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1 4권 =========================
퍽!
빠르게 다가와 주먹을 뻗은 김민수의 공격이 정확히 턱에 꽂히며 노성환은 기우뚱거렸다.
“크윽!”
정확한 타격이었지만 대한민국 프로 중에서도 상위실력에 속하는 노성환이 이처럼 쉽게 질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의 공격을 시작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가오는 김민수의 발을 빠르게 훑었다. 허벅지를 타고 오르는 허리의 흐름과 눈빛, 그리고 그것에서 느껴지는 일격필살의 기운.
상대의 공격이 무엇일지 느껴졌다.
노성환의 시야로 김민수의 공격이 보인다. 이번에도 역시 오른쪽 주먹이다. 아주 빠른 공격이었고 정확한 타이밍이었으나 노성환은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있었다.
탁.
노성환의 오른손에 김민수의 오른 주먹이 잡혔다. 노성환은 힘을 가해 김민수를 끌어당겼다. 김민수가 휘청거리는 순간 노성환이 발을 놀리며 김민수의 측면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왼 주먹을 날렸다.
“크윽!”
김민수의 관자놀이에 정확히 꽂힌 노성환의 주먹은 이후로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김민수는 노성환의 한 방을 허용한 후에 곧바로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기 위해 상체를 흔들었고 그로 인해 정확한 타격은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 잡혀 있던 주먹을 빼내면서 방어 자세를 취했기에 쓰러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렸다.
‘링이 왜 흔들리고 있는 거지.’
김민수가 비틀거리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노성환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견제를 위해 잽을 날렸다.
툭. 툭.
아무리 잽이라고는 하지만 타격이 쌓이면 몸이 무뎌진다. 발놀림이 둔해지고 움직임이 느려진다. 상당한 잽을 날리고서야 충분하다고 여겼는지 노성환이 카운터를 날렸다.
쾅!
큰 충격에 김민수의 상체가 흔들린다. 그리고 동시에 날아오는 하이킥 공격이 시야에 잡혔다. 김민수의 판단은 빨랐다. 지금은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상체를 숙이며 허벅지에 힘을 가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것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김민수는 노성환의 몸을 끌어안고서 놓지 않았다. 그에 심판이 다가와 둘을 갈라 놓았다.
“떨어져!”
둘이 거리를 벌리자 주먹을 맞대며 소리쳤다.
“파이트!”
시작과 동시에 노성환이 달려들었다. 왼 손 잽을 몇 번 날리며 견제를 했다. 그러다 운이 좋게도 김민수의 턱에 충격을 주는 잽이 나왔다. 노성환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스트레이트를 날려 안면에 충격을 주더니 자세를 잡고 하이킥을 날렸다.
“으윽!”
김민수가 본능적으로 양 팔을 올려 막아냈지만 충격은 컸다. 그때 노성환이 또 다시 움직였다. 무언가 준비를 한 듯 그의 눈동자가 빛났다.
땡!
종이 울렸다. 과연 노성환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종이 김민수를 살렸음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지켜보던 관중들은 물론 고압천 관장 역시도 말이다.
*
김민수는 흐릿한 정신을 깨우고서야 링의 사각지대로 이동했다.
“잘했다.”
“아, 예.”
물을 입안에 넣고 헹구어 뱉어냈다. 얼굴의 땀을 닦고 마실 물을 손에 들었다.
“기억해라. 저 녀석은 대한민국 K-1선수 중에서도 정상급이다. 네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고압천 관장의 말에 김민수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기본에 충실할 것.”
“기본...?”
“자, 가라!”
고압천 관장이 등을 소리나게 쳤다.
“으윽.”
“정신 차리고, 이겨라.”
그 말에 김민수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예. 이기고 오겠습니다.”
다시 링의 중앙에 선 김민수는 눈앞의 노성환을 바라봤다.
‘강하다. 정말 강해.’
하지만 질 수는 없다.
“후우.”
심판이 둘 사이에 다가왔다. 몇 가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파이트!”
심판의 구령과 동시에 김민수는 몸을 뒤로 날렸다.
‘충격은 조금 가셨다. 할 만해.’
그런 김민수를 보며 다가오고 있는 노성환이 무심한 시선을 보냈다. 처음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김민수는 긴장하며 자세를 잡았다.
팟.
노성환이 링을 차고 뛰어들었다. 그리고 날아오는 오른쪽 주먹이 보인다. 김민수는 상체를 숙여 피하며 옆으로 이동해 노성환의 옆구리를 노리며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이미 예상 했는지 착지와 동시에 노성환이 미들킥을 날렸다. 반동을 이용해서인지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크윽!”
김민수의 주먹이 닿기 전에 먼저 노성환의 미들킥이 적중했다.
갈비뼈가 욱신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꽤나 의외였다. 누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움찔거리며 공격을 멈추게 된다. 하지만 김민수는 아니었다.
두 눈에 활화산을 담은 채 뻗어내고 있던 주먹에 마지막 힘을 가했다.
“헙!”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가 노성환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때 김민수가 잽을 날려 얼굴을 때렸다.
노성환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을 때 김민수는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그에 노성환이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곳은 정확하게 김민수의 하이킥 사정거리 안이었다.
‘기본을 지켜라.’
그 목소리가 들렸다. 고압천 관장이 누누이 말하던 소리가 지금에서야 발휘되었다.
‘원, 투, 그리고 킥이다.’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리면 상대방은 몸을 뒤로 빼게 된다. 그때 들어가는 하이킥은 그 파괴력이 남다르다. 항상 그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김민수를 보며 혀를 찼지만 그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발했다.
쾅!
노성환이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그 충격을 모두 흡수하진 못했다.
“조, 좋아. 지금이다!”
“와아!”
고압천 관장의 외침과 함성소리가 들렸다. 그에 반응하듯 김민수가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쉼 없이 주먹을 뻗었다. 이미 노성환은 다리가 풀린 상태였기에 김민수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채 뒤로 밀리기만 했다. 그러다 결국 링에 등을 대고 말았다. 더 이상 피할 곳도 없는 곳, 그 순간 노성환이 김민수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김민수가 노성환을 밀어내기 위해 애썼지만 이를 악물고 들러붙는 노성환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에 심판이 다가왔다.
“떨어져!”
두 사람을 떼어 놓고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외쳤다.
“파이트!”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김민수가 또 다시 달려들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친다면 승기를 잡을 기회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더욱 김민수를 악착같이 만들었다.
‘무조건, 무조건 이겨야 해.’
무차별적인 공격세례를 하던 김민수가 눈을 빛냈다. 힘이 빠지는지 노성환의 가드가 밑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김민수가 마지막 펀치를 날리기 위해 모션을 크게 하는 순간이었다.
최강현은 시합을 지켜보다가 김아영과 함께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고압천 관장의 곁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제지를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친분을 말하자 들여보내 줬다.
“가까이서 보자.”
“응.”
최강현은 대답하는 김아영을 흐뭇하게 봤다.
‘상태가 좋아졌다. 어쩌면...’
혼자만의 생각을 할 때 최강현을 알아본 고압천 관장이 말을 건네 왔다.
“자네군.”
“예. 오랜만입니다.”
“그래, 저 친구 아주 실력이 좋아.”
“그런가요?”
“자네도 못지않아 보이는데 말이야.”
“하하, 고맙습니다.”
“그래, 나쁘지 않은 상황인데 말이야. 좋은 상황도 아니군.”
최강현은 고압천 관장의 말을 들으며 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압도적으로 밀어붙이던 김민수가 갑자기 다운을 먹은 것이다.
‘음?’
심판의 목소리가 들린다.“
“파이브, 식스, 세븐, 에이트!”
그리고 머리를 흔들며 천천히 일어나는 김민수가 보였다.
“크윽.”
아직도 얼얼한지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보인다. 심판이 일어선 김민수에게 다가왔다.
“할 수 있겠어?”
김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드를 올렸다. 그러자 심판이 김민수의 글러브를 쥐고는 아래로 힘을 줬다. 버티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파이트!”
김민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시작된 경기에서 머뭇거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민수가 다시 앞으로 치고 나가자 체력을 조금 회복한 노성환이 어렵지 않게 피해내며 기회를 엿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생겨난 작은 틈을 발견하고는 잽을 날렸다.
“큭.”
김민수가 버티자 다시 공격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몸을 숙여 피했지만 그때 옆에서 바람소리가 느껴졌다. 김민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빠르게 팔을 올려 얼굴부위를 방어했지만 그 충격은 엄청났다.
퍽!
김민수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 순간 노성환의 주먹이 정확히 턱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 후, 쿵하는 소리와 함께 김민수가 또 다시 쓰러졌다.
“원!”
심판의 목소리가 울린다.
“투!”
하지만 김민수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쓰리!”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에 관중들이 안타까운 신음을 보낸다.
“포!”
그때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파이브!”
사람들의 소리에 섞이고 심판의 목소리에 묻혔지만 그 소리는 묘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식스!”
김민수가 어지러움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때 또 다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오빠, 일어나.”
김아영의 목소리였다. 그 작고 여린 목소리가 김민수의 온 몸을 어루만졌다.
“아아...!”
늘어져 있던 몸에 힘이 돌아왔다.
“세븐!”
그리고 김민수가 바닥을 짚으며 일어서려 애썼다.
“오빠, 힘내.”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사랑스런 여동생, 김아영이 있었다. 김민수의 입가로 미소라 그려졌다.
“에이트!”
무릎을 바닥에 대고 손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김민수를 보며 심판이 카운트를 중지했다. 그리고 다가와 시합을 속행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좋아, 파이트!”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노성환이 빈틈을 노리며 달려 들었지만 그보다 빨리 종이 울렸다.
땡!
또 다시 종이 김민수를 살렸다.
“수고했다.”
“헉, 헉.”
고압천 관장이 물과 통을 건넸다.
“마시면서 들어라.”
관장의 말에 김민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로 입을 헹궜다.
“아까 전에 공격은 좋았다. 원, 투, 킥. 잽을 날리고 스트레이트 그리고 하이킥을 날린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이후의 행동이다. 절대 서두르지 마라. 이미 하이킥을 날리는 순간 게임은 끝난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서둘러서 일을 그르친 게다. 천천히, 천천히 몰아붙여라. 특히 하이킥을 날린 후에는 다리와 복부를 중점적으로 노려야 한다. 시간은 많다.”
“후우. 예.”
조금 휴식을 취한 김민수가 대답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자신의 동생을 바라봤다.
“이기고 올게.”
“응.”
이상하게 기운이 넘친다는 생각이 든 것은 김민수의 착각이었을까. 하지만 더없이 좋아 보이는 모습에 그마저 기분이 좋아졌다.
“하아.”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눈앞의 상대는 그야말로 최고다. 링 위에서의 싸움, 그것이 김민수는 즐거웠다. 그리고 지금도.
‘그래, 그걸 잊고 있었어. 즐거움. 내가 링에 올라선 이유는 동생 때문이기도 하지만 즐겁기 때문이기도 하다.’
떠올랐다.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이.
“자, 가라!”
“예.”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후우.”
김민수가 다시 링으로 올라섰다. 그의 표정이 조금은 달라져 보였다.
“파이트!”
시합이 시작되었지만 김민수는 웃고 있었다. 무언가 불안해 보였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제는 조금은 들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노성환이 이마를 찌푸렸다.
“간다.”
김민수가 홀로 중얼거리며 스텝을 밟았다. 그러면서 견제를 위해 잽을 날렸다.
노성환은 뒤로 빠지며 간단하게 피해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코너에 몰려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 순간 김민수가 빠르게 다가왔다. 초급접전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치면서, 그 충격에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며 주먹을 뻗어낸다.
퍽. 퍽.
무언가를 강타하는 소리만이 울리는 링 위에서 조금씩 우위가 갈리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노성환의 경험이 조금 더 앞섰다. 김민수가 조금씩 뒤로 밀리는 것이 보였다.
노성환이 눈을 빛내며 주먹을 뻗었다. 데미지를 주기 위해 모션이 조금 커진 것이다. 그 순간 김민수의 몸이 움직였다. 마치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한 것처럼, 김민수의 공격은 아주 자연스러웠으며 또한 매우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잽으로 한 방, 스트레이트로 또 다시 충격을 주자 노성환의 등이 링에 닿았다. 그 반동에 앞으로 나오는 순간 정확히 들어가는 어퍼컷.
“커헉!”
노성환이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은 채 비틀거리며 그곳을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승기는 넘어간 후였다.
또 다시 들어오는 잽과 스트레이트, 그리고 이번에는 하이킥이 올라와 노성환을 다운시켰다.
“와아아!”
관중들의 환호소리가 들렸다.
“잘했어!”
“오빠.”
고압천 관장과 김아영의 목소리도 귓가에 맴돌았다.
“에이트, 나인!”
그리고 심판의 카운트가 공간을 메웠다.
“텐!”
그 소리와 함께 김민수의 양손이 하늘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