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6 6권 =========================
사람이 꽤나 많은 유흥업소에 도착한 박수환이 주변을 살피더니 한 여성에게 다가갔다.
“꼬마야. 민증 꺼내 봐라.”
“네? 아저씨 뭐에요?”
“몰라도 되고, 민증이나 꺼내. 안 그러면 잡아 간다?”
“겨, 경찰이에요?”
“그래. 경찰이다.”
여성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신분증 봐요.”
“뭐?”
“경찰 신분증 보자고요.”
“하, 혼나고 싶어?”
“흥, 경찰 아니네, 뭐. 자꾸 귀찮게 하면 소리 지를 거예요.”
박수환과 여성의 대화를 지켜보던 김명박이 앞으로 나섰다.
“큭, 귀엽네. 너 미성년자 맞지?”
“아저씨가 뭔 상관인데요?”
“상관있지. 어디 보자, 여기가... 야, 여기가 누구 구역이냐?”
김명박의 질문에 박수환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후, 그런 건 기억하고 다녀라. 중앙동파 구역이잖아.”
“아, 그래. 중앙동파. 하핫. 꼬마야, 들었지? 여기가 중앙동파 구역이야. 근데 넌 그 구역에서 일을 하고 있고. 맞지?”
사내들이 중앙동파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여성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마, 맞는데요.”
“그래, 우리는 그 중앙동파에서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을 처리하는 사람이야.”
“그, 그래서요?”
“근데 그 일에 네가 끼어 있다는 거지.”
“네?”
“이해가 느리네. 너 미성년자잖아.”
“아...”
그제야 여성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어리니까 봐준다.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라. 안 그러면 다 쓸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빨리!”
그때, 소리를 치던 김명박의 뒤로 누군가의 손이 올라왔다.
“뭐야?”
김명박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몇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있었다.
“누구야?”
사내는 김명박을 무시하고 여성에게 물었다.
“저도 잘...”
“가 있어.”
“네.”
사내의 말에 여성이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김명박이 그 움직임을 막았다.
“움직이지 마라.”
낮은 음성에 여성의 멈칫거렸다. 살짝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확인한 김명박이 사내들을 둘러봤다.
“너희들 죽고 싶냐?”
“허, 이건 뭐야?”
“중앙동파 녀석들, 교육 똑바로 안 시키는구만.”
김명박의 말에 이마를 찌푸리던 사내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 자식이, 미쳤나!”
사내가 손을 뻗어 김명박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김명박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김명박이 손을 들어 올렸다.
탁.
사내의 손목을 잡고서 웃었다. 그리고 힘을 가해 사내의 팔을 꺾어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했다.
“큭.”
사내가 통증을 느끼며 표정을 찌푸렸지만 김명박은 그 모습에 더욱 힘을 가할 뿐이었다.
“어이, 나 김명박이야. 작은 악마, 김명박.”
작은 악마라는 소리에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 작은 악마...?”
사내의 손이 떨렸다.
“죄, 죄송합니다. 몰라 뵈었습니다.”
“그럼, 알아봤으면 이랬겠냐?”
“그, 그럼요.”
“한데 말이야. 못 알아본 것도 죄야. 안 그래?”
김명박의 스산한 말투에 사내는 어쩔 줄 몰라 했다.
“하, 내가 요즘 마음이 너무 좋아졌어. 이런 일도 다 봐주고 말이야.”
“가, 감사합니다!”
사내가 크게 외치는 순간, 김명박은 사내의 잡고 있던 팔을 180도로 꺾었다.
“크아아악!”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괴성을 질렀다.
“신입이 와서 이 정도로 봐주는 거다. 알겠냐?”
“아, 알겠습니다.”
사내는 이를 악물며 통증을 참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래, 안내해라.”
“예.”
사내들이 걸음을 옮겼다. 김명박과 이수환, 그리고 최혁이 그 뒤를 따랐다.
이수환이 최혁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거의 다 끝났다.”
“아, 예.”
대답하고 얼마 가지 않아 철문 앞에 도착했다.
“여, 여깁니다.”
“열어.”
“예.”
사내가 문을 열자 밝은 빛이 그 사이에서 빠져 나왔다. 모두들 그곳으로 들어섰다. 그곳엔 어린 여자들이 밧줄에 묶여 있었다.
최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형님!”
팔이 부러진 사내가 소리치며 달려갔다.
“저 녀석들은 뭐야?”
“그, 그것이...”
설명을 듣고 있던 작은 키의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그래, 여기 참 더럽네.”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요. 일단 이쪽으로 드시지요.”
작은 키의 사내가 김명박의 옷을 털며 어딘가로 안내하려 했다.
“잠깐.”
그때 최혁이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옮겨졌다.
“네가 이랬냐?”
최혁이 질문했지만 작은 키의 사내는 답하지 않았다. 의문 섞인 시선으로 김명박을 보며 물을 뿐이었다.
“누구...?”
“아, 신입이야.”
“신입이요?”
“그래. 오늘 들어 왔지.”
신입이라는 말에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이, 꼬맹아. 어른들 말씀에 끼어들지 마라. 혼난다.”
“내가 물었잖아. 네가 이랬냐고.”
“하, 신경 긁지 마라. 형님 믿고 까부나 본데, 죽는다.”
최혁은 무심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사내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 봤다.
십여 명의 어린 여자들이 밧줄에 묶여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 최지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최혁을 더욱 화나게 했다.
최혁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사내를 쳐다봤다. 아무런 말도 없이, 한참동안이나 쳐다보기만 했다.
지독한 침묵,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는 분위기가 주변을 압박했다.
“여자들, 풀어 줘라.”
그 침묵을 최혁이 깼다. 무언가 모를 압박감에 눌려 있던 키 작은 사내가 그제야 썩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새끼가!”
최혁은 그런 사내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퍽.
“쿨럭.”
키 작은 사내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얼굴엔 핏줄이 일어서며 눈이 붉어졌다. 최혁은 그런 사내의 복부에 한 번 더 주먹을 꽂았다.
퍽.
“커, 커어억.”
사내가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최혁이 다시금 움직이려 하자 뒤에서 손이 튀어나와 앞을 막았다.
“그만해라.”
이수환이었다. 최혁은 별 다른 말없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래, 먼저 이 아이들부터 풀어줘라.”
그 말에 뒤에서 경악스런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사내 몇 명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알겠습니다!”
사내들은 어린 여자들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줬다. 그럼에도 여자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몸을 파르르 떨며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모두 나가도 돼.”
이수환이 부드럽게 말했다.
“지금 안 가면 다시 묶는다?”
움직이지 않던 어린 여자들이 다시 묶는다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서로 눈치를 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주변은 조용해졌다. 이수환이 최혁을 보며 말했다.
“자, 모두 갔다. 들어가자.”
“예.”
어느새 최혁에게 맞고 쓰러졌던 키 작은 사내도 일어서 있었다. 그들 모두가 또 다른 방으로 들어섰다.
앞으론 그러지 말라는 몇 마디 당부와 함께 업소에서 빠져나온 이수환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나다, 이수환.”
이수환의 목소리가 꽤나 차가워졌다.
“두 번 다신 이런 짓 하지 마라. 그땐,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
그 말과 함께 전화를 끊은 이수환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최혁을 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
“어때?”
“뭐, 좋은 일이라 부를 수 있어 괜찮았습니다.”
“하하, 그래. 다행이네. 일이 몸에 맞아서.”
“예.”
“좋아, 하지만 한 가지는 명심해. 우리는 쌍칼파와 중앙동파 모두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지만 또한 그 둘에게 압박을 당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밤길 조심하란 뜻이다. 알겠냐?”
“예.”
“수고했다. 오늘은 들어가 봐.”
최혁은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서글픈 눈동자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누나...’
안타깝게도 오늘 갔던 업소에는 없었다. 어린 여자들을 납치했던 사내들에게 최지은이란 이름을 아냐고 물었지만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최혁의 뒷모습이 유난히도 쓸쓸하게 보였다.
며칠 후.
최혁은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오늘도 인신매매를 하고 있던 조폭들을 처리했지만 최지은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서글픔이 온 몸을 감싸 안았다. 동시에 걸음이 무거워지면서 기운이 빠졌다.
‘피곤하다.’
최혁은 일찍 집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최지은은 고통 속에 허우적거릴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하면 정말 찾을 수 있는 걸까?’
최혁은 걸음을 멈췄다.
‘찾을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인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바뀌지 않았다.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외쳐도 잠깐일 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불안감이 온 몸을 덮어 온다.
스윽.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지만 최혁은 미처 듣지 못했다. 그러다 낯선 인기척을 느꼈다.
“음?”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무언가가 자신의 머리를 강하게 쳤다.
퍽.
“크윽.”
최혁은 뒷걸음질 치며 손을 올려 머리를 보호했다. 하지만 단단한 무언가가 계속해서 최혁의 몸을 때렸다. 엄청난 통증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다. 그러다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최혁은 발을 뻗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았다.
“어떤 개자식이...!”
소리치며 어둠 사이로 보이는 사람 형상을 발견했다. 검은색 옷을 입고, 검은색 모자를 쓴 사내였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정체를 알 순 없었지만 어딘가 낯이 익었다.
최혁은 바닥을 짚으며 다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뒤로 빼 낯선 사내에게서 벌어지려 애썼다.
“크큭, 병신.”
하나 사내는 즐기는 듯 웃더니 앞으로 달려왔다. 가로등 불빛이 비춰드는 곳, 사내는 그곳에서 멈춰 섰다.
‘야구 방망이...!’
사내가 들고 있는 것은 야구 방망이었다. 최혁은 이마를 구겼다.
“죽어라.”
사내는 그런 최혁의 머리를 노리며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빡.
“크아아악!”
공격을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야구 방망이가 팔뚝 부위에 정확하게 꽂혔다.
최혁은 팔의 뼈가 부러지는 느낌을 받으며 고함을 질렀다.
‘크윽, 도망쳐야 해.’
온통 그 생각뿐이다. 지금 상태로 눈앞의 사내를 어떻게 할 순 없다. 생각을 마친 최혁이 뒷걸음질 치던 걸음을 멈추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팟.
갑작스런 상황에 사내가 당황했다. 최혁은 어깨로 사내를 밀어 넘어트렸다. 그리고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골목이 보였다. 최혁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쫓아오고 있는 사내를 확인했다.
‘거리는 충분하다.’
최혁은 한쪽 팔을 부여잡고서 커브를 틀었다. 한데 바로 앞에 여자가 서 있었다. 최혁은 부딪히지 않기 위해 몸을 틀었다.
“크윽.”
여자가 갑작스런 최혁을 보고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 미안합니다.”
최혁은 사과를 하고서 다시 달려가려 했다. 한데 차가운 감촉의 무언가가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푸욱.
최혁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여성인줄 알았던 사람이 나이프로 최혁의 몸을 찌른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가 미소 짓고 있었다.
“커, 커억...”
푸욱.
다시 한 번 나이프가 휘둘러졌다. 최혁은 정신을 차리고서 여인을 한 팔로 밀었다. 그래도 사내의 힘을 당할 순 없었는지 뒤로 밀려난 여인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쳇.”
최혁은 분노 어린 시선으로 여인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달리기 시작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하아, 하아.”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몸이 피곤해졌다. 시야도 흐릿해서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최혁의 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다.
뒤에선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가야 해. 지금...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스스로에게 속삭였지만 이미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가 최혁의 뒤에서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부웅.
무언가가 바람을 뚫고 다가오는 소리, 최혁이 기억하는 마지막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