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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태블릿-92화 (9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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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현이 말한 방향으로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여기는 연기도 별로 없는 것 같군요.”

“예. 그 청년 정말 대단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뭔가 생각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왜 그러시죠?”

이미 하나가 된 등산객들이 누군가의 심각한 표정에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 청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엇, 자네도 그 생각 했어? 나도 했는데 도통 생각이 나야 말이지.”

“으음, 자네도 그런가? 그럼 본 게 맞는 것 같은데 말일세.”

대화를 나누던 중년 사내 두 명이 동시에 손바닥을 짝하니 쳤다.

“지, 지하철...!”

“그래, 맞구먼, 맞아.”

“정말 대단한 청년이야, 정말.”

중년 사내 두 명의 대화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지하철 사고때 있었습니까?”

“아, 예. 그쪽도?”

“하하, 예. 저도 한 청년 덕분에 살아났었죠. 그 청년 정말 대단하군요.”

조금 여유를 찾은 중년인이 최강현을 칭찬했다. 하나 누구도 모르는 사실 하나가 있었다. 지금 웃고 있는 중년인이 바로 담뱃불로 불을 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게 말이오.”

대화를 하던 사내들 앞에 불기둥이 나타났다. 그에 잠시 이야기를 중단하고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으음. 자, 넘어가지.”

“그러세.”

사람들이 옷에 물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굴을 감싸 화상을 입지 않게 주의했고 손과 발을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또한 몸을 최대한으로 숙인 후 앞으로 점프를 해 몸을 날렸다.

“으윽.”

잠시 굴렀지만 큰 충격은 없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하늘을 비행하는 헬리콥터를 발견했다.

“저, 저기 헬리콥터야!”

“헬리콥터다!”

사람들이 옷가지를 흔들기 시작하자 헬리콥터가 그들을 발견했는지 같은 공간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사, 살았어, 우린 살았다고!”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그늘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최강현은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서풍, 연기에 불까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위험해.’

잠시 뒤를 돌아 가족들을 확인했다. 지쳐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후우.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혼자라면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품에 안은 여인과 가족들이 있었다.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겠지.’

일단 밑으로는 내려갈 수 없다. 아무래도 정상까지 다시 올라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그것 이미 퍼져버린 불꽃들을 제치며 정상에 도착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후우. 일단 정상으로 가자.”

“응, 오빠.”

“어머니, 힘들면 말하세요.”

“아니, 아니다. 내 걱정은 말거라.”

최강현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어머니도 한계다.’

“예. 여기서 5분만 쉬다가 다시 가요. 어머니.”

“그러자꾸나.”

최강현은 자리에 여인을 눕혔다. 그리고 이필숙 여사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니?”

“아니에요. 뭐가 묻어서요.”

그러면서 최강현은 기를 불어 넣었다.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리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으음.”

이필숙 여사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뱉었다. 무언가 편안한 느낌에 나온 소리였다.

“엄마, 왜 그래?”

“아니다. 그냥 몸이 조금 가벼워 진 것 같아서.”

“그래?”

최강현은 이어서 최지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기운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최지은 역시 신음을 낮게 흘렸다.

“어, 이상하네. 엄마, 나도 그래.”

“그러니?”

하지만 이제 문제는 최강현이다. 안 그래도 이미 피곤에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몸이었다. 거기에 더해 기운까지 소모해 버리니 일어나는 것도 힘이 들었다.

‘후우, 1분만 있다가 가자.’

최강현은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더 이상 오래 있다가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이마를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최강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애써 말했다.

“지은아, 어머니, 이제 가요.”

“그래.”

“응.”

최강현이 다시 여인을 품에 안았다.

‘크윽.’

절로 인상이 써졌다. 하지만 힘이 든다는 것을 티내선 안 된다. 최강현을 선두로 세 사람이 정상으로 향했다. 그러다 뚫기 힘들어 보이는 불기둥을 만났다.

“후우.”

최강현이 잠시 심호흡을 뱉었다.

“옷에 물을 적셔요. 그리고 얼굴을 감싸고 앞 구르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던져요. 알겠죠, 어머니?”

“그, 그래.”

“지은이도 알겠지?”

“으응. 근데 오빠는?”

“난 두 사람이 건너가면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알았어.”

최강현의 재촉에 두 사람이 결국 불기둥을 뛰어 넘었다. 남은 최강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아. 못 넘을 것 같은데...”

이 여인을 이곳에 버려둔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품에 들어온 사람을 죽게 내버려둘 성격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나.”

하늘을 봤다. 연기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잠시 후.

마음을 다잡은 최강현이 웃옷을 벗었다. 그리고 물을 적혀 여인의 얼굴을 감쌌다.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옷에도 물을 적신 후 걸음을 옮길 준비를 했다.

“후우.”

너무 지쳐버렸다. 여인을 안고 있기에 몸을 구를 수도 없다. 그저 달려가야만 하는데 꽤나 힘이 들 것이다.

‘가자.’

최강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온 몸이 불기둥 속으로 파묻혔다.

“크으으윽!”

살이 타들어 오는 느낌이 든다. 최강현은 최대한 몸을 숙여 여인을 보호했다.

“크아악!”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제, 젠장...!’

최강현의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오, 오빠! 여기야!”

“강현아!”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며 쓰러지려던 다리를 부여잡았다.

‘조, 조금만...!’

그리고 한 걸음을 더 옮긴 후에야 최강현은 불기둥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아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던 최강현이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으윽. 조, 조금만...”

다행히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위치다.

‘저길 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최강현이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감으려 했다. 그때 얼굴을 적시는 뭔가가 느껴졌다.

‘음?’

천천히 떠진 눈동자로 또 다시 차가운 감촉의 뭔가가 떨어진다.

“오, 오빠. 비야. 비!”

그 소리를 듣고서 최강현은 진정 몸에서 쭈욱 빠져나가는 마지막 기운을 느꼈다.

‘하하, 비라... 비가 오는 구나...’

타오르는 불꽃을 잠재워줄 장맛비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최강현의 입가로 흐릿한 미소가 그려졌다.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인과 최혁이 헬기를 타고 구조되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아, 아버지.”

“그, 그래. 왜 그러냐?”

“없는 것... 같아요.”

“뭐?”

“저기엔... 없는 것 같아요.”

최혁의 말을 듣고 최인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으음. 괜찮다, 살아있을 게다. 분명히.”

그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꼈다.

“비가... 오는구나.”

“아버지, 비에요! 비!”

최혁의 말에 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동자에서 희망이 피어올랐다.

집에서 TV를 보는 사람들도, 길을 걷다 불바다가 된 산을 보며 걱정 하던 시민들도 모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환호했다.

「지금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불바다로 변했던 앞산이 천천히 식어가고 있습니다. 구조도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머지않아 숲을 태우고 있는 불길도 잦아들 것으로 보입니다.」

아나운서의 말을 들으며 사람들은 안도했다.

“후우.”

“대단하군, 그래.”

“아아, 하느님.”

“여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만을 했지만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소수의 인물들은 모두들 하늘에 감사하며 희망에 젖어 있었다.

그 사이로 헬기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 사이에서 자신의 가족을 발견한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쏟았다.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하지만 아직까지도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 최인과 최혁은 한참이나 앞산에서 떠나지 못했다.

“제발...!”

더 이상 헬기에서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 최인은 그들 속에서 자신의 가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의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으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아...”

“아버지...”

최혁 역시 바닥에 앉았다. 두 사람은 허탈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었다. 아직 비가 내리긴 했지만 불이 확실하게 잡힌 것은 아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그라지고는 있지만 지금 구조하지 못한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때였다.

근처에 있던 뉴스 앵커가 소리쳤다.

「아! 지금 모두 구조된 줄 알았는데 아직 생존자가 있었습니다. 지금 전해온 정보로는 헬기를 타고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 소리에 최인이 벌떡 일어났다.

“제발...!”

헬기가 보인다. 최혁 역시 손을 모아 기도했다.

부우웅-

헬기가 천천히 아래로 하강했다. 그곳에서 이필숙 여사와 최지은이 내렸다.

“여, 여보! 지은아!”

“엄마, 누나!”

달려가던 최혁이 멈췄다.

“혀, 형은...?”

홀로 중얼거린 최혁의 시야로 구조대원의 등에 업혀 나오는 최강현이 보였다. 물론 그 뒤로 여인 한 명이 더 내리긴 했지만 최인과 최혁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혀, 형!”

최혁이 다가가자 최강현이 흐릿하게 웃었다.

“아아, 여긴 왜 왔냐?”

“그거야...”

“그래, 걱정 많이 했다. 나 좀... 잘게.”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꽤나 편안해 보이는 얼굴 표정을 한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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