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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태블릿-63화 (6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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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잠에서 깬 최강현은 오랜만에 맞이하는 관암사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가슴을 짓눌러오던 답답함이 사라진 느낌이다.

“기분이 나아졌느냐?”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린 최강현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노스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스승님.”

“허허, 그래. 이제는 어쩔 생각이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천천히 생각하거라. 인생을 짧지 않으니.”

불어오는 바람이 최강현의 귀를 간질였다. 최강현은 잠시 자연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잡념을 떨치기 위해 노력했다.

“스승님.”

“왜 그러느냐?”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겠습니까?”

“허허, 쓸데없는 것을 묻는구나.”

“예?”

“이미 다시 설 수 있음을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노스님의 말에 최강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노스님이 허허롭게 웃었다.

“그걸 깨달았다면 물론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너는 이미 알고 있단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괜찮다. 이곳에서 며칠 쉬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니라.”

최강현은 노스님의 말을 가슴에 담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 노스님은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혼자 남은 최강현은 오래도록 자리를 지켰다.

시간이 지나자 많은 등산객들이 팔공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흔들바위를 보기 위해 지나치는 사람들과 관암사를 찾아온 불교인들이 예불을 올리기 위해 자리를 잡는다.

최강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많은 이들의 활기찬 모습, 그리고 편안한 표정을 보며 최강현은 천천히 안정을 되찾아갔다.

“청년, 좀 도와주겠나?”

그때 등산로를 걷고 있던 할아버지가 최강현을 불렀다. 손에 들린 무거운 짐들이 보인다.

“예.”

최강현이 그곳으로 향하자 할아버지가 대뜸 짐을 건넸다. 최강현은 상당한 무게를 느끼며 멍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봤다.

“뭐해, 안 들고?”

“아, 예.”

“고맙네. 청년. 자 따라오게.”

막무가내 식으로 나가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르던 최강현은 잠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어이쿠, 다 왔구먼. 여기에 짐 좀 내려주게.”

최강현이 짐을 내려놓자 할아버지가 짐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에서 나오는 많은 음식들이 냄새를 풍겼다. 어느새 주위에 도착한 어린 아이들이 입맛을 다시며 할아버지에게 붙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게 뭐에요?”

“허허, 귀엽게 생겼구나. 이건 너희들에게 나눠줄 음식이란다.”

“와! 진짜요?”

“그럼. 친구들도 데리고 오렴.”

“네, 할아버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강현의 마음도 절로 따뜻해졌다. 모든 것을 잊은 지금, 최강현의 입가로 미소가 떠오른다.

‘행복해 보이는구나.’

아이들의 간식 시간이 찾아왔다. 그저 예불을 올리기 위해 찾아와 아이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음식을 사오는 할아버지, 그리고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할아버지, 맛있어요!”

“그래, 많이 먹으렴.”

최강현에게 대하던 태도와는 딴판이다.

“이봐, 젊은이. 자네도 먹어.”

“예. 고맙습니다.”

“고맙긴 뭘.”

과자를 집어 들고 이빨로 깨물어 삼키던 최강현은 느껴지는 고소한 맛을 음미했다.

“정말 맛있네요.”

“당연하지, 누가 사온 건데!”

당당하게 사왔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최강현은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가로운 시간도 지나고 다시 어둠이 찾아온 관암사에서 남은 사람은 최강현과 노스님뿐이다.

“스승님.”

“그래, 말하려무나.”

“조금만... 조금만 더 있겠습니다.”

최강현의 말에 노스님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최강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스스로의 모습이 한심하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이미 전화기를 꺼놓은 상태다. 자신의 실패로 인해 OX기업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간다. 그럼에도 최강현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가장 괴로운 것은 본인이었다.

어둠이 공간을 가득 채웠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잠이 든 최강현을 뒤로한 채 어둠은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밝아오면서 최강현도 잠에서 깨어났다.

“으음.”

기운이 없는 눈동자가 떠진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등산을 하는 사람들과 관암사를 찾는 불교인들을 구경했다.

어느새 12시가 되었다. 최강현은 사람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오빠!”

그때 한 꼬마 숙녀가 최강현을 불렀다. 볼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고 눈은 동그랬다.

“나 불렀니?”

“응, 오빠는 여기서 사는 사람이야?”

꼬마 숙녀의 질문에 최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서 사는 사람 아니야.”

“음, 근데 왜 만날 여기 있어?”

최강현은 꼬마 숙녀의 질문에 답할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글쎄.”

최강현의 답변에 꼬마 숙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럼 오빠는 스님이야?”

“하하, 아니란다. 이렇게 머리가 긴 스님이 어디 있겠니?”

무엇이 그리도 궁금한지 꼬마 숙녀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해주던 최강현이 조금 귀찮아 지려는 순간이었다.

“그럼...”

잠시 뜸을 들이던 꼬마 숙녀가 다시 입을 연다.

“오빠는 뭐하는 사람이야?”

순간적으로 망치에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최강현은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빠?”

‘뭐하는... 사람?’

최강현은 의문을 던졌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뭐하는 사람이지?’

고민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지켜보던 꼬마 숙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어딘가로 달려갔고 주위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도 한, 두 명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지속된 고민, 최강현은 이마를 찌푸렸다.

‘나는...!’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OX기업의 주주들, 그리고 말단 직원들이 눈앞을 가린다.

‘이대로 내가 무너진다면.’

떠올리기 싫은 상상이다. 결국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OX기업의 직원들이 모두 실업자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길바닥으로 나앉을지도 모른다.

‘멍청한 놈, 난 도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정신이 번쩍하고 들었다. 이미 알고 있던 답이 드디어 잠에서 깼다.

“강현아.”

그때 노스님이 최강현을 찾아왔다.

“네, 스승님.”

최강현의 생기 있는 눈동자를 확인한 노스님이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참는다.

“아니다. 답을 찾은 모양이구나.”

“네.”

“그래,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느냐? 어서 가봐야지.”

노스님은 언제나 최강현을 진심으로 위해줬다.

최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더니 절을 올렸다.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다.

“감사합니다.”

“어허, 왜 이러느냐, 어서 일어나거라.”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알았으니 일어나거라.”

최강현이 천천히 일어났다.

“스승님, 가보겠습니다. 다음에는 꼭 좋은 일로 찾아뵙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노스님을 확인하며 최강현은 다급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빠르게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꺼놓았던 휴대폰을 다시 켰다.

OX기업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기업 경영자는 모습을 감추었고 하필이면 그때 M기업이 OX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아니, 무너트리기 위한 작업이었다.

M기업은 OX기업의 주식을 공개적으로 매수하기 시작했으며 또한 OX기업의 주주들을 회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금씩 불안에 떨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M기업의 압박은 강해져만 갔다. 어느새 OX기업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최강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장실 앞에서 방황하던 비서실장이 최강현을 발견하고는 소리치며 달려갔다.

“회, 회장님!”

“죄송합니다. 조금 늦게 왔습니다.”

최강현의 사과에 비서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최강현은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씁쓸한 느낌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늦었습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늦었습니다. 과연 M기업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겠죠.”

“무, 물론입니다.”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장담은 하지 못합니다.”

최강현이 말하는 내용은 실로 절망적이었다. 하나 묘하게도 희망이 피어올랐다. 말을 하는 최강현의 반짝이는 시선 때문일까. 비서실장은 이유 없이 그저 믿고 싶었다.

“분명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군요.”

비서실장을 지나쳐 회장실로 들어온 최강현은 이내 고민에 빠졌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자금도 부족하니 M기업의 주식까지 팔아도 모자랄 상황이다. 하지만 M기업의 주식을 팔게 되면 환호하는 것은 주창수 회장뿐이다.’

고민이 거듭될수록 결론을 내기가 힘이 든다. 최강현은 깊은 한숨을 쉬다가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을 기억해냈다.

“할아버지라면...!”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정을 내린 최강현은 이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최강현은 물 한잔을 마시며 긴장을 풀었다.

“후우. 과연 도움을 주실지...”

일단 어떤 것이라도 해봐야 하는 상황이다. 시간이 흐르고 폭스 기업을 운영하는 배한진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할아버지.

“오오, 그래. 오랜만이군.”

“예. 오랜만이네요.”

“그래, 뭔가 급해 보이는 눈치인데 말해보게.”

오랜 세월을 살아서일까. 무언가 뜸을 들이고 있는 최강현의 분위기를 읽은 배한진 회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

“괜찮네. 어서 말해보게.”

“네, 할아버지. 사실 제가 말하지 못했던 게 있어요.”

“뭐지?”

“제가 작은 기업을 하나 운영하고 있어요. OX기업이라고...”

“오호, 그래? OX기업이라면 그 루게릭T-1을 만든 곳이 아니더냐?”

“네. 맞아요.”

“그걸 왜 이제야 말한 게냐?”

“사정이 조금 있어서요.”

“으흠. 그래. 한데 지금 그 말을 하는 이유는 뭔가 급한 일이 생겼다는 거겠지?”

배한진 회장의 추측에 최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정중한 말투였다.

“네. 죄송하지만 저를 도와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연락을 하게 됐습니다.”

“도움?”

“네. 지금 M기업을 인수하려다가 오히려 당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으음. 그래 나도 소문으로 듣기는 했지. M기업이 구린내가 심하게 나는 곳인데 쓸데없는 데를 건드렸구나.”

“아닙니다. 그래서 건드렸습니다.”

“그래서... 건드렸다?”

“네.”

많은 의미가 포함된 말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배한진 회장은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그래, 자네를 조금 아는 입장에서 그 회사를 인수해 괜찮은 곳으로 만들어 보려고 했나 보군.”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듯한 말투에 최강현은 그저 침묵을 지켰다.

“알겠네. 나의 은인인데 그런 것 하나 도와주지 못하겠나?”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하니 이제 그런 존칭은 그만하게. 내 어색해서 원.”

최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돌아온 친근한 말투에 배한진 회장도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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