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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5화 (5/250)

VVIP 영주님의 품격 5화

VVIP 영주님의 품격 5화

5화

“설령 그렇게 돈을 마련하더라도 용병들을 모으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베르타가 새로운 문제점을 지적했다.

“공자님께서는 내전을 걱정하시는 듯한데 같은 이유로 다른 영주들이 이미 이름 있는 용병은 모두 고용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베르타는 내전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었다.

실제로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는 듯했지만 빅터처럼 아예 부정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남아 있는 용병들은 대부분 실력이 없는 쭉정이거나…….”

“신뢰에 문제가 있어서 고용주가 꺼리는 이들이겠지.”

“맞습니다.”

내가 뒷말을 받자 베르타가 긍정했다.

확실히 피의 연회 이전이라면 모를까 이후에 대비를 갖추는 건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이미 대영주들의 낌새가 심상치 않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테니까.

설령 그들이 의심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더라도 지금 상황이 대영주들이 왕좌를 노리기에 너무 좋았다.

왕족들은 멸족당했고 친왕실파에 속하는 귀족들도 네패스 남작가처럼 망한 곳이 많을 테니까.

“상관없어. 그 정도는 이쪽에서 감수해야지.”

그러나 네패스 남작가는 애초에 용병을 가려서 받을 처지가 못 되었다.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엄하게 관리하는 쪽을 고르는 게 최선이다.

“그 외에도 문제는 또 있습니다.”

“뭐지?”

“네패스 남작가의 위치 문제입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많은 모양이었다.

베르타의 말에 나는 흥미를 담아 그를 보았다.

빅터는 너무 순진해서 솔직히 머리 쓰는 일에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을 거 같았다.

반면 행정관 베르타는 나름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물인 거 같았다.

“너무 변두리에 있다는 거군.”

“맞습니다.”

용병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들은 일거리를 찾기 위해서 사람이 북적이는 도시에 모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네패스 남작가는 크레시안 왕국 남부 변두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남부에 있는 용병들만 찾더라도 그들이 쉽게 몸을 움직일 위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문제라면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다.

“딱히 어려운 고민거리는 아니군.”

“해결책이 있으십니까?”

“그냥 내가 말하는 대로 전달해 주면 돼.”

난 베르타를 향해 방법을 일러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베르타가 당황했다.

“저, 공자님? 돈을 쓰라는 말씀입니까?”

“효과적이잖아?”

내가 제안한 방법은 바로 면접비였다.

고용되지 않아도 네패스 남작령으로 와서 자신의 실력만 증명해 준다면 소정의 액수를 약속하겠다.

용병들로선 굳이 고용될 의무가 없으니 공짜로 돈 벌 겸 오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다시 네패스 남작가의 재정 문제와 이어지지만…….

‘그건 출석 보상으로 어떻게든 될 거야. 딱히 큰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면접비 정도는 챙겨줄 수 있겠지.’

그렇게 불러오더라도 고용의 문제는 남아 있지만 그건 내가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용병의 고용을 놓고 경쟁할 다른 영주들과 나의 차이는 내전을 얼마나 확신하고 있느냐니까.

나는 100%에 걸 수 있었고 그래서 적자를 보더라도 기꺼이 용병을 고용할 의향이 있었다.

“다 이해했지?”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남부에 있는 용병들에게 소문을 퍼트리려면 적어도 열흘은 걸릴 겁니다. 그들이 다 모이려면 거의 한 달은 잡으셔야 합니다.”

“너무 긴데?”

내전이 피의 연회 이후 정확히 얼마가 흐른 뒤에 일어나는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그냥 지나가듯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고만 나왔으니까.

그렇기에 한 달을 가만히 기다리는 건 큰 부담이었다.

“더 빠른 방법은 없어? 전서구 같은 건?”

“영주 가문끼리 연락할 때면 몰라도 용병들에게 보낼 전서구는 없습니다.”

“마법을 이용한다거나?”

“가문에 마법사가 없지 않습니까?”

마법사란 말에 나는 눈을 반짝였다.

제대로 된 마법사가 아니라 티어만 높은 몸이지만 그래도 내가 그 마법사였으니까.

“마법사가 있으면 되나?”

“정확히는 협회에 연줄이 있는 마법사여야 합니다.”

“연줄?”

“마법사들은 협회와 연락할 수 있는 고유한 마나 파장을 알고 있으니까요. 이를 통해서 협회에 연락한 뒤 연줄이 있는 마법사에게 부탁해 용병 길드에 대신 의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법을 쓰는 건 보조에 불과하고, 핵심은 협회의 연줄이 필요하단 거였다.

게다가 난 협회와 연락할 수 있는 마나 파장 같은 건 알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달은 너무 오래 걸리는데.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때 돌연 떠오르는 지식이 하나 있었다.

절대군주에서 쓰이는 화폐 중 보주라고 불리는 재화.

신비한 힘을 품고 있는 마법 재료라고 알려진 보주는 마법사들에겐 보석보다 귀한 물건이었다.

설정이 그렇다는 거고 실상은 과금으로 충전하는 유료 재화였지만.

‘협회에 연줄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마법사들은 보주에 환장한다던데.’

물론 무과금러의 길을 걸어온 나에게는 보주가 없었다.

가끔 이벤트로 얻을 때도 있지만 그건 극히 희귀한 경우였다.

하지만 VVIP는 흑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

유료 재화가 없는 흑우가 말이 되지 않듯이 VVIP 시스템에는 보주를 얻을 수 있는 콘텐츠가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일일 퀘스트지.’

일반 유저들의 일일 퀘스트 보상은 별로 특별할 게 없었다.

약간의 자원과 경험치.

하지만 VVIP는 일일 퀘스트에서 보주를 비롯해 풍성한 자원을 얻어 갈 수 있었다.

불합리가 괜히 불합리가 아닌 것이다.

[VVIP 전용 일일 퀘스트를 개방합니다.]

나는 우선 퀘스트와 보상의 내용을 확인했다.

게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는 일일 퀘스트를 수행하기 쉽지만, 완전히 바닥에서 시작할 때면 일일 퀘스트도 버거울 때가 있었다.

절대군주는 친절하게 진행 상황에 맞춰서 퀘스트를 주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저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퀘스트를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보통은 병사 100명 육성하기라거나, 자원 생산량 1만 이상 늘리기라거나, 전투에서 승리하기 같은 것들이 있는데…….’

지금 내 처지에서는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보다 쉬운 것들이 있기를 바라며 퀘스트를 살폈다.

‘으응?’

그런데 퀘스트를 찾던 난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퀘스트랍시고 적혀 있는 내용이 죄다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VVIP 전용 일일 퀘스트 목록]

- 친절하게 인사하기 0/10

- 우아하게 홍차 마시기 0/2

- 고생하는 사용인들을 격려해 주기 0/3

‘이거 내용이 왜 이래?’

절대군주의 출시 이후 반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했던 몸이지만 이런 황당한 퀘스트는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퀘스트로서 의미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런데 이거 보상 상태가?’

어처구니없이 쉬운 퀘스트지만 VVIP 임무답게 약속된 보상은 심상치 않았다.

당장 10명한테 인사하라는 퀘스트만 해도 보주 10개가 보상으로 붙어 있었으니까.

“하나 묻고 싶은 게 생겼는데 보주의 가치가 얼마나 하지?”

너무 쉽게 보주를 내주니 어쩌면 게임 속 보주의 가치와 이곳의 보주의 가치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보주는 그야 상당히 고가입니다만…….”

그러나 베르타의 이야기에 의하면 여기서도 보주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그 말에 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연줄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그거 몇 개 정도 있으면 협회에 연줄을 만들 수 있을까?”

“협회에 어느 정도 요구할 것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용병 고용이야 10개에서 20개 정도면 될 겁니다.”

“베르타 경.”

“네.”

“좋은 아침, 아니 좋은 오후야.”

“네?”

* * *

아인이 다녀간 후 베르타는 아인의 곁에 붙어 다니던 호위기사 빅터를 불렀다.

빅터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베르타의 앞에 섰다.

“빅터 경, 내가 묻고 싶은 게 좀 있는데 공자님께서 뭔가 이상하지 않나?”

아인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다.

빅터야 어린 시절 놀이 상대를 했던 덕에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베르타는 외부 활동이 잦았기에 아인과 얼굴이 그리 익지 않았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인이 어떤 성격이었는지 정도는 기억했다.

“많이 달라지신 거 같은데.”

“확실히 공자님은 변하셨습니다.”

빅터는 베르타의 물음에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아인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미 이상을 눈치챈 베르타를 그냥 속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기억을 잃었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아인이 직접 말하지 말라고 주의까지 줬기 때문이다.

베르타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기사로서 주군에 관한 이야기를 함부로 발설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변하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빅터는 아인의 현재 상황을 근거로 베르타를 이해시키려고 했다.

가족들을 한꺼번에 잃고 그 와중에 이웃 영주들은 장례식에 코빼기도 안 보이는 현실.

그런 와중에 가문의 상황은 어려워져만 가고, 아인은 내전까지 신경 써야 할 처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갑자기 변할 수가 있나? 꼭 다른 사람 같군.”

베르타도 아인이 바뀌어야 할 상황인 것에는 동의했다.

지금 아인이 일어서지 못한다면 네패스 남작가에는 미래가 없으니까.

하지만 바뀔 수 있단 것에는 동의하지 못했다.

내일모레면 오십 대도 넘어버리는 자신의 긴 삶에서 그런 게 가능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기 때문이다.

그에 맞장구를 쳐줄 수 없는 처지인 빅터는 대신 다른 방향으로 베르타를 설득하기로 했다.

“공자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신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

“네패스 남작가는 영지민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고 하더군요.”

이는 아인이 아니라 그 아버지였던 선대 네패스 남작이 평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그는 명예로운 귀족이자 영주였고 자신의 말을 확실하게 지켰다.

그 대가가 아인을 제외한 모든 가족의 목숨과 영지의 막대한 피해란 게 안타까울 뿐.

“공자님께서 그러셨다고?”

“열흘 동안 밥도 제대로 드시지 않으셨던 몸으로 영지를 위해서 움직이고 계시는 게 보이지 않으십니까?”

“그건…….”

빅터의 거짓말에 베르타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건강해 보이던데?’

특전을 통해서 5티어의 마법사가 된 아인은 겉으로 보기에 한없이 건강했다.

하지만 겉모습이 어떻든 아인이 열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던 것도 사실.

네패스 남작가에서 일하는 이들 중 이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공자님의 건강을 살피는 일은 제가 할 테니 베르타 경께서는 공자님이 지시하신 일에 집중해 주십시오.”

베르타는 머리를 긁적였다.

말이야 맞는 말인데 긍정하자니 뭔가 찝찝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벌컥!

“공자님!”

그때 문이 활짝 열리며 나갔던 아인이 다시 들어왔다.

빅터는 혹시 자신을 찾으러 온 걸까 싶어 냉큼 아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아인은 그런 빅터를 지나쳐 베르타의 앞으로 와서 손을 내밀었다.

“받게.”

“에? 아, 예.”

베르타는 영문도 모른 채 순순히 아인이 내미는 것을 받았다.

작고 동그랗고 딱딱한 무언가가 쥐어졌다.

자신의 손바닥을 확인하니 보주라고 이름 붙여진 마법 재료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거 보주 아닙니까?”

하나만 해도 같은 크기의 보석과 맞먹을 귀한 물건에 베르타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거면 협회에 연줄을 만들고 용병들도 모을 수 있겠지?”

“물론 가능이야 하겠습니다만…….”

“아, 협회에 연락할 수 있는 마나 파장이라는 것도 알아 오면 좋겠는데.”

“그러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이건 어디서 나신 겁니까?”

“오다 주웠어. 아, 빅터 경도 좋은 오후야.”

“네?”

개도 안 믿을 거짓말을 남기고 빅터를 벙찌게 만든 아인은 그대로 휙 나가버렸다.

그에 뒤에 남겨진 베르타와 빅터는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 먼저 정신을 차린 베르타는 혹시나 해서 보주를 슬쩍 확인했다.

보주는 반투명한 내부에 마나가 일렁이고 있어 일반인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이 특별함 덕분에 가짜도 만들어지기 어려웠고.

보주가 진품임을 확인한 베르타는 아인의 뒷모습만 허망하게 바라보는 빅터에게 말했다.

“암만 봐도 공자님은 지금 정상이 아니야.”

빅터는 차마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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