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7 5권 =========================
최강현은 한 명의 꼬마 아이를 구해주고 다시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위험요소가 많다.’
살짝 고개를 돌려 다시 걸어가는 꼬마 아이를 확인했다.
‘으윽.’
등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꽤나 큰 나무의 기둥 조각이었기에 고통도 상당했다. 하지만 어쩌면 심하게 다쳤을지도 모를 아이를 구했기에 그것으로 이미 만족했다.
최강현이 걸음을 옮겼다.
“꼬마야. 집이 어디니?”
“네? 저, 저기요.”
손가락을 뻗으며 가리키는 곳에 계단이 보였다. 일명 달동네라 불리는 곳이다.
“그래? 형이랑 같이 가자. 혼자 가면 위험해.”
“아, 네. 고맙습니다.”
최강현은 바람을 헤치며 아이를 집까지 바래다줬다. 가는 도중에 위험했던 상황이 몇 번 있었지만 최강현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헤치고 나갔다. 힘들게 계단을 오르고 조금 더 걸어간 꼬마 아이가 멈췄다.
“여, 여기에요.”
“그래. 들어가렴.”
“네. 고맙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아이, 최강현은 무너질 듯 흔들리는 낡은 건물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후우.”
일단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린 최강현이 걸음을 옮겼다.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몸은 피곤할지라도 다른 이들의 목숨을 구할지도 모른다. 꿈에서 본 그 모습이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어디라도 좋으니... 움직이자.’
그래서 최강현은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바람은 조금씩 강해졌다. 버텨내며 걸어가던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크윽.”
이제는 걸음을 앞으로 옮기기가 버거워졌다. 나아가려해도 바람이 몸을 뒤로 밀었다.
“으윽.”
결국 사람들이 견디기 못하고 피할 곳은 찾아다녔다. 건물과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그곳으로 몸을 피했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먼 사람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바람을 버텨내고 있었다.
쿠그그.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젊은 남성이 중얼 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앞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사내의 표정은 빠르게 굳어갔다.
“어, 어엇...!”
소형 자동차 한 대가 바람에 못 이겨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지면을 구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사내가 양 팔을 들어 몸을 방어하려 했다. 하나 그것으로 막기엔 역부족이다.
콰과과광.
어느새 소형 자동차가 지척에 도달했다. 사내는 고함도 지르지 못한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옆으로 굴러오던 소형 자동차가 튀어나온 작은 돌에 부딪혀 약간 공중으로 떴다. 그 상태로 사내의 머리 바로 위를 스치고 가며 회전했다.
“아, 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움에 신음을 흘렸다. 사내 역시 멀쩡한 자신의 몸을 보며 흔들리는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사, 살았어.”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날카로운 쇠파이프가 사내의 관자놀이에 찍혔다.
푸욱.
사내는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쓰러져갔다.
놀란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대부분이 쓰러진 사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으음.”
참혹했지만 어떻게 할 방법도 없었다. 그저 휴대폰을 꺼내어 119에 전화를 거는 것 밖에는 말이다.
조금 바람이 잠잠해졌다. 그에 건물에 몸을 숨기던 이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로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거리에 남겨진 사내의 주검 하나가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길을 걷던 최강현은 전봇대에 박혀 있는 소형 자동차와 근처에 쓰러져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이런!’
바람을 제치고 급하기 달려간 최강현은 다급히 사내를 살폈다. 쇠파이프가 관자놀이에 박혀 있는 모습은 징그럽기 그지없었다. 최강현은 쇠파이프를 살폈다.
‘깊지 않다.’
그리고 귀를 사내의 코에 대었다. 미약한 숨소리가 느껴졌다.
‘살아 있어!’
최강현은 곧바로 기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일단 쇠파이프는 함부로 뽑지 말자. 깊이가 미약하지만 하지만 전문분야가 아니니.’
일단 상처부위를 살폈다. 최강현의 기운은 천천히 사내의 몸을 돌며 떨어진 생체기능을 원활하게 만들었다. 그 시간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최강현의 이마에서 조금씩 땀이 맺히기 시작할 무렵, 저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다.
‘다행이다. 누군가 신고는 했구나.’
최강현은 천천히 사내에게서 손을 뗐다. 그리고 저 멀리 있는 앰뷸런스를 보고는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사내는 상당부분 치료가 된 상태였다.
오늘은 수업실연과 지도안을 작성했다. 지도안 작성 시간은 1시간, 그렇게 힘들지 않았지만 문제는 수업실연이었다. 이미 같은 내용을 너무 많이 봐온 면접관들이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이민경은 들어갔던 것이다.
미동도 없이 멍한 시선으로 천장만 바라보는 면접관들. 이민경은 처음에 너무 떨려 말이 조금 꼬였지만 결국 안정을 찾고 수업을 마쳤다.
이튿날의 계획을 마치고 개인 방으로 들어간 이민경은 휴식을 취했다.
오늘의 일과는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내일 있을 영어수업실연과 영어면접이다. 잠시 멍하니 있던 이민경은 호기심을 느끼며 창문 너머의 세상을 봤다.
후드드.
유리창에서 느껴지는 진동만으로도 바람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지만 그래서 더 궁금했다.
이민경의 시야로 거리의 풍경이 보였다.
난장판이 된 도로들, 그리고 이리저리 구르고 있는 소형 자동차들과 부서진 나뭇조각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가끔씩 보이는 사람들은 힘겨운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후우. 정말 난리구나.”
그들을 보던 이민경이 내일을 걱정했다.
“아, 어떡하지?”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거리다. 하지만 걱정을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강현이가 온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이민경은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최강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거의 다 됐군.’
어제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위험해 보이는 이들을 도와주었다. 최강현이 구한 사람만 해도 십여 명이 넘어섰다.
‘하지만 내가 발견하지 못한 채 위험에 빠진 이들은 모두들 큰 상처를 입거나 고통 속에서 죽어갔겠지.’
아직도 꿈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최강현을 괴롭혔다. 동시에 불안함이 피어오른다. 마치, 오늘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최강현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후우.”
오후3시나 4시가 되면 이민경의 3차 시험이 끝이 날 것이다. 미리 문자를 주기로 했기에 그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잠시 뉴스를 볼 생각으로 거실로 나와 TV를 켠 최강현은 오늘 서울에 부는 바람이 가장 강할 거라는 소식을 접했다.
「서울을 강타한 제7호 태풍 멜린이 더욱 거세어졌습니다. 오늘 아침이면 서울 지역을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관측결과 그 시간이 늘어나 시민여러분의 주의를 요하는 바입니다. 내일 아침은 되어야 거리를 돌아다닐 정도가 되니 부디 오늘은 외출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강현은 이마를 찌푸렸다.
‘젠장.’
오늘만 버티면 된다. 최강현은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최강현은 답답한 마음을 느꼈다. 왠지 집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위험에 처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후웅.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불면 집이 흔들리는 느낌이 날까. 최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이내 집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옷을 차려입고 문을 여는 순간 얼굴을 때리는 강렬한 바람을 몸으로 체험했다.
“으윽.”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길가에 심어진 나무는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휘청거렸고 소형 자동차들은 어김없이 거리를 뒹굴고 있었다.
최강현은 조금 걸어가 주변을 살폈다.
‘사람이 없다.’
오늘은 무슨 이유에선지 보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다행이군.’
하지만 혹시 모르니 조금 더 둘러보기로 결정한 최강현은 이내 힘든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모든 시험을 마친 이민경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짐을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되는 마음도 생겼다.
“후우. 집까지 어떻게 가지? 아, 참.”
이민경은 최강현에게 문자 보내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내 정신 좀 봐.”
뒤늦게나마 떠오르긴 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엔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고민하던 이민경은 그냥 혼자 가기로 결정했다.
“위험하게 나오라고 하기도 뭐하구...”
짐을 모두 챙긴 이민경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건물을 나서고 있었다. 몇 명의 사람들이 밖으로 향했다가 이내 다시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어우, 장난이 아니잖아?”
“어떻게 가라는 거야?”
“그러게.”
그들을 지나친 이민경도 역시 문을 여는 순간 곧바로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엄마야.”
바람이 너무 강했다.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가 얼굴을 때리는 느낌이다.
“어떡하지...?”
꼼짝없이 갇혀버린 형국이다. 그렇게 이민경이 걱정하고 있을 때, 겁 없는 몇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민경은 투명한 유리 거울을 통해 그들을 바라봤다.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허리를 숙여 힘겹게 발을 내딛는 그들이 안쓰러웠다.
“후우. 저것 봐.”
“바람이 너무 강해서 차까지 뒤집히는 마당이니 결국 걷는 수밖엔 없는데 말이야.”
“그래, 일단 지하철역까지만 가면 되니까.”
사내들의 대화가 들렸다. 이민경도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하철역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후우. 나도 가야겠지.”
이민경이 중얼거리고 있을 때 대화를 나누던 사내 세 명이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함께 걸음을 옮겼다.
이민경 역시 휩쓸리듯 그들의 뒤를 따랐다.
“아악!”
강한 바람이 잠시 움찔거렸지만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향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변을 뒤흔드는 바람이 조금씩 더 강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