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의 태블릿-84화 (84/137)

00084 4권 =========================

며칠이 흘렀다.

“회장님, 보고 드리겠습니다.”

“예.”

“일단 폴드잇에 참가하겠다는 유저들이 약 8만 명에 육박했습니다.”

“그렇게나 많습니까?”

“예. 일단 머리를 써야 하는 게임이고 일정 점수를 달성할 때마다 소정의 금액을 준다고 했더니 참여의사를 밝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최강현은 좋은 현상에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유저들이야 많을수록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인원의 제한은 두지 말고 지금부터 며칠 동안만 더 모집하면 될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또 보고 할 게 있습니까?”

“예. 일단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연구소 직원들에게 휴가와 휴가비를 지급했습니다.”

“잘했습니다.”

“예. 이제 유저들이 모이고 폴드잇을 시작하게 되면 빠르게 성과가 나타날 겁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보다 요즘 피곤해 보이십니다.”

“하하, 생각할 거리가 많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셨군요. 차라도 한 잔 내오겠습니다.”

“아닙니다.”

최강현은 비서실장과 오랜만에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러고 보니 항상 공적인 대화만 나눴구나.’

언제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좋은 사람이다. 최강현은 그가 없었다면 자신이 이 자리에 앉아있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예?”

“그런 게 있습니다.”

“회장님도 참...”

그러면서 비서실장이 뒷걸음질쳤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수고해 주세요.”

비서실장이 나가고 최강현은 문득 그의 생활에 대해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 일도 벅찬데 무슨.’

최강현은 이내 생각을 멈추고 책상에 놓여 있는 몇 가지의 서류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폴드잇 유저들의 모집이 끝이 났다. 이제는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자, 그럼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예, 회장님.”

지금 OX기업이 실시하는 폴드잇은 현재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과거에도 몇 차례에 외국에서 폴드잇을 이용한 치료제의 개발이 화제가 되었었는데 이젠 국내에서도 등장한 것이다. 그에 따라 걸려오는 연락도 많았다.

따르릉.

그 모든 전화가 비서들이 받고는 있지만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항상 물어봐야 했고 답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잠시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여비서가 회장에게 전화를 걸려했는데 마침 그때 회장실의 문이 열렸다.

“아, 회장님.”

“예. 왜 그러시죠?”

“또 기자에요. KKB방송국의 정미나 기자라고 했어요.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정미나?”

“예.”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흐음. 일단 약속 잡아 두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최강현은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차를 몰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405호실로 향하자 김아영이 여느때처럼 누워 있었다.

‘음?’

한데 조금 상태가 나빠 보였다.

“아영아.”

김아영은 최강현의 말에 답하지 못했다. 최강현은 안색을 굳히며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기운을 흘려보냈다.

‘그때보다 더 많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있어.’

서서히 김아영의 표정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빠...”

“그래. 오랜만이네.”

“으응. 시합 보러 갈 거지?”

“물론이지.”

최강현의 대답에 김아영이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만... 버티면 돼.”

“뭐?”

“아니야...”

김아영의 혼잣말에 최강현의 눈동자가 떨렸다.

‘오늘만 버티면 된다고?’

불길한 생각이 들지만 고개를 저으며 떨쳐냈다.

‘그럴 리가 없지. 아니야, 혹시 모르니...’

최강현은 간호사를 불렀다.

“상태가 안 좋아진 것 같은데 확인 좀 해줄 수 있나요?”

“아, 네. 잠시 만요.”

최강현의 말에 간호사는 담당 의사를 불러왔다.

“상태가 안 좋다구요?”

“네. 제가 왔을 때 안색이 창백했습니다.”

“흐음. 한 번 살펴보죠.”

의사는 몇 가지 도구를 가지고 검사를 했다. 그리고 최강현을 봤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저희가 강요할 순 없지만 이대로 둔다면 오래살지 못합니다. 명심하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최강현은 의사에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 가자.”

“응.”

오늘은 4강전을 거쳐 준결승일 치르고 마지막 결승까지 치러진다. 총 세 번을 이겨야 우승이 되는 것이다.

‘조금 늦었군.’

최강현은 이미 시작된 시합 시간에 맞추지 못했다. 하지만 김민수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급하게 서두르지도 않았다.

“오빠, 가자.”

“아, 그래.”

조금 기운을 차린 김아영을 최강현을 재촉했다. 그제야 휠체어에 김아영을 태우고 병원을 빠져 나갔다. 주차된 차 앞에서 김아영을 먼저 조수석에 태운 후 휠체어를 트렁크에 넣었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시동이 걸리자 차를 출발시켰지만 이상하게도 최강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이러지?’

쓸데없는 상념이 떠오르려 한다. 최강현은 고개를 흔들며 운전에 집중했다.

최강현이 도착했을 땐 이미 대부분의 시합이 끝난 후였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벌써 결승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TV를 시청하고 계실 시청자 여러분들도 무척 긴장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번 시합에서 이변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겠죠? 특히 누가 가장 의외였을까요?”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김민수 선수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첫 출전에 결승전이라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예, 김민수 선수의 경우 예선전에서 노성환 선수를 꺾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때는 크게 이슈가 되지 못했습니다만 지금은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죠.”

캐스터들의 대화에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최강현과 김아영은 역시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승전이네.”

“응.”

최강현의 말에 대답한 김아영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다.

‘안타깝구나. 평범하게 살았으면 더 예쁘게 자랐을 텐데...’

겉으로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마음 역시 깨끗하며 아름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착하고 아름답지만 상처를 입었기에 안타까웠다.

“네, 그럼 이제 곧 대망의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캐스터의 말에 정신을 차린 최강현은 시선을 링으로 돌렸다.

“자, 마지막이다. 준비해라.”

“예.”

고압천 관장의 말에 김민수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닫혀 있는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후우.”

“긴장하지 말고.”

“예.”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민수가 걸음을 옮겼다.

“와아!”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이내 흥분으로 다가왔다.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다. 경기가 있기 전의 떨림이 굳어 있던 몸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네, 나오고 있습니다. 오른쪽에서 나오는 김민수 선수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승승장구 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지금 왼쪽에서도 문이 열렸습니다. 저 선수야 말로 진정 대한민국의 최강이 아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김민수 선수가 시합을 치를 때마다 예상을 뒤엎었다고는 하지만 이번에는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전문가들 역시 정의직 선수가 승리할거라 예상했습니다. 무려 87퍼센트나 말이죠.”

“그렇군요. 그래서 더욱 기대되는 시합입니다. 과연 김민수 선수가 몇 라운드까지 버텨주느냐, 혹은 반대로 기적을 일으킬 것이냐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캐스터들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에 어느새 심판이 선수들 사이로 다가갔다.

“규칙을 설명한다.”

김민수는 규칙을 들으며 정의직 선수를 살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거대한 산과 같았다. 너무 높아 감히 올라설 엄두를 못 내게 하는 그런 기세가 풍겨졌다. 하지만 김민수는 그래서 더욱 즐거웠다.

뭐든 가능하다면 그것을 할 이유가 없다. 이미 가능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이라 외칠 때 사람은 가끔씩 기적을 일으키곤 한다.

“자, 파이트!”

심판의 말과 함께 종이 울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민수가 눈을 빛내며 양 손을 앞으로 내민다. 그 모습에 정의직 선수 역시 손을 내밀었다. 두 선수의 주먹이 허공에서 맞대어졌다.

“후우.”

긴 호흡과 함께 김민수가 먼저 움직였다. 천천히 주위를 돌며 견제를 위해 잽을 날렸다. 바람소리가 주위로 퍼져갔다.

‘지금!’

걸음을 옮기는 정의직 선수를 보다가 빈틈을 발견한 김민수가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간단하게 막혀 버렸다. 그저 살짝 손을 내미는 것만으로 김민수의 공격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다.

‘이럴 수가.’

아주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큼 쉬운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공격을 정확히 읽어야 함은 물론 속도까지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김민수가 놀란 시선을 보내다가 이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진정하자.’

그리고 다시 잽을 날리며 견제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스트레이트를 날리는데 이번에는 앞으로 몸을 뻗는 정의직 선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로 인해 힘이 실리지 않은 김민수의 주먹은 또 다시 허사가 되고 말았다.

김민수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장난이 아니다.’

조금 당황하는 순간 정의직 선수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아주 가벼운 발걸음, 그에 따라 뻗어오는 긴 리치의 주먹이 김민수를 압박했다.

“크윽.”

가드를 파고 들어오는 충격이 저릿하게 느껴졌다. 링의 바닥을 차고 앞으로 나오며 두 번의 잽이 날아왔고 연이어 로우킥이 들어왔다. 김민수는 방어 자세를 취하며 막기에 급급햇다.

‘후우.’

하지만 포기한 것은 아니다. 타오르는 시선으로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애썼다.

‘이런!’

한데 정의직 선수의 공격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또 다시 두 번의 잽, 그리고 스트레이트에 이어 미들 킥이 들어왔다.

퍽.

정의직 선수의 오른쪽 발등이 김민수의 옆구리를 차고 내려오는 순간 반동을 이용해 다시 한 번 로우킥 자세를 잡았다. 김민수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빠르게 몸을 틀며 옆구리에 주먹을 꽂으려 했지만 어느새 자신의 명치에 놓여 있는 정의직 선수의 발바닥으로 인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젠장...!’

흐름을 끊는 자, 대한민국 K-1의 격투기 선수들 중에서도 최고라 불려지는 정의직 선수의 별명이었다.

김민수는 재빠르게 몸을 뒤로 뺐다.

‘강하다.’

김민수는 호흡을 뱉으며 스텝을 밟았다. 그리고 잽을 날리며 상대 선수의 눈을 어지럽혔다. 그때 빠른 속도로 로우킥을 날렸다. 정의직 선수의 허벅지에 정확히 강타한 로우킥은 경쾌한 소리를 냈다.

촥!

그리고 다시 한 번 로우킥을 날렸다. 그때 김민수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그것은 좀 전의 당황스러움을 다시 한 번 나타내는 무언의 표시였다.

정의직이 왼쪽 다리를 살짝 들어 다가오는 김민수의 다리를 툭하고 건드렸을 뿐이다. 한데 그 위치가 정확히 무릎의 측면이었기에 나아가는 힘을 잃고 로우킥 공격은 허무하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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