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5 5권 =========================
여느 때와 마찬가지의 하루가 흐르고 있었다.
최강현은 점심을 먹기 위해 OX기업에서 나왔다. 뒤에는 비서실장과 몇 명의 비서들이 함께했다. 그때 비서실장이 최강현을 불렀다.
“회장님.”
“네.”
“저기...”
그리곤 어딘가를 가리켰다. 최강현은 시선을 돌려 그곳에 뭐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음?’
그곳엔 양복차림의 낯선 사내가 있었다. 천천히 시야를 옮기자 관암사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눴던 노인이 있었다.
‘후우, 귀찮다.’
노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오랜만이군.”
“예.”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노인이 최강현의 뒤에 있는 비서실장과 비서들을 보며 이마를 구겼다. 그 행동을 보며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최강현은 고개를 돌렸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가서 식사 하세요.”
최강현의 말에 비서실장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비서들과 함께 그곳을 벗어났다. 최강현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내가 보낸 아이들이 모두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네.”
“그렇습니까?”
최강현의 담담한 대답에 노인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내 예의를 지키고자 보낸 것인데 그리 만들면 어찌 하나?”
최강현이 노인의 말에 피식하며 웃었다.
“예의? 그들은 절 힘으로 제압해 끌고 가려 했습니다. 그것이 예의입니까?”
“그랬나? 재미있군.”
최강현은 노인의 말에 딱히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이 등을 돌렸다.
“일단 가지.”
노인이 걸음을 옮기자 최강현은 그를 따라갔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
최강현은 걸어가면서 눈앞의 노인이 어떤 말을 건넬지 생각했다. 동시에 조한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들을 따라다니며 조사를 했고 누군가와 만난다고 했다. 공사장에 있던 녀석들은 돈으로 고용된 자들이라 했고, 문제는 그들이 만나는 누군가인데...’
조한무 역시 그들에 대한 조사를 끝마친 것은 아니었다. 계속 실행되고 있는 상태였고 그저 중간에 보고를 위해 전화를 걸었던 것뿐이다.
‘아직 이들의 정확한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선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물론, 눈앞의 노인이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면 또 모를까.’
어느새 노인이 차에 탑승했다. 노인은 최강현에게 타라는 눈짓을 보냈다. 최강현은 꺼리침한 마음을 접어두고 차에 올라탔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내부를 살폈다.
‘흐음.’
그리고 조수석에 탑승하고 있는 사내를 봤다. 꽤나 단단한 느낌이 드는 사내였다. 그때 노인이 입을 열었다.
“출발하지.”
“예.”
기사가 운전을 시작했지만 뒷좌석에 탄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약 5분을 달려 도착한 조용한 음식점 앞에 차를 세우고 두 사람은 내렸다. 그 뒤를 쫓아온 몇 대의 검은색 승용차에서 양복차림의 사내들이 경호를 서듯 쫓아왔다.
“여기서 기다려라.”
노인이 양복차림의 사내들에게 말했다. 그에 사내들이 걸음을 멈췄다.
“진호는 따라와라.”
“예.”
노인의 말에 대답한 사람은 조수석에 앉아 있던 사내였다. 한 눈에 봐도 단단해 보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사내가 고개를 숙이고 노인의 말에 대답했다. 그리고 이내 최강현과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음식을 앞에 두고 노인이 본론을 꺼냈다.
“그래, 왜 오지 않았나?”
“그들이 힘으로 제압하려 했으니까요.”
“따라오지 않았을 때 생길, 불행한 일들을 상상해 봤나?”
“그런 상상은 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턴 해야 할 걸세.”
노인의 말에 최강현의 눈에서 약한 살기가 번뜩였다. 그것을 알아차린 걸까. 뒤쪽에 서 있던 사내가 최강현을 쳐다봤다. 하나 살기는 빠르게 사라졌기에 사내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제안하나 하지.”
최강현은 답하지 않았다.
“주창수, 그 아이와 상대할 때의 자네의 모습은 꽤나 인상이 깊었네.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지.”
노인은 최강현의 표정을 살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예의를 갖춰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지.”
최강현은 노인의 말투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싶었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마음이 바뀌려 하고 있다네. 나의 호의를 너무 거절하지 말게나.”
노인의 그 말을 끝으로 물을 한 잔 마시기 시작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최강현은 참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소리가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은 호의로 대하지 않겠다는 말이군.’
최강현은 잠시지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
최강현이 노인의 눈을 봤다.
“그러니까 저의 OX기업을 가지고 싶다, 그런 얘깁니까?”
최강현의 말에 노인이 컵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웃음을 지었다.
“허허, 그렇게 들렸나?”
“예.”
“뭐, 아니라곤 하지 않겠네. 솔직히 자네의 그 작은 기업에는 우리가 갖지 못한 많은 것이 있어. 해서 욕심이 난다네. 나라면 훨씬 더 큰 이익을 만들었을 텐데 말이야.”
“그러시군요.”
“어떤가? 자네의 자리를 보장해주겠네. 단지 자네의 위에 나라는 존재가 한 명 늘어나는 것뿐이지. 그로 인해 얻는 것이 많을 걸세.”
노인의 말은 달콤했다. 단지 겉면만 보자면 노인의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실상도 같을까.
최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많은 것이 바뀌겠지. 어쩌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변할지도 모른다. 인신매매는 물론, 그 수많은 범죄들도 뒤에서 지시했겠지. 그리곤 들어오는 이익만을 챙기며 다른 이들의 인생을 짓밟았겠지. 아니, 그보다...’
어쩌면 OX기업의 모든 것을 넘긴 후에 노인은 생각을 바꾸고 최강현을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곤 빈손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강현의 노인의 눈동자에서 진심을 읽을 수 없었다.
결국 최강현은 결정을 내렸다.
“거절하겠습니다.”
그 말에 노인의 눈썹이 떨렸다.
“뭐라고 했나?”
“거절한다고 했습니다.”
“크흠, 감히 내 말을 거절하겠다?”
“예.”
최강현은 담담함을 유지했다. 그 모습에 노인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이유가 뭐지?”
최강현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한 마디를 툭 뱉었다.
“차라리 주창수가 더 나았습니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가 최강현을 막으려 했으나 노인이 제지했다.
“지금 이곳을 벗어나면...”
노인의 말에 최강현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분명 후회할 걸세.”
하나 노인의 말이 끝을 맺자 최강현은 다시금 앞으로 나아갔다.
최강현이 나가고 적막감이 가득한 공간에서 노인이 사내에게 명령했다.
“실행해라.”
“예.”
사내는 대답과 함께 잠시 자리를 옮겨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노인은 남아 있는 물을 마신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리석군.”
그리곤 밖으로 나갔다.
하숙집에 도착한 최강현은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다 잠시 멈칫거렸다.
‘으음.’
퇴원하고 별 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결국 조심스럽게 이민경의 방문 앞에서 서성이는 최강현이었다.
“하아.”
자신의 모습에 한숨을 쉬며 이내 포기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이민경의 방문이 열렸다.
끼이익.
“어, 강현아.”
“아, 그래. 방에 있었네.”
최강현의 말에 이민경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응.”
이민경과 이야기를 나누던 최강현은 그녀의 뒤로 보이는 짐들을 보며 의문을 가졌다.
“저것들은...?”
최강현의 물음에 그녀가 뒤를 돌았다. 그리고 정리되어 있는 짐들을 보며 말했다.
“아, 이거?”
“응. 웬 짐들이야?”
“3차 시험에 합격도 했고, 엄마도 집으로 오라고 해서.”
“아아.”
최강현의 눈가로 아쉬움이 스쳐갔다.
“여기 정 많이 들었는데.”
“그러게.”
이민경 역시 아쉬움을 표현했다. 하나 지금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최강현은 침묵을 지킬 뿐이다. 그렇게 서로를 보던 짧은 시간이 지나고 이민경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나는 나머지 물건들 정리 할게.”
“아, 그래.”
“쉬어.”
이민경이 방으로 들어가고 최강현도 자신의 방으로 이동했다. 무언가 씁쓸한 기분이 피어올랐다.
‘뭐지, 이 기분은?’
그냥 하숙집에서 나가는 것뿐이다. 언제라도 연락만 하면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최강현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 그날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
회장실에 도착한 최강현은 비서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회장님, 저희 사업을 방해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커졌습니다.”
“흐음.”
최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움직이는군. 하지만 내가 그렇게 쉽게 당할 거라 여기는 건가?’
최강현은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 공격이 어디서 이뤄지는지 알아내세요. 동시에 그 공격으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한 방어대책을 세우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이 되면, 저희도 움직일 겁니다. 준비해 주세요.”
“예, 회장님.”
비서실장을 최강현의 말에 대답하고 다음 서류를 살폈다. 그리고 이내 다시금 보고했다.
“두 번째 보고 사항입니다. 현재 시중에 풀린 크론T-1 역시, 루게릭T-1에 못지않게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크론T-1을 둘러싼 이상한 움직임은 없습니까?”
“예. 루게릭T-1과 같은 사건이 발생할까 염려가 되어 크론 T-1의 경우에는 사전에 많은 조사를 하고 안전이 확보된 후에야 움직였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최강현은 만족했다.
‘충분하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두 가지의 불치병 치료제. 이거라면 감당할 수 있다.’
이후로도 몇 가지의 보고를 더 듣고서야 비서실장은 회장실에서 벗어났다.
홀로 남은 최강현은 정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노인의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 몇 가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