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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4화 (24/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4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4화

24화

“에?”

너무 뜻밖의 제안이었던 걸까.

라이언은 잘 실감 나지 않는지 얼떨떨한 반응을 내보였다.

“언제까지 용병 노릇만 하며 살 생각이지?”

난 그런 라이언에게 무게를 잡고 물었다.

라이언 정도의 실력이면 용병으로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많은 용병들의 목표는 기사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인성에 문제가 많은 라이언이 기사가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기사는 곧 그가 모시는 영주의 얼굴이 될 수도 있기에 절대 아무나 뽑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3티어 영웅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어, 귀족 나리. 정말 제가 기사가 될 수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제가 좀 문제가 많습니다만?”

실감이 안 나는지 얼떨떨하게 되물어오는 라이언이었다.

난 그런 라이언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말을 덧붙였다.

“걱정할 필요 없다. 문제를 일으키면 내가 손봐줄 테니까.”

“푸하핫!”

라이언은 그대로 빵 터져서 배를 잡고 시원하게 웃어젖혔다.

용병이 귀족을, 그것도 영주를 앞에 두고 박장대소를 하니 자연히 로크의 눈빛이 미묘해졌다.

호통을 쳐야 할 상황 같기는 한데 내가 가만히 있으니 어쩌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모양새였다.

“아하하. 그렇지요. 귀족 나리께서 다른 귀족들과 다르다는 걸 제가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거의 눈물이 나오기 직전까지 몰린 라이언이 끅끅거리며 말을 이었다.

“좋은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지요.”

라이언이 기분 좋게 승낙하자 난 주의 사항을 하나 알려주었다.

“기사가 되면 마음대로 그만둘 수는 없다.”

“어, 확실히 그건 좀…….”

군신 관계는 고용 관계가 아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놓아주기 전까지는 절대 파기가 불가능했다.

“거부하면 지금까지 저질렀던 무례의 대가로 이 자리에서 목을 벨 수도 있다만?”

“그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 아닙니까?”

은근히 협박하는 어조로 말하자 라이언은 질색했다.

내가 라이언을 고용할 때도 써먹은 말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당시의 라이언은 유쾌하게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정말 질색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기사 서임이라도 챙겨야지.”

“쩝. 뭐, 알겠습니다.”

결심을 굳혔는지 라이언의 눈길은 어느새 나에게서 떨어져 로크를 향하고 있었다.

“어디서 하면 되겠습니까?”

“지금쯤이면 밖에 이미 자리가 마련되었을 거다.”

기사단장의 자리와 용병의 기사 서임이 걸린 문제였다.

네패스 남작가에서처럼 대충 진행하는 게 아니라 확실한 판정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다른 기사들과 더불어 용병들까지 모두 모은 상태였다.

어느 쪽이 이기든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후.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답지 않게 긴장했는지 라이언은 심호흡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다 돌연 로크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정확히는 로크가 차고 있는 검으로.

“거기 기사님?”

“뭐냐?”

로크는 용병인 라이언을 어찌 대해야 할지 모르는 듯 다소 신중하게 대답했다.

그런 신중에 어울리는 화법은 아니었지만.

“혹시 검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하?”

“풋!”

라이언의 요구에 로크는 황당해했지만 난 웃음이 터졌다.

라이언이 무엇을 우려했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터너를 비롯해 네패스 남작가의 기사들이 ‘영광의 검’으로 자신을 넘어섰던 일 때문에 로크의 무기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안심해라. 로크 경에게 검을 하사한 적은 없으니…까?”

난 웃으며 로크가 가진 검의 장비 정보를 불러왔다.

원래라면 아무 정보도 뜨지 않을 줄 알고 행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로크의 검의 장비 정보가 떠오른 것이다.

더구나 거기에는 ‘아이투스’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네임드 장비잖아?’

정확한 이름이 있는 네임드 장비는 ‘영광의 검’처럼 이름 없는 장비들과는 수준이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영웅을 저티어와 고티어로 구분하듯이 장비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바로 고유 이름의 유무였으니까.

“무기를 본다고 달라질 거 같으냐?”

로크는 기분 나빠하면서도 자신의 대검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실제로 그런 자신감을 가져도 될 만큼의 실력과 좋은 무기를 갖추고 있었고.

“뭐 이렇게 번쩍번쩍해!”

로크의 무기를 살핀 라이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벌써부터 결과를 예상한 모양이었다.

‘이럼 안 되는데.’

이래서야 서로 겨루는 게 의미가 없다.

1티어 영웅인 터너가 이름 없는 장비를 들고도 2티어 영웅인 라이언을 이겼었다.

같은 2티어 영웅인 로크가 네임드 장비까지 든다면 라이언은 단 한 방에 패배할지도 몰랐다.

“로크 경, 그 검은 어디서 났지?”

내가 검의 출처를 묻자 로크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알려드리는 건 어렵지 않으나 믿으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못 믿을 이유가 있나?”

“내전이 일어나기 몇 달 전에 마을을 찾아왔던 떠돌이 장인에게 샀습니다.”

상식이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일반적으로 솜씨 좋은 장인들은 이름 있는 공방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 공방들은 대영주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으니.

그러나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소리의 해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혹시 그 떠돌이의 이름이 루안인가?”

“어찌 아셨습니까? 맞습니다. 워낙 믿기 힘들어서 사기꾼인가 싶어 이름을 들어두었습니다.”

“근래 들어 소문이 자자한 장인이라고 하지.”

내가 루안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이야기를 꺼내자 로크의 표정이 반짝 빛났다.

“평범한 장인이 아닙니다. 그때는 내전이 있기 전이라서 그냥 보냈지만, 만약 이후에 내전이 일어날 걸 알았다면 전 그를 무조건 잡았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럴 만한 상대야.”

그래서 지금 내가 탐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이 세계에서 루안보다 실력이 좋은 장인은 존재하기가 힘들 테니까.

‘루안의 재능은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철과 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그 특이한 능력.

어떤 경위로 그런 능력을 얻었는지는 모르나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우위였다.

“하지만 이미 몇 달이나 지난 일이라 그 장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거라면 알고 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도록.”

네임드 장비를 보니 확실해졌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루안을 손에 넣어야 한다.

“지금은 우리 일이나 진행하지.”

난 라이언에게 단검 두 자루를 빌려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라면 라이언이 변변한 저항조차 못 하고 당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잠깐 빌려주지.”

“이건?”

“하피를 잡고 얻은 부산물로 만든 단검이다.”

기껏 레이드를 뛰어서 얻은 재료들을 장인들은 대부분 다루지 못했다.

그래도 그나마 가능했던 상대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하피였다.

아쉽게 장비 정보는 뜨지 않지만 확실하게 상등품이라고 할 만한 장비였다.

적어도 한 번의 싸움 정도는 견뎌줄 것이다.

“오오.”

라이언은 새 단검을 몇 번 휘둘러보더니 만족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솔직히 라이언의 승산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일대일 정면 승부 자체가 용병에게 불리하지.’

용병의 최대 강점은 난전에 있었다.

싸움이 복잡하고 진흙탕일수록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게 용병 계열의 특징인 것이다.

반면 기사는 만능에 가까웠다.

일대일 싸움도, 기마전도, 지휘에 있어서도 뛰어난 영웅.

거기에 장비까지 앞선다면 지는 게 더 힘들다고 볼 수 있었다.

‘뭐, 그래도 나름 분전하는 모습을 보이면 기사 서임 정도는 줄 만한가?’

패배하면 목걸이는 없던 것으로 하고 그냥 기사 서임 정도만 주는 걸로 생각했다.

어쨌든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거고 전쟁에서 세운 공도 적지 않으니까.

네패스 남작가 출신의 기사들도 딱히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주군께서 나오고 계신다. 전원 정렬!”

처처척!

약속된 장소로 나가자 수십의 기사들이 나에게 일제히 군례를 올렸다.

네패스 남작가에서는 본 적 없던 잘 훈련된 기사단의 모습이었다.

라이언을 응원하러 나온 용병들은 그런 기사들의 기세에 눌렸는지 숫자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진짜 기사단이 맞군.’

현재 용병들의 숫자는 내가 고용했던 인원이 70명에 도미닉 남작가에 고용되었다가 나에게 넘어온 이들이 30명 정도였다.

그렇게 100명의 용병들이 있었는데 서른 명도 안 되는 기사들에게 기가 눌린 것이다.

기사들이 말을 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미 이야기는 모두 들었을 것이다. 로크 경이 승리한다면 최고의 기사로서 마땅히 기사단장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와아아!”

도미닉 남작가 출신이 주축이 된 기사들이 그 말에 크게 환호를 내질렀다.

“전투에서 큰 활약을 보여준 용병 라이언이 승리한다면 포상과 함께 기사로 서임을 해줄 것이다.”

“와아아!”

용병들 사이에서도 환호가 나왔다.

용병 출신으로 기사가 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동시에 많은 용병들의 꿈이기도 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당연하지만 서로의 목숨이 위험한 공격은 금한다.”

나의 신호를 시작으로 두 2티어 영웅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터너를 상대했을 때와 달리 라이언은 선공을 잡지 않고 거리를 조절하며 신중하게 행동했다.

로크 역시 라이언을 얕잡아 보지는 않았다.

아무리 실력이 증명된 상대라도 용병이라면 방심할 만도 한데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다.

걸려 있는 것이 커서 그런지 원래 성격인지는 모르겠다.

“흐!”

그때 갑자기 라이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사님, 뭘 그리 경계하십니까? 제가 두려우십니까?”

라이언의 특기인 도발이었다.

딱히 스킬은 아니지만 용병인 라이언의 아이덴티티라 말할 수 있었다.

“하긴 전쟁에서 진 패배자 주제에. 거기에 제 주군을 갈아 치워놓고 충성 타령이나 하고.”

라이언은 도미닉 남작가 출신 기사들의 역린을 거침없이 거론했다.

도미닉 남작과 식솔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복종을 청했지만 사실 그건 핑계에 가까웠다.

그냥 적당히 체면을 살려주는 선택일 뿐, 살고 싶어서 굴복한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도미닉 남작은 상태가 위중해서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고 그가 죽으면 남는 식솔들은 작은 마을로 추방될 예정이었다.

그 마을의 주인은 터너가 될 것이기에 그들은 그 마을에서도 내 감시를 피할 수 없었다.

“아까 경례 올리는 거 얼마나 웃겼는지 아십니까? 주군을 내쫓은 상대에게 꼬리를 흔들어대는 꼴이라니. 하긴, 충성이나 명예보다 목숨과 부귀영화가 우선 아니겠습니까? 그죠?”

움찔!

거듭되는 모욕에 로크의 몸이 떨렸다.

얼굴도 시뻘겋게 물들어 당장이라도 달려들 태세였다.

솔직히 저만큼 참은 것만 해도 대단한 거였다.

용병인 라이언의 입 재간은 기사로서는 견뎌내기 힘든 수준이었으니.

“킥! 꼴에 기사라고.”

타악!

그러나 그것도 결국 한계가 찾아온 모양이다.

로크가 먼저 앞으로 도약하며 양손의 대검으로 내리쳤다.

감정이 실린 굉장히 과한 일격.

라이언은 고작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간격에서 벗어나고는 바로 반격에 나섰다.

쐐액!

두 자루의 단검이 하나는 곧게, 하나는 휘어들며 로크의 얼굴을 향했다.

위험한 공격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순순히 당할 상대가 아니란 걸 알기에 라이언은 작정하고 죽일 기세로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쨍!

로크는 철판이 덧대어진 장갑으로 휘어들어 오는 단검을 막고, 곧게 들어온 공격은 몸을 비틀어 피해냈다.

한 번에 두 개의 공격을 날린 라이언도, 그걸 대응한 로크도 상당한 실력이었다.

“어디 보십니까!”

그러나 라이언은 공격이 실패할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이 더욱 바짝 다가갔다.

근접을 넘은 초근접.

대검을 사용하는 로크의 간격 안으로 들어가 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저런.’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라이언이 패배할 것임을 확신했다.

타앙!

마치 누가 총을 쏘기라도 한 것처럼 깔끔하지만 강렬한 타격음.

놀랍게도 이는 로크의 주먹에서 난 소리였다.

[영웅 정보]

이름 : 로크

국적 : 크레시안 왕국

소속 : 네패스 남작가

유형 : 전투형

등급 : 2티어

칭호 : 숙련된 기사

스킬 : 지휘(2), 기마(2), 격투(2), 난전(2), 검술(1), 궁술(1), 방패술(1)

터너나 빅터는 4개에 불과했던 스킬이 무려 7개.

기사 계열 영웅에게는 흔치 않은 난전 스킬을 가졌고 더구나 검술보다 격투의 수준이 더 높다.

“컥!”

일격을 얻어맞은 라이언이 복부를 감싸 쥐며 주춤거렸다.

로크는 그런 라이언에게 싸늘히 말했다.

“용병 출신으로 기사가 되기는 정말 힘들지. 웬만큼 기사보다 강하다고 해도 인정받기가 어려워. 나도 그랬다.”

“설마…….”

“그래, 나도 용병 출신이다. 그 때문에 실력이 충분해도 단장 자리에는 앉을 수 없었지.”

라이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도 이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설마 로크가 용병 출신이었을 줄이야.

“기사와 몇 번 겨뤄보고 자신감이 생겼던 모양인데 유감이군, 후배. 난 보통 기사들과 달리 용병들과 싸운 경험이 아주 많거든.”

“젠장!”

라이언은 로크의 말에 치를 떨었다.

흥분했던 것처럼 보였던 로크는 사실 전혀 흥분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라이언의 도발에 넘어간 것처럼 위장했을 뿐.

“한 번에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선 것만으로 칭찬해 주마.”

타탕!

로크는 아예 대검은 내버리고 두 주먹으로 라이언을 압박해 들어갔다.

이미 한 대 맞은 라이언은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연달아 얻어맞으며 비틀거렸다.

“퉷!”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라이언이 피를 토해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자신의 장기인 속도를 전혀 살리지 못한 채 제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상황.

중무장한 기사를 상대로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선배, 창창한 후배의 앞길을 막으셔야 되겠습니까?”

라이언이 재차 말을 걸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몸을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순수한 기사라면 모를까 같은 용병 출신인 로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기사단장 자리는 내 평생의 숙원이었다. 후배에게는 미안하지만…….”

로크가 바짝 간격을 좁혀들었다.

라이언은 필사적으로 단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로크는 장갑에 덧댄 철판으로 가볍게 쳐내며 라이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만 쓰러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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