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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2화 (2/250)

VVIP 영주님의 품격 2화

VVIP 영주님의 품격 2화

2화

【 엑스트라 영주가 되다 】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무과금 특화 공략을 위해서 소액 과금을 하는 모순의 발생.

자신들에게 뒤통수를 날렸던 게임사를 응징하지 않는 나태함.

이런 흑우 취급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건지, 다른 유저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항의하라고! 게시판에 욕설을 퍼부어! 망하게 하란 말이야!”

내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절대군주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VIP 시스템조차 능가하는 끔찍한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정 확률로 좋은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으나 대체로 질 떨어지는 아이템이 자주 나오는 뽑기 상자의 도래라거나.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린 밸런스로 인해 잘 키운 영웅 하나가 1천 단위의 병력을 휩쓸어버리는 무쌍 메타의 시작이라거나.

이렇듯 전략 게임이라는 태생과는 점점 멀어져 가며 게임이 망가질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반드시 게임사가 정신을 차리도록 해야 했건만.

“흑우들아, 안 돼!”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흑우들의 화력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절대군주의 매출 순위는 한 계단씩 위를 향하여 이미 오픈 때보다도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맨정신으로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어째서 게임사의 농간에 이렇게 길들어 버린 거야?”

정말 빌어먹을 냄비근성이었다.

어째서 끝까지 불매 운동을 유지하지 않는 건지.

또 잠깐의 노가다를 못 참아서 과금을 계속하는 건지.

그리고 왜 나는 이 사태의 원인이 되어 게임사의 홍보 수단이 되어버린 건지.

세상이 야속하기만 했다.

“젠장!”

결국, 슬픔을 참지 못한 난 가까운 편의점을 찾아 소주를 샀다.

오늘은 취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편의점을 나오던 중 문득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사람이 있었다.

가게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자였다.

‘외국인?’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허리 아래까지 흘러내린 곱슬곱슬한 금빛의 머릿결.

거기에 맑고 푸른 눈동자와 선명하면서 자연스러운 이목구비까지.

보면 볼수록 흔치 않은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크게 관심을 가질 이유는 못 되었지만…….

‘절대군주를 하고 있잖아?’

여성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선 나에게 절망을 맛보게 해준 절대군주가 플레이되고 있었다.

거기에 여성의 옆에는 나와 똑같이 소주 한 병이 놓인 상태였고.

또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여성은 찡그린 표정으로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삼위일체 앞에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사람은 나와 동류라고.

지금 나와 같은 심정과 생각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이런 생각을 증명해 주듯 그녀의 입에서는 절대군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걸 그냥 넘어가 준다고? 대가리는 다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하여튼 흑우 새끼들은.”

여성의 입에서 나온 상스러운 욕설.

거기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덕분에 동류라는 생각에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처음 보는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호감이 생겨났다.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게이머로서의 동질감이었다.

“진짜 운영 뭐 같지 않아요?”

“응?”

내가 말을 걸자 여성의 눈길이 나에게로 왔다.

그 와중에 고개를 돌리는 사소한 동작조차 우아했기에 정말 예쁜 사람이구나, 하고 감탄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스마트폰에서 실행 중인 절대군주를 흔들어 보였다.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한 여성이 피식 웃었다.

“그러네.”

“같이 앉아도 될까요?”

“얼마든지.”

의자를 빼내 맞은편 자리에 앉자 여성은 자신의 소주병을 들어 나에게 흔들어 보였다.

나는 거기에 맞춰 방금 산 소주병을 가볍게 부딪쳐 건배한 뒤 함께 병나발을 불었다.

“크! 더러운 놈들이야. 차라리 처음부터 대놓고 돈 쓰라고 하지, 반년이나 지난 지금 와서 VIP 시스템이라니.”

여성은 마치 내 마음을 읽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꺼냈다.

이심전심이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그렇죠. 이건 완전히 기만이에요.”

“그쪽은 언제부터 했어?”

“오픈 때부터니까 반년 됐죠.”

“나도 그런데. 혹시 닉네임이?”

“과금하면 흑우요.”

닉네임을 불러주는데 여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혹시 게임에서 원한을 산 사람인가 싶은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절대군주에는 유저들끼리 경쟁하는 콘텐츠도 있었으니까.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떨고 있자, 이윽고 여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공략 쓴 새끼가 너였냐!”

“헉!”

그제야 난 여성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 이유는 내가 쓴 무과금 공략 때문이었다.

“그게 그러려던 게 아닌데…….”

난 유저를 기만한 게임사에 복수하고 싶었던 심정을 구구절절 읊었다.

그러나 나에게 꽂힌 살벌한 시선은 쉽사리 거두어지지 않았다.

“그쪽 사정이 어떻든 지금 그것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아? 절대군주가 매출 몇 위까지 올라갔는데. 다 그 공략 때문이라고.”

“죄송합니다.”

대역 죄인이 된 심정으로 여성에게 사과했다.

그녀의 분노는 한없이 지당했다.

처지를 바꿔 생각했을 때 나라도 화날 테니까.

이 망할 게임은 혼쭐이 좀 나야 하는데 내가 그걸 다 망쳐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만든 거야?”

거듭된 사과에 분노가 조금 사그라들었는지 여성이 누그러진 태도로 물어왔다.

“뭐를요?”

“그 공략 말이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어떻게 그렇게 세세하게 뜯어내서 다 분석한 거야?”

“남는 게 시간인 학생이니까요.”

내가 쓴 무과금 특화 공략은 순전히 노가다의 산물이었다.

보이지 않는 능력치들을 알아내기 위해 스테이지마다 수십, 수백 회의 반복을 거치는 끔찍한 노가다.

그렇기에 썩 자랑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열정만 있다면 누구든 해낼 수 있을 테니까.

“그걸 일일이 전부 다 확인했단 말이야?”

“스테이지마다 공략을 만들려면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도 설마 그걸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노력이 가상한데.”

여성의 감탄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난 조심스레 그녀의 닉네임을 물었다.

“닉네임이 어떻게 되세요?”

“위니스야.”

그러나 이어지는 대답에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다시 말씀해 주실래요? 누구라고요?”

“랭킹 1위라고.”

혹시나 했지만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친히 자신의 랭킹까지 불러주는 행동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절대군주의 랭킹 1위 위니스.

랭킹 2위인 나로서는 가장 넘고 싶은 상대.

그러나 동시에 결코 넘을 수 없다는 벽을 느끼게 해준 상대였다.

“정말요?”

“볼래?”

여성이 게임 화면을 보여주자 난 냉큼 닉네임을 확인했다.

화면 왼쪽 위에 위니스란 세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와, 진짜 위니스 맞네요. 랭킹 1위.”

“후후후. 나한테는 쉬운 일이지.”

“다른 전략 게임도 해보셨어요?”

의기양양한 그녀의 태도에 의문이 들었다.

전략 게임 마니아를 자처하는 만큼 나는 지금껏 많은 전략 게임들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게임 대부분 정점을 찍거나 근접하는 위치에 올랐었다.

하지만 위니스란 닉네임을 본 건 절대군주가 처음이었다.

어렵기로 유명한 절대군주에서 정점에 오를 정도라면 다른 게임에서도 이름을 날렸을 법한데 말이다.

“아니, 이게 처음이야. 게임 이름 때문에 시작했거든.”

“이름이요?”

“내 주변에 절대군주라고 불리는 분이 있거든. 그래서 무심코 시작하게 됐어.”

“아, 그 사람 닉네임이 절대군주예요?”

“닉네임은 아닌데…….”

여성은 곤란하다는 듯 말을 흐리더니 갑자기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분명 아름답지만 뭔가를 감추는 것처럼 찝찝한 느낌이 드는 미소였다.

하지만 캐묻기에는 실례인 거 같아서 모르는 척 넘어갔다.

이후 여성과 나의 대화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간단한 자기소개, 절대군주를 하면서 느꼈던 소감, 이번 패치에 대한 욕 등.

그 와중에 위니스가 그녀의 본명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다.

“다 마셨네. 난 더 마실 생각인데 그쪽도 더 먹을 거지?”

“어…….”

위니스가 어느새 빈 술병을 흔들며 더 마시자고 제안해 왔다.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었지만, 그녀는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술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따랐다.

“좋아요. 조금 더 마시죠.”

그러나 편의점에서 다시 나온 위니스의 손에 들린 소주의 양을 보고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봉투가 터질 것처럼 한가득하였으니까.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뭐, 괜찮겠지? 설마 큰일이야 있겠어? 집도 코앞이고.’

어차피 집이 바로 앞이었기에 난 주량을 넘는 무리를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병 정도의 소주를 비워낸 뒤.

술이 그렇게 센 편이 아니었던 난 취할 대로 취해서 의식이 날아가고 말았다.

* * *

“이봐.”

“음냐. 나 술 잘 먹어요.”

“애쓴다.”

위니스는 피식 웃었다.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면서 억지로 버티는 게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술을 아무리 잘 마시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그녀는 알코올 따위에 취하지 않는 몸이니까.

“이곳 터가 좋긴 좋은가 보군. 그분에 이어 이런 재미있는 녀석이 나오다니.”

위니스는 물건을 품평하는 듯한 시선으로 신현우를 살폈다.

“너 VIP 시스템 정말 싫어하지?”

“음. 네.”

위니스의 질문에 신현우는 취한 채로 어찌어찌 대답했다.

“왜?”

“그야……. 흐! 이기는 게 당연하면 겨루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공감되는 대답에 위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신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 그렇지. 승리가 예정된 결말은 재미가 없지. 나도 그런걸.”

위니스는 빙그레 웃고는 품에서 서류 뭉치와 깃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신현우를 향해 깃펜을 내밀었다.

“이름 적어.”

“뭔데요?”

“이딴 지루한 세상 말고 네 재능을 써먹을 수 있는 세상으로 가는 황금 티켓.”

신현우는 위니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멀뚱히 바라만 보았다.

그에 위니스는 신현우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펜을 움직였다.

“안심해. 나도 귀여운 햇병아리를 쉽게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일단 네가 잘 아는 세계부터 시작해 보자고. 그게 첫걸음이 되어줄 테니까.”

신현우는 위니스의 손짓에 따라 자신의 이름이 적히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었지만 어쩐지 뭔지 모를 기대감이 들었다.

“뭐, 이것도 못 버티고 죽으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신현우는 위니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평범한 사복을 입고 있던 그녀의 모습은 한순간에 붉은 실이 새겨진 검은 제복으로 변했다.

‘타르타로스?’

눈이 감기기 직전 제복에 수놓아진 글귀를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신현우는 의식을 잃었다.

* * *

‘분명 소주로 병나발을 불었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난 눈을 뜨자마자 간밤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분명 세 병째를 마실 때까지는 기억나는데 이후 필름이 끊겨버리고 말았다.

‘여긴 어디지?’

당연히 집에서 깨어나리라 생각했는데 정작 눈을 뜬 곳은 낯선 방이었다.

목재로 된 가구들과 꾸며진 장식들은 마치 중세 배경의 귀족 침실 같았다.

‘설마 테마 모텔 같은 곳은 아니겠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술이 확 달아났다.

설마 어제 처음 만난 여자랑 갈 데까지 가버린 걸까?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위니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냥 나 혼자 들어온 건가? 왜 집을 놔두고? 그리고 옷은 또 어디 갔어?’

정말 기이하게도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내 옷이 아니었다.

요즘 모텔에서는 잠옷도 주나 하는 의문이 드는데 돌연 한쪽 벽에 걸린 거울에 눈길이 갔다.

스쳐 지나간 거울 속 내 모습이 뭔가 낯설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거울에 있는 건 내가 아닌 엉뚱한 소년의 얼굴이었다.

마치 몸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음, 아직 술이 덜 깼나? 아니면 꿈?’

실없는 생각에 헛웃음을 흘리며 다시 거울에 비치는 얼굴을 살폈다.

이리저리 짓눌리고 부스스한 하얀 머리에 햇빛을 별로 못 받았는지 창백한 피부.

탁한 눈동자에 피로와 음울함이 잔뜩 낀 얼굴.

열 번을 보고 백 번을 보아도 거울에 있는 건 한없이 낯선 소년이었다.

‘그래, 꿈이구나! 원래 몸은 집에서 잘 자고 있겠지.’

그러나 난 놀라기는커녕 도리어 안심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 말고는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과금하면 흑우 님의 VVIP 달성을 축하합니다!]

[VVIP 특전이 지급되었습니다. 지금 보관함에서 확인하세요!]

[1일 차 VVIP 출석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보관함을 확인해 주세요.]

게임 속에서나 볼 수 있을 알림이 느닷없이 눈앞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어차피 꿈이니까.

그저 아무리 게임을 좋아했기로서니 설마 꿈에서까지 이런 걸 보는 나에게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근데 내가 왜 흑우야. 난 10원 하나 안 쓴 무과금 유저인데!’

[확인하지 않은 쪽지가 있습니다.]

뒤이어서 깜빡거리는 메시지가 하나 더 떠올랐다.

난 손을 뻗어 쪽지를 확인했다.

시스템을 사용하는 법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절대군주의 인터페이스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쪽지라고 와 있는 것이 일반적인 쪽지가 아니라 이상한 계약서였다.

‘이세계 VVIP 스타터팩 계약서. 특권 신분 보장, 문자와 언어 통역 보장, 맞춤형 성장 시스템 제공. 당신의 우아한 이세계 생활이 지금 시작됩니다. 범차원 기업 타르타로스?’

멍하니 계약서를 훑어 내려가는데 가장 아래쪽 서명란에 내 이름이 적힌 게 보였다.

‘구매자 서명 신현우. 판매자 서명 위니스? 이건 어제 본 그분 이름이잖아.’

기이한 상황에 얼떨떨함을 느끼는데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위니스가 나에게 갑자기 계약서를 내밀었던 순간.

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나를 이끄는 손길을 따라 서명을 하고 말았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지?’

뭔가 설명을 들은 거 같기는 한데 내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완전히 취해 있었으니까.

상대가 랭킹 1위인 위니스라는 것에 왠지 모를 신뢰를 느껴서 저지른 실수였다.

“뭔가 큰일 난 거 같은데.”

슬프게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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