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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3화 (23/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3화

23화

“말씀대로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은 여러모로 계승식을 하기에 적당한 시기였다.

우선 도미닉 남작가를 점령하면서 얻게 된 자산이 있었고, 전쟁의 승전식을 겸할 수 있었으며, 새로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과 기존 기사들이 동료애를 다지기에도 적당한 핑계였다.

물론 가장 좋은 핑계는 바이든 남작과 마주할 명분이 된다는 거였다.

‘얻어야 할 것도 있고.’

왈트 자작가에 억류되어 있다는 루안.

그는 나에게 있어 동맹의 대가로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 * *

“네패스 남작으로부터 서신이 왔다고 들었는데요…….”

바이든 남작을 찾은 레일리 왕녀는 심각한 얼굴로 편지를 노려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 말을 흐렸다.

확실히 바이든 남작에게 있어 네패스 남작은 좋게 여겨지기 힘든 상대였다.

세 영지 모두를 얻을 수 있던 기회가 고작 왈트 자작령 하나만 얻게 된 것에서 끝났으니까.

더구나 네패스 남작 때문에 기사 제이콥이 끌고 갔던 병력의 합류가 늦어져서 피해가 늘었다.

그 피해는 네패스 남작이 왈트 자작을 놓치면서 더 늘어나 바이든 남작은 무혈에 가까울 수 있던 피해에서 다소의 희생을 감당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왈트 자작가를 얻었으니 이득은 충분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손해를 본 기분일 것이다.

“기분이 안 좋은 거 같네요. 나중에 올까요?”

“아닙니다, 왕녀 저하.”

바이든 남작은 우울한 얼굴로 레일리 왕녀를 맞이했다.

감정은 감정이고 결국 네패스 남작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마법사 협회의 비호를 무시하기에는 바이든 남작이 가진 힘이 그리 크지 않았으니.

‘왕녀 저하께서 도와주실 거 같지도 않고.’

대영주인 마이어드 후작이나 하다못해 눈앞의 레일리 왕녀가 도와준다면 지금이라도 네패스 남작을 응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이어드 후작의 관심은 카이로스 백작에게 가 있고 레일리 왕녀는 네패스 남작에게 호감을 보이는 중이었다.

바이든 남작 혼자서는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번 전쟁에서 네패스 남작이 보여준 활약도 문제였다.

‘네패스 남작이 그렇게 대단한 마법사인가?’

그냥 어중이떠중이 마법사도 아니고 원로가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일 재능.

실제로 이번 전쟁에서 마지막에 활약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혼자 수십 명을 해치울 정도라고.’

왈트 자작가의 병력을 뒤에서 기습해 진형을 붕괴시켰다고 한다.

낮게 잡아도 지부장 수준이고 경우에 따라서 원로에 준하는 수준 높은 마법사일지도 몰랐다.

‘하긴, 그러니까 마법사 협회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비호하는 것일 테지.’

그게 아니라면 마법사 협회가 굳이 귀족 출신 마법사를 감싸줄 이유가 없었다.

“내용을 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바이든 남작은 자신에게 온 서신을 레일리 왕녀에게 보여주었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그저 자신이 남작의 작위를 이어받는 계승식을 할 예정이니 자리에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

그러나 액면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동맹 요청이네요.”

레일리 왕녀도 그 사실을 파악했다.

이웃 영주 가문 두 곳이 사라지고 이제 서로만 남은 상황.

이런 와중에 초대장을 보내는 건 서로 싸우지 말고 잘 지내보자는 의미라고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이전이라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고작 네패스 남작가 따위가 자신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도미닉 남작가를 정복하고 마법사 협회까지 등에 업은 네패스 남작가는 이제 제법 번듯한 영주가 된 상태였다.

이렇게 먼저 동맹을 제안해도 괜찮을 정도로.

“그저 동맹 요청도 아닙니다. 아시잖습니까? 네패스 남작가는 친왕실파 가문이었단 것을.”

중립이었던 도미닉 남작가와 왈트 자작가를 무너트리고 대영주파 귀족인 자신에게 손을 내민다.

물론 왕실이 사라졌으니 살길을 모색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네패스 남작가의 행정관이 보인 행동은 우리가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자신들에게 왕녀가 있다는 걸 알지 않고서는 결코 불가능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전쟁에서 네패스 남작가에게 최고의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그 덕분에 왈트 자작과 도미닉 남작의 싸움에 끼어들어 어부지리를 취했으니까.

“네패스 남작이 왕녀 저하의 존재를 눈치챈 게 분명합니다. 그게 아니고는 이번 전쟁에서 그가 보인 행동은 설명이 안 됩니다.”

“확실히 그렇네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마 마법사 협회 쪽에서 정보를 얻은 거 같습니다.”

바이든 남작은 흉수로 마법사 협회를 생각했다.

네패스 남작이 레일리 왕녀를 알아볼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마법사 협회를 상대로도 왕녀의 존재는 숨겼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갔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마법사 협회에서 네패스 남작가에 이 사실을 알려줬다는 방향으로 이해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럼 마법사 협회가 또 다른 세력에게 제 존재를 발설했을 가능성도 있군요?”

끔찍한 가정에 바이든 남작은 말문이 막혔다.

왕녀의 존재가 밝혀진다면 대영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남부의 지배자 마이어드 후작이라고 해도 다른 지역의 대영주들까지 감당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길 빌어야 합니다.”

“그럼 이 초대는 무조건 가야 되겠네요? 네패스 남작한테 직접 물어보면 답을 들을 수 있을 테니.”

“그렇습니다.”

바이든 남작이 좌절한 게 그 때문이었다.

거부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처지였으니까.

그는 무조건 이 자리에 참석해야 했다.

“바이든 남작이 네패스 남작을 만나고 싶지 않다면 대신 가드릴 수도 있는데요?”

레일리 왕녀가 은근한 기대를 담아 물어오자 바이든 남작은 미간을 좁혔다.

그녀는 절대 대외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노출해서는 안 될 입장이었다.

“왕녀 저하, 그건 절대로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차라리 안 가고 말지요.”

“이제는 네패스 남작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다 한들 제가 진행해야 할 일입니다.”

바이든 남작이 피곤한 얼굴로 제 역할임을 강조하였다.

“흐음.”

레일리 왕녀는 물러설 마음이 없어 보이는 바이든 남작의 단호한 모습에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

[축하합니다! 새로운 영토를 점령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업적 달성에 따른 보상과 추가 특전이 제공됩니다.]

초대장을 다 보내고 점령한 영토가 안정될 때쯤 VVIP 시스템이 요란스럽게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싶어서 확인하니 업적 달성을 축하한다며 특전을 주겠다고 되어 있었다.

‘호오, 특전이라.’

솔직히 업적이니 뭐니 하는 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특전.

퍼스트 클래스처럼 그 성능이 기가 막히는 특전이기를 기대했다.

[민심은 천심 : 일시적으로 점령한 영토에서 자원 생산량이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그러나 주어진 특전은 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내용이었다.

도미닉 남작령이 네패스 남작령보다 풍족한 편이라고는 해도 그 차이가 그리 큰 건 아니었다.

더구나 전쟁이 상당히 빨리 끝나 소모한 자원도 적은 상황에서 내정형 특전은 솔직히 계륵에 가까웠다.

“그래도 보상으로 보주를 준 건 다행이네.”

생각보다 무용한 특전은 뒤로하고 난 잿밥인 보주에 관심을 가졌다.

이전부터 보주 상점에서 꼭 사고 싶었지만 살 수 없었던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3티어 승급권 : 2티어 영웅을 3티어로 승급시킬 수 있습니다.]

‘드디어 이걸 사는 데 성공했군.’

고티어로 갈수록 효율이 큰 폭으로 오르는 영웅 유형의 특성상 3티어부터는 완전히 다른 영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격차가 크게 났다.

이 때문에 절대군주의 유저들은 1, 2티어 영웅을 저티어로, 3티어부터는 고티어로 분류하기도 했다.

‘과금하는 유저들이 노리는 것도 보통 3티어를 먼저 만드는 것이고.’

나처럼 무과금을 고집하는 일부 유저를 제외하면 절대군주의 최우선 목표는 3티어 영웅을 만드는 것이었다.

“문제는 누구한테 쓰느냐인데.”

원래 예정대로라면 이 승급권을 쓸 상대는 라이언이었다.

하지만 이는 도미닉 남작가를 점령하기 이전의 이야기일 뿐, 지금 나에게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2티어 영웅이 둘이나 더 늘어났으니까.’

도미닉 남작가에서 부단장이었다는 로크라는 기사.

그리고 도미닉 남작 휘하에 있던 늙은 마법사 제이스가 그 상대였다.

물론 이제 막 들어온 그들과 달리 라이언은 전투를 함께 한 공적이 있었지만, 그 신분이 용병에 불과했다.

딱히 놓아줄 생각은 없지만, 라이언 쪽에서 정해진 계약 기간이 넘어간 뒤 계약 종료를 요구하면 나로서는 상당히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바에야 군신 관계로 묶이는 기사나 같은 협회 소속의 마법사가 훨씬 나은 선택지였다.

‘그나마 마법사야 어차피 5티어인 내가 있으니까 미뤄도 되지만 3티어 전투형 영웅은 꼭 필요한데.’

라이언과 로크를 사이에 두고 저울질을 했는데 쉽게 결정이 나지 않았다.

라이언의 불확실한 신의를 믿을 것인지 새로 들이게 된 도미닉 남작가 출신들을 우대하는 선택을 할 것인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난 결국 선택을 그들에게 넘기기로 했다.

‘더 강한 쪽에 주면 되겠지.’

* * *

“네?”

내 깜짝 제안에 라이언은 표정에서 당혹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략 ‘이건 또 뭔 미친 짓이야?’라는 의미가 엿보였다.

“한 번의 싸움이 끝났지만, 아직 내전이 끝난 건 아니니까. 영주로서 가장 믿음직한 실력자가 누구인지 알아둬야 하지 않겠나?”

내 제안에 당황한 건 라이언만이 아니었다.

호출을 받아 라이언과 함께 자리하게 된 도미닉 남작가 출신의 기사 로크는 의심이 담긴 시선으로 나와 라이언을 살피고 있었다.

“저놈은 용병 아닙니까?”

“그래. 하지만 이번 싸움에서 기사 둘을 죽인 용병이지.”

목숨이 귀한 용병들은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상대는 최대한 피했다.

그렇기에 전투 과정에서 기사들은 같은 기사가 맡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라이언은 예외였다.

무기야 맞춰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순수 실력이 가장 뛰어난 건 라이언이었고 때문에 라이언은 전투에서 매번 기사들과 맞붙어야 했다.

그러나 라이언은 그 모든 싸움에서 승리했다.

직접 죽인 기사가 둘에 제압한 기사도 둘, 더구나 내전 이전에는 동부의 기사들과 단장인 터너까지 꺾은 상황이었다.

“음, 귀족 나리? 그냥 제가 진 거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수차례 나에게 휘둘렸던 라이언이 난색을 보이며 기권 선언을 했다.

“이번에도 포상을 걸 예정인데?”

“괜찮습니다. 받을 만큼 받고 있고 게다가 돈값을 하게 만드시는 분인 거 이제는 압니다.”

라이언은 어딘가 득도한 선인처럼 황금에 대한 욕망을 버린 채 답했다.

그러나 안 될 말이었다.

“그냥 포상이 아니야. 로크 경, 그대가 이긴다면 기사단장 자리를 내주지.”

내 파격적인 제안에 로크의 눈빛이 달라졌다.

기존에 있던 단장인 터너를 밀어내고 도미닉 남작가 출신인 그에게 요직을 주겠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정말입니까?”

“주군의 말을 의심하나?”

“아닙니다! 제 실언이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로크는 거의 바닥과 하나가 될 정도로 자세를 낮췄다.

도미닉 남작가 출신으로 차별을 걱정해야 할 판에 기사단장 자리를 잡을 기회가 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는 비단 로크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도미닉 남작가 출신 모두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일이었다.

‘어차피 터너는 단장 자리를 유지할 실력도 안 되고.’

이 제안을 하기 이전에 난 터너를 찾아가서 기사단장 자리를 그만둘 의향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터너는 잠시의 고민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

도미닉 남작가의 기사들이 합쳐지면서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기사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임시로나마 지켜왔던 자리를 빼앗기는 게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전시였다.

철저하게 검증된 실력 있는 인재만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챙겨줄 만큼은 챙겨주기로 했으니까.’

그렇다고 네패스 남작가 출신의 기사들을 푸대접할 생각은 아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만큼 그 승전에 대한 보너스를 겸해 모두에게 상당한 보상을 약속했다.

‘기사라고 다 같은 기사가 아니지.’

그중 터너에게 제안한 것은 봉지를 내리는 것으로 정확히는 토지와 거기에 속한 농노, 징세를 비롯한 권한들이었다.

이는 많은 기사 중에서도 인정받는 소수만 받을 수 있는 특혜였다.

로크에게 건네진 파격적인 제안에 혹했는지 라이언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저에게는?”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지.”

난 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도미닉 남작가에서 가보로 전해져 온다는 큼지막한 보석이 박힌 목걸이였다.

정확한 가치는 모르겠지만 라이언 입장에서는 당장 일 때려치워도 먹고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오. 정말 그걸 주겠단 말씀이십니까? 주급의 100배 이상 비쌀 거 같은데.”

“그렇겠지. 여기에 더해 한 가지를 더 주지.”

난 욕망으로 눈이 반짝거리는 라이언에게 제안했다.

“기사 서임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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