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의 태블릿-59화 (59/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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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이사회가 오후 2시에 시작되었다. 최강현은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 누군가를 발견한 최강현이 눈동자를 크게 떴다.

“어, 기혁아.”

“형!”

배기한 회장의 손자인 배기혁이 회의실을 찾은 것이다.

“무슨 일이냐, 여긴?”

최강현의 말에 배기혁이 그걸 모르냐는 눈빛을 보냈다.

“할아버지가 형이랑 같이 다니라던데?”

배기혁의 말에 그제야 배기한 회장과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아아...!”

“나, 여기 있어도 되지?”

“그래, 안 될 이유는 없지.”

배기혁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속속들이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2시군.’

어느새 모두 도착한 사람들을 보며 최강현이 입을 열었다.

“바쁜 시간에 이렇게 불러 죄송합니다.”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이렇게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제 우리 OX기업이 제대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서로의 눈치만 볼 뿐이다.

“그래서 저희를 끝없이 괴롭히는 아주 작은 기업 하나를 인수할 생각으로 여러분을 불렀습니다.”

아직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모두 어느 정도 동의를 해주시는 것 같으니 상세하게 말하겠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최강현이 M기업을 인수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은 말이다.

사람들의 눈은 빠르게 커졌다. 최강현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여러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장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황인선 이사님.”

“이번 일로 저희가 끝이 날지도 모릅니다.”

최강현은 황인선 이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최강현은 예전에 흥신소로부터 받아 두었던 서류와 증거자료들을 가방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또한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곳에는 M기업 회장인 주창수의 모든 비리가 들어 있습니다. 또한 M기업에서 비리를 저지른 대부분의 이름도 있죠. 물론 증거도 있습니다.”

최강현은 몇 가지의 예를 들며 사람들을 설득했다. 비리를 저지른 증거가 있다는 얘기에 사람들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으음. 그 정도라면야...”

“저희가 질 일은 없습니다. 저희는 그저 M기업을 인수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에 여러분의 힘을 보태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최강현의 대략적인 이야기가 끝이 나자 가장 먼저 비서실장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눈치를 보던 몇 명의 이사들도 비서실장을 따라 박수를 친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진행하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렇게 이사회가 끝이 나고 회장실로 돌아온 최강현은 오랜만에 주식의 보유현황을 살폈다.

‘내가 M기업의 주식을 7퍼센트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한무가 3퍼센트를, 그리고 박진수와 김민수가 각각 4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최강현의 돈으로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모두 다해서 18퍼센트 정도다.’

OX기업을 주식으로 누르기 위해선 50퍼센트를 넘어야 한다.

‘비리를 폭로해서 주식 값을 폭락시킨다. 그리고 M기업의 주주들을 설득해서 주식을 사들여야 하는 건가?’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니면 위임장을 쟁취하여야 하나?’

위임장쟁취란 회사공격자들이 제시한 매수제안을 거부하는 대상회사의 임원, 이사 등 현 경영진을 퇴임시키고 매수제안을 동의하는 자들로 대체시키기 위하여 대상회사의 주주들을 설득하여 의결권 대리행사의 위임장을 받아 주주총회에서 대결하는 것을 말한다.

‘둘 다 장, 단점이 있으니...’

비리를 터트려 주식 값을 폭락시키면 위임장쟁취가 힘들어진다. 오히려 최강현에게 반감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흐음. 방법은 하나군.’

두 가지를 적절히 섞어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 생각을 마친 최강현이 M기업의 정보를 머리에 각인시켰다.

생각을 마친 최강현은 다시 서류를 살폈다. 그리고 나와 있는 설명 란에서 M기업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는 몇 명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M기업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비리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이는 40대 후반, 이름은 성민기.’

최강현은 파일에 적힌 주소를 확인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30평이 조금 못 되는 아파트를 잠시 바라보다 성민기 이사가 거주하고 있는 202동 703호를 찾아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잠시 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예. 성민기 이사님을 뵈러 왔습니다.”

“아빠 지금 없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연락처라도 얻어갈까 해서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최강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근데 누구신데 저희 아빠 연락처가 필요하세요?”

“네. 사업상 꼭 만나 뵙고 싶어 그렇습니다.”

“음, 알겠어요.”

최강현은 그녀에게서 성민기 이사의 연락처를 얻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성민기 이사님 맞으신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제가 사업차 말씀드릴 것이 있어 만나 뵈었으면 합니다.”

(예?)

“현재 OX기업의 회장으로 있는 최강현이라고 합니다. 안 되겠습니까?”

OX기업이라면 루게릭T-1으로 이름을 알린 곳이기에 성민기 이사도 알고 있었다. 그곳의 회장이 자신을 만나자고 하니 의문이 들지만 쉽사리 거절할 명분 역시 없었다.

(알겠습니다. 한데 무슨 일이신지?)

“그건 만나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시간 괜찮은 날짜를 말씀해 주십시오. 그럼 제가 장소를 정하겠습니다.”

(으음. 내일 저녁에 시간이 나는군요.)

“알겠습니다.”

성민기 이사의 말을 듣고 장소와 시간을 정한 최강현은 전화를 끊고 이내 걸음을 옮겼다.

다음날 저녁.

최강현은 성민기 이사와 만나기 위해 차를 끌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린 최강현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파일에 나와 있는 사진을 보았기에 얼굴을 알고 있던 최강현은 성민기 이사를 발견하고 그의 곁으로 갔다.

“반갑습니다. 최강현입니다.”

최강현의 인사에 성민기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예. 반갑습니다. 한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하, 예. 지난 번 주주총회를 열었을 때 한 번 뵈었었죠.”

“아...!”

둘은 서로 간단한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일단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시켰다.

“뭘로 드시겠습니까?”

“여기야 뭐, 감자탕을 잘하니 그걸로 주문하죠.”

“알겠습니다.”

감자탕을 주문하고 소주 한 병을 시킨 두 사람은 일단은 간단한 대화부터 이어나갔다.

이내 음식이 나오고 술잔을 나누며 분위기가 조금 올랐을 때 최강현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제가 이렇게 만나자고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성민기 이사님께서 생각하는 M기업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M기업?”

“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최강현을 바라보는 성민기 이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최강현은 여기서 거짓을 말한다면 오히려 좋은 반응이 나오기 힘들 거라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M기업이 저희 OX기업을 조금 많이 못살게 굴었습니다.”

“음. 그건 알고 있습니다.”

최강현이 성민기 이사의 대답에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알아본 결과, M기업이 꽤나 비리를 많이 저질렀더군요.”

“으음.”

“해서 비리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로 M기업을 다시 이끌어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무슨...?”

“위임장쟁취를 해보려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최강현의 말이 너무 의외였을까, 아니면 이런 일을 대놓고 부탁하는 모습에 당황한 것일까. 성민기 이사는 한참동안이나 대답을 하지 못했다.

최강현은 그런 성민기 이사를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성민기 이사가 시선의 최강현을 향했다. 무언가 이야기를 꺼내려는 듯 입술을 움직였다.

“위임장쟁취라... 물론 저희 회장님이 하는 행동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비리들, 마음에 들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열심히 일해 온 M기업을 배신할 순 없죠.”

“배신이 아닙니다. 저는 M기업을 무너지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제가 인수를 해서 조금 더 크게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깨끗하게, 모든 사람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곳을요.”

최강현의 설득에 성민기 이사가 힘들게 대답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말에 결국 최강현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서로 헤어진 두 사람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최강현은 조금 아쉬운 눈빛을 보내며 걸음을 옮겼다.

방에 도착한 최강현은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누웠다.

“하아. 피곤하다.”

오늘은 끝이 났지만 눈을 뜨고 나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이 된다. 그리고 움직여야 한다. 아직 해야 할 것도,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았다.

‘주창수 회장이 눈치를 못 채야 할 텐데...’

잡념을 떠올리며 최강현은 천천히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최강현은 세수를 하고 주인아주머니가 챙겨주는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밥 먹네.”

“하하, 예. 요즘에 조금 바빠서요.”

“그래, 젊을 때일수록 바쁘게 살아야지.”

밥을 한 숟가락 펐을 때 최강현의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안녕?”

이민경이었다.

“어, 그래. 오랜만이네.”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최강현이지만 무언가 꺼림칙한 시선이 느껴졌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야. 요즘 많이 바쁜가 봐?”

“응. 어쩌다 보니까... 공부는 잘 되고 있어?”

“그럭저럭.”

아침을 먹으며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던 최강현은 시간이 늦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가봐야겠다. 아주머니, 잘 먹었어요.”

최강현은 급하게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내가 왜 이러지?’

마치 일부러 이민경을 피하는 느낌이 들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상황이 그렇게 다가왔다.

‘뭘 두려워하는 거냐...?’

최강현은 고개를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주차된 차를 몰고 OX기업으로 향한 최강현은 걸려오는 전화를 보고 약간은 긴장되는 기분을 느꼈다.

‘성민기 이사...!’

잠시 심호흡을 한 최강현이 이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납니다.)

“예. 성민기 이사님.”

(간단하게 전화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 말씀 하세요.”

(최강현 회장님이 하시는 일,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말 이십니까?”

(예.)

최강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맙습니다. 일단 주변분들 중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만 곁에 두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주창수라는 사람, 쉽지 않은 인물입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사님도 조심하십시오.”

(예.)

전화를 끊은 최강현이 눈동자를 빛냈다.

‘되었다! 일단 성민기 이사를 끌어 들였으니 다음부터는 조금 수월해질 거다. 성민기 이사의 인품을 따르는 사람들이 꽤나 있을 테니까.’

서류를 보고서 가장 눈에 띠었던 이유가 이거였다.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도 큰 이유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직원들이 믿고 따른 다는 점이었다.

최강현은 주창수 회장이 최대한 눈치 채지 못하게 행동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것이 모두 생각처럼 되진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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