전달해 주고 얼마나 지났다고…….”

플레턴은 쓰러진 아인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분명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이 마법을 벌써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랐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한 상태였다.

“단죄의 서를 익혔다면 생명의 서도 이미 익혔을 테고.”

옆에서 가르쳐준 것도 아니다.

그냥 마법서를 보며 혼자 독학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수련에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도 아니다.

내전을 준비하고 치르느라 한창 바빴을 테니까.

“괴물 딱지 같은 놈.”

플레턴은 질린 눈으로 아인을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재능이었다.

“왕국 제일 마법사는 따놓은 당상이구나.”

그렇기에 아쉬웠다.

만약 아인이 귀족이 아니라 평민이었다면.

하다못해 귀족이라도 영주는 아니었다면.

분명 협회에서 이 재능을 다 피워낼 수 있었을 것이니까.

“쓰읍. 영주를 못 하게 해야 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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