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11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1화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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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군주에서 마법사들은 극히 희귀한 영웅이다.
그들은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힘을 다루는 만큼 전략적인 차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수가 적기에 그 위용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혼자 산을 무너트리거나 지진을 일으키지는 못했으니까.
그건 5티어를 기준으로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산을 무너트리는 것보다 더 큰 위용을 보여줄 수 있기도 했다.
“마법사 협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네패스 남작님.”
협회에 도착한 나를 환영해 준 것은 홀쭉한 체격의 중년 사내였다.
어째 웃음이 실없고 간사해 보이는 게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내가 베르타가 마법사 협회에 줄을 댄 이로 용병들의 고용에 큰 역할을 해준 이였다.
물론 공짜가 아니었지만 인상이 좀 안 좋다고 나쁘게 대우할 이유는 없었다.
“만나서 반갑네.”
아직까지 계승식은 못 했지만, 이 자리는 외부 행사였다.
남작가의 막내 공자님과 남작 본인으로 받을 수 있는 대우의 차이가 크기에 나는 굳이 네패스 남작이라는 표현을 쓰도록 했다.
어차피 계승이 예정된 자리이기도 하고.
“이름이 실론이라지?”
“그렇습니다.”
[영웅 정보]
이름 : 실론
국적 : 크레시안 왕국
소속 : 마법사 협회
유형 : 마법형
등급 : 1티어
칭호 : 어설픈 마법사
스킬 : 마나 블래스트(1), 마나 파장(1), 매직 실드(1)
1티어에 맞게 나와 같은 마나 블래스트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위력은 전혀 다를 것이다.
“듣자 하니 마법사 협회에 등록하고 싶다고 하신 거로 기억합니다만…….”
실론은 의미심장한 눈길로 나를 훑었다.
내가 마나 파장을 배워서 협회에 소식을 전하기는 했지만, 마법사가 맞는지 의심하는 듯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법사 협회에 등록할 수 있는 건 마법사뿐입니다. 물론 남작님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으나 필요한 절차이니 마법사임을 증명해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되겠나?”
“안쪽에 시설을 준비해 놨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지요. 아, 그리고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마법사 협회 내부에는 무장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맨몸으로, 그것도 가능하면 한 분만 더 들어오고 나머지는 대기해 주십시오.”
실론의 말에 기사들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마법사 협회의 위상이 낮지 않았고 이는 다른 귀족이라도 공통된 요구 조건이니까.
잠시 기사들끼리 의논이 있었고 나를 따르는 한 사람은 빅터가 되었다.
크게 위험할 거 같지 않으니 평소에 붙어 있는 빅터가 낫다는 결론이 내려진 모양이었다.
다른 의미로 보자면 빅터가 선배 기사들에게 서열에서 밀려 일을 떠맡은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빅터는 불만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요즘 들어 기억도 잃고 행동도 이상한 내가 시야에서 벗어나는 게 더 불안한 모양이다.
그렇게 실론의 뒤를 따라서 얼마쯤 갔을까.
“네패스 남작님.”
“뭐지?”
그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슬쩍 말을 건네왔다.
“아까 데리고 온 용병 중에 혹시 라이언이라는 자가 있지 않았습니까?”
“아는 얼굴인가?”
“개인적으로 아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동부에서 꽤 악명을 가진 놈입니다.”
과연 라이언은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다.
마법사 협회에서도 알고 있을 악명이라니.
“무려 귀족을 폭행한 죄를 가진 놈입니다. 사정이 급하시더라도 가급적이면 그런 놈은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 말에 빅터가 빙그레 웃었다.
그 라이언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슨 고생을 했는지 아는 입장에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내 밑에서는 아주 얌전할 테니까.”
“이런. 알고 계셨던 모양이군요. 제가 주제넘게 굴었습니다.”
베르타가 아무에게나 선을 댄 것은 아닌지, 실론은 곧장 내 말에서 내가 이미 라이언에 대해 파악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빅터나 터너 같은 순진한 기사들을 보다가 머리 쓰는 이들을 대하니 대화가 잘 통해서 좋았다.
“자, 이곳이 마법사 협회의 마력 측정실입니다. 이곳에 있는 설비들로 마법사로서의 역량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더 실론을 따라갔을까.
꽤 두꺼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는 이해할 수 없는 온갖 기물들이 널려 있었다.
“하하, 꽤나 신기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렇군.”
절대군주에서는 마법사 협회의 건물 정도만 나왔지, 내부 시설에 대해서는 나온 바가 없었다.
“단순히 방출하는 마나의 양을 측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법별 지속 시간과 특화된 분야까지 세세히 알 수 있습니다.”
실론은 한 설비 옆으로 다가가 그것을 조작한 뒤 나에게 말했다.
“이곳에 손바닥을 대고 마나를 방출해 보십시오.”
나는 실론의 설명대로 손바닥을 대고 집중했다.
마법사 협회에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더 나아가 대영주들과 나를 저울질하게 하려면 내 가치를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수치가 빠르게 올라가는군요. 아주 좋습니다. 이대로……. 어어?”
수치가 어디에 적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설비를 확인하던 실론의 안색이 굳어졌다.
내가 그야말로 아낌없이 힘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뭔…….”
“이거 언제까지 유지해야 하지?”
“자, 잠시만 멈춰주십시오.”
내가 손을 떼자 실론은 혹시 설비에 문제가 있나 살피고는 자신이 직접 시험에 나섰다.
그 결과 설비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았는지 멍한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네패스 남작님, 혹시 마법을 누구에게 배우셨습니까?”
“우리 가문이 마법사 가문이란 걸 모르나? 선조께서 남겨주신 마법서를 독학했지.”
“마법사 가문이었습니까? 아니, 그래도 독학하셨단 말씀입니까?”
실론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아무래도 저 혼자서 처리할 일이 아닌 거 같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해서.”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나? 마법사 등록만 하면 되는데.”
“보통 마법사라면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네패스 남작님께서는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십니다.”
실론은 잠깐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제 좁은 소견으로 봤을 때 남작님께서는 왕국 역사에 충분히 이름을 남기실 겁니다.”
실론의 솔직한 평가에 빅터가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내가 그 정도일 줄은 생각 못 했겠지.
‘역시 VVIP 특전.’
이런 5티어의 능력을 시작부터 던져주니까 밸런스고 뭐고 남아날 리가 없다.
실론은 곧 마나 파장을 통한 연락으로 누군가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마법사가 모습을 보였다.
한 사람은 실론보다 좀 더 연상으로 보이는 고집스러운 외모의 사내였고, 다른 한 명은 보는 것만으로 건강이 걱정스러운 초로의 노인이었다.
작고 왜소한 체구에 굽은 등을 보면 걷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원로님께서는 왜?”
노인의 등장은 실론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눈치였다.
“네놈이 호들갑 떨면서 대단한 마법사가 나타났다고 하니 궁금해하셔서 모셔왔다.”
고집스러운 외모의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그는 원로라고 불린 노인까지 나서게 만든 것 때문에 예민해진 것처럼 보였다.
“별일 아니기만 해봐라. 지하 연구실에 처박을 테니.”
“윽!”
지하 연구실이 뭐 하는 곳인지는 모르지만 실론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남작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까지야. 그런데 이분들은?”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남부 지부를 담당하는 가이트 지부장님과 협회의 원로직을 맡고 계시는 플레턴 님입니다.”
난 두 사람의 정보를 확인했다.
고집스런 외모의 사내 지부장 가이트는 마법형 3티어 영웅이었고 전투와 관련된 마법을 중점적으로 익힌 상태였다.
그리고 원로인 플레턴은 4티어 영웅으로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마법을 익히고 있었다.
3티어는 그렇다 치지만 솔직히 4티어의 등장에는 크게 놀랐다.
그는 일개 지부에서 모습을 보일 실력자가 아니었으니까.
분명 이 크레시안 왕국에 있는 마법형 영웅 중에서 손에 꼽을 실력자일 것이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직접 실력을 확인해야 할 거 같습니다. 이 녀석이 워낙 대단하다고 해서 말이지요.”
가이트는 실론을 흘겨보며 그리 말했다.
아무래도 실론은 가이트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거 같았다.
뭐, 베르타에게 보주를 받아먹고 심부름까지 해줬으니 저런 시선을 받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얼마든지.”
하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협회에 속한 아무 마법사가 아니라 지부장과 원로 앞에서 실력을 선보이는 것이니까.
실론이 곧장 옆에 붙어서 다시 설비를 가동시켰다.
아까 했던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갖 설비들을 하나씩 다 이용해서 다양한 측정이 이루어졌다.
가이트와 플레턴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리고 모든 측정이 끝난 이후에야 입을 뗐다.
“허.”
탄성이었다.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나왔다.
“어떻습니까? 제가 대단한 재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웬일로 그렇군. 네 녀석 말은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제가 어때서 그러십니까?”
“몰라서 묻냐?”
가이트는 실론에게 면박을 주고 나에게 다가왔다.
“누구에게서 마법을 사사하신 건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가문의 비전 마법서로 독학했습니다.”
“가문? 어느 가문의 자제분이십니까?”
“자제분이 아니라 네패스 남작 본인이십니다.”
“네패스 남작이라고? 그 가문이 마법사 가문이었던가?”
실론에 이어 지부장인 가이트 역시 네패스 남작가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네패스 남작가에서 마법사의 명맥이 끊어진 게 언제인데.
가문에 속한 이들이 아니면 그 사실을 기억하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초대 네패스 남작이 대단한 마법사였지.”
그때 원로 마법사 플레턴이 입을 열었다.
“이 왕국 역사에 기록을 남긴 위대한 마법사 중 하나다. 넌 지부장이란 녀석이 자기 지역에 있는 마법사 가문의 정보도 모르느냐?”
플레턴의 타박에 가이트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지부장이란 녀석이 못난 꼴이나 보이고.”
가이트를 제친 플레턴이 나에게 다가왔다.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원로로서 마법사 협회를 대표해 사과드리리다.”
“아닙니다. 아주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하는 사람도 드문데 이렇게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찌 모르겠습니까? 저도 이곳 남부의 지부장을 했던 몸인데. 저놈이 못나서 그렇지.”
플레턴이 연달아서 면박을 주자 가이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법사 협회의 원로나 되시는 분께서 이렇게 대우해 주시니 오히려 불편합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마법사라고 해서 귀족보다 높은 신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법사를 막 대하는 귀족은 없었다.
나야 한 지역의 영주로서 어지간한 마법사는 편하게 대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원로급이라면 대하는 데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그럼 마법사 후배이니 편히 말하겠네.”
“물론입니다, 선배님.”
“흠?”
내가 덥석 선배님이라고 부르자 플레턴은 눈을 가늘게 떴다.
좋은 반응인지 나쁜 반응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가이트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기는 했지만.
“원로님이라고 부르시는 게…….”
“됐다. 뒷방 늙은이 취급이 뭐가 좋다고. 그냥 선배님이 훨씬 낫구먼.”
그 모습을 본 실론이 슬쩍 말을 꺼냈지만 돌아온 건 면박이었다.
“보니까 꽤 마법에 능숙한 거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대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어서 많이 미숙합니다.”
“흠. 사사한 스승이 전혀 없었나?”
“마법서는 대대로 물려받았지만 익힐 수 있던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는 들었지. 그런데 그걸 기어이 익힌 후손이 나왔군.”
플레턴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내 제자가 될 생각 없나?”
플레턴의 제의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냥 마법사도 아니고 원로라는 위치의 플레턴이라면 마법사 협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실제로 지부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가이트가 쩔쩔매는 것만 봐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의 영향력이라면 보통의 영주들은 네패스 남작가를 건드릴 엄두도 내기 힘들 것이다.
“에엑.”
그런데 질색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내 목소리는 아니었고 지부장 가이트였다.
“원로님, 그런 짓을 하면 족보가 꼬입니다. 그냥 제가 가르치겠습니다.”
“뭐? 너 따위가 가르칠 수 있는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자기 지역의 마법사 가문도 제대로 모르는 놈이?”
“윽!”
가이트는 또다시 면박을 받고 물러나야 했다.
아무래도 마법사 협회는 상대에게 면박 주는 게 전통인 모양이다.
“한번 잘 생각해 보게. 네패스 남작으로서도 결코 나쁜 제안은 아닐 거야. 애초에 그걸 바라고 이곳에 온 거 아닌가?”
플레턴의 은근한 어조에 난 깜짝 놀라 살짝 몸을 떨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가이트와 실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플레턴은 그런 이들의 반응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이 부끄러운 놈들아. 네패스 남작이 왜 하필 지금 시기에 마법사 협회를 왔겠어? 네놈들도 낌새는 이미 일찌감치 알아차렸을 거 아니냐? 내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플레턴의 설명에 그제야 그들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내가 마법사 협회를 방문한 것은 결국 영지를 지켜낼 뒷배경이 필요해서였으니까.
“이런 재능이 있었음에도 지금껏 조용히 있던 건 굳이 밝힐 생각이 없다는 의미였겠지. 그리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고. 귀족이 뭐가 아쉬워서 협회에 등록하겠어?”
마법사가 협회에 등록하는 것은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마법사라고 해도 굳이 협회에 등록하거나 소속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협회에 등록하는 마법사는 보통 평민이나 농노 출신으로 자신을 지켜줄 배경이 필요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귀족들은 본인이 마법사일 경우에도 마법사 협회에 들어가는 걸 꺼리는 풍조가 있었다.
신분이 낮은 이들과 섞이기 싫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귀족 마법사들이 모인 집단이 따로 있는데 소속된 인물이 워낙 적어서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걸 알고서도 이 후배를 받아주실 겁니까?”
내 물음에 플레턴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뭐, 다 그런 거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