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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4화 (4/250)

VVIP 영주님의 품격 4화

VVIP 영주님의 품격 4화

4화

* * *

난 식사를 하는 동안 계속 빅터의 눈치를 봐야 했다.

VVIP 특전이 가져다주는 상상 이상의 쾌감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제정신이라면 보일 수 없는 짓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놈 같았는데 그걸 보는 입장에서는 대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크흠! 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얼굴을 꿰뚫을 거 같은 시선은 견디기 어려웠다.

제발 그만 좀 쳐다보라는 뜻에서 눈치를 주자 빅터는 그제야 물러났다.

덕분에 늦게나마 평온한 식사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음. 근데 귀족 식사치고는 많이 부실한데?’

절대군주의 배경이 중세 탈을 쓴 판타지 세계라 그런지 식사가 영 부실하기만 했다.

일단 음식의 가짓수부터 다양하지 않았다.

거기에 맛은 솔직히 냉장고에 며칠 넣어둔 반찬 수준.

그나마 고기가 넉넉한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이 몸의 신분에 비해 심각하잖아.’

겨우 한 끼의 식사만으로 확신하기에는 섣부른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이 식사 시간이 아니라서 따로 준비한다고 부실했을 수도 있고, 가족들이 죽었다고 했으니 그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게이머로서 다져진 내 감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 속삭여왔다.

‘한번 돌아보면 알게 되겠지.’

나는 게임 시스템 창을 조작했다.

절대군주의 인터페이스 중에 영지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영지 현황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래 게임에서 활성화되어 있어야 할 그 버튼은 비활성화된 상태로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이건 왜 안 되지? 혹시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건가?’

빅터가 나를 보던 눈빛만 봐도 그가 게임에 나오는 NPC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배경 설정만 같을 뿐 이곳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영지 현황과 마찬가지로 게임의 기능이 일부 제한되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내 추측대로라면 게임과의 차이는 미리 확인해 둬야겠지. 괜히 나중에 가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식사가 끝난 뒤 나는 빅터에게 영지 안내를 부탁했다.

내 기억에 문제가 있다고 알고 있는 빅터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좋은 생각입니다. 영지를 돌아보시면 뭔가 떠오르실지도 모릅니다.”

“그래. 아, 그리고 이 일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아줘.”

“기사 된 자로서 주군의 이야기를 남에게 발설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습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빅터의 입을 막았다.

다행히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아 빅터는 아인에게 상당히 충성스러운 기사 같았다.

어렸을 때 놀이 상대였다는 과거 때문일까?

“이곳은 마구간입니다. 보시다시피 현재 남아 있는 말들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많이 소모된지라.”

“그렇군.”

“이곳은 연병장입니다. 지금은 병사들의 수가 줄어 자주 쓰이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많은 이들이 죽었기에.”

“그래.”

“또 저기는 숙소인데…….”

그렇게 빅터와 함께 영지의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그러나 지나간 장소가 늘어날수록 내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이 작은 영지에 부족한 것들이 너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원인은 모두 마족과의 전쟁이었다.

“기사단은 연회 이후로 궤멸해서 이제 견습 기사인 저를 포함해 7명 남았습니다, 마법사는 아예 없고, 병사들은 나이가 너무 많거나 경험이 없는 신병들로 겨우 100명입니다.”

100명이라면 어디 가서 영주 가문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부족한 인력을 채울 자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럴 돈이 있었으면 진작 채웠을 테니까.

‘총체적 난국이잖아!’

다른 곳을 둘러봐도 속만 타들어 갔다.

친왕실파란 것에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건 그 짐작보다 더 나빴으니까.

섣불리 내 영웅 유형을 마법형으로 결정한 게 후회될 정도였다.

‘마법형이 아니라 내정형으로 고르는 게 맞았나?’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내정형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아무리 5티어를 고르더라도 영지를 발전시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니까.

내정형 영웅으로 영지를 발전시키는 것보다는 내전이 일어나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일단 네패스 남작가의 상태가 망했다는 건 알겠고 다음으로는 주변 상황을 알아볼까?’

난 빅터에게 이웃 영지들의 정세에 관해서 물었다.

바로 이웃에 귀족파에 속하는 대영주가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강한 곳인지 파악해야 했다.

다행히 빅터는 근처에 대영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었다.

“그럼 이웃 영지 중에 믿을 만한 우군은 없어?”

“없습니다. 가족분들의 장례식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이들입니다.”

그러나 이후 돌아오는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네패스 남작령의 주변에는 3개의 영지가 더 있었다.

대영주 가문과 연이 있다는 바이든 남작가.

특별한 연줄은 없지만 그래도 네패스 남작가보다는 훨씬 건재하다는 왈트 자작가와 도미닉 남작가.

이 세 가문은 네페스 가문의 이웃 가문이었고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가문 간의 왕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피의 연회를 기점으로 연락이 뜸해지더니 장례식에는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뻔했다.

그들도 내전의 냄새를 맡았을 테니까.

별로 도움 될 힘도 없는 네패스 남작가와 친분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 이웃 영지는 전부 잠재적인 적이라고 봐야 한다는 소리인데.’

압도적인 힘을 가진 대영주가 없다는 건 다행이지만 절대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전을 코앞에 두고 병사나 기사를 육성하는 건 말도 안 되고.’

단시일에 군사력을 끌어올릴 방법은 역시 용병을 고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전의 낌새를 보이는 지금 이미 어지간한 용병들은 고용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고용된 곳이 없더라도 굳이 네패스 남작가까지 와서 일할 거 같지는 않았다.

지금 영지의 재정 상태로는 다른 곳보다 비싼 돈을 주기 힘들 테니까.

“진짜 총체적 난국이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희망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결국에는 또 이건가?’

나는 빅터의 눈을 피해 나에게만 보이는 VVIP 시스템을 툭툭 건드렸다.

전략 게임 마니아로서 혐오하고 있고, 절대 기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였다.

“빅터 경. 용병들을 고용하고 싶은데.”

“용병 말씀입니까? 갑자기 왜…….”

“우리도 내전을 대비해야지.”

내 말에 빅터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덕분에 나는 내가 뭘 잘못 말했나 당황해야 했다.

“왜?”

“공자님, 어째서 내전이 일어나리라 생각하고 계십니까? 물론 그런 뜬소문들이 들려오기는 합니다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빅터의 확언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일어나리라고 생각한 내전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니?

그렇지만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는 걸 봤을 때 분명 나름의 근거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대체 뭐지?’

내가 아무 의심 없이 내전이 일어나리라고 믿은 건 그게 절대군주의 원래 스토리기 때문이다.

‘내전이 안 일어나면 그것도 곤란한데.’

나를 아인으로 바꿔버린 정체불명의 존재 위니스.

그녀는 범상치 않은 존재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위니스조차 계약서에 내전이 일어날 것을 전제로 이야기했다.

만약 내전이 일어나지 않으면 내가 집으로 돌아갈 방법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뭐야?”

“인류는 지난 세월 마족과 큰 전쟁을 치렀지 않습니까? 거기서 인류는 무수한 국가들이 한 깃발 아래에 뭉쳐 단합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강할 때 어리석게 내전을 일으키는 이가 있겠습니까? 만일 그런 자가 있다고 해도 다른 귀족들이 결코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그게 전부야?”

“또 있습니다. 마족과의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인류가 입은 피해의 규모는 엄청납니다. 우리 크레시안 왕국만 하더라도 전쟁의 상흔을 치료하려면 앞으로 수십 년은 걸릴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내전을 일으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되기는.

그야 당연히 지옥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대영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 리가 없습니다. 승리하더라도 남는 게 없으니까요.”

확실히 빅터의 말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다.

지금 같은 시기에 내전을 일으켰다가는 다른 귀족들에게 집중 공격 받고 망하기 일쑤이며, 설령 승리하더라도 남을 게 없었다.

그러나 빅터의 합리적인 추측에는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이 있었다.

“빅터 경.”

“네, 공자님.”

“그렇다면 내기를 하나 해볼까? 나는 내전이 일어난다는 쪽에 걸게.”

내 말에 빅터는 멍한 얼굴로 변했다가 황급히 표정을 수습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전이 일어날 수 없는 이유가 이토록 확고한데?”

“경이 간과한 사실이 있으니까.”

“그게 대체 뭡니까?”

난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빅터를 보며 혀를 찼다.

“인간이 언제부터 그렇게 합리적이었어? 그렇게 다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굴었으면 인류끼리의 전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거야.”

내 냉소적인 말에 빅터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알았으면 용병이나 구해 와.”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것도 근거 없는 추측 아닙니까? 소수라면 모를까 우려할 규모의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근거라면 더 있지.”

나는 절대군주의 스토리를 떠올려봤다.

그곳에서 확실하게 이렇다고 설명된 건 아니지만 의심이 들 만한 부분은 있었다.

“너무 일찍 연회를 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각국의 군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당연히 경계는 하지 않았겠어?”

피의 연회는 분명 인류 최대의 실수였다.

그러나 그것이 마냥 어리석어서 일어난 일이라고만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마족들은 연회 장소부터 시작해, 그 시간까지 정확히 맞췄지. 그것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것을 말이야.”

그리고 해당 연회는 왕족과 최측근 혹은 친왕실을 자처하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덕분에 귀족파 세력의 거두인 대영주들이 지금처럼 살판나게 된 것이다.

그럼 여기서 빅터가 좋아하는 합리적인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과연 마족들의 습격에 대영주들의 협력이 없었을까?”

이번에는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기대하고 살피니 빅터는 아예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 그 말씀은 설마 대영주들이…….”

“물론 심증일 뿐이지.”

피의 연회가 대영주들이 마족과 짜고 친 계략이라고 나온 적은 없다.

절대군주는 이제 겨우 서비스 개시 6개월밖에 안 된 게임이니까.

결말을 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난 그 가능성이 열에 아홉 정도는 된다고 생각해.”

심증이란 말에 조금이나마 밝아졌던 빅터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그렇게 빅터는 바라지 않았을 부정적인 미래의 이야기로 용병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일개 기사인 빅터는 영지의 예산이나 인력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용병의 고용에 관한 문제라면 제가 아니라 베르타 경에게 말하셔야 됩니다.”

“베르타?”

내 의문 섞인 눈길에 빅터는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냈고 난 내 머리를 가리켰다.

기억이 없으니까 누군지 모른다는 의미.

그제야 빅터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베르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 * *

나는 베르타의 업무실을 찾았다.

빅터의 설명에 의하면 베르타는 네패스 남작가의 행정관이었다.

그는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온화한 노신사로 영지의 세금을 걷고 예산을 책정하는 등 자금과 관련된 업무 전반을 맡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바로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괜찮아. 그보다 급하게 시키고 싶은 일이 있는데.”

“무엇이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용병들을 좀 고용해야겠어.”

“용병 말씀입니까?”

용병이란 말에 베르타가 보인 반응은 빅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왜 용병이 필요하냐는 의문이 드러나는 표정에 혹시 빅터와 같은 안일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나마 빅터는 일개 견습 기사일 뿐이다.

하지만 가문의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행정관까지 내전의 가능성을 낮게 본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내가 아무리 적극적으로 설득해도 스스로 이해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따라올 리 없기 때문이다.

‘혼자 조별 과제를 하는 기분이 드는 거 같기도 하고.’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다행히 긍정적인 대답이 나왔다.

“알겠습니다. 몇 명이나 고용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나 내용까지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내전을 염려한다면 몇 명을 고용할 거냐는 바보 같은 질문은 나오지 말았어야 하니까.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영지의 병사가 겨우 100명이다.

기사 같은 고급 병종은 단 7명이었고 마법사는 아예 없다.

물론 내가 마법사가 되기는 했지만, 고작해야 마법형의 기본 스킬인 마나 블래스트 하나밖에 쓸 수 없었다.

‘스킬을 더 배울 때까지는 나도 반쪽짜리 마법사지.’

더구나 난 사람을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내 목숨이 걸린 일이라도 과연 내가 사람을 해칠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그렇기에 가능하면 내가 직접 나서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도록 영지의 전력을 키워야 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

“영지에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

내 요구에 베르타는 난감해했다.

예상하던 대답이었다.

영지에 돈이 없다는 건 아까 빅터와 함께 영지를 둘러보고 깨달았으니까.

“가문에 있는 재산을 팔면 돈 좀 나오겠지.”

네패스 남작가의 상태는 여러모로 최악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영주 가문이었다.

이리저리 오가면서 본 사치품이라거나, 죽은 가족들의 물건을 판다면 어느 정도는 돈이 나올 것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시스템을 쓰면 됐고.

‘일일 출석 보상이 얼마더라?’

그렇게 넉넉한 액수는 아니지만, 출석 보상으로 들어오는 자원과 돈이 있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런 것들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리 내키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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