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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0화 (20/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0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0화

20화

* * *

“그럼 다시 출정해 볼까?”

도미닉 남작가의 장남을 붙잡고 하루의 휴식을 취한 뒤 나는 다시 병력을 이끌고 출정에 나섰다.

저번과 같은 경로였는데 도미닉 남작가는 저번과 달리 빠른 반응을 보여줬다.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입니다.”

이번에 도미닉 남작가는 300명에 달하는 병력을 내보냈다.

그리고 거기에는 도미닉 남작 본인의 깃발이 확인되었다.

직접 출정했다는 뜻이다.

“가까이 오기 전에 물러나지.”

난 도미닉 남작가의 출정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기수를 돌렸다.

아직 도미닉 남작에게 이성이 남아 있다면 무리하게 추격해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른 영주들이 어찌 나올지 모르니까.

‘이번에는 다른 영주들도 제대로 된 반응을 보여주겠지.’

이번 내 목표는 도미닉 남작가가 아니었다.

다른 영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 * *

“움직여야 됩니다.”

왈트 자작가에서 먼저 이야기가 나왔다.

“도미닉 남작이 흥분한 거 같습니다. 그렇게 본진을 비우고 움직이다니.”

이대로 도미닉 남작가의 병력이 영지를 벗어난다면 단숨에 점령할 수 있었다.

“바이든 남작은 뭐라고 하던가?”

“대의를 위해 이번 일은 눈감아 줄 테니 예정대로 도미닉 남작가를 노리면 된다더군요.”

“동맹을 깼는데 그냥 넘어가 주겠다고? 퍽이나 그렇겠군.”

왈트 자작은 냉철하게 지적했다.

도미닉 남작의 뜻에 한 번 어울려주었다가 바이든 남작가의 경계만 사게 되었다.

그런데도 바이든 남작가가 같은 제안을 해오는 건 이상했다.

“아마 다른 속셈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다른 속셈이라.”

왈트 자작은 그게 뭔지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이나 바이든 남작이 생각할 가능성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나를 노리겠다는 거로군.”

바이든 남작은 네패스 남작가를 공격한다고 했지만, 이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거짓말이 아니어도 왈트 자작의 입장에서는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네패스 남작령은 도미닉 남작령보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그만큼 병력도 적었으니까.

이기더라도 피해가 별로 없을 바이든 남작이 직후 자신을 노린다면 도미닉 남작가와 소모전을 한 입장에서 좋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좋은 기회는 맞아. 도미닉 남작가가 멀쩡하지 않다.’

그런데도 고민되는 건 지금이 워낙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어린 네패스 남작에게 한 방 먹어버린 도미닉 남작가였으니까.

그래서 다소 무리하게 병력을 운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 녀석들이 확실히 영지를 넘는지 확인해라.”

네패스 남작가의 병력을 쫓아간 도미닉 남작가의 병력이 영지의 경계를 넘느냐 마느냐.

거기에 따라서 왈트 자작가의 행동도 결정될 것이다.

* * *

“왈트 자작가는 도미닉 남작가의 군대가 경계를 넘어가기를 기다리는 모양입니다.”

바이든 남작의 보고에 레일리 왕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도미닉 남작이 정말 이성을 잃고 경계를 넘어간다면 그때 왈트 자작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물론 자신들과의 동맹을 믿지 않고 침묵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이쪽이 먼저 행동으로 보이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설령 왈트 자작이 끝까지 속지 않더라도 바이든 남작가는 정면에서 왈트 자작가를 무너트릴 힘이 있었다.

단지 아직 드러내고 싶지 않을 뿐.

“도미닉 남작이 정말로 경계를 넘을까요?”

“사람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이성이 있다면 넘지 않을 겁니다.”

레일리 왕녀가 제시한 가능성에 바이든 남작은 그럴 일이 없다고 여겼다.

후계자가 잡혔다지만 그것만으로 이성을 잃었으리라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했으니.

“무엇보다 본진이 비어버리지 않습니까?”

만약 그대로 네패스 남작가로 돌격하려 했다가는 영지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물론 정말 이성을 잃었다면 그걸 고려하지 않겠지만 그렇다면 이쪽만 좋았다.

“뭐, 만약 그래 준다면 저희야 더할 나위 없이 좋으니 일말의 기대 정도는 걸고 있습니다.”

넷 중 두 가문이 동시에 망하면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그때는 왈트 자작가와 정면으로 싸워 부숴버리면 그만이니까.

* * *

“빅터 경은 어떻게 생각하나?”

도미닉 남작가의 군대가 과연 경계를 넘어서 우리 영지를 침범할지를 두고 난 기사들과 내기를 하고 있었다.

이미 내전이 일어날지 말지를 놓고 나와 한 번 내기를 했다가 패한 빅터는 신중히 고민을 거듭했다.

“화가 난다면 넘겠지만 이성이 있다면 넘지 않을 겁니다.”

“다른 영주와 동맹을 맺어 후방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 않나?”

“그럼 전군을 이끌고 오겠지요. 300명이라면 우리를 이길 수는 있지만 피해가 클 겁니다.”

“오, 드디어 전략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군.”

처음으로 기사다운 대답이 나온 것에 난 흡족함을 느꼈다.

빅터의 말대로 아무리 동맹을 맺고 뭐를 해도 자신의 빈틈을 보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의 가문이 아주 가깝게 이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이웃이란 점을 빼고 보면 각 가문들은 남남에 가까웠다.

“괜찮은 의견이야. 그런데 빅터 경.”

“네.”

“또 틀렸어.”

내 말에 빅터가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입니까?”

“이성이 있더라도 경계를 넘어야 할 이유가 있거든.”

빅터는 이성을 잃었다면 넘을 거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반대였다.

아직도 도미닉 남작이 이성적이라면 오히려 그렇기에 경계를 넘을 것이다.

도미닉 남작이 우리 가문을 확실히 없애기 위해서는 일단 뒤쪽의 방비부터 단단히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두 가문 중 어느 쪽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을지 알아보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격해야지.”

“네?”

내가 툭 내뱉은 말에 빅터뿐 아니라 기사들 모두가 기겁했다.

“전면전으로는 무리입니다. 전 병력을 끌고 오는 건 아니지만 저희의 두 배는 됩니다.”

“당연히 나도 무모하게 싸울 생각은 없어. 하지만 우리 영역에 들어온 상대를 응징해 줘야 하지 않을까?”

“좋은 방법이 있으십니까?”

“뭐, 특별한 방법이랄 게 있나.”

난 용병들을 돌아보았다.

“우리 영지가 그 자체로 특별한데.”

잠시 그대로 대기하고 있자 곧 정찰에 나갔던 병사들이 복귀했다.

“도미닉 남작가의 군대가 경계를 넘어올 거 같습니다.”

바라던 대로였다.

어차피 이미 출정한 걸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보다는 뭐라도 얻는 게 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경계를 넘어서 공격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해주고 다른 영주들의 동태도 살필 수 있으니 도미닉 남작의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였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계산을 잘못했다.

“손님이 왔으면 맞이해 줘야지.”

우리 영지에는 입장료가 있다.

* * *

“여기서부터는 네패스 남작령입니다.”

경계를 넘은 도미닉 남작가의 군대는 성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원래 이 주변에 있어야 할 네패스 남작가의 군대는 또 달아난 모양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사단장의 물음에 도미닉 남작은 정면을 가리켰다.

“좀 더 들어간다.”

“본진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걱정 마라. 금방 돌아갈 테니까.”

자신이 낸 계략으로 장남이 잡힌 탓에 차남의 입지도 좋지 않아졌다.

그러나 그는 영특한 머리로 새로운 전략을 짜냈다.

바로 일부러 이성을 잃은 척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었다.

얻게 될 이득이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잡혀 있는 장남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네패스 남작가를 응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하지만 왈트 자작가와 바이든 남작가 중 어디가 자신들을 노리고 움직일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적이 누구인지를 알면 그만큼 대비하기 쉽다.

네패스 남작가에 대한 복수는 그 대비 이후에 하면 될 일이었다.

“남작님, 정찰 나간 병사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때 네패스 남작가의 군대를 따라 보낸 병사들이 돌아왔다.

“그래, 네패스 남작은 또 도망쳤나?”

도미닉 남작은 예상했던 상황이 일어났을 것으로 생각했다.

네패스 남작령에 속한다고 해도 이쪽은 외곽 지대로 별다른 시설이 없었으니까.

병력이 부족한 네패스 남작이 싸우고자 한다면 마을이나 요충지로 가서 틀어막을 게 분명했다.

“아닙니다. 네패스 남작가의 병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있습니다.”

“뭐?”

“아무래도 우리와 회전을 할 생각 같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보고에 도미닉 남작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혹시 무슨 함정인가 의심하기에는 깔아둔 눈이 너무 많았다.

뭔가가 있었다면 이미 진즉에 보고가 왔어야 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도미닉 남작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들어가서 싸워야 할지 적당히 물러나야 할지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싸우면 이기겠지만 피해도 따를 것이고 본진이 위험해진다. 그러니 돌아가는 게 맞다. 그렇지만 회전이라면 정면에서 붙기에 압살할 수 있다. 최대한 빨리 쓰러트리고 돌아가면 네패스 남작가도 없애고 본진도 지킬 수 있다.’

상대가 방어가 아닌 맞공세를 취했기에 기존에 없던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도미닉 남작은 이를 두고 망설였다.

‘너무 달콤한데.’

붙잡힌 장남의 복수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건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신중해야 했다.

일단 정면에서 마주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전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등을 보였다가 뒤를 공격당하면 피해가 커질 테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경들의 의견을 알고 싶군.”

도미닉 남작의 물음에 기사들은 저마다 의견을 꺼냈다.

좋은 기회가 왔으니 이 기회를 노리자는 의견과 생각지 못한 변수는 피하고 원래 계획을 따르자는 의견이 충돌했다.

자신의 생각과 별로 다를 것도 없었기에 도미닉 남작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안 되겠군.”

한참 고민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도미닉 남작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덕분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이렇게 써버린 이상 이제는 돌아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모두 돌아간다.”

그렇게 도미닉 남작의 군대가 말머리를 돌리려고 할 때였다.

“크르르!”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은 당황했다.

이곳에 있는 건 무장한 병력 300명이었다.

그 발소리만 들어도 맹수들은 달아나야 했는데 설마 덤벼오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저쪽이다!”

곧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린 이들은 울음소리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겁했다.

“저, 저게 뭐야?”

“설마 웬디고?”

왕국 남부에서는 볼 일조차 없는 사나운 괴수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었다.

살벌한 시선을 보내오는 괴수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 * *

도미닉 남작이 우리와 싸우는 선택을 했더라도 좋은 결과를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병력이 서로 마주한 상태에서 후퇴하는 건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일일 레이드로 몬스터들을 불러낸다는 선택지가 있으니까.

상대가 몬스터에 한눈 팔린 사이 우리는 철수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이처럼 들어오지 않고 대기하다가 빠져나가는 상황에도 이 방법은 유효했다.

“크아아아!”

웬디고가 사슴의 것과 같은 뿔을 앞세우고 네 발로 질주했다.

레이드 몬스터들은 사람을 상대로 물러나는 법이 없었다.

흉포하게 날뛰었고 언제나 공격적이었다.

그래서 군대를 앞두고도 물러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괜찮군.”

나로서는 딱 원했던 상황이다.

그래도 이만한 규모의 병력과 레이드 몬스터를 붙인 건 처음이기에 혹시나 도망칠 일말의 가능성을 염려해야 했으니.

그러나 그것이 기우임이 확인되었다.

“쏴라!”

석궁에서 쏘아진 화살 몇 대가 웬디고에게 적중했다.

하지만 라이언도 베지 못한 질긴 가죽은 석궁의 화살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기사들 앞으로!”

도미닉 남작가의 기사들이 웬디고에게 맞서 앞으로 나섰다.

웬디고는 사납게 날뛰며 기사의 기마 돌격을 오히려 밀어냈다.

“이쪽에도 기사를 투입해!”

게다가 소환된 괴수는 웬디고만이 아니었다.

용병들을 소름 끼치게 만들었던 트롤과 하피까지 나타나 도미닉 남작가의 군대를 공격했다.

“크오오!”

트롤의 주먹질에 얻어맞은 병사 한 명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족히 10미터는 날아갔다.

하피는 위에서 발톱으로 용병 하나를 잡더니 상공에서 추락시켰다.

아비규환.

숫자는 고작 셋밖에 안 되지만 레이드 몬스터들은 압도적인 강함으로 인간들의 군대를 유린하고 있었다.

적어도 2티어 전투형 영웅 정도는 되어야 시간을 벌 수 있었고 확실하게 승기를 잡으려면 3티어는 되어야 한다.

물론 부족한 힘을 숫자로 채우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인해전술은 몬스터에게는 잘 안 통하지.’

사람이야 몸 어디든 칼침 맞으면 그대로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 강인한 몬스터들은 평범한 칼날에는 생채기조차 잘 나지 않았다.

웬디고는 질긴 가죽으로 버티고, 트롤은 상처가 나도 금세 재생하며, 하피는 날아다니기에 공격하기 어렵다.

“쏴라! 쏴!”

그래도 300명이나 되는 숫자가 장식이 아니라는 듯 도미닉 남작가의 군대는 곧 제대로 된 반격에 나섰다.

우선 가장 먼저 나타난 웬디고에게 집중되던 석궁 사격을 하피에게 돌렸다.

수십 대의 화살이 꽂힌 하피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추락했다.

검이 잘 들지 않는 웬디고에게는 마법사들의 집중 공격이 이어졌다.

내가 배우지 못한 형형색색의 마법들이 작렬해 웬디고를 쓰러트렸다.

마지막으로 트롤은 날붙이가 아닌 둔기 무기로 때려잡기 시작했다.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결국 도미닉 남작가의 군대는 성공적으로 세 마리의 괴수를 모두 무찌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이날을 위해서 특별히 아껴둔 녀석이 남아 있었으니까.

[주간 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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