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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2화 (22/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2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2화

22화

【 승리, 그리고 】

“이쪽은 아주 개판이군.”

난 천천히 도미닉 남작가의 군대를 뒤쫓았다.

그곳에서는 기대해 마지않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왈트 자작이 도미닉 남작가를 공격해서 본성을 완전히 점령해 버린 것이다.

도미닉 남작은 그에 분노해서 왈트 자작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바이든 남작가가 영지를 노리지 않겠습니까?”

빅터는 내가 물러나지 않고 추격을 한 것에 불안을 표했다.

확실히 바이든 남작가가 우리를 노리면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이를 대비해 이미 베르타에게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우리는 전쟁 내내 징집병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다른 영주들은 그들의 존재를 아예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징집병 정도로 뭐 어쩌겠냐만은.

“바이든 남작가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거다.”

장담하는데 바이든 남작가는 우리 가문을 공격할 의도가 없었다.

왈트 자작가와 한 번 틀어진 상황에서 왈트 자작가가 도미닉 남작가를 공격했다는 건 결국 둘 사이에 밀약이 있었다는 의미.

하지만 바이든 남작가 입장에서 굳이 왈트 자작가와 손잡을 이유가 없다.

‘그런 척이라면 모를까.’

이 싸움에서 승자는 바이든 남작가일 수밖에 없었다.

남부 최대 세력을 자랑하는 대영주 마이어드 후작을 배경으로 두고 있다는 게 첫 번째.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레일리 왕녀와 왕실 병력의 존재가 두 번째.

마음만 먹는다면 다른 세 영지를 모두 적으로 돌린다고 해도 절대 패배하지는 않을 압도적인 힘이다.

물론 그게 우리 네패스 남작가를 노리지 않을 이유가 되는 건 아니다.

친왕실파라는 성향도 딱히 의미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바이든 남작가가 힘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게 신뢰를 주고 있었다.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가장 약한 우리 세력과 가장 강한 왈트 자작의 세력. 어디에 총력을 쏟고 싶을까?”

원래부터 힘이 없는 우리와 지금 도미닉 남작가와의 다툼으로 약해진 왈트 자작가.

바이든 남작의 입장에선 왈트 자작가가 더 먹음직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왈트 자작 역시 대비를 해놨을 테지만 왈트 자작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이든 남작가에는 레일리 왕녀를 비롯해 왕가의 병력이 있다.’

그들을 동원한다면 병력이 나눠진 왈트 자작가를 순식간에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왈트 자작가를 해치울 기회를 두고 네패스 남작가라는 작은 먹이에 집중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 바이든 남작가가 이후에 저희를 노리지 않겠습니까?”

“마법사 협회의 힘은 그때 쓰는 거지.”

물론 왈트 자작가 이후에 타깃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때는 마법사 협회의 힘을 쓰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베르타 경이 시간을 버는 동안 도미닉 남작가를 집어삼키면 되는 거야.”

고작 150명으로 되겠냐 싶지만 남은 두 세력이 지금 서로 싸우는 중이었다.

왈트 자작은 신속하게 움직이기 위해 정예만을 데리고 도미닉 남작가를 습격했고, 도미닉 남작은 괴수들과의 싸움에서 큰 손실을 입었다.

양쪽 다 온전치 않은 상태이니 네패스 남작가의 병력으로도 승산을 논해볼 만했다.

“도미닉 남작이 밀립니다.”

예정된 결과겠지만 공세를 시작한 시점에서 도미닉 남작에게는 가망이 없었다.

다른 방법을 선택했어도 결과는 같았겠지만.

“슬슬 움직이지.”

승산을 잡은 왈트 자작은 방어를 그만두고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최대한 빠르게 도미닉 남작가의 잔당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 같았다.

그럴 만도 한 게 바이든 남작가가 언제 자신들의 배후를 노릴지 모르는 상태였다.

이 전쟁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건 바이든 남작가가 유일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먼저 선공을 잡은 도미닉 남작가와 왈트 자작가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쳐라!”

우리는 도미닉 남작가를 거의 궤멸시킨 왈트 자작가의 뒤를 노리고 공격해 들어갔다.

“뭐야? 네패스 남작이 어떻게?”

왈트 자작은 적극적으로 맞서기보다 물러나는 쪽을 선택했다.

도미닉 남작가의 본성으로 퇴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급하게 퇴각하려고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오히려 허리 부분을 드러내며 허점을 노출했다.

“이익! 맞서 싸워라!”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왈트 자작이 선택을 바꿨다.

뒤이어 터진 악수였다.

싸울 거라면 처음부터 제대로 맞서 싸웠어야지.

양쪽으로 협공을 받는 상황이 부담되어서 그런 것 같은데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진형도 제대로 안 잡히고 병사들도 우왕좌왕하고!”

연달아서 전달된 두 개의 명령으로 인하여 진형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틈.

나는 거기에 큰 혼란까지 안겨주었다.

“마나 블래스트!”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마력을 전장에 내다 꽂았다.

콰콰콰콰!

흡사 폭풍이 일어나듯 전장에 강림한 충격파가 일대를 뒤집었다.

마나 가속의 부작용으로 나 역시 연달아 마법을 쓰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지만, 성과는 썩 훌륭했다.

전장이 아비규환으로 변했으니까.

진형은커녕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 적들 사이로 내 부하들이 몰아쳤다.

꽈광!

말에 탄 기사들의 돌격은 폭탄과 같은 소리를 냈고, 확실히 유리한 상황에 병사들과 용병들의 사기도 높았다.

아무리 전쟁을 모르는 이가 보더라도 승패는 너무 분명했다.

확실한 승리에 두려움을 느낄 이유는 없다.

“도망쳐!”

연달아 혼란에 빠졌던 왈트 자작가의 군대가 혼비백산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내 입장에선 굳이 쫓을 필요가 없었다.

“본성을 점거해라!”

“왈트 자작이 저쪽에 있습니다!”

전장을 살피던 기사가 나에게 왈트 자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난 고개를 내저었다.

“못 본 척 보내줘라.”

설령 잡더라도 놓아줘야 했다.

이곳에서 왈트 자작까지 죽이게 되면 바이든 남작가가 곧장 우리를 노릴지도 몰랐으니까.

왈트 자작은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 * *

바이든 남작은 모든 보고를 확인하고는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분명 큰 손해는 없었다.

오히려 왈트 자작가를 공격해서 압도하고 있었으니 이는 큰 이득이다.

더구나 도미닉 남작가는 사실상 망한 상황에 네패스 남작가도 약간의 손실은 있었을 거다.

원래도 가장 작은 세력이니 그 둘도 이제는 손아귀에 들어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그 두 남작령을 손에 쥘 방법이 없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마법사 협회로부터 왔다는 마나 파장을 해석한 휘하 마법사가 그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런데 그 내용이 기가 막혔다.

네패스 남작이 마법사 협회의 원로인 플레턴의 제자가 되었고 이에 마법사 협회에서 네패스 남작가를 적극적으로 비호하겠다는 내용.

이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미친 거 아닌가? 마법사 협회가 감히 귀족의 일에 끼어들어?”

“원로 혼자의 의견이 아닐 겁니다. 지부장까지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마법사는 행여나 바이든 남작이 네패스 남작가를 공격할까 싶어 적극적으로 만류에 나섰다.

그가 마법사라서 협회의 편을 드는 게 아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마법사 협회와 대립해서 바이든 남작가에 득 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지 두 개를 그냥 날리라고?”

도미닉 남작가와 네패스 남작가 양쪽 모두 빈집이나 다름없었다.

그냥 줍기만 하면 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그걸 마법사 협회가 가로막았다.

“그만두세요, 바이든 남작.”

“하지만 왕녀 저하.”

레일리 왕녀까지 자신을 막자 바이든 남작은 울상을 지었다.

무려 영지 세 개를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마이어드 후작 같은 대영주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자신의 영향력이 크게 늘어날 건 당연했다.

게다가 이 영지들은 왕가 재건의 밑거름이 될 예정이었다.

“그날 네패스 남작이 하보크에 갔던 이유는 마법사 협회에 등록하기 위해서였군요. 그런데 지금까지 계속 입 다물고 전쟁을 치렀어요. 처음부터 마법사 협회를 내세우고 그냥 숨을 수도 있었을 텐데.”

레일리 왕녀는 이번 전쟁에서 네패스 남작의 행보를 되짚었다.

가장 먼저 본인이 나서서 눈치만 보던 영지들 사이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당당하게 첫 승리를 거뒀다.

그것만으로도 네패스 남작가의 전력으로는 기대 이상의 활약이라 할 수 있는데 기어이 도미닉 남작가를 집어삼켰다.

게다가 이는 운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계산하여 바이든 남작가까지 성공적으로 견제하면서 해낸 일이었다.

거기에 쐐기를 박듯이 마법사 협회를 통해 자신들을 압박했다.

“그는 적으로 두기보다 동맹으로 삼는 게 이득이 될 사람이에요.”

“그가 그렇게도 마음에 드십니까?”

바이든 남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왕가의 재건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죠.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이에요. 더구나 마법사 협회도 이용할 수 있죠. 거기에 결과적으로 우리와는 단 한 번의 적대도 하지 않았어요.”

제이콥이 회군을 제대로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인명 손실은 발생하지 않았다.

서로의 감정의 골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대치를 마무리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원수와도 손을 잡을 때가 있는데 그에 비하면 이는 매우 원만한 사이였다.

더구나 네패스 남작가는 친왕실파 귀족이었고.

“그렇기는 하군요. 꼭 적이 아니란 걸 알고 있던 것처럼.”

“정말 알았을지도 모르죠.”

레일리 왕녀는 처음 자신을 봤을 때 당황하던 네패스 남작의 얼굴을 떠올렸다.

당연하지만 그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더구나 당시 자신은 외모를 바꿔서 남들이 결코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그런데도 네패스 남작은 뭔가 알아차린 듯한 눈치였다.

“설마요. 네패스 남작이 외부 활동을 한 건 그때가 처음입니다.”

“그한테는 한 번으로 충분했던 모양이네요.”

바이든 남작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레일리 왕녀를 봤다.

사람이라면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나저나 마이어드 후작 각하께서 어찌 나오실지 모르겠군.’

바이든 남작은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마이어드 후작이 이 사실을 알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 * *

“계속 지켜보고 계셨나?”

도미닉 남작가를 점령한 나는 곧장 마법사 협회로부터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바이든 남작가에 내가 마법사 협회의 소속이라는 걸 전달했다는데 이는 내가 부탁한 적 없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제 슬슬 부탁할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먼저 그것을 해주었다.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관찰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물론 거점이 널려 있으니까 확인하는 게 쉽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른데.’

거점에서 확인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빠른 움직임이었다.

마법사들이 직접 전장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전달했던 게 분명하다.

자칫 첩자로 오해받아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짓을 한 걸 보면 자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윗선에서 지시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윗선이란 플레턴과 가이트일 테고.

“빅터 경.”

“네.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늙은 마법사가 좋아할 만한 선물이 뭐가 있을까?”

“어…….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빅터에게 너무 어려운 걸 물어봤던 모양이다.

난 아무것도 아니라며 빅터를 내보내고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도미닉 남작이 쓰던 것 같은데 굉장히 안락했다.

“후우.”

첫 전투에 이은 첫 전쟁의 끝.

내가 원하던 대로 이루어졌지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가 너무 컸다.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도 마무리는 확실히 해야겠지.’

싸움은 끝났지만 아직 뒷정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 * *

바이든 남작가가 왈트 자작가를 완전히 점령하는 데는 약간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곱게 보내준 왈트 자작 덕분이었다.

덕분에 바이든 남작과 대화를 가질 기회는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나에게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도미닉 남작가의 점령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인질이 아주 도움이 되었지.’

도미닉 남작은 왈트 자작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는 중이었다.

거기에 장남은 일찌감치 나에게 잡혔고 차남과 다른 식구들도 왈트 자작이 잡아둔 것을 내가 확보했다.

포로가 이렇게 많으니 아래의 기사들이나 병력이 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모두 다 항복을 선택했고 난 그들에게 복종과 죽음이라는 두 개의 선택권을 내주었다.

병사들은 당연히 모두 복종을 골랐다.

겨우 사병에 불과한 그들 중에 영주와 의리를 가진 이들이 흔할 리 없었으니까.

문제는 기사들이었다.

충성이야말로 존재 의의인 기사들에게 항복도 아니고 다른 영주에게 복종하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거절하기에도 힘든 상황이었다.

내가 붙잡은 인질이 그 충성의 대상인 도미닉 남작과 그 가족이었으니까.

결국, 기사들은 도미닉 남작과 가족들의 목숨을 유지해 주는 것을 대가로 나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결정을 내렸다.

‘좋군.’

약 20명 정도의 기사가 그렇게 내 품으로 들어왔다.

겨우 7명이 전부였던 이전에 비해서 이제야 기사단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이 갖춰진 셈이다.

이외에도 병사들까지 합쳐서 150명에 불과하던 병력이 400명까지 뛰었다.

어디 가서 영주 귀족이라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 된 것이다.

‘마법사도 셋이나 얻었고.’

첫 전투에서 사로잡은 마법사 하나에 이번 전투에서 얻은 마법사까지.

그들은 굉장히 쉽게 설득되었는데 마법사들의 특유의 끈끈한 결속 때문이었다.

본인이 귀족이 아닌 이상에야 마법사들은 대부분 협회 소속이니까.

남부 지부장인 가이트와 원로인 플레턴의 이름을 내세우며 설득하자 오히려 나에게 호감을 보였다.

“정말 모든 게 공자님의 뜻대로 되셨군요.”

바이든 남작가의 군대를 상대로 시간을 끌었던 베르타가 도미닉 남작가를 점령한 내 모습에 눈을 빛냈다.

“바이든 남작가 덕분이지. 결과적으로 동맹이나 다름없었어.”

바이든 남작가에 숨어 있는 크레시안 왕가의 병력이 움직였다면 이웃 영지들은 빠르게 평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 남작가는 그들을 숨겼다.

아직은 힘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고 덕분에 바이든 남작가의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만약 하보크에서 돌아오던 길에 레일리 왕녀를 못 봤다면 이렇게 잘 풀리지도 않았겠지.’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예정이십니까?”

“일단 미뤄뒀던 일부터 해야 하지 않겠어?”

“미뤄뒀던 일이라 하시면?”

“초대장을 보내야지. 다행히 장례식 때처럼 작위 계승식에도 아무도 안 오는 일은 없을 거야.”

비로소 정식으로 영주가 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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