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의 태블릿-65화 (65/137)

00065 3권 =========================

다음 날.

최강현은 곧바로 서울 송파구로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리 멀지 않은 시일에 싱크홀이 발생한다. 미리 구청에 말을 하면 어떨까?’

최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과연 누가 최강현의 말을 믿어줄 것인가. 오히려 미친놈 취급 받으며 쫓겨날 가능성이 컸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이 지하수를 마구잡이로 뽑아 올리고 있지 않았던가?’

우리나라의 연간 지하수 사용량은 37억 톤으로 전체 수자원의 10%에 이르고 있다. 약 200만개의 관정에서 지하수를 퍼 올리는데 이중 60~70만개의 폐공이 발생해 지하수 오염의 절대 원인으로 보고 있다.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 위주의 산업팽창으로 인한 산업단지 조성과 산림훼손으로 지하수오염이 가속화됐고, 기후온난화로 인한 계속되는 가뭄 앞에 깨끗한 물을 확보하기 위한 무분별한 지하수개발의 악순환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싱크홀의 원인은 지하수의 무부별한 개발이기도 하다.’

위험했다. 언제 어디서 싱크홀이 발생해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이 정신을 차려야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인명의 구조다.

“후우.”

답답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도대체 누구에게 알려야 한단 말인가. 정확한 위치도 시일도 모르는 이 내용을 말이다. 그렇게 고민만 하며 걸음을 옮긴다. 최강현은 지금이라도 당장 지면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어쩔 수 없지. 미친 척 하고 구청에라도 말을 해 놓자.”

결국 최강현이 결단을 내리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 오랜만에 정시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어, 시혁이구나. 오랜만이다.”

(응. 근데 왜 그렇게 목소리가 시무룩해?)

“아니, 그냥 피곤해서.”

(그래? 형, 나 지금 한국체육대학교에 와 있어.)

“그래? 나도 그 근처야.”

(정말? 그러면 나 맛있는 것 좀 사줘.)

최강현은 잠시 정시혁의 말에 머뭇거렸다. 지금 구청으로 향하던 길이었는데 고민이 된 것이다.

“으음.”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맛있는 거 사줘, 형!)

“그래, 알았다.”

결국 최강현은 구청으로 가기보다는 정시혁을 만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래, 어차피 믿지도 않을 거고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겠지. 차라리 조금 더 생각하면서 피해를 줄일 방법이나 연구해야겠다.’

그렇게 약속을 잡은 최강현은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정동 로데오거리.

본래 고층 건물이 없던 상권지역이었으나 2017년에 세워진 가장 큰 자랑거리인 SW하이타워는 무려 그 높이가 120미터에 달한다. 언뜻 보기엔 그저 빌딩으로 보이는 건물이지만 그 속내는 전혀 달랐다.

25층의 건물을 가득 채운 수많은 매장과 식당들을 확인한다면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문정동 로데오거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리는 최강현의 모습이 보인다.

최강현은 상당히 높은 SW하이타워를 보다가 이내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약속 장소를 찾았는지 카페 안으로 들어간 최강현은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정시혁을 발견했다.

“시혁아.”

“엇, 형!”

오랜만에 보는 모습에 최강현의 눈가로 반가움이 스치고 갔다.

“다리는 괜찮지?”

“응, 이제 운동해도 무리 없을 정도야.”

“그래, 다행이다.”

두 사람은 한동안 커피를 홀짝였다.

“근데 여긴 웬일이야?”

“아, 나 내년에 한국체육대학교로 입학할 생각이어서 구경하러 왔어.”

“그래? 잘 됐네.”

“응.”

어느새 커피 잔이 바닥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이내 자리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커피숍에서 나온 정시혁은 최강현을 안내하며 꽤나 높은 층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음식점이 많아. 맛도 좋고.”

“없는 게 없네.”

“당연하지. 무려 25층인데.”

상권을 이루는 건물 중에서 이정도의 높이는 없었다. 그만큼 눈에 띠었고 인기가 좋았다.

최강현은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었지만 식당의 선택은 정시혁의 몫이었다.

“형, 여기 가자.”

“그래.”

평범해 보이는 곳이지만 퓨전 음식을 파는 식당으로 꽤나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최강현은 정시혁이 추천하는 음식을 시키고 잠시 화장실로 향했다.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느껴졌다.

‘음, 문자네.’

오랜만에 받는 문자였다. 발신자는 이민경이었다.

‘뭐 해? 나 지금 친구랑 있다가 너 얘기 나와서 그냥 문자 해봤어.’

최강현은 문자를 읽고 간단하게 답장을 보냈다.

‘아는 동생이랑 밥 먹고 있어.’

전송을 누르고 최강현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볼일을 보고 화장실에서 나갔다. 이미 음식은 나와 있었다. 자리에 앉은 최강현은 정시혁과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울리는 또 한 번의 진동을 최강현은 느끼지 못했다.

SW하이타워의 옆에 세워진 10층 높이의 건물, 커멀스 타워도 역시 인기가 좋았다. SW하이타워 보다 가격이 저렴했기에 로데오거리를 찾은 사람들이 꼭 가보는 곳이다.

멀쩡하던 그곳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조금 흔들리는 느낌인데?”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당황스런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들은 커멀스 타워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지, 지진인가?”

“그런가 봐. 조금 심한데?”

흔들림은 미미했다.

몇 명의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어느새 흔들림은 멎었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했다. 그리고 그때 커멀스 타워를 받치던 지면이 사라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

커멀스 타워로 들어가기 직전의 사람들, 그리고 길을 지나다니는 모든 이들이 거대하게 뚫려버린 구멍을 바라보며 멍한 시선을 보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커멀스 타워가... 없어졌어.”

주변 일대가 아수라장이 된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람들이 황급히 놀라며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 연락을 했다. 누군가를 119에, 누군가는 경찰에, 그리고 또 누군가는 기자를 불렀다.

커멀스 타워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빠르게 모여 들었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을 보던 이들이 두려움에 떨며 이내 거리를 벌린다. 그것은 누군가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여기도 무너질지도...!”

그때부터는 함부로 구멍 근처로 가는 사람은 없었다.

한 편.

SW하이타워에서 음식을 먹던 최강현은 창가에 앉아 있던 사람의 경악스런 표정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자기야. 저, 저기 좀 봐.”

“엇,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최강현이 불안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왜요?”

“응? 아니.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그리고 창가에 도착한 최강현은 보이는 광경에 온 몸이 굳어 버렸다.

“이, 이럴수가...!”

늦어 버렸다. 언제 일어날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빨리 싱크홀이 발생할 줄은 몰랐다. 최강현은 다급히 몸을 돌렸다.

“시혁아! 빨리 아래로 와라!”

바로 옆에 싱크홀이 생겼다.

‘위험해!’

지금 당장이라도 SW하이타워를 받치고 있던 지면이 무너질 수 있었다. 최강현은 멍하니 앉아 있는 정시혁의 팔목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무슨 일이에요?”

“싱크홀이 발생했어.”

“싱크홀이요? 그게 뭔데요?”

정시혁이 궁금한 듯 물었지만 최강현은 답하지 않았다. 아니, 너무 놀라서 정시혁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 최강현을 보고 있던 정시혁도 이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입을 닫았다.

SW하이타워에서 나온 최강현은 몰려든 인파를 헤치고 싱크홀로 다가갔다.

“으음.”

옆에 있던 정시혁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이 전신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이런...!”

최강현은 잠시 싱크홀을 바라보다가 정시혁의 팔목을 잡고 뒤로 물러났다.

“위험해, 뒤로 빠져.”

최강현이 주위를 살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멈춰서 상황을 구경했다.

“여기 커멀스 타워 있던 곳 아냐?”

“맞아. 나도 방금 여기 갈려고 했었는데...”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하지만 최강현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방법이 없다.’

싱크홀은 생각보다 깊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 최강현은 포기하기로 했다.

‘내가 하지 않아도 구조대원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기적일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일에 스스로를 희생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최강현이 결정을 내리고 몸을 돌렸다.

“시혁아, 가자.”

“으, 응?”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정시혁을 데리고 최강현은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주차장으로 이동한 최강현이 정시혁을 보고 말했다.

“집에 바래다줄게.”

“어, 알았어. 형, 근데 그거 무슨 일이야?”

“나도 잘 몰라.”

정시혁이 껄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 많이 죽었겠지?”

최강현은 정시혁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저 이마만 찌푸릴 뿐이다.

“타자.”

“응.”

최강현은 차에 탑승하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켠 최강현의 시선으로 새로 문자가 왔다는 아이콘이 사로잡혔다.

‘민경인가?’

별 생각 없이 문자를 확인하던 최강현의 눈동자가 붉게 달아올랐다.

“형, 왜 그래?”

이상한 느낌에 최강현을 지켜보던 정시혁이 놀라며 물었다. 하지만 최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친구랑 밥 먹고 있어. 커멀스 타워에서...!’

놀란 마음에 손에서 힘이 풀렸다. 휴대폰을 떨어트린 최강현은 그렇게 한참이나 굳어 버린 상태로 움직이지 못했다.

“미, 미안하다. 집에 못 바래다주겠다. 혼자 가라.”

“형, 어디 가?”

최강현이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정시혁이 굳은 표정으로 최강현을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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