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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태블릿-94화 (9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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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현은 흑호파의 아이들을 밖에 대기시키고 차에 탑승했다.

“그래, 자네가 최강현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만.”

“최근들어 치료제의 개발이 힘을 쓰고 있더군. 루게릭T-1도 그렇고 현재 시중에 풀린 크론T-1도 그렇고 말이야.”

“예.”

“한데 참으로 묘하게도 말일세. 그것들이 우리가 모두 준비하던 것들이란 사실이네.”

최강현이 의문을 표했다.

“믿지 못하겠나 보군.”

“뭐,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이걸 보여주지.”

카리스마를 풍기는 노인이 서류 몇 장을 건넸다. 최강현은 받아들고서 간단히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표정이 굳어갔다.

‘이, 이런...!’

노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전국에 걸쳐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상태였다. 루게릭병과 크론병에 주력을 하던 차에 루게릭T-1이 나와 어쩔 수 없이 크론병에 투자를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OX기업이 먼저 크론T-1을 내버린 것이다.

“하, 황당하군요.”

“내가 더 황당하지. 안 그런가?”

“크흠, 한데 경쟁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런 걸로 절 보자고 하신 겁니까?”

“허허, 내가 알고 싶은 건 이걸세. 우리가 그토록 힘들게 알아낸 정보들을 자네가 어떻게 먼저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글쎄요. 그저 운이 좋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군요.”

노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우리 아이들 중에 스파이가 있었나?”

스파이라는 말에 최강현이 피식 웃었다.

“그런 일 없습니다.”

“그럼 더 이해가 안 되지 않겠나.”

최강현이 잠시 숨을 돌렸다.

“좋습니다.”

그리고 진실에 거짓을 보태어 말해주기 시작했다.

“박기봉 박사의 경우, 그냥 우연히 길을 가다가 불량배들에게 당하는 중년인으로 보여 구해줬을 뿐입니다. 한데 루게릭에 대한 자료가 있다고 하더군요. 마침 저 또한 기업의 회장으로써 관심이 있었기에 제안했을 뿐입니다. 두 번째, 마찬가지로 크론병의 경우 이미 그쪽에서 강동운씨를 스카우트하려 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결국 우리 회사를 택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최강현의 말을 듣고 있던 노인이 생각에 잠겼다.

“그것이 다 인가?”

“예.”

“허허, 알겠네. 이야기해줘서 고맙군.”

노인이 잠시 말을 끊었다.

“하지만 말이야.”

최강현은 갑작스런 분위기의 급격한 변화를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과정이 어떻게 되었건 자넨 우리에게 피해를 줬다네. 우리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걸세.”

“그냥 넘어 가지 않는다면...?”

“자네의 것을 무너트리거나, 혹은 나의 것으로 만들거나.”

최강현이 미소를 지었다.

“할 수 있다면.”

그리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검은 양복의 사내가 길을 막아섰다.

“보내 줘라.”

노인의 말에 검은 양복이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깍듯하게 답했다.

“예.”

최강현은 잠시 걸음을 옮기다 멈춰섰다. 그리고 양복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이야, 당신.”

“뭐지?”

“말은 함부로 놓는 게 아니야.”

퍽.

“크허억!”

최강현의 주먹이 순식간에 사내의 턱에 꽂혔다.

“다음부턴 조심하라고.”

“이, 이 자식이!”

사내가 최강현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만!”

노인의 화가 난 음성에 사내가 멈췄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그냥 보내라고 하지 않았던가?”

“죄, 죄송합니다.”

최강현은 노인을 보다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가자.”

“예, 형님.”

최강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높군, 아주 높아. 일단, 회장이라 했으니 기업을 운영하고 있을 테지. 과연 어느 정도의 기업일지...’

확인하지 않아도 예상은 되었다.

‘어쩌면 폭스기업보다 더욱...’

서울은 아직도 장맛비로 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좋은 소식은 있기 마련이다.

「네. 루게릭T-1을 개발한 OX기업에서 이번에 또 다시 불치병의 치료제를 개발했습니다. 크론T-1이라 이름이 붙여진 이 약은 이미 시중에 풀려 있는 상태이며 효과 역시 탁월하다고 합니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식과 인터넷을 떠돌기 시작한 소식은 빠르게 검색어 1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불치병의 개발은 그만큼 큰 사건이다.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으며 많은 곳에서 계약을 하자고 난리였다. 최강현은 그들을 엄밀하게 선별해 함께 나아가는 동료가 되기로 했다.

“회장님,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다행이군요.”

“예. 저희 기업의 주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젠 누구라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최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부족합니다.”

그 말에 비서실장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수고하셨습니다.”

“예.”

비서실장이 나갔다. 최강현은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후우.”

일단 크론T-1을 개발했으니 한동안 여유가 생겼다. 잘만 이용한다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지를 다질 수 있다.

‘폴드잇도 꾸준히 이용하고 말이야.’

전체적인 업무에 대한 구상을 마친 최강현은 이내 사적인 고민을 시작한다.

이미 죽어버린 소중한 존재, 박철현. 최강현이 살인마로부터 구해준 한 명의 생존자였다.

‘그리고 산불. 하필이면 지하철 사건 때 위험에 처했던 어머니와 지은이가 등산을 가서 사고를 당했다. 과연 우연일까?’

문제는 또 있었다. 보고를 듣기 전까지는 몰랐던 정시혁의 교통사고 사건까지, 최강현은 상황이 조금씩 심각해짐을 느꼈다.

‘시혁이의 경우 목숨을 잃을 사고는 없었다. 그저 재활의지를 북돋워줬을 뿐이다. 그런데도 죽을 뻔 했다. 내가 전화를 걸지 않았더라면...!’

최강현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음은 또 뭐냐?’

서울의 장마는 현재진행형이다. 멈추지 않는 빗방울은 어느새 길을 걷기도 힘들만큼 바닥을 적셔 놓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교통사고가 났으며 인명피해 발생했다.

녹색 신호를 확실히 보고 걸어도 멈추지 못한 차들이 사람을 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조금씩 지쳐갔다.

「현재 태풍 7호 멜린이 북상하고 있습니다. 일본 열도부근에서 그 힘이 약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리나라에도 조금의 피해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뉴스를 보고 있던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다음 소식에 표정을 굳혔다.

「내일은 비가 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내일 지나고 약 1주일동안 비가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측이 되었습니다. 이번 1주일만 지난다면 장마가 조금은 잠잠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최강현 역시 뉴스를 보고 있었다.

‘흐음.’

이제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더 이상할 정도다. 항상 우산을 챙겨야 했으며 짧은 운전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래도 다음 주 월요일에는 해가 뜬다고 하니...’

그것을 위안으로 삼고, 조금이나마 빨리 장마가 끝이 나길 바랐다.

뉴스를 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돌아갔고 그곳엔 이민경이 서 있었다.

“엇, 강현아.”

“오랜만이네. 뭐 하고 왔어?”

“응, 친구랑 놀고 왔어.”

“아, 맞다. 시험 쳤지?”

“응.”

이민경의 표정이 좋아 보였다.

“어떻게 됐어?”

“이제 3차만 합격하면 돼. 심층면접이랑 수업실연만 남았어.”

“그래? 잘됐다.”

“응.”

이민경은 행복한 듯 웃었다.

‘그 행복... 지켜야겠지.’

최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밥은?”

“먹고 왔어.”

“그래, 그럼 쉬어.”

“으응. 너두.”

이민경이 방으로 들어갔다. 최강현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최강현은 김민수를 찾아갔다. 아니, 그를 만나기 위해 전진 체육관으로 향했다.

“김민수씨는 안 왔습니까?”

“흐음, 그러게 말이야. 최근 들어 통 보이질 않는군.”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게.”

최강현은 우산을 쓴 채 걸음을 옮겼다. 지하철을 타고 김민수가 사는 곳으로 갔다. 부유하지 않았던 그는 허름한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계십니까?”

문을 두드렸으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최강현은 살며시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김민수씨.”

다시 한 번 부르자 방문이 열렸다.

“누구...?”

김민수는 최강현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예.”

“무슨 일로 찾으셨죠?”

“이유가 있어야 찾습니까, 그냥 들렀습니다.”

김민수가 멍하니 하늘을 봤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그냥 이렇게...”

최강현은 딱히 무언가를 권유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어떻게 지내나, 김아영의 죽음을 아직 극복하지 못한 것인지에 대해 궁금했을 뿐이다.

‘그때의 죽음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서이기도 하겠지.’

최강현은 잠시 마루에 앉았다. 그리고 김민수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을 봤다. 비가 오지 않는 맑은 하늘을 실로 오랜만이었다.

“맑군요.”

“그럼요, 아영이가 저기에 있으니까요.”

약 5분을 서로 말없이 앉아 있는 두 사람이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최강현이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말에 김민수가 의아함을 비췄다.

“K-1을 보는 팬으로써 언젠간 TV에서 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럼.”

최강현은 아쉬움 없이 몸을 돌렸다.

“그냥 가는 겁니까?”

그러자 오히려 묘한 기분을 느낀 김민수였다.

“정말 아무런 말도 없이 갈 줄은 몰랐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뭐라도 말 하고 싶었는데 막상 오니까 그렇게 안 되네요.”

“지금은... 조금 휴식이 필요해서요.”

김민수가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최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보죠.”

“예.”

김민수는 멀어지는 최강현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빛나는 햇살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김민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곳은 어떤지...”

아직은 유일한 혈육이자 전부였던 여동생의 죽음을 감당하기가 힘이 들었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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