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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8화 (28/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8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8화

28화

“세상에. 블러드 바실리스크의 결정이라니.”

루안은 마치 홀린 듯 넋 나간 눈으로 결정을 매만졌다.

“이놈 멸종한 거 아니었습니까?”

“딱히. 우리 영지에는 이런 놈이 가끔 돌아다녀.”

“에엑?”

내 말에 루안은 미친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기겁했다.

“참, 블러드 바실리스크 말고도 희귀한 몬스터가 제법 있지.”

난 주간 레이드 목록에 올라와 있는 몬스터들의 이름을 하나씩 말해 주었다.

결코 한곳에 서식할 수 없는 온갖 다양한 몬스터들의 나열에 루안이 인상을 찡그렸다.

“제가 세상 물정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런 놈들이 한 영지에 있다는 걸 믿을 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

“내 말을 의심하는 건가?”

“세상 누구에게든 물어보십시오! 그런 몬스터들이 한곳에 사는 게 말이 됩니까?”

루안이 발끈하면서 소리치자 난 내 다른 노림수가 어느 정도 통했음을 깨달았다.

“흠. 좋아, 내 말이 거짓말이라면 자네를 아무 조건 없이 풀어주지.”

“정말입니까?”

“그래. 가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해 주지. 하지만 내 말이 정말이라면 내 밑에서 군말 없이 일하도록.”

루안은 잠시 망설이는 듯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 없다는 결론이 나왔는지 자신 있게 답했다.

“그러겠습니다! 그게 정말이라면 말입니다!”

걸렸다.

루안이 희귀한 재료나 대우에 혹해주면 좋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계획을 짜냈다.

루안의 코를 꿰어낼 말도 안 되는 내기를.

만약 루안이 내전이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고 있었다면 혹시나 하는 의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 있던 루안이 아는 거라고 해봐야 왈트 자작이 죽고 바이든 남작이 그 영토를 점령했다는 게 전부일 것이다.

도미닉 남작가가 네패스 남작령에서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건 전혀 모를 거다.

직접 눈으로 봤던 기사들도 그 광경을 믿지 못했었는데.

‘반응이 기대되는군.’

* * *

“크아아악!”

“캬오오!”

네패스 남작가의 사냥터는 오늘도 남아나질 않았다.

용병들은 시커멓게 죽은 눈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괴수 대혈전을 관람 중이었다.

“아이고. 저놈들은 또 뭐야?”

일일 레이드에 나타나던 몬스터들만 해도 용병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적어도 2티어 전투형 영웅 여럿이 있어야 했고 그게 아니라면 3티어 전투형 영웅이 필요했다.

그러나 주간 레이드는 그조차 상회했다.

3티어 전투형 영웅이라도 혼자서는 장담할 수 없는 강대한 괴수들.

5티어 마법형 영웅인 나도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괴수들이었다.

“오늘은 유독 많아 보입니다.”

라이언이 기사가 되면서 용병 무리에서 이탈했기에 현재 용병들은 다른 우두머리를 선출했다.

그는 아론이라는 용병으로 1티어 전투형 영웅이었다.

“안심하게. 보다시피 제 놈들끼리 싸워주고 있으니까.”

일일 레이드 몬스터를 퇴치하던 도중 알게 된 사실 하나.

내가 소환한 레이드 몬스터들은 그들끼리도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이용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일일 레이드 몬스터야 내가 퇴치하면 되니까 싸우게 할 필요가 없고, 주간 레이드 몬스터는 위험성이 너무 높았으니까.

괜히 두 마리를 불러냈다가 서로 안 싸우고 따로 날뛸 경우에는 뒷감당이 힘들었다.

‘이번은 예외지만.’

루안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기 위해서 일일 레이드 몬스터를 한꺼번에 불러냈다.

그게 지금 같은 괴수 대혈전이 벌어진 원인이었다.

“세상에나.”

특별히 준비한 무대인 만큼 루안은 자신이 얼마나 놀랐는지 표정으로 여실히 보여주었다.

“잘 봤나?”

“저게 대체…….”

난 루안의 어깨를 가볍게 쳐주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 * *

여느 때와 같이 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내전 이후의 풍경은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척!

정식으로 영주가 된 나를 향해 경례를 올리는 기사들과 달라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지민들.

뒤를 따라오는 이들의 숫자도 많이 늘어나 있었다.

무엇보다 변변찮았던 영웅들이 나름 그럴듯하게 채워졌다는 게 마음에 꼭 들었다.

‘이제 나름 영지다워졌군.’

전투형 영웅으로는 3티어가 된 로크와 2티어 라이언이 있다.

그 밑에는 1티어 기사들과 용병들이 수십 명이었다.

외교형 영웅으로는 2티어인 베르타가 있다.

그 외에 내정형 영웅들도 조금이나마 생겼고 마법사도 나를 빼고도 세 명이 늘었다.

더구나 앞으로 영지의 전력을 크게 늘려줄 수 있는 루안까지 영입했다.

‘이 내기로 루안을 영원히 묶어둘 수는 없겠지만…….’

놀라는 것도 처음이지, 시간이 지나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잠깐은 루안을 묶어둘 수 있게 되었지만, 나중이 되면 그만두겠다고 난리 칠 게 분명했다.

‘뭐, 그건 나중에 가서 고민하면 되겠지.’

일단 당장 해야 할 일은 거의 다 끝마친 셈이었다.

이제는 웅크려서 기다릴 때였다.

물론 그게 아무것도 안 하고 논다는 건 아니었다.

마이어드 후작과 카이로스 백작의 다툼이 어떻게 될지도 주시해야 하고, 전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분주해야 했다.

‘마법사로서 내 실력도 키워야 하고.’

지금까지 나름 활약을 하기는 했지만 5티어다운 수준이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니었다.

알고 있는 마법의 숫자나 그 수준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마법사 협회로 가야겠군.’

알고 있는 마법이라면 특전의 힘으로 빠르게 익힐 수 있지만 새 마법을 배우기에는 협회만큼 적당한 곳이 없었다.

레일리 왕녀가 시킨 것도 있으니까 적당히 시늉도 할 겸 협회를 찾아 힘을 키워야 한다.

* * *

“긴급! 서부에서 앙숙이던 두 귀족이 맞붙었다! 서부에서도 내전이 시작된 거야!”

“기어이 왕국 전역이 휩쓸렸구나.”

다시 찾은 마법사 협회는 이전과 달리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의도치 않게 서부의 내전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마나 파장은 어떻게 보완해야 할 거 같은데.’

마법사 협회 근처에 죽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웬만큼 중요한 정보들은 다 얻을 수 있었다.

“어, 누구십니까?”

잠깐 주변을 서성이고 있자 마법사 한 명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복장에서 귀족티를 풀풀 내고 있었기에 나는 쉽게 눈에 띄었다.

“플레턴 님의 제자인 아인 네패스입니다.”

“아! 네패스 남작님이시군요.”

나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 있었는지 그는 곧장 나를 알아보았다.

“플레턴 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덕분에 나는 바로 플레턴의 앞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왔구나.”

플레턴의 방은 원로라는 직책에 비해 상당히 좁았다.

그냥 사람 하나가 적당히 쓰기 편해 보이는 방이었다.

‘가이트가 안 챙겨준 건 아닐 테고.’

플레턴 본인이 그리 넓은 방을 원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선물은 잘 받았느냐?”

“네. 독특한 마법이더군요.”

내 영주 계승식 때 플레턴은 가이트를 통해 단죄의 서라는 특이한 마법서를 전달해 주었다.

이는 절대군주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던 독특한 형태의 마법이었다.

‘상대의 마나를 공격하는 마법이라.’

[영웅 정보]

이름 : 아인 네패스

국적 : 크레시안 왕국

소속 : 네패스 남작가

유형 : 마법형

등급 : 5티어

칭호 : 불세출의 대마도사

스킬 : 마나 블래스트(5), 마나 파장(2), 마나 가속(3), 치유(2), 마나 쇼크(1)

새롭게 배운 마법은 마나 쇼크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 마법은 오직 마법사를 상대로만 쓸 수 있었는데 상대의 마나를 강제로 뒤흔들어 타격을 입히는 마법이었다.

이 마법에 당한 마법사는 한동안 마나가 뒤틀려 제 흐름을 잃게 되어 일시적으로 마법을 쓸 수 없었다.

“왜 이 마법을 가르쳐주신 겁니까?”

치유 마법을 받을 때와는 달랐다.

그 효용성을 생각했을 때 치유 마법은 제자에게 선물로 주기에 충분히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마나 쇼크는 다르다.

철저하게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한 이 마법은 애초에 존재 자체가 의문이었다.

“네 목표가 오죽 크더냐?”

플레턴이 되묻자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나에게 어디까지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플레턴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정점.’

절대군주의 자리.

그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자리였다.

그렇기에 정점이라 표현하기에 부족하지 않았고 플레턴은 그런 내 대답에 똥을 주웠다며 역정을 냈었다.

“마나 쇼크는 대마법사용 마법이지. 하지만 그게 마법사를 죽이는 마법이란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안정적인 제압이 목적이지.”

플레턴은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내 손을 붙잡았다.

초로의 노인답게 플레턴은 손조차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앞으로 네가 싸워나갈 때 마법사의 목숨만은 거두지 말라는 뜻에서 준 것이다.”

“그렇군요.”

확실히 이 마법이 있다면 적대하는 마법사를 상대할 때 몹시 유용할 것이다.

마나 쇼크의 최대 특징은 신속함.

선제공격으로 날려서 마법사를 제압하기에 적합했다.

‘마법사들도 전쟁에서는 서로를 우선적으로 노리기 마련이니까.’

일대일 싸움에서 마법사는 전투형 영웅들을 이기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수와 다수가 맞붙는 전장에서는 어지간한 전투형 영웅보다 마법사가 훨씬 위협적이었다.

광범위한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서로를 우선해서 노리고는 했다.

실제로 내가 내전에서 도미닉 남작가의 마법사를 향해 선공을 날렸던 것처럼.

“묻고 싶은 게 더 있습니다. 루안에 대해서 아십니까?”

내가 루안의 행방을 찾기 위해 마법사 협회에 도움을 청했을 때.

그 대답을 준 것은 플레턴이었다.

더구나 루안을 감옥에서 꺼냈을 때 루안도 마법사 협회가 찾아올 줄 알았다는 투의 말을 했었다.

“웬 젊은 마법사 놈이 귀족에게 잡힌 친구 좀 구해달라고 난리를 친 적이 있다. 그래서 기억해 뒀었지.”

“왜 협회에서 나서지 않은 겁니까?”

분명 루안 본인은 협회와 관련이 없다.

하지만 그의 가치를 생각하자면 협회에서 충분히 나서볼 만했다.

상대가 아무리 귀족이라도 대영주는 아니니까.

또 별다른 잘못도 없는 루안을 억류한 이상 명분은 마법사 협회에 있었고.

“너한테 필요한 사람 같았으니까.”

“루안을 일부러 저에게 넘겨주신 겁니까?”

이건 의외였다.

이건 내가 플레턴의 제자가 될 때 약속받은 내용이 아니니까.

“그냥 시험이었다.”

“시험?”

“탐나는 인재를 네가 어떻게 대할지 보고 싶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플레턴의 눈동자는 나이에 맞지 않게 날카롭고 서늘했다.

“듣기로 그 대장장이는 누구 밑에 들어갈 성품은 아니라더군. 하긴, 그러니까 귀족의 말을 거부해서 감옥에 갔겠지. 너도 과연 왈트 자작이란 자와 같은 선택을 할지 아니면 그보다 끔찍한 선택을 할지 보고 싶었다.”

“끔찍한 선택이라면?”

“죽여서 없애는 거지.”

플레턴의 추측대로 실제로 나는 루안을 설득하는 일에 실패하면 죽일 생각도 하고 있었다.

루안이 누구 밑에 들어갈 위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내주기에는 너무 아쉬웠으니까.

“난 네가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래, 너는 죽이지 않았지.”

플레턴은 의외였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히려 네 밑으로 훌륭하게 거둬들였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하.”

억지로 웃어봤지만 어색하기만 했다.

분명 칭찬 같은데 도무지 웃을 수가 없었다.

만약 죽였으면 플레턴이 어떻게 나왔을지 섬뜩해졌기 때문이다.

‘계속 날 지켜보고 있었구나.’

재능이 아까우니까 마법은 가르치되, 협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거리는 계속 둘 줄 알았다.

그리고 딱 그 정도일 줄 알았다.

하지만 플레턴은 내전이 시작된 이후부터 줄곧 나를 살피고 있었다.

“넌 나쁜 놈이다. 네 영지나 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모든 것을 이미 갖췄어. 하지만 넌 멈출 생각이 없지.”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난 지금이라도 멈출 수 있었다.

위니스가 나에게 보장해 준 것들 덕분에 의사소통에도 문제없고, 신분도 빵빵하니까.

물론 내전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다시 위기가 올 수도 있지만 그때도 내 몸 하나는 뺄 수 있었다.

영주로서의 권리를 버리고 마법사 협회에 의탁하는 것으로.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내 목표는 절대군주니까.

“그래서 네가 선을 넘는지 알고 싶었다. 어느 정도로 나쁜 놈인지를.”

“그래서 어떠셨습니까?”

“죽일 생각 정도는 해봤겠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이 그 대장장이를 얻었다. 나쁜 놈이지만 아주 능력 있는 나쁜 놈이란 말이야. 쯧!”

플레턴이 아니꼽다는 듯 혀를 찼다.

“우리 마법사 협회는 이 내전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 아니, 내전 이후에도 어느 세력의 편을 들 생각은 없다.”

어차피 이 내전은 귀족들의 권력 다툼이다.

정확히는 그중에서도 대영주라고 불리는 이들이 계획하고 벌이는 일이었다.

그러니 마법사 협회에서 굳이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가만히 있더라도 마법사의 가치가 올라 협회가 간접적으로 이득을 보는 상황이기도 하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니, 넌 모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법사 협회가 내전에 끼어들지 않는 건 네가 생각하는 이해득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마족.”

플레턴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인류의 적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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