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의 태블릿-98화 (98/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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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현은 오늘도 역시 몇 명의 사람들을 도와줬다. 그러다 시간을 확인했다.

‘이런, 벌써 5시네?’

다급히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이민경이 보낸 문자는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의문이 든 최강현은 건물 안으로 몸을 피해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신호음이 들렸다. 그 소리만이 한참동안 최강현의 고막을 때렸다.

최강현의 동공이 떨렸다.

‘왜 안 받는 거지? 설마...!’

최강현은 상황을 유추하고 급히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이미 출발했을 시간은 지났다. 그렇다면 지하철을 타고 올텐데... 일단 면접을 어디서 보는지를 모르니 그곳엔 갈 수도 없고.’

걸음이 빨라졌다. 그때 깡통 하나가 날아와 최강현의 뒷통수를 때렸다.

“큭!”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웠기에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앞에서는 비닐봉투가 시야를 가렸고 옆으로는 위험해 보이는 물건들이 쉼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걸어가기에는 지하철역까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었다.

‘제길.’

속으로 욕을 뱉으며 걸어가는 최강현의 머릿속으로 꿈에서 보았던 장면이 스치고 간다. 그럴수록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다행히 큰 위험 없이 지하철역에 도착한 이민경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지하철에 탑승했다.

“휴우. 다행이다.”

물론 지하철역에서 나와 하숙집까지 향하는 길이 조금 멀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여겼다. 그렇게 고민을 간단하게 끝내고 주위를 둘러본 이민경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시험도 잘 쳤고...”

이민경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긴장된 몸에서 힘을 빼고 휴식을 취했다.

잠시 후.

안내 멘트가 들렸다.

-이번 역은 을지로 4가입니다. 이번 역은 을지로 4가입니다.

그 소리에 이민경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왔네.”

문이 열리고 밖으로 향한 이민경은 에스컬레이터를 탑승하고 위로 올라갔다.

어느새 정문에 도착한 이민경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견디기 힘든 바람이 몰려 들어왔다.

“엄마야!”

놀란 이민경이 뒷걸음질 쳤다.

“아...!”

바람이 너무 강했다. 방금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몇 배는 더욱 쌔진 것 같았다.

“어, 어떡하지?”

그것은 밖으로 나서려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으윽! 왜 이렇게 바람이 심해?”

“못 가겠는데?”

그들 역시 멍하니 건물의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잠잠해지길 바라며 문밖으로 보이는 거리를 봤다. 텅 비어 있는 거리, 하지만 부산물들로 휘날리는 그곳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몇 명의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

“야, 그냥 가자.”

“위험할 것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결국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그들은 걸음을 떼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크윽.”

“조, 조금 있다가 가자.”

“됐어, 이 정도야, 뭐.”

그들의 모습이 조금 멀어지기 시작했다. 큰 탈이 없어 보여서일까. 남아 있던 사람들이 수군대더니 그들을 따라 나서기 시작한다.

“우리도 가자.”

“그래. 저기 가는 거 보니까 괜찮네.”

남아 있는 사람은 이민경 혼자였다.

“아, 어떡하지...?”

고민했지만 결국 답은 하나였다. 어차피 가야 할 일이다. 오늘 하루를 여기서 지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괘, 괜찮겠지.”

이민경이 움직였다. 그녀도 결국 문을 벗어나 바람과 함께 싸우기 시작했다.

지옥이었다. 믿기 힘들만큼 강해진 바람에 대응하다 쓰러진 사람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 속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채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이민경은 붉어진 시선으로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아... 아...”

입안에서 맴도는 단어들, 소리치고 싶은 격한 감정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채 사그라졌다.

“크아악!”

걸어가던 사내가 바람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뾰족한 무언가가 사내의 볼을 옆에서 뚫고 지나갔다.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자동차에 깔린 중년인, 날아오는 벽돌에 맞고 기절한 여인이 보인다. 쓰러진 전봇대와 그로인해 끊어진 전깃줄이 허공에 매달려 바닥에 흐르는 빗물에 닿을 것 같은 묘한 두려움도 느껴진다.

쏴아아아-

비가 내린다.

태풍에 섞인 빗방울은 조금씩 강해졌다. 바닥을 적시던 빗물이 어느새 발목을 채우고 있었다. 전깃줄이 닿을 듯 말 듯, 위태로움은 더욱 강해졌다.

“우, 움직여!”

그나마 멀쩡한 몇 명의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바람에 패해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닥쳐오는 위험들에 그들도 몸이 굳어 버렸다.

최강현의 눈동자가 떨렸다.

‘지옥...!’

꿈에서 보았던 두렵던 그 장면이다. 그 속에 이민경이 있었다.

“젠장! 이민경!”

그녀는 멍한 시선을 유지한 채 정면만 보고 있을 뿐이다. 마치 미쳐버리기라도 한 듯, 그녀의 눈동자는 정상이 아니었다.

최강현은 그녀를 향해 달렸다. 주위에서 신음이 끝없이 들렸지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허공에 매달린 전깃줄을 발견했다.

‘이런...!’

시간이 없다. 빗물은 어느새 발목을 넘어선 상태다. 위태로운 상황에서 최강현은 어느새 이민경의 곁에 도착했다.

“이민경! 정신차려!”

최강현이 그녀의 어깨를 흔들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뺨을 때렸다.

짝.

그러자 이민경의 흐릿했던 시선에 힘이 돌아왔다.

“가, 강현아...!”

“가자.”

최강현이 그녀를 부축했다. 그리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최강현의 몸이 흠칫거렸다.

“사, 살려줘!”

“꺄아아아악!”

“제발! 살려주세요!”

하지만 그들을 돌볼 시간은 없었다.

‘이미... 늦었어.’

마음을 다잡은 최강현은 이민경을 잡은 오른 손에 더욱 김을 가했다. 그리고 걸음을 내딛었다.

“으아아아악!”

뒤에서 듣기 힘든 괴성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온 몸을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최강현의 두 눈동자에 박혀 버렸다.

하루가 흘렀다. 어느새 태풍이 서울 지역을 벗어나 그 힘을 잃기 시작했다. 이제는 거리를 돌아다녀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약해진 바람에 서울 거리가 안정을 되찾았다.

뉴스가 흘러나온다.

「어제 오후, 지하철역, 을지로 4가에서 내린 다수의 사람들이 거리를 걷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봇대가 쓰러져 전깃줄이 끊어졌고 그로인한 감전사가 원인으로 보입니다.」

지옥이 떠올랐다. 최강현은 그저 이마를 찌푸릴 뿐이었지만 이민경은 온 몸을 떨었다. 최강현은 다급히 채널을 돌렸다.

“아, 아...!”

최강현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하지만 그녀의 떨림은 멈출 줄 몰랐다. 최강현도 토닥거림을 멈췄다.

‘나도... 힘들다.’

최강현은 이민경을 부축했다. 그리고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방에서 나오며 중얼거렸다.

“쉬어.”

이민경은 불안한 눈동자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최강현이 나가자 혼자가 되었다. 어제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아...!”

두렵다.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이민경의 온 몸으로 경련이 일어났다.

“꺄아아아악!”

그리곤 견딜 수 없는 고함을 한 번 지르고는 의식을 잃었다.

고함 소리에 놀라 이민경의 방을 찾은 최강현은 쓰러진 그녀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헉, 헉.”

다급히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로 이동된 이민경을 보며 최강현은 슬픈 눈동자를 빛냈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최강현은 한참이나 홀로 생각에 잠겼다.

“하아.”

무엇이 문제였을까. 고민은 오래도록 지속되지만 언제나처럼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지만 해결할 수 없기에 외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띠-

그때 응급실의 불이 꺼졌다. 최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침대에 누워 있는 이민경이 나오고 있었다.

“선생님.”

“흐음. 무언가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일단 위험한 상황은 넘겼으나 의식을 회복해도 치료를 꾸준히 받으셔야 할 겁니다.”

의사의 말을 들으며 최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절차를 거쳐 입원을 시키고 이민경의 가족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예. 하숙집에서 쓰러져서 병원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뭐, 뭐라구요? 어, 어디죠?)

“여기가...”

최강현은 위치를 말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병실에서 이민경을 살폈다.

잠시 후. 이민경의 가족들이 왔다.

“어, 어떻게 된 거죠?”

이민경의 어머니는 다급한 마음을 얼굴에 그대로 나타냈다.

“어떤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쇼크라고 했습니다. 저도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네요.”

“아아...!”

뒤를 이어 이민경의 가족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최강현은 그들을 보며 병실에서 빠져 나갔다.

장마가 끝이 났다. 많은 피해가 대한민국을 휩쓸었지만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다.

“이젠... 뭘 해야 하는 건지...”

최강현은 멍하니 아침을 보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는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후우.”

답답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OX기업으로 향했다.

잠시 후, 회장실에 도착하자 비서실장이 몇 가지를 보고했다.

“회장님, 일단 고아원에 상당금액을 기부했습니다.”

“아, 그래요? 잘했어요.”

잊고 있었던 일이다.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하게 고아원에 돈을 기부하고 또한 불우한 이웃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보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이상한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상한 조짐이라면?”

“예, 저희가 추진 중에 있는 사업에 누군가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조금 더 조사하고 보고해주세요.”

“예, 회장님.”

비서실장이 나가고 최강현은 그들의 정체를 추리했다.

‘아무래도 그 노인이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 그의 정체를 모른다.’

최강현이 이마를 찌푸리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조한무.’

최강현이 전화를 받았다.

“그래, 나다.”

(예, 형님. 전에 공사장에 있던 녀석들을 쫓아다니다가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조한무의 말에 최강현의 눈동자가 빛났다.

“계속 말해 봐.”

(예. 그 녀석들은 일정기간을 주기로 누군가와 만나고 있었습니다. 해서 애들을 더 풀어 누구를 만나는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조한무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잠깐의 틈을 주고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공사장에 있던 녀석들은 돈으로 고용된 자들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만나는 누군가인데, 그것에 대해선 아직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일단 중간보고차원으로 전화 드렸습니다.)

“그래, 알았다. 더 알아보고 연락해라.”

(예.)

최강현은 전화를 끊고 오랜만에 정시혁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어, 형.)

“그래, 오랜만이네. 요즘 뭐 하고 지내냐?”

(뭐하긴. 운동하고 대회 준비하고 있어.)

“그래. 다행이네.”

(다 형 덕분이지, 뭐.)

“하하, 꼭 이겨라.”

(응, 알았어.)

“다음에 시간 되면 한 번 보고.”

(알았어.)

그렇게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은 최강현은 비서실장이 말한 이상한 조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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