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4 6권 =========================
멀지 않은 곳에 벤치가 있었고 그곳에 정미나 기자가 앉아 있었다.
‘저깄군.’
최강현이 걸음을 옮겨 가까이 다가가자 정미나 기자도 최강현을 발견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기 시작했다.
“반가워요.”
“네. 조금 급하니 이것부터 드리죠.”
정미나 기자가 최강현이 건네는 자료를 받고서 물었다.
“지금 바로 복사하고 드릴게요.”
“네, 기다리죠. 아, 그리고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입니다. 혼자 지니고 있다가 몰래 터트려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어요.”
최강현의 물음에 대답한 정미나 기자는 빠르게 달려 방송국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최강현은 벤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한 사람은 해결했고, 이제 남은 사람은 소액주주들인가?’
그들 역시 감시를 붙였다. 상황은 지금과 달랐다.
‘그들은 순수하게 독이 목적이다.’
최강현은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런 녀석들한텐 주먹이 약이지.’
결정을 내리고 잠시 후, 정미나 기자가 방송국에서 나왔다.
“고마워요. 최강현씨 덕분에 제 입지가 좋아지네요.”
“그런가요? 저 역시 제 이익을 위한 일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뭐, 그렇게 말한다면.”
정미나 기자가 활짝 웃더니 자료를 건넸다. 최강현은 그것을 받아들고서 등을 돌렸다.
“그럼 다음에 봐요!”
“그러죠.”
정미나 기자의 인사를 받은 최강현은 차에 탑승해 또 다시 어딘가로 향해갔다.
‘연구 2팀장, 장동근.’
최강현은 돈에 눈이 멀어 체커 기업에 기술을 빼내려 하는 장동근에게 향했다.
“나다.”
(예. 형님.)
지금 전화를 받는 자는 불독이었다.
“장동근의 위치는?”
(예. 현재 집에서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 알겠다. 내가 지금 갈 테니 지키고 있어.”
(알겠습니다.)
최강현은 차를 운전하며 조수석에 둔 서류를 집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점은 없는데.’
여동생이 한 명 있다는 것을 제외하곤 특이사항이 없었다. 이로 미루어 봐서,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오로지 돈 때문에 자신이 일하고 있는 기업의 기술을 빼내려 한다는 것이다.
‘후우.’
최강현은 스스로의 잘못도 있을 거라 여겼다.
‘내가 경영을 잘못한 거겠지.’
그렇다고 그냥 둘 순 없었다. 장동근이 빼내려 하는 기술이 다름 아닌 루게릭T-1과 크론T-1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최강현은 차를 주차시키고 불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그래, 아직도 집에 있냐?”
“예. 그대롭니다.”
“그럼 들어가지, 뭐.”
“예.”
최강현은 불독과 함께 건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겨 있는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쾅! 쾅!
몇 번 어깨로 치자 문이 떨어져나갔다. 최강현은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섰다. 방은 깜깜했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저 쪽으로 가 봐라.”
“예.”
최강현과 불독은 서로 나누어 이곳저곳을 뒤적였다. 그러다 안방으로 보이는 방문을 발견했다.
‘여긴가?’
문을 열려고 했지만 잠겨있었다.
“장동근. 있는 거 아니까 문 여는 게 좋을 거다.”
최강현이 다시금 문을 부수기 위해 동작을 취했다.
“마지막이다.”
“자, 잠시 만요.”
그때, 안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강현은 그 목소리에 잠시 동작을 멈췄다.
“지, 지금 열게요.”
그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곧이어 장동근 나왔다. 장동근은 최강현을 보더니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예상했던 상황과 다르게 전개되자 최강현은 조금 당황했다.
“뭐가 죄송하지?”
“기, 기업의 기술을 빼내려고 해서...”
“알면서 그런 짓을 한 이유는?”
“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나뿐인 동생을 살리기 위해선...”
그 말에 최강현의 시선이 옮겨졌다. 방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창백한 얼굴로 누워 이곳을 보고 있었다.
‘으음.’
최강현은 장소를 옮겼다.
“따라 와라.”
“예.”
거실로 옮겨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치, 치료만 하면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기술만 몰래 건네주면 수술비는 물론이고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을 준다고...”
최강현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여동생을 위한 일인데, 내가 뭐라 할 수도 없군.’
그렇다고 이렇게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해선 안 될 짓을 했으니.”
“아, 알고 있습니다.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하니 제발... 제 여동생만은 살려주십시오.”
최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는 못하겠군.”
뒤에서 지켜보던 불독조차 최강현의 모습에 놀랐다. 설마 거절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나, 그 충격은 장동근이 더 심했다.
“부,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넙죽 엎드리며 최강현에게 애걸복걸했다. 그럼에도 최강현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당신이 죗값을 받을 필욘 없죠.”
최강현은 장동근에게 말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미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죗값은 다른 사람이 받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여동생은 제가 살려 드리죠.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당신은 루게릭T-1과 크론T-1의 기술을 빼내어 체커 기업에 건네주기만 하면 됩니다.”
“예?”
최강현의 갑작스런 말에 장동근이 놀라며 물었다. 그에 최강현이 웃으며 답했다.
“물론, 가짜로 말이죠.”
잠시 후.
장동근은 체커 기업의 이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여, 여보세요?”
(접니다. 약속은 잊지 않으셨겠죠?)
“그, 그럼요.”
(좋습니다. 그럼 미리 정해두었던 장소에서 1시간 후에 만나도록 하죠.)
“예.”
장동근은 전화를 끊고서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한 시간 후에 만나자고 하는데...”
그곳엔 최강현이 있었다.
“흐음. 좋아요. 저는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 잘하셔야 합니다.”
“무, 물론이죠.”
장동근은 최강현이 건네준 서류를 확인했다.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루게릭T-1과 크론T-1의 기술서였다.
“좋아요. 그럼 출발하죠.”
“예.”
최강현과 불독, 그리고 장동근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아, 그 전에 여동생 한 번 봐도 될까요?”
“예? 아, 예.”
최강현이 안방으로 방향을 틀자 장동근이 뒤를 따랐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누워 있는 어린 소녀가 보였다. 최강현은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소녀는 최강현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수술이 시작되기 전까지 버틸 수 있을 힘을 전해줄 생각이었다.
“아프지 않을 테니 편히 있어도 된다.”
최강현의 말은 따뜻했고 또한 부드러웠다. 진심이 전해졌는지 소녀가 뜨고 있던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최강현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좋아. 시작해보자.’
최강현은 소녀의 손목을 잡은 후 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온 몸이 만신창이였다.
‘심하군.’
치료는 불가능하다. 최강현은 그저 약간의 기운을 불어넣을 뿐이었다.
약 오 분의 시간이 흐르고 최강현은 눈을 떴다. 이마의 땀을 닦고 누워 있는 소녀를 확인했다.
‘잠이 든 건가?’
그 모습을 본 후에야 최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가죠.”
“아, 네.”
최강현의 행동을 지켜보던 장동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여동생을 확인한 후 이내 방에서 나왔다.
“거, 참. 신기하네.”
낯선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던 아이였다. 한데 최강현에겐 달랐던 것이다. 평생을 살며 처음 보는 모습에 장동근은 신기하면서도 무언가 안도가 되었다.
최강현의 뒷모습이 꽤나 든든해보였기 때문이다.
“뭐 합니까?”
“아니, 아닙니다. 자, 가시죠.”
뒤에서 늑장을 부리는 모습에 재촉하려던 최강현은 갑작스런 장동근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신경을 끊고서 차에 탑승해 목적지로 출발했다.
차를 몰고서 도착한 곳은 재밌게도 체커 기업의 맞은편에 있는 네로 카페였다.
‘또 여긴가?’
최강현은 차를 길가에 세우고 창문으로 장동근의 모습을 지켜봤다.
장동근은 차에서 내려 네로 카페로 들어섰다. 걸어가면서 흰 장갑을 낀 장동근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약속 시간보다 5분 일찍 도착했으니 조금 있으면 체커 기업의 이사가 나타날 것이다.
“후우.”
조금 긴장되는지 숨을 천천히 뱉으며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때, 문이 열리며 종이 울렸다.
딸랑, 딸랑.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신호에 고개를 돌린 장동근은 체커 기업의 이사를 보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 여깁니다.”
장동근을 발견한 그가 웃으며 다가왔다.
“일찍 오셨군요.”
“아, 예.”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은 한 사람이 모두 다 하는 모양이었다.
“다시 소개하죠. 저는 체커 기업의 정용화 이사입니다.”
“아, 장동근입니다.”
“기술서는... 가지고 오셨습니까?”
“예.”
장동근은 대답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전에 약속했던 돈부터 주세요.”
“하하, 물론 제가 먼저 드려야겠지만 기술서가 맞는지는 확인을 해야 되지 않을까요?”
정용화의 말에 고민하던 장동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술서를 꺼내었다.
“여기...”
정용화가 기술서를 향해 손을 뻗자, 장동근이 손길을 피했다.
“일단 돈부터 주세요.”
“아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정용화가 옆 의자에 있던 가방을 탁자위에 올렸다. 그리고 가방을 열었다.
딸칵.
“평생 먹고 놀 수 있는 돈입니다.”
가방 속에 놓여 있는 천만 원짜리 수표가 몇 다발 보였다. 장동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 여기요!”
장동근은 다급히 기술서를 건네주고는 돈 가방을 뺏듯이 품으로 가지고 갔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정용화가 비릿하게 웃었다. 하지만 기술서를 받아들었다는 성취감에 장동화가 끼고 있는 하얀 장갑을 발견하지 못했다.
“예. 그럼, 전 이만.”
“예. 수고하셨습니다.”
장동근이 카페에서 나가고 정용화도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모습을 주시하고 있던 불독이 들고 있던 펜과 휴대폰을 품으로 넣으며 최강현에게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