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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4화 (14/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4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4화

14화

【 마지막 준비 】

이후 영지로 돌아오는 과정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틀을 쭉 달린 급속 행군에 병사들과 용병들이 많이 고생하기는 했지만.

“공자님, 가신 일은 어찌 되셨습니까?”

베르타가 생각 외로 빠른 내 복귀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조심스레 물어왔다.

난 우선 마법사 협회에서 원로인 플레턴의 제자가 되었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기대 이상의 성과로군요. 그런데 왜 이리 급하게 돌아오신 겁니까?”

“내전이 시작되었으니까.”

잠깐이나마 밝아졌던 베르타의 표정이 바로 어두워졌다.

결국 올 것이 온 셈이었다.

“전시 체제로 들어가야겠군요.”

“그런데 베르타 경, 따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어떤 것입니까?”

난 돌아오는 중에 봤던 레일리 크레시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바이든 남작의 조카로 위장하고 왕가의 병력과 무기까지 챙겼다는 이야기에 당연히 베르타는 깜짝 놀랐다.

“레일리 왕녀가 살아 있었습니까? 잘못 본 건 아닙니까? 공자님은 얼굴도 모르지 않습니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마법으로 확인했으니 확실할 거야. 관련해서 소식을 들은 적 없나?”

난 마법을 핑계로 대었다.

명목만 남은 마법사 가문에서 행정관인 베르타가 마법사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리 없었다.

그게 먹혔는지 베르타는 의아해하면서도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물론입니다. 피의 연회에서 살아남은 왕족이 있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아마 다른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왕녀가 살아 있다면 대영주들은 모두 내전을 일으킬 명분을 잃게 되니까.

물론 새로 만들면 될 일이기는 하다만.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바이든 남작에게 억류되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일단 잡혀 있는 모습 같지는 않았지.”

주변을 둘러봤을 때 보인 건 크레시안 왕가에 속한 이들뿐이었다.

억류된 거라면 감시를 위해 바이든 남작가의 병력이 있었어야 했으니 억류는 가능성이 없었다.

“바이든 남작의 조카로 위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나?”

“잘 모르겠습니다. 이웃 영주라도 그렇게 세세하게 파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레일리 왕녀가 어떻게 생겼지? 왕가의 외형적 특징 같은 거 말이야.”

“크레시안 왕가의 핏줄이라면 푸른빛이 도는 흑발입니다. 언뜻 자색처럼 보일 때도 있다더군요.”

내가 본 왕녀에게서는 딱히 푸른빛이 도는 모습은 없었다.

그냥 진한 흑발이었으니까.

“그럼 바이든 남작은 흑발인가?”

“그렇습니다.”

위장하기에 좋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든 남작은 대영주인 마이어드 후작과 연결 고리도 깊었고.

“바이든 남작보다 중요한 건 마이어드 후작인데.”

대영주인 마이어드 후작이 왕녀의 존재를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에 따라서 내 행동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게 분명했다.

‘만약 마이어드 후작이 다른 대영주들을 속이고 왕녀를 빼돌린 거라면? 그럼 그 목적은 뭐지?’

왕실에 대한 충성심으로 행한 것.

아니면 자신이 왕좌를 노릴 때 왕녀를 반려로 맞아서 정통성을 얻기 위한 것.

그러나 전자는 애초에 왕가에 반목하는 대영주인 시점에서 말이 안 된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는 왕가의 병력들이 왕녀의 곁에 붙어 있는 것을 설명해 줄 수 없었다.

분명 레일리 왕녀는 자의로 그곳에 있었다.

“마이어드 후작은 어떤 사람인가?”

“딱히 다른 대영주들과 다르지는 않습니다. 왕실에 사사건건 반대했던 인물이었지요.”

“야심이 큰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능히 왕좌를 노려볼 만한 인물이기는 합니다. 이 남부에서 마이어드 후작보다 큰 세력은 없으니.”

“바이든 남작가는?”

“마이어드 후작에게 자신의 딸을 첩으로 보낸 거 말고는 별로 특별할 게 없는 변방의 작은 영주일 뿐입니다.”

“정보가 부족하군.”

누군가를 보내서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마땅한 인물이 있나?”

“내전 이전이라면 모를까 지금부터는 경계가 올라가서 힘듭니다. 마법사 협회에 도움을 청하는 게 어떻습니까?”

“왕녀의 존재를 말해 줄 정도로 신뢰하기에는 너무 이른데.”

마법사 협회에서 내 가치는 아직까지 재능이 아주 뛰어난 마법사라는 게 전부였다.

플레턴의 제자라는 위치에 들어갔으니 나름의 배려는 받을 수 있겠지만 마법사 협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부족했다.

어디까지나 그쪽에서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이 전부지.

“그도 그렇군요. 그렇다면 일단 지켜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냥?”

“네패스 남작가는 친왕실파를 자처했었습니다. 바이든 남작이든 마이어드 후작이든 왕실에 우호적인 인물이라면 굳이 우리를 적대할 필요가 없지요.”

“그건 우리가 힘이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지.”

“마법사 협회를 끌어들이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을 공개적으로 보이십시오.”

베르타의 의견은 충분히 합당해 보였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아직은 아니야.”

“예?”

“분명 공격받지 않는 건 좋지만 말이야.”

플레턴이 지적했던 대로 내가 바라는 건 내 목숨이나 영지의 안위가 아니었다.

물론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챙겨야 하는 것이지만 지구로 돌아가려면 결국 내전의 평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내전을 피하는 게 아니라 이용해야 했다.

“네패스 남작가는 이미 성장 동력이 크게 꺾여버렸어.”

내정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영지를 번성시키는 건 쉽게 자신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내전으로 경제가 박살 날 게 분명한 상황에서는 더욱.

“내전을 이용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어.”

“그 말씀은 전쟁을, 그것도 공세를 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나? 어차피 버티다가는 고사를 당하게 될 텐데.”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가문의 전력으로는 지키는 것만으로 벅찹니다.”

“그러니 전력을 끌어올려야지. 그러려고 고용한 용병들이고.”

“용병들로 해결이 되겠습니까?”

“지금으로는 안 되지.”

난 VVIP 시스템을 펼쳤다.

베르타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여기에는 영지의 전력을 빠르게 향상시킬 방법이 있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나는 ‘일일 레이드’라고 적혀 있는 항목을 응시했다.

* * *

“이야, 이거 진짜 내전이 일어나기는 하는구나?”

이미 아인에게 내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용병들이었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확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직접 전해 들은 게 아니라 아인의 입을 통해 대신 전달받았으니.

게다가 그 시작점은 동부였고 남부는 아직까지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특히 변두리에 있는 네패스 남작령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야간 통행이 막히고 검문의 강도가 몹시 까다로워진 것을 빼면.

그것은 병사들의 일이었기에 용병들은 고용된 이후와 같이 비교적 평화로운 상태를 누리고 있었다.

“쓰읍. 비싼 돈을 주고 우릴 고용한 이유가 있긴 있어.”

그러나 라이언은 이 평화가 오래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작은 동부겠지만 동부에서 끝날 일 같지는 않았으니까.

“거기 라이언 형님, 형님께서는 동부에서 활동하셨는데 뭐 아는 거 없습니까?”

네패스 남작가에 고용된 용병들은 라이언을 중심으로 뭉친 상태였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가장 존중받는 것이 용병들의 세계였고 라이언은 특출난 실력자였다.

더구나 동부에서 활약했던 몸이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소문이야 있었지. 하지만 거기서 시작할 줄 알았겠냐?”

라이언은 술에 취해 귀족을 팼던 자신의 실수를 떠올렸다.

그때는 귀족 가문에 쫓기면서 정말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다행이었다.

물론 내전에 뛰어들어 한 몫 크게 챙기는 길도 있었지만.

‘주급 2천 라페면 여기도 괜찮잖아?’

아직까지는 모가지 걱정할 일도 없는 상태에서 주급 2천 라페라는 거금이 들어오고 있는 남부가 나았다.

실제로 내전에 끼어도 이 이상의 주급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걸리는 거라면 우리 고용주님인데.’

라이언이 보기에 아인은 그냥 보통 귀족과 다르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사들에게도 마법을 익힌 걸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게다가 그 실력은 직접 뒹굴면서 당해본 바에 의하면 웬만한 마법사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걸 독학만으로 익혔다니, 괴물도 그런 괴물이 없었다.

‘그런 감이 있거든. 이 사람은 뭔가 크게 터트릴 거 같다는 감.’

라이언은 자신의 감을 신뢰했다.

지금껏 용병으로 험한 일을 해오던 그를 목숨 부지하게 해준 감이었다.

‘문제는 거기에 내가 휩쓸릴 거 같단 말이야.’

라이언은 면접비라는 생소한 개념으로 용병들을 모집한다는 걸 들었을 때 솔직히 돈만 받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네패스 남작가에 오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인 때문이었다.

‘정말 특이한 사람이란 말이야.’

용병들을 모은 방식은 참신할지언정 성공하기는 힘든 방식이었다.

돈만 받아가면 그만이지 뭐 하러 고용되겠는가.

물론 쭉정이들에게는 괜찮은 기회일지 모르겠으나 자신에게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인의 특이한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스스로도 제어가 힘든 막 나가는 자신의 성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귀족.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기사들도 바로 눈이 뒤집히는데 남들에게 떠받들어진 귀족이 보일 태도가 아니다.

그런데 아인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절대 착하다거나 순진해서가 아니었다.

그 반대라면 모를까.

‘눈빛이 오싹하단 말이야.’

라이언은 아인을 음흉한 상인에 비유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마법사로서 자신을 굴린 것도 그렇고 평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보통 사람들을 보는 시선과는 뭔가 달랐다.

마치 쓸모 있는 도구나 사냥개를 바라보는 주인의 눈길이라고 할까?

‘그래, 안목 하나는 정말 기가 막혀.’

이번에 마법사 협회로 가는 길에 동행한 용병들의 구성도 놀라웠다.

쭉정이들 사이에서 용케 괜찮은 이들을 건져냈다.

자신이야 직접 기사단장과 싸운 몸이니 이상할 게 없지만 다른 용병들은 어떻게 골랐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물론 기사들과의 대련에서 나름 성과를 낸 자들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고른 것치고는 결과가 나빴던 놈도 있었다.

버티는 게 아니라 이길 각오로 작정하고 덤벼서 승패가 빨리 난 경우였다.

‘나도 몇몇 놈들은 그리 뛰어난 줄 몰랐는데.’

마법사 협회를 오가던 며칠 동안 지켜보고서야 어렴풋이 이놈들은 한 가닥 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아인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혹시 이 남부에서 이름 있는 녀석들인가 해서 물어봤지만, 그들에게는 유명세라고 할 게 없었다.

이 시기까지 일자리를 못 구한 용병들은 으레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여기 모여 있었군.”

그때 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난 한곳에 모여 있는 용병들을 찾았다.

용병들은 내 저택 근처에 있는 건물 하나를 빌려서 쓰고 있었다.

평소에는 이곳에서 머물며 병사들의 일을 돕는 게 일상이었고, 실력이 좀 떨어지는 용병들은 병사들과 같이 기사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용병들이 원한다면 병사로 받아들일 생각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보내면 되지, 이 누추한 곳까지 어찌 직접 오셨습니까?”

“자네 보러 왔지.”

라이언의 물음에 난 씩 웃으며 답해 주었다.

그러나 라이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설마 또 겨뤄보자는 건 아니시겠지요?”

워낙 호되게 당한 터라 라이언은 이제 나를 질색하는 기미마저 보이고 있었다.

처음 나에게 방자하게 굴었던 모습과는 달리 말이다.

“저 좀 살려주십시오. 얌전히 있겠습니다.”

“안심해. 그런 용무는 아니니까.”

싸울 생각 없다는 말에 라이언은 한눈에 봐도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나로서는 라이언을 대한 방식이 잘 먹힌 거 같아서 만족스럽지만.

“그럼 어떤 용무이십니까?”

“비싼 돈을 받으면 그 값을 해야지?”

“윽!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귀족 나리 덕분에 많이 배웁니다.”

“잘됐군. 혹시 사냥 좋아하나?”

“사냥 말씀이십니까?”

라이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확실히 동부가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사냥은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좋아하냐고 물으신다면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이 시기에 말씀이십니까?”

“전투 훈련을 겸하는 거지.”

“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긴 합니다.”

잠깐 고민하던 라이언은 다른 용병들을 불러 모았다.

“야! 사냥 나갈 생각 있는 놈 없냐?”

“사냥 좋지요. 그런데 지금 말입니까?”

“내전은 어쩌고?”

“몰라! 귀족 나리께서 가자는데.”

“아이고, 귀족 나리랑 가는 거면 저희는 몰이꾼밖에 더하겠습니까?”

어느 용병의 말에 반짝이던 용병들의 눈빛이 일제히 사그라들었다.

어디까지나 사냥은 내가 하고 자신들은 몰이꾼을 하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 사냥은 내가 아니라 자네들이 하는 거니까. 난 그냥 운동 삼아서 나가는 거야.”

“정말입니까?”

용병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영주 가문에는 따로 마련된 사냥터가 있기에 사냥의 난이도에 비해 성과가 좋은 편이었다.

“뭐, 큰 놈 잡으면 하나 정도는 세금으로 바치고.”

“물론입니다. 야, 다 장비 챙겨라!”

기세가 오른 용병들이 곧장 무기를 챙겨서 내 앞에 모였다.

난 그런 용병들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딱히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용병들은 이제부터 사냥을 하게 될 테니까.

비록 그것이 원하던 사냥감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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