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10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0화
10화
【 외출 】
“공자님, 수행원들의 구성이 뭔가 이상한 거 같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내 옆에 달라붙은 빅터가 이번 호위 행렬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왜?”
“용병들을 굳이 데려가야 합니까?”
호위로 나서는 기사는 빅터를 포함하여 모두 네 명.
그리고 병사들이 스무 명 뽑혔고 마지막으로 용병 열 명을 추가했다.
그 용병 중에는 라이언이 포함된 상태였고.
“영지에서 빠지는 기사들이 몇 명인데, 용병들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기사들은 용병들을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돈으로 충성을 팔아서만이 아니라 그렇게 판 충성조차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차할 때 제 목숨을 챙기겠다고 돈값도 안 하고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게 기사들의 판단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다.
용병은 보통 출신부터 문제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영지에 기사 셋이 남으면 문제를 일으키지는 못하겠지. 병사들도 있고 더구나 용병 중에서 실력자는 죄다 데리고 가니까.’
선별한 용병들은 내가 고용한 이들 중 가장 실력이 좋은 열 명이었다.
이들이 빠지면 남은 용병들은 오합지졸이었기에 문제를 일으켜도 쉽게 제압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다만 라이언 저놈은 조심해야 합니다.”
기사 중에 용병을 겁내는 이는 없었지만, 라이언은 예외였다.
물론 터너가 영광의 검을 얻자마자 한 번 박살 내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라이언의 실력을 얕잡아 보는 기사는 없었다.
나름대로 강하다고 인정을 받은 것이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많이 신경 쓰이지?”
난 휘파람까지 불며 뺀질거리고 있는 라이언을 가리켰다.
라이언은 이 자리에 합류한 용병 중에서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다른 용병들이 분주하게 준비하는 가운데 자신의 짐까지 떠넘긴 것이다.
그러나 실력 제일주의인 용병들의 세계에서 그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일 같았다.
“저도 실력을 좀 더 키워서 조만간 단장님처럼 박살 내줄 겁니다.”
“굳이 안 그래도 돼.”
“어떻게 참겠습니까? 공자님께 단검도 던졌는데.”
“맞아, 그랬지. 그래서 내가 손 좀 봐주려고.”
“네?”
내가 직접 나서겠다는 말에 빅터가 당황했다.
물론 빅터의 기억 속 아인은 싸움과는 한참 거리가 멀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두고 보면 알게 돼.”
암묵적인 룰과 별개로 귀찮게 라이언의 짐을 떠맡게 된 용병들도 이를 반길 것이다.
이 행렬에 라이언의 편은 없었다.
* * *
마법사 협회까지의 거리는 약 사흘이었다.
당연히 계속 움직일 수는 없는 거리이기에 우리는 적당한 곳에서 한 번 멈췄다.
강이 흐르고 있어 물을 구하기 쉬운 장소였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이동하지.”
“아직 쌩쌩한데 벌써 쉬십니까?”
라이언은 듣고 있던 병사들과 용병들이 짜증 날 말을 툭 내뱉었다.
나와 기사들은 말을 타고 움직였으나 나머지는 짐을 들고 걸어와야 했다.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다.
물론 자신의 짐을 남에게 떠맡긴 라이언은 걸었음에도 상당히 쌩쌩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지친 거 같으니까.”
“죄다 약해 빠져서 그렇습니다.”
“그래, 그쪽하고는 다르지.”
내 칭찬에 라이언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왜 그러지?”
“아닙니다. 왠지 기분이 이상해서요.”
“뭐가?”
“귀족 나리께서는 정말 특이한 분이십니다. 아, 이미 들으셨지요? 아닌가?”
라이언은 스스로도 헷갈린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저 같은 미천한 용병 말 들어주는 건 뭐, 아주 착하신 분이면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니면 세상 물정을 잘 모르거나. 어쨌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라이언은 잠시 말을 멈췄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스스로도 잘 몰라서 헤매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곧 좋은 표현이 떠올랐는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귀족 나리께서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귀족 나리는 뭐랄까, 되게 음흉한 상인 같은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놈이 진짜 죽고 싶은 것이냐!”
나를 상인으로 비유하는 말에 빅터가 화를 내며 앞으로 나섰다.
이 세계에서 상인이 천대받는 것은 아니지만 명예로운 귀족에게 비유할 대상으로는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앞에 음흉하다는 말까지 더해진다면 혀를 도려낼 말이었다.
몇 번을 보는 거지만 라이언은 정말 파격적인 언사를 갖추고 있었다.
솔직히 여태까지 살아 있는 게 용하다.
물론 그만한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아, 기사님.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그냥 좀 특이하신 분이란 겁니다.”
“음흉하다는 게 나쁜 의미가 아니야? 이놈이 내가 바보인 줄 아느냐?”
“귀족 나리께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희 용병 업계에서 이런 말은 칭찬입니다.”
“이 새끼가 진짜!”
빅터가 아예 검을 뽑을 기세를 보이자 라이언은 흠칫하며 자세를 잡았다.
빅터의 검도 터너의 것과 같은 영광의 검이었으니까.
물론 검의 성능을 확실히 알게 된 이상 이전처럼 순순히 당해주지는 않겠지만 어지간한 실력 차이는 메꿀 수 있기에 라이언도 영광의 검을 경계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계속 장비가 부러지면 금전적 손실이 생기는데 기사들이 그걸 배상해 주지는 않을 것이기에 라이언에게는 이래저래 손해만 볼 일이었다.
“내 기사들과 시비 붙지 말라고 했을 텐데?”
“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큰돈을 주시는데 잘 모셔야지요. 참, 저를 고용하실 때 겨뤄주신다고 한 약속은 언제 지켜주십니까?”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지금 한번 붙지.”
그렇지 않아도 말할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다.
나는 흔쾌히 한판 붙자고 제안했다.
“정말이십니까?”
“약속하지 않았나?”
“아니, 그렇지만 본인 입으로 싸울 줄 모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싸움은 못 해.”
내 말에 라이언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혼란에 빠진 듯했다.
“공자님, 정말 하실 생각입니까?”
빅터가 나를 말리려고 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라이언은 딱 좋은 상대였다.
기사들을 상대로 함부로 마법을 시험했다가 다치게 하면 큰일이지만 라이언은 좀 다쳐도 될 거 같았으니까.
그걸 동정해 주거나 내가 너무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싼 돈 주고 고용했으니까 최대한 본전을 뽑아야지.”
그렇게 강을 옆에 두고 나와 라이언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빅터는 내 뒤편에 서서 라이언을 향해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대략 나에게 상처 하나라도 생기면 라이언을 죽이겠다는 시선 같았다.
라이언은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 듯했지만.
“흠. 정말 이상하단 말입니다.”
나와 마주하고 선 라이언은 새로 구한 단검 두 자루에 손을 가져다 댄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봤을 때도 그런데 지금은 더 그러니.”
“무슨 말이지?”
“정원에서 저 기사님과 같이 귀족 나리께서 나오셨을 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알 턱이 있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너스레를 떨었지만 라이언은 답지 않게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도망쳐.”
“음?”
“처음에는 저도 잘 이해 못 했습니다. 그냥 기분이 되게 이상했거든요. 아실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동부에서 귀족한테 사고를 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귀족 울렁증이라도 생겼나 했지만 역시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라이언은 허리를 숙이는 듯하더니 갑자기 앞으로 파고들었다.
아직 기사들이 신호도 주기 전이었다.
척!
어느새 출수까지 마친 라이언의 단검은 내 목을 겨누고 있었다.
다만 거리가 좀 있었다.
터너 때에는 칼날의 예리함이 느껴질 만큼 가까웠던 때에 비해 내 목과는 적어도 주먹 두 개 만큼의 간격이 비었으니까.
“왜 더 들어오지 않고?”
내 손은 라이언의 얼굴을 덮듯 펼쳐져 있었다.
라이언이 그렇듯 마찬가지로 거리는 꽤 있었다.
손에 쥔 게 없으니 라이언의 단검과 내 목보다도 긴 거리였다.
그러나 라이언은 그 거리를 뛰어넘어 내가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다 확신하는 눈치였다.
“한 치만 더 들어가면 제 머리통이 터질 거 같습니다만?”
“목숨은 내놓지 않았나?”
“그래도 개죽음은 싫지요. 기사님 꺾고 받은 2천 라페도 아직 못 썼는데.”
라이언은 그대로 뒤로 물러나서 원래 자리로 갔다.
이번에도 돌발 행동 때문에 기사들이 뒤집힌 건 당연했다.
“저놈은 다리라도 부러뜨려야 합니다!”
“감히 공자님을 위협한 놈입니다!”
“제 행동이 위협 축에라도 들어가겠습니까?”
기사들의 분노에 찬 원성에 라이언이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물론 기사들에게 무시되었지만.
“귀족 나리, 정체가 뭡니까?”
“네패스 남작가는 마법사 가문이지.”
얼마 전 알게 된 정보를 꺼내자 라이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제가 나름 잔뼈가 굵은 놈이라 마법사도 몇 봤지만, 귀족 나리 같은 분은 없었습니다. 보통 마법사는 제게 반응도 못 하지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절대군주에서도 마법사의 신체 능력이 좋은 예는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5티어다.
티어 하나가 오를 때 조금씩 신체 능력이 올라가서 5티어쯤 되면 저티어의 전투형보다 나은 수준은 된다.
물론 그래 봐야 3티어 전투형 영웅보다는 못한 정도겠지만.
“나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데 자네가 약한 모양이지.”
“그럼 귀족 나리의 기사들은 허약한 놈들만 모아놨습니까?”
자신이 약하단 소리는 듣기 싫었는지 라이언은 기사들을 걸고넘어졌다.
“허약한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자, 제대로 해보지.”
아까는 라이언의 기습에 대응한 것이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붙을 생각이었다.
그에 라이언은 탐탁지 않다는 표정과 함께 전투태세를 갖췄다.
물론 기습이 통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후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죽지 마라!”
나는 우선 가장 자신 있는 마나 블래스트부터 날렸다.
최대 출력으로 하면 어느 정도 위력을 낼 수 있을지 전혀 모르는 상태라 적당히 조절하고 날렸다.
하지만 한순간 폭풍과도 같은 기세에 일대가 뒤집혔다.
콰콰콰!
“우왁!”
라이언은 괴상한 비명과 함께 바닥을 몇 바퀴 뒹굴었다.
이내 균형을 잡았지만 이미 결과를 짐작한 듯 표정이 어두워져 있었다.
“자, 계속하지.”
“귀족 나리, 잠시…….”
콰콰콰!
라이언이 뒤늦게 뭔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난 그걸 무시했다.
“내가 아직 경험이 없어서 마침 상대가 필요했지. 그런데 내 기사들을 험하게 다룰 수는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자발적으로 상대에 지원해 주다니? 역시 비싼 돈 주는 보람이 있군!”
라이언이 쓸모 있단 것과는 별개로 확실히 그는 문제가 많았다.
기사들과 충돌하는 것도 그렇고 나한테 무례한 것도 그렇고.
한 번쯤은 기강을 세게 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덤으로 그를 중심으로 한 용병들에게 경고를 해주는 의미이기도 하고.
“우아아악!”
라이언은 그렇게 땅에서 멀어져 하늘을 나뒹굴었다.
“대체 언제 마법을 익히신 겁니까?”
만신창이가 된 라이언이 바닥에 떨어지자 빅터가 얼떨떨한 얼굴로 물어왔다.
“마법사 가문에서 마법을 익히는 게 이상한가?”
빅터의 반응이 궁금해 베르타 때와 비슷한 말을 해주자 빅터는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네패스 남작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확실히 그럴듯할지 몰라도 잘 아는 이들에게는 뭔 개소리냐 싶을 것이다.
네패스 남작가는 마법사 가문으로서는 명맥이 끊긴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그저 후손이라는 것과 초대가 남겨준 마법서가 있다는 것 외에는 여느 귀족과 똑같으니.
“농담이야.”
빅터의 어깨를 툭 쳐주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라이언을 상대로 다시 한 번 마나 블래스트를 날렸다.
“끄,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항복이라고 말해야 끝나지.”
“항…….”
콰콰콰!
“시끄러워서 잘 안 들리는군.”
라이언은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이후에도 난 마법사 협회로 가는 길에 라이언과 몇 차례의 결투를 진행했다.
라이언은 절대 사양한다고 했으나 난 허약한 이들과 달리 쌩쌩한 라이언만이 가능하다면서 그를 계속 굴렸다.
마나 블래스트 말고 새로 익힌 마법에도 익숙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강을 잡는 목적도 있었고.
기사나 용병들은 라이언이 당하는 것을 고소하게 여겼다.
기사들이야 애초에 말할 것도 없고 용병들도 짐을 떠민 라이언이 곱게만 보이지는 않았을 테니까.
병사들은 아예 라이언을 구경거리로 삼았다.
주변의 비웃음에 라이언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으나 내 시선 앞에서는 얌전해졌다.
“내가 괴물의 아가리에 들어왔군.”
뒤늦게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라이언은 슬쩍 계약 취소에 대해 문의를 해왔다.
그에 난 막대한 위약금을 요구했다.
당연히 그런 거금이 라이언에게 있을 리 없었다.
그 정도면 아예 용병을 그만두고 정착해서 사는 데 지장 없는 액수니까.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오늘도 된통 당한 라이언이 바닥을 기어오며 말했다.
실제로 기어 다닐 정도로 이상이 있는 건 아니고 자신이 이만큼 괴로워하고 있다는 어필이었다.
물론 씨알도 안 먹혔다.
“됐어. 이제 목적지에 다 왔으니까.”
난 말에서 내려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도시를 보았다.
마법사 협회가 있는 이곳은 남부 제일의 도시라고 불리는 하보크였다.
‘이제부터 시작이군.’
아마 이곳에서 우리 영지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