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3 6권 =========================
해가 떨어진 저녁.
어둠으로 가득한 길을 달리고 있는 차가 보인다.
“여보. 천천히 가요.”
“아, 그래.”
최인의 눈동자가 조금 떨렸다.
“후우.”
“긴장 되요?”
“조금.”
“저도 그래요. 강현이... 살아있겠죠?”
“그럼. 당연하지.”
대화를 하는 와중에 속도가 늦춰줬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느새 시속 150을 넘고 있었다.
“여, 여보...”
“괜찮아. 차도 별로 없잖아.”
“그래도 너무 빨라요.”
이필숙 여사가 조금 말렸지만 최인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부웅-
바람 소리만이 창가 너머에서 들려왔다.
고요한 밤길, 텅 비어버린 도로만이 시야에 잡혔다. 간간히 지나가는 트럭들이 보인다. 함께 지나치는 빠른 속도로 인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약 5분의 시간이 흐르자 최인은 어깨가 조금 뻐근함을 느꼈다.
“으음.”
긴장을 유지한 탓에 근육이 뭉친 것이다.
“왜 그래요?”
“아니, 어깨가 조금 뭉친 것 같아서.”
“그럼 조금 쉬었다 가요.”
“아니야.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뭘.”
이필숙 여사가 걱정스런 눈길로 최인을 바라봤다. 최인은 뻐근한 어깨를 풀어주기 위해 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뚜둑.
목에서 소리가 난 후에야 조금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빠앙-
그때 시야를 가득 메우는 밝은 빛이 보였다. 동시에 고막을 때리는 경적 소리가 들렸다.
“여, 여보!”
“으, 으아아악!”
끼이이익.
급정거 하는 소리, 그리고 충돌음이 뒤를 이었다.
콰앙!
거대한 트럭이 중형차를 들이 받았다. 중형차는 종이처럼 짓이겨지며 부서졌다.
엄청난 충격에 밀려난 중형차는 도로를 이탈했고, 비탈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쿠쿠궁.
한적한 도로에서 벌어진 처참한 사고였으나 중형차를 박은 트럭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벗어났다.
며칠이 지나도 최인과 이필숙 여사가 돌아오지 않자 불안함이 극에 다다랐다.
“왜, 왜 안 오시는 거지?”
“전화도 안 받고...”
최혁과 최지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괜찮을 거야. 불길한 소리 좀 하지 마.”
“아, 알았어.”
두 사람의 대화를 막아서는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릉.
최지은은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
“엄마야?”
반가움이 가득했지만 원하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지은이냐?)
“아, 네.”
(그래, 아빠 친구다.)
“안녕하세요.”
(으음...)
“무슨 일 있나요? 아빠는 지금 안 계신데...”
(그것이, 내가 전해줄 말이 있어서 이렇게 연락을 했다.)
“뭔데요?”
중년인의 목소리는 사뭇 떨렸다. 무언가에 긴장한 듯했다. 하지만 최지은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당장 보강병원으로 가보거라. 너희 아빠,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구나.)
“네?”
(역시 모르고 있었구나.)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교통사고라뇨?”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기자 생활을 안 했더라면 몰랐을 지도 몰라.)
“마, 말도 안 돼요. 교통사고 당했다면 저희한테 연락이 왔겠죠.”
(그러게 말이다. 아마 휴대폰을 찾지 못했거나 박살이 나서 복구가 안 됐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빨리 가 보거라.)
“자, 잠깐만요.”
중년인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뚜뚜.
최지은은 끊어진 전화기를 붙들고서 한참이나 멍하니 있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최혁이 최지은을 불렀다.
“누나, 왜 그래?”
최지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최혁이 최지은의 몸을 흔들었다.
“누나!”
“어, 어?”
“무슨 일이냐니까?”
“그러니까...”
“교통사고? 뭐, 이상한 소리 하던데... 무슨 일인데?”
최혁이 다시 물었지만 최지은은 입만 벙긋 거릴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
그러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주저앉았다.
“누나? 왜 그래?”
최혁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혀, 혁아.”
“응?”
“병원.. 병원에 가야 돼. 빨리.”
“병원? 거기는 왜?”
“아, 아빠하고 엄마가... 아빠하고 엄마가...!”
그제야 최혁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누, 누나? 아빠하고 엄마하고... 왜? 무슨 일인데? 응?”
“교, 교통사고 당하셨대. 빨리... 빨리!”
“어, 어. 알았어.”
최지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최혁은 다급히 나갈 준비를 했다.
보강병원 앞.
택시에서 내린 최지은과 최혁이 다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최혁이 다급히 간호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요. 그러니까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 이름이 최인, 이필숙이에요.”
“잠시 만요. 최인씨, 이필숙씨. 맞나요?”
“예, 맞아요.”
“따라오세요.”
“아, 네.”
보통 호실을 가르쳐 주는데 따라오는 소리에 두 사람은 괜히 긴장했다. 아니, 불안했다.
“누, 누나.”
“응?”
“여기는...!”
한참을 걷던 최혁이 무언가를 발견하고서 자리에 멈춰섰다.
“저, 저기요.”
“네?”
“여기는 영안실 아닌가요?”
“맞습니다.”
“왜 여길...?”
최혁의 질문에 간호사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최인씨와 이필숙씨 가족 맞으시죠?”
“아, 네.”
“따라오세요.”
간호사는 직접적인 말을 삼갔다. 하지만 이곳은 영안실이다. 그것이 말하는 것은 하나였다.
“서, 설마...?”
문이 열리고 하얀 보자기에 덮어 씌워져 있는 침대가 보였다.
“확인하세요.”
간호사가 하얀 보자기를 살짝 내렸다. 그리고 보이는 두 사람의 얼굴에 최혁와 최지은은 숨조차 쉴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아, 아...!”
최지은은 한 손으로 입을 막고서 얼음처럼 굳었고 최혁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뒷걸음질 쳤다.
“마,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최혁은 홀로 미친 듯이 중얼거렸고 최지은은 신음을 흘리더니 바닥으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기절했던 최지은이 눈을 떴다.
“으음.”
최지은은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최혁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기절하기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아...!”
충격은 여전히 컸다.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혁아.”
“응?”
두 사람의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 최지은이 말을 이어갔다.
“꿈... 아니지?”
최지은의 물음에 최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꿈 아니지?”
“응. 아니야.”
최지은의 눈가가 그제야 붉어졌다.
“어, 어떡해. 어떡해?”
눈물은 빠르게 맺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던 최혁도 그 눈물을 보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크, 크흑.”
“아빠, 엄마...!”
두 사람은 한참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흘러내리는 눈물만 손등으로 훔치며 슬픔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최혁은 알고 지내던 최인의 친구, 차현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저 최혁이에요.”
(아, 그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말해 보거라.)
“저희 아빠, 엄마... 어떻게 된 건지 사실대로, 정확하게 말해주세요.”
(으음.)
“부탁해요.”
(워낙 비밀스런 일이라...)
“아저씨.”
(후우. 알았다. 얘기해 주마.)
차현승 기자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은 말이다.)
최혁은 차현승이 말하는 내용을 들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분노는 커졌다. 손이 너무 심하게 떨려 전화기를 붙잡기도 힘들었다.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최혁은 전화를 끊었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인해 그 시간이 꽤나 길었다. 천천히 주머니에 전화기를 넣어 놓고 병원에서 빠져 나왔다.
지쳐 잠든 최지은을 홀로 둔 채 KTX 표를 구매했다.
“개자식들.”
낮게 중얼거린 최혁은 시간에 맞춰 열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표에 적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약 1시간40분이 지나자 안내멘트가 들렸다.
-이번 역은 열차의 종착점인 서울역입니다.
서울에 도착한 열차가 멈춰 섰다. 최혁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에서 내렸다.
휴대폰을 열어 체커 기업의 위치를 찾았다. 그리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택시를 잡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기사의 물음에 최혁은 대답했다.
“체커 기업 본사요.”
“알겠습니다.”
약 10분이 지나고 목적지에 도착한 택시가 멈췄다. 최혁은 비용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여긴가?”
거대한 건물이 눈앞에 있었다. 이 건물이 부모님을 죽이고 형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최혁은 주먹을 움켜쥔 채 당당하게 걸어갔다. 현재 최혁은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입구에 있던 경비가 최혁을 붙잡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최혁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경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거 놔.”
“손님, 아무래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
“여기 체커기업 아니야?”
최혁의 당당한 태도에 경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습니다만...”
“부회장 만나왔으니 비켜.”
“약속은... 하셨습니까?”
“그래.”
“죄송합니다. 카운터에 문의할 동안 기다려 주십시오.”
경비원이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본 최혁은 빠른 걸음으로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카운터에 앉아 있는 사람과 경비원의 눈을 피하며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후우.”
최혁은 심호흡을 한 번 뱉고 2층에서 안내표를 확인했다.
“부회장실.”
위치를 확인한 최혁은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띵.
문이 열리고 최혁은 걸음을 옮겼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경호원 두 명과 비서 한 명이 보였다.
‘죽여 버리겠어.’
최혁은 몸은 운동으로 다져졌다. 웬만한 경호원도 벅찬 느낌이 들 정도다. 거기다가 최혁은 싸울 마음이 없었다.
기회를 엿보던 최강현이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팟.
갑작스런 침입자를 보고 당황한 경호원 두 명이 고함을 쳤다.
“막아!”
하지만 최혁이 어깨로 두 경호원을 밀었다.
“크윽!”
콰직.
경호원 두 명이 뒤로 밀리며 부회장실 문이 부서졌다.
“무슨 일이야!”
강용현 노인이 갑작스런 상황에 고함을 쳤다. 그 사이로 낯선 사내가 달려들었다.
“이 녀석은 뭐야?”
최혁은 태평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강용현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