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3화
3화
* * *
불길한 예감은 늘 맞는다.
이게 머피의 법칙 같은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선택적 기억의 영향인지.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단지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뿐이었다.
“공자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지금 나의 앞에는 나를 공자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는 빅터라는 이름을 가진 견습 기사로 내가 몸이 바뀌어버린 소년 아인의 호위기사라고 한다.
어렸을 때는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인을 위한 놀이 상대였기도 하다는데 당연히 난 하나도 모르는 소리였다.
‘대체 내가 어쩌다가…….’
처음에는 내가 아인이라는 소년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해 볼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세울 수 있는 증거가 없었다.
더구나 당사자가 아니란 걸 알게 되면 기이한 방법으로 몸을 뺏은 게 아니냐고 의심을 받을 거 같아 걱정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그런 비과학적인 현상이 실존할지도 모르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나는 아까 들은 이야기를 다시 한번 물었다.
“네패스 남작가입니다.”
“어느 나라?”
“당연히 크레시안 왕국이지요.”
네패스 남작가란 곳은 모르겠다.
하지만 크레시안 왕국이란 이름은 알았다.
내 애증의 게임 절대군주에 나오는 국가 중 하나였으니까.
비록 지나가듯 언급되는 작은 비중의 국가지만 이 세계가 절대군주 속이라는 것을 확신하기에는 충분했다.
이외에도 이곳이 절대군주임을 알려주는 증거는 더 있었고.
[받지 않은 VVIP 특전이 있습니다. 보관함을 확인해 주세요.]
마치 광고하듯 눈앞에서 깜빡거리는 메시지.
그러나 빅터는 전혀 보이지 않는 듯 아무 반응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시스템을 조작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나에게 헛것이 보이느냐고 물어올 뿐이었다.
‘VIP도 아니고 VVIP라.’
무과금 유저로 살아온 나에게 이런 단어가 붙을 곳이 절대군주 말고 또 있을까.
게다가 위니스가 술 취한 나를 통해 서명하게 한 계약서에도 이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맞춤형 성장 시스템이라는 것으로.
“그런데 내가 남작가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공자님, 설마 피습 사건마저 잊으셨습니까? 가족분들이 모두 돌아가셨고 공자님께서 식음을 전폐하신 그 사건을?”
“피습 사건?”
당황하는 빅터의 태도로 보아 피습 사건이란 건 내가 꼭 알아야 할 내용 같았다.
다행히 이곳이 게임 절대군주의 세계라면 하나 짚이는 게 있기는 했다.
“그 망할 연회…….”
“기억하고 계셨군요.”
혹시나 하고 찔러본 말에 빅터는 기억해서 다행이라는 듯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내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지금 대화를 통해 이 시기가 어느 때인지를 짐작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필 피의 연회 직후란 거잖아!’
피의 연회는 절대군주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큰 사건이었다.
설정에 의하면 인류는 마족이라는 녀석들과 맞서왔다.
그리고 전 인류의 연합을 통해 전쟁에서 승기를 잡는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 인류 최악의 실수가 터지니 그게 바로 피의 연회였다.
전장에서 각국의 수뇌부와 귀족들이 모여서 연 큰 축제.
마족들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고, 많은 이들이 어처구니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도 이미 다 잡은 승기가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전쟁이 끝난 뒤였다.
연회에서 죽은 이들은 하필 왕족들과 친왕실 성향의 귀족들이 다수.
전쟁으로 사병이 많이 늘어난 대영주들에게는 왕좌를 노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찾아온 셈이었다.
결국, 인류는 마족과의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거대한 전쟁을 겪어야만 했다.
그것도 내전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그리고 그 내전 속에서 활약하는 영웅이 한 명 있었으니 그게 바로 유저의 아바타였다.
내전 자체가 절대군주의 메인 스토리인 것이다.
절대군주라는 제목도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왕국을 평정하고 대륙을 통일할 절대자를 가리키는 의미였고.
‘피의 연회 이야기가 나온 걸 보면 네패스 남작가는 친왕실 성향의 귀족이었구나. 그리고 거기서 이 몸의 가족들은 다 죽었다는 소리고.’
난 이마를 짚었다.
절대군주의 메인 스토리에서 친왕실 성향을 보였던 귀족들은 대부분 좋은 꼴을 보지 못했다.
왕위를 노리는 대영주들의 우선 숙청 대상에 들어가 내전의 초기에 짓밟혀 버리기 때문이다.
‘기껏 충성한 왕실은 이미 망했고 가문도 망할 판이란 거지.’
아인 네패스는 잘 쳐줘야 10대 후반의 소년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성인으로 취급되지만 그래도 가문을 이끌기는커녕 아직 한참 배워나가야 할 몸.
심지어 빅터의 말에 의하면 아인은 가문의 막내였기에 후계자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한다.
위로 형이 둘이나 있었으니까.
그 형들이 다른 어른들과 함께 피의 연회에서 비명횡사했다는 게 문제지만.
“공자님께서 방에 틀어박히신 게 오늘로 열흘째입니다. 제가 감히 공자님의 슬픔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부디 가문을 위해서 일어서 주십시오.”
난 애절하게 고개를 숙이는 빅터를 썩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내가 아인으로서 네패스 남작가를 이끌어봤자 결말은 뻔했다.
대영주 세력에 속하는 귀족 가문이라면 모를까 친왕실은 답이 없었으니까.
‘더구나 크레시안 왕국 이야기는 잘 모른다고.’
메인 스토리에서 벗어난 곁다리 국가.
덕분에 내가 크레시안 왕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
서둘러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계약서에 뭔가 답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꼼꼼하게 살펴봤지만, 그곳에는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았을 독사과만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절대군주가 되면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 적혀 있었으니까.
‘미친 거 아니야?’
왕국의 내전을 평정하고 대륙을 통일하는 위대한 군주.
나보고 그런 존재가 되라니?
난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가 아니었다.
게임은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현실은 한 번 실패하면 그대로 모가지가 날아간다.
내가 무슨 슈퍼맨도 아니고 만화 영화의 주인공처럼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받지 않은 VVIP 특전이 있습니다. 보관함을 확인해 주세요.]
‘특전이고 나발이고……. 응?’
귀찮게 다시 나타난 메시지를 없애려다가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이게 정말로 절대군주에 새로 들어올 예정이었던 그 VIP 시스템, 아니 그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르는 VVIP 시스템이라면?
‘그 밸런스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시스템이라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는데.’
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관함을 확인했다.
VVIP 특전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보였다.
출석 체크로 매일 꾸준하게 소량의 자원을 지급해 주는 것부터 시작해 내가 그토록 욕할 수밖에 없던 밸런스 붕괴의 결정체들.
그것을 보자 무심코 말이 튀어나왔다.
“생각보다는 할 만할지도 모르겠는데?”
“네?”
“아, 아니. 빅터 경, 배고파서 그런데 뭐 좀 먹을 건 없을까?”
“주방에 말해 식사를 올리라고 하겠습니다.”
난 다급히 공복을 핑계 삼아 빅터를 내보냈다.
그리고 다시 보관함을 보며 내 생각이 맞는지 세세하게 계산에 들어갔다.
‘크레시안 왕국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한 게 아쉽기는 하지만.’
거듭 검토해 본 결과,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게다가 어차피 가만히 있어 봐야 대영주들 세력에 숙청돼 버릴 가련한 신세.
가능성이 있다면 발버둥을 치는 쪽이 훨씬 나은 선택지일 것이다.
‘그럼 우선 특전부터 얻고 시작할까?’
나는 보관함에 들어와 있는 특전 중 하나를 골라냈다.
[퍼스트 클래스 : 오직 VVIP에게만 제공되는 특전 혜택! 영웅 유형 자유 선택 및 5티어 시작이 가능합니다. 출발점부터 앞서 나가세요!]
절대군주의 유저였던 사람으로 이 특전에 대해서 평가하자면 이건 한 마디로.
‘개사기네.’
개사기였다.
영지의 경영과 발전에 특화된 내정형.
외교와 모략, 간계에 특화된 외교형.
직접적인 전투와 부대 지휘에 특화된 전투형.
마법을 통한 다재다능함을 가진 마법형.
영웅에게는 이렇게 4개의 유형이 존재했고 그 안에서 세부적인 육성이 가능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최하위 단계인 1티어에서는 그 성능이 미미했다.
자원 생산량 소폭 상승이라거나, 연구 속도 소량 향상이라거나.
분명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있어도 체감하기가 힘든 게 1티어였다.
하지만 영웅의 티어가 높아질수록 체감 폭은 점점 커지기 마련.
특히 5티어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올릴 수 있는 최고 단계였다.
‘시작부터 앞서 나가는 정도가 아니잖아.’
아예 육성할 필요도 없이 최고 등급을 던져주는 것이다.
‘어느 유형을 선택하느냐가 문제기는 한데.’
이건 그야말로 행복한 고민이었다.
1티어에서 5티어까지 높이려면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얼마인데.
절대군주의 최상위 랭커였던 나조차 5티어 영웅은 불과 하나만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내가 익숙한 쪽이 낫겠지.’
나는 고민 끝에 그나마 내가 익숙한 유형을 고르기로 했다.
5티어라면 어떤 유형의 영웅이라도 크게 활약할 수 있겠지만 효율을 최대한으로 내기 위해서는 내가 잘 아는 유형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마법형으로 가자.’
[마법형을 선택하셨습니다. 영웅 유형이 변경됩니다.]
[축하합니다! 5티어로 승격했습니다! 칭호 : 불세출의 대마도사를 획득합니다.]
특전 하나만 썼을 뿐인데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솟구쳤다.
마법의 핵심 요소인 마나였다.
그저 공상의 산물에 불과했던 그 힘이 갑자기 내 전신을 한가득 채워낸 것이다.
그에 대한 감상은 역시나.
‘개사기.’
이건 어떠한 학습이나 수련 없이 느닷없이 주어지는 말도 안 되는 힘이었다.
더구나 5티어라는 수준에 맞는 지식까지 함께 흘러들어 왔다.
최상위 랭커나 겨우 하나 있는 이 5티어를 VVIP라는 이유만으로 받다니, 이게 밸런스 망겜이 아니면 뭐겠는가?
[영웅 정보]
이름 : 아인 네패스
국적 : 크레시안 왕국
소속 : 네패스 남작가
유형 : 마법형
등급 : 5티어
칭호 : 불세출의 대마도사
스킬 : 마나 블래스트(5)
다음으로 시스템을 조작해 내 영웅 정보를 확인했다.
5티어나 되니 등급 옆에 반짝거리는 효과가 보였고 칭호도 불세출의 대마도사라고 되어 있었다.
1티어 마법형 영웅 옆에 붙는 칭호가 어설픈 마법사인 것과 확연히 비교되는 칭호였다.
‘마나 블래스트는 처음부터 5단계네?’
마나 블래스트는 모든 마법형 영웅이 가지는 기본 스킬이었다.
마나를 자유롭게 움직여서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일종의 염동력 같은 건데 옆에 괄호로 붙은 스킬 레벨에 따라서 위력이 천차만별이었다.
1티어 마법형 영웅이 겨우 성인 한 명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반면 5티어 마법형 영웅은 성벽도 날려버릴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다른 스킬은 없네.’
마법형 영웅이 다재다능한 것은 마법을 통해 다양한 전략적 활용이 가능하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직접 전투에 나서거나, 치유 마법으로 힐러가 되거나, 날씨나 지형을 유리하게 바꾸거나.
아니면 정보 수집에 나서서 외교형 영웅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만 들으면 마법형이 사기 아닌가 싶겠지만 그 대신 성장이 느리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멋모르고 이것저것 가르치려다가는 느린 성장 속도로 이도 저도 아닌 영웅이 되기 일쑤인 것이다.
게다가 마법형 영웅은 성장 환경을 갖춰주기도 힘들었다.
다른 유형의 영웅들이 업무와 경험으로 쉽게 스킬을 배우거나 성장하는 것과 달리, 마법형 영웅은 반드시 마법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군주의 유저들은 자신의 영웅 유형을 마법형으로 설정하면 피를 봐야만 했다.
‘내가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았다면 나도 마법형을 고르지는 않았을 텐데.’
처음부터 마법형 영웅을 골랐으면서 최상위 랭커가 된 경우는 내가 알기로 딱 한 명.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나 역시 적잖은 피를 본 피해자였다.
처음부터 마법형을 고르는 바보짓만 하지 않았어도 난 위니스와 1위를 다투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마법형을 고른 대가로 그 기회는 일찌감치 없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2위에 오른 것도 극히 최근으로 나는 첫날부터 빠짐없이 절대군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위권 밖에서 기어 올라와야만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5티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마법형에는 그만한 잠재력은 있다는 소리였다.
당장은 마나 블래스트밖에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유형들로는 따라잡기 힘든 격차가 만들어질 것이다.
‘다른 특전은 뭐가 좋을까?’
5티어가 된 것에 기꺼운 마음으로 다음 특전을 골라냈다.
하지만 이내 소름이 쫙 끼쳤다.
절대군주에서는 그토록 힘들게 얻었던 5티어를 이렇게 쉽게 이뤘으면 억울해야 정상인데.
‘왜 기분 좋아지냐고!’
난 있는 힘껏 내 뺨을 날렸다.
내가 지금 이런 처지가 되어서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 VVIP 특전을 쓰고는 있지만 내 마음마저 허락할 수는 없었다.
내 전략 게임 마니아로서의 자존심을 걸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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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 식사가 준비되었…….”
식당으로 아인을 모시기 위해 방을 찾은 빅터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인이 헤벌쭉 웃으면서 자신의 뺨을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밤에 틀어박히고 열흘.
기억 상실 증세에 그렇지 않아도 조마조마했지만…….
‘이건 너무 처참하지 않은가!’
자신들의 막내 공자님은 미친 게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