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영주님의 품격-13화 (13/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3화

13화

“위험합니다! 바이든 남작이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빅터는 당연히 반대 의견을 꺼냈다.

용병이나 병사들도 모두 불안해했다.

그렇지만 내가 봤을 때 우리가 당장 습격받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빅터 경, 상대의 행렬을 잘 봐.”

빅터는 머릿수에만 정신이 팔렸지만, 자세히 보면 상대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기사로 보이는 인원은 겨우 2명이 전부.

병사들도 전체 인원의 절반뿐으로 우리와 별 차이가 없었다.

“저건 싸울 준비가 된 모습이 아니지.”

나머지 절반은 짐꾼이었다.

그들이 끄는 마차에는 짐이 한가득이었다.

모습을 봐선 도시에서 크게 쇼핑을 하고 돌아가는 모양새였다.

“저 속도라면 우리보다 꽤 일찍 도시를 나섰겠지. 그렇다면 마나 파장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내가 내전이 일어난 소식을 들을 수 있던 건 마법사 협회 앞에서 마나 파장을 엿들은 덕분이었다.

일행에 마법사가 없거나, 있었더라도 우리보다 빨리 도시를 나온 이상 바이든 남작에게는 아직 내전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거다.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굳이 부딪쳐서 좋을 건 없지 않겠습니까?”

“피아 식별은 확실히 해야지.”

“네?”

“우리 가문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꼭 싸워야 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빅터가 이웃 영지들을 모두 적으로 생각한 이유는 내전 같은 불길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장례식에 코빼기도 안 보였기 때문이다.

적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는 없기에 일견 합당한 의견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냥 네패스 남작가에 얻을 게 없어서 오지 않았을 뿐 직접 창칼을 맞댈 의향이 있는지는 불투명했다.

“우리처럼 자기들 안위를 챙기기에 급급했을 수도 있지.”

“확실히 그건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게 뭔지도 확인하는 게 좋지 않겠어?”

난 마차에 실린 짐들을 가리켰다.

그냥 단순하게 귀족이 사치를 부린 것일 수도 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병장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물어본다고 보여주겠습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확인하지.”

“그럼 정말 가시겠습니까?”

빅터는 긴장으로 상기된 얼굴이었다.

다른 기사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베테랑이 아니었다.

네패스 남작가에서 이름을 떨치던 기사들은 모두 마족과의 싸움과 피의 연회에 휩쓸려 죽었으니까.

그러니 실전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꼭 싸울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 너무 긴장하지 말도록.”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실전을 할 거라고 해도 상대는 딱 적당한 수준이었다.

머릿수는 좀 더 많지만 무장한 인원은 이쪽과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한 수 아래라고 볼 수 있었다.

‘영웅이 천 단위의 전투에서는 활약 못 해도 수십 단위에서는 절대적이지.’

기사들은 혼자서 용병 다섯쯤은 해치울 수 있었다.

면접으로 상대했을 때와 달리 말 위에 올라 있고 무기도 바꿨으니 훨씬 유리하다.

일당십은 능히 해낼 것이다.

거기에 5티어 마법사인 내가 있다.

내 뜻에 따라 뒤쪽에서 대열을 갖추고 진군하자 앞에서 움직이던 행렬도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후방에서 나타난 우리를 발견하고 요란스럽게 움직였다.

“감히 무장 상태로 행렬의 뒤를 밟다니, 뭐 하는 놈들이냐!”

바이든 남작가 쪽에서 기사들이 따로 빠져나와 우리를 막아섰다.

그에 빅터 역시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네패스 남작가다.”

“네패스 남작가?”

“이 길이 너희 것도 아닌데 왜 길을 막고 있는 거냐? 우리는 갈 길이 바쁘니 어서 물러나라.”

빅터가 꺼낸 말은 내가 지시한 내용이었다.

상대가 싸울 생각이 없다면 당연히 물러날 것이다.

그들은 많은 인원과 짐으로 길을 틀어막고 있으니 명분은 우리에게 있었다.

물론 귀족의 자존심을 내세워서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소한 문제로 충돌을 원한다면 그건 상대가 우리에게 이미 적대적이란 소리였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로서는 수확 하나를 얻을 수 있다.

바이든 남작가의 기사들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마차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몰아 돌아왔다.

“길을 막을 의도는 없지만 비켜줄 수는 없다.”

“뭐라고?”

빅터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기사들은 화들짝 놀라며 설명을 덧붙였다.

“길이 좁아서 공간이 나지 않고 있소. 조금만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시오.”

적당히 양보할 수 있는 수준의 제안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접근한 목적은 이대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요?”

“마차에 탄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봐.”

상대가 바이든 남작 본인이라면 받아들이고 물러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아니라면 우리 쪽에서 딱히 꿇릴 일은 없다.

계승식을 안 해서 그렇지, 나는 영지를 소유하고 한 가문을 다스리는 남작이었으니까.

“마차에 타고 있는 게 누구지?”

“그걸 왜 묻소?”

“작위도 없는 놈이 감히 바이든 남작의 위세를 업고 길을 막은 게 아닌지 알아보라고 하셨다.”

기사 두 사람은 한순간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빅터의 말에서 이쪽에 영주나 그에 준하는 귀족이 있다는 걸 짐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귀족이라고 해도 다 같은 귀족은 아니었기에 작위가 높은 귀족이 우선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마차에 타고 계신 건 바이든 남작님의 가족이시니, 남작님이 타고 계신 것과 다르지 않소.”

“가족 누구를 말하는 건가?”

빅터는 상대를 끈질기게 추궁했다.

가족이라고 해도 다 같은 취급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부인이나 후계자는 되어야 당사자와 동등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계속 이럴 것이오?”

상대는 대답을 피하고 대신 역정을 냈다.

아무래도 부인이나 후계자는 아닌 모양이다.

그럼 차남이나 그보다 아래라는 거니까 바이든 남작과 동등한 대접을 해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 이상은 단순 시비였다.

상대가 누군지 알았으니 이제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될 일이었다.

“좋아, 기다리지.”

내가 앞으로 나오자 기사 두 사람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웃 영지인 만큼 네패스 남작가의 사정을 알고 있었는지 내가 나서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대신에 마차에 있는 사람에게 내 말을 전해주면 좋겠군.”

“어떤 것입니까?”

“이왕 같은 방향으로 가는 김에 잠깐 담소라도 나누지 않겠느냐고.”

“알겠습니다.”

기사인 그들이 남작인 내 요청을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사들은 다시 마차로 돌아갔고 곧 답을 갖고 왔다.

물론 내가 원했던 답이었다.

“앞으로 가시지요.”

난 내 기사들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마차는 이미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누구지?’

마차 안에 타고 있는 건 곱게 틀어 올린 흑단색 머릿결에 하얀 피부가 대조되는 청초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누군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내가 들은 바이든 남작가에 대한 정보에는 이 여성과 대치되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딸은 이미 다 혼처를 찾아 떠났다고 했으니까 젊은 여자가 나올 리 없는데? 조카인가?’

나는 의아함에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네패스 남작님.”

신분상 여성이 먼저 나에게 인사를 올렸다.

“바이든 남작의 여식인가?”

“아닙니다. 그저 먼 친척일 뿐입니다.”

역시 조카인 모양이었다.

“기사들이 가족이라고 해서 직계인 줄 알았는데.”

내 지적에 기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자 여성이 나에게 바짝 다가섰다.

“남작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기사들이 실례를 저지른 모양입니다. 사과할 터이니 부디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부담스러울 정도로 거리를 좁힌 여성이 내 팔을 슬쩍 잡아끌었다.

그녀는 청초한 인상과 달리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는 것에 익숙해 보였다.

‘씁!’

위니스에게 한 번 크게 데여 이 꼴이 된 난 그에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미쳤다고 처음 보는 여자랑 술을 마셨지.

그 실수만 아니었다면 지금도 평소처럼 집에서 별다른 걱정 없이 잘 지냈을 것이다.

“어머.”

힘을 주어 다가온 여성을 밀어내자 그녀는 조금 놀란 눈길을 보냈다.

난 괜히 마주하는 게 부담스러워 급히 화제를 돌렸다.

“뭐,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짐이 많아 보이던데 뭐가 든 것이오?”

“후후. 남작님께서 제 생일이라고 마음껏 골라도 좋다고 하셔서 그만…….”

생각했던 것보다 특별할 게 없는 내용이었다.

기껏 각오하고 온 것에 비해 시원찮은 반응과 소득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용물을 보여달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시스템을 이용하면 상자 안에 숨은 물건의 정보도 불러올 수 있었다.

물론 절대군주에서 장비로 인정할 만큼 상등품이어야 할 테지만.

‘한 번씩 다 감정해 보고 돌아가야지. 응?’

그런데 무심코 누른 정보 확인에 한 사람의 영웅 정보가 떠올랐다.

그건 바로 눈앞에 있는 여성의 것이었다.

[영웅 정보]

이름 : 레일리 크레시안

국적 : 크레시안 왕국

소속 : 크레시안 왕가

유형 : 외교형

등급 : 1티어

칭호 : 어설픈 행정가

스킬 : 미인계(1), 안목(1), 거래(1)

외교형 1티어 영웅이라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여성이라고 해도 귀족 가문이라면 교육을 시키는 게 일반적이니까.

그러니 본인이 재능만 있다면 영웅으로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녀의 이름과 소속이었다.

‘이름에 왜 크레시안이?’

이 왕국의 이름이 어째서 성에 떡하니 붙어 있는 걸까?

난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러다 곧 깨달았다.

‘아직 왕가의 인물이 남아 있었어?’

그녀는 바이든 남작의 조카 같은 게 아니었다.

자신의 신분을 숨긴 이 크레시안 왕국의 왕녀였다.

‘하지만 왜 하필 바이든 남작가에? 그것도 조카로?’

바이든 남작가는 친왕실파가 아니었다.

오히려 대립하는 대영주 측에 붙어 있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왜 그런 곳에 크레시안 왕국의 왕녀가 정체를 숨기고 숨어 있는 걸까?

‘대영주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 특히 마이어드 후작은?’

바이든 남작이 마이어드 후작을 속인 것일까?

아니면 마이어드 후작이 바이든 남작에게 지시를 내린 것일까?

생각이 많아졌다.

“남작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 아니오. 아무것도. 내가 일이 바빠서 이만 가봐야 하오.”

난 황급히 대화를 마치고 마차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인물들의 정보를 재차 확인했다.

‘이게 뭐야?’

영웅 정보가 눈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떠오르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기사 두 사람은 3티어 전투형 영웅.

다른 일행 중에는 2티어와 1티어 영웅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크레시안 왕가에 소속된 몸이었다.

‘상자는? 상자에는 뭐가 든 거지?’

역시 상자도 평범하지 않았다.

여러 장비들의 정보가 떠올랐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침 아까 말했던 갈림길도 나왔기에 일단 타이밍 좋게 그 행렬과 갈라질 수 있었다.

“마차 안에 있는 건 누구였습니까?”

“조카가 타고 있더군.”

“네? 직계 가족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뭔 위세를 부린 건지.”

“뭐, 그럴 수도 있지. 상자에는 도시에서 산 생일 선물이 있다더군.”

이 일을 누구하고 의논해 봐야 할까.

당연히 빅터는 아니었다.

‘돌아가면 베르타를 찾아야겠군.’

조사가 필요했다.

어째서 다 죽은 것으로 알려진 왕가의 인물이 남아 있는지.

그리고 바이든 남작은 왜 왕녀를 숨기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마이어드 후작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까지.

“그 조카라는 사람은 어떻게 보였습니까?”

“뭐, 그냥 그렇지. 애초에 직계도 아닌 조카가 뭘 알겠어.”

난 적당히 말을 돌리고 이동을 재촉했다.

* * *

“네패스 남작의 반응이 뭔가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갈림길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크레시안 왕가의 기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는 마차 안에 있는 레일리를 보던 네패스 남작의 표정을 기억했다.

처음에는 의문, 그건 당연했다.

그러나 이내 놀란 얼굴로 물러난 것은 이상했다.

화장과 염색 등으로 외모를 바꾸고 있기는 하지만 그 바꾼 모습 또한 상당한 미녀인 레일리 왕녀였으니까.

젊은 남자라면 반기면 반겼지 기겁할 이유가 없었다.

“후후. 그러게요. 뭔가 알아차린 거 같기도 하네요.”

“그럼 입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사는 자신 있었다.

겉으로는 조금 밀려 보일지 모르나 실제 전력은 훨씬 뛰어났으니까.

하다못해 짐꾼들조차도 제 몸 하나는 지킬 줄 아는 이들이었다.

“그만두세요. 알아차린 게 확실한 것도 아닌데. 게다가 네패스 남작가는 왕실에 충성을 바치던 가문이에요.”

“지금도 그럴지는 모를 노릇 아닙니까?”

왕가에 충성을 바치던 이들은 전선과 피의 연회에서 이미 모두 죽었다.

남아 있는 이들이 그들과 같이 충성스러울지는 모를 노릇이었다.

“그래도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어떻게 충성을 바치던 이들을 해치겠어요?”

“왕녀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쉿! 아가씨라고 하세요.”

왕녀님이라는 호칭에 레일리 왕녀가 주의를 주자 기사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다음부터 시비가 붙을 일은 만들지 마세요. 바이든 남작이 곤란해지겠어요.”

“설마 가족이라는데 꼬치꼬치 캐물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영주를 만날지도 몰랐고.”

거기까지 말한 기사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왜 네패스 남작은 굳이 그렇게 캐물으려고 했던 것일까?

‘네패스 남작이라고 했나?’

굉장히 신경 쓰이는 상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