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8 6권 =========================
대구 팔공산에 위치한 관암사.
최강현의 스승인 노스님이 아침에 마당을 쓸고 있었다. 그러다 하늘을 보는데 먹구름이 가득했다.
“하늘이 어둡구려.”
노스님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최강현을 떠올렸다.
“불길하구나. 불길해.”
자신이 처음으로 거둔 제자였다. 생전 제자를 거두지 않았던 그로썬 특별한 일이다.
최강현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있는 어깨가 보였다. 노스님은 그로인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결국 쓸고 있던 빗자루를 멈췄다.
“내려가 봐야겠구나.”
노스님은 결정을 하고선 곧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그리고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어린 스님에게 갔다.
어린 스님은 다른 곳의 나뭇잎을 쓸어 담고 있었다.
“명헌아.”
“예. 스님.”
나뭇잎을 쓸고 있던 어린 스님이 대답했다.
“내 아무래도 잠깐 갔다 와야 할 것 같구나. 그때까지 혼자 있어야 할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스님.”
“혼자 있을 수 있겠느냐?”
“예, 스님.”
총명한 눈동자의 명헌 스님을 보며 노스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녀오마.”
짐을 모두 챙긴 노스님이 이내 관암사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체커 기업의 건물 앞.
경호원들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어느새 그 수가 십여 명을 돌파했다. 그들 모두가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대로변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거나, 혹은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런 일이 한, 두 번 일어나는 것도 아니며 또한 금방 해결이 난다는 걸 말이다.
“하아.”
경호원들 사이로 최강현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숨이 거칠었다.
그러고 보니 경호원들의 모습도 멀쩡하진 않았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 너덜해진 상태였고 몇 명은 팔과 다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상황을 살피고 있던 김진호가 최강현에게 다가갔다. 그 속도가 매우 빨랐다.
탁.
하지만 최강현의 주먹에 김진호의 팔목이 잡혔다. 그 순간 믿기 힘든 통증이 살을 파고들었다.
“크윽.”
우드득.
엄청난 악력에 김진호의 팔목 뼈가 부러져 버렸다. 김진호는 최강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다리를 앞으로 뻗었다. 하나 최강현은 그 다리를 잡고서 옆으로 힘을 가해 던졌다.
“으윽.”
김진호가 날아간 곳에 다수의 경호원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미처 피하지 못한 채,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넘어진 김진호가 다급히 일어섰다. 통증이 올라와 이마가 찌푸려졌지만 꾹 참으며 명을 내렸다.
“공격해!”
그 말에 경호원이 기합을 터트렸다.
“하앗!”
기합소리가 공기층을 울리며 최강현의 고막을 때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들의 압박감만으로도 뒷걸음질 치기에 충분하다. 하나 최강현은 달랐다. 오히려 앞으로 나서며 그들의 공격에 대응했다.
그것은 본능적이었다. 눈에 보이기 전에 이미 몸이 반응하는 수준에 경호원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던 강용현 노인이 한숨을 뱉었다.
“한심한 것들. 겨우 한 놈을...”
그리곤 어긴가에 연락을 넣었다.
“나다.”
(예. 부회장님.)
“지금 밖으로 나와라.”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래, 한 놈이 소동을 피워서 말이다. 빨리 나와.”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강용현 노인이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체커 기업 건물 안에서 느긋하게 걸어 나오는 사내 한 명을 발견하고는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부회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사내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꽤나 낯이 익다.
“그래, 매일 문만 지키느라 지겹지?”
“아닙니다.”
사내는 부회장실 앞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이었다. 최강현을 보고서 살기가 흐른다던 그였다.
“저 녀석 좀 처리해야겠다.”
강용현 노인이 가리킨 곳에선 여전히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강하군요.”
“그래, 의외지.”
사내의 눈동자가 빛났다.
“알겠습니다. 먼저 들어가 계십시오.”
“그래, 믿고 가마.”
“예.”
강용현 회장이 유유히 걸음을 옮기자 사내도 최강현에게 다가갔다.
“모두 비켜라!”
익숙한 목소리에 경호원들의 고개가 돌려졌다. 그들 중에서 가장 놀란 사람은 김진호였다.
“여, 여긴 어떻게...?”
“진호도 있었구나.”
“아, 예.”
“애들 물려라.”
“예?”
“나 혼자 상대한다.”
“아...!”
놀란 표정을 하던 김진호가 외쳤다.
“모두 물러서라!”
그러자 경호원들이 최강현과 거리를 벌렸다.
“하아, 하아.”
최강현은 오랜 싸움에 지쳐 있었다. 불같았던 화도 조금은 가라앉은 상태다. 눈앞에 강용현 노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후우.”
천천히 호흡을 뱉으며 거친 숨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강해 보이는 사내에게 시선을 줬다.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이름은?”
사내의 물음에 최강현은 답하지 않았다.
“훗, 그래. 어차피 두 번 보지 않을 사이인데 알아서 뭐 하겠나?”
사내가 자세를 잡았다.
“힘들군.”
갑작스런 최강현의 말에 사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잘못한 사람에게 죄를 묻는 것이...”
그런 사내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최강현은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이어갔다. 사내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이제는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 깔았다.
“정말 힘들어.”
최강현의 그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허탈감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무언가를 각오한 마지막 의지로 보이기도 했다.
“싸워주마.”
최강현이 자세를 잡았다.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팟.
지면을 박차고 날아든 최강현이 사내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 속도가 매우 빨랐기에 사내도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큭.”
팔을 들어 공격을 방어했으나 그 충격이 뼈가지 전해졌다. 지릿한 느낌이 전신으로 퍼졌다.
“대단하군.”
사내는 진정 감탄하고 있었다. 하나 방어하던 팔을 내리는 순간 또 다시 공격이 날아들었다.
퍼벅.
최강현은 쉼 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사내에게 결정적인 타격은 입히지 못했다. 최강현의 몸놀림이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하앗!”
사내가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움직임이 단순하군.”
그리고 공격이 시작 되었다.
최강현은 사내가 뻗어오는 주먹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언제나처럼 팔을 뻗어 사내의 손목을 낚아챘다.
“큭.”
한데 그 순간 최강현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손목을 잡힌 사내가 최강현의 힘을 역이용해 끌어당긴 것이다.
최강현은 균형을 잃었다. 그때 얼굴로 사내의 무릎이 날아 들었다. 다급히 양 팔을 엑스자로 교차하여 얼굴을 보호했지만 그 충격은 상당했다.
“크억.”
최강현은 바닥을 굴렀다. 아득한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리가 조금 떨렸다.
최강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강하다.’
하지만 최강현은 강용현 노인을 만나야 한다. 그를 만나 이유를 물어야 한다. 아니, 그 전에 살려 달라 빌도록 만들어야 한다.
최강현은 굳은 눈동자로 호흡을 뱉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스승에게서 배운 자세를 잡았다.
최강현을 지켜보던 사내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그건 뭐지?”
“알려주지. 전통 무술 수박이다.”
“수박? 옛날 사람들이 많이 했다던 그 놀이를 말하는 건가?”
“놀이라... 글쎄.”
최강현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어느새 멎어 있었다.
같은 시각.
밥을 먹고 있던 조한무가 시끄럽게 울고 있는 휴대폰을 들었다.
“복어냐?”
(예, 행님.)
“그래, 무슨 일이야?”
(해, 행님. 최강현 형님께서 아무래도 일을 낼 것 같습니다요.”)
“일이라니?”
(그, 그것이...)
복어는 최강현과 함께 하며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줬다. 그러자 조한무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뭐, 뭐라고?”
(이, 이민경이라는 분이 죽었습니다요.)
“정말이냐?”
조한무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 예. 지, 진짭니다요.)
“알았다. 끊어라.”
(예. 형님.)
전화를 끊은 조한무는 다급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소집했다. 가까운 위치에 있던 도끼파의 전부가 모이자 입을 열었다.
“모두 모였나?”
“예! 형님!”
수십 명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님,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옆에 있던 불독이 조한무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형님이 사고를 치실 것 같다. 시간이 없어. 빨리 가자.”
“사고요?”
“자세한 내용은 가면서 말해주마.”
“알겠습니다.”
“자, 모두 가자!”
“예!”
조한무는 엄습하는 불길함을 애써 지우며 걸음에 힘을 가했다.
사내가 움직이며 주먹을 뻗었다. 그에 최강현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오른손으로 사내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사내의 중심이 무너졌다.
“윽.”
최강현은 그런 사내의 등에 손을 올리고 힘을 가했다.
“크윽.”
사내는 허무하게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런 사내의 뒷통수를 보며 최강현이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래로 내리꽂았다.
퍽.
하지만 사내가 몸을 굴려 최강현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곤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으음...!”
사내의 눈에 놀라움이 번져갔다. 사내는 그러면서도 최강현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최강현은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 속도는 상당히 느렸다. 두 사람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진다.
팟.
최강현이 빠르게 달려들며 다리를 뻗었다. 사내는 그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옆으로 비틀었다. 최강현은 사내의 행동을 주시하다가 뻗은 다리를 지면으로 내려찍었다.
퍽.
큰 소리와 함께 약간의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하앗!”
최강현은 찍어누른 힘을 이용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어깨를 강하게 내밀었다.
“큭!”
사내의 가슴에 최강현의 공격이 들어갔다. 최강현은 곧바로 사내의 몸을 양 손으로 감싸 안아 들었다. 그리고 힘을 가했다.
“크, 크으으윽!”
사내가 엄청난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동시에 빠져 나오기 위해 몸을 비틀며 안간힘을 썼다.
“으아아아악!”
지켜보던 김진호가 상황의 불리함을 깨닫고 달려들었다. 김진호는 최강현의 등 뒤에서 하이킥을 날렸다.
퍽.
“크윽!”
최강현은 강한 통증과 함께 어지러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