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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태블릿-53화 (5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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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B 방송국에 도착한 최강현은 차에서 내려 정미나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나오라는 말을 하고 조금 기다리자 방송국에서 정미나 기자가 걸어왔다.

“반가워요.”

“네. 이거 녹음기입니다.”

최강현은 볼펜을 건네며 KKB 방송국으로 이동했다.   “이거 복사해서 원본은 저 주시고 복사본은 사용해도 됩니다.”

“이게 뭔데요?”

“들어보시면 알 겁니다.”

최강현은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나오는 놀라운 이야기들, 정미나의 눈이 커졌다.

“이, 이거 사실이에요?”

“물론이죠.”

“와, 대박이다!”

“제가 대박 드렸으니 나중에 저 좀 도와주시죠.”

“알겠어요.”

“그럼 복사해서 가지고 와주세요.”

“네!”

정미나 기자는 볼펜을 들고 뛰어가더니 잠시 후에 다시 나타났다.

“여기요. 복사본은 바로 방송에 내보내도 되겠죠?”

“네.”

“고마워요!”

정미나 기자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최강현은 고개를 한 번 숙이더니 방송국에서 나왔다.

“대충 마무리가 된 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 주창수 회장의 처리였다.

“그냥 둘 순 없지.”

최강현의 눈을 빛내며 다시금 M기업으로 향했다.

M기업은 OX기업과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너무나 평화롭고 조용한 상태였다. 최강현은 주먹을 강하게 쥐더니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그때 뒤에서 경비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

최강현이 뒤를 돌아보자 주창수 회장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잘 됐군.’

최강현은 주창수 회장이 걸어오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기둥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주창수 회장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7층...!’

최강현은 주창수 회장이 내린 곳을 확인하고 옆에 있던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6층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계단으로 한 층을 올라가서 분위기를 살폈다.

‘경호원 두 명, 비서 한 명.’

그리고 천장 한 가운데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몇 가지 챙겨오길 잘했군.’

최강현은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어 썼다. 그리고 안경을 끼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최강현이 걸음을 옮겼다. 모퉁이를 돌자 경비원 한 명이 의문 섞인 표정으로 다가온다.

“누구요?”

“누구요? 지금 반말인가?”

최강현의 당당한 태도에 경호원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비서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시선을 주고받았다. 최강현은 넝쿨째 굴러 들어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팟.

‘크윽!’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가며 경호원의 복부에 주먹을 날렸다. 아직 상처가 완벽하게 아물지 않아 통증이 느껴졌지만 최강현은 애써 참으며 행동을 이어갔다. 사내의 허리가 숙여지는 순간 무릎을 올려 안면을 때렸다.

“커헉.”

덩치 큰 사내가 뒤로 자빠졌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달려오고 있는 마른 사내의 경호원을 무시했다.

‘일단은 비서.’

최강현은 몸을 틀며 비서를 향해 달려갔다. 놀란 비서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최강현은 곧바로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다.

“으음.”

혹시나 아래층에 연락을 하게 되면 귀찮아 지기 때문이다. 그제야 조금 여유가 생긴 최강현은 남은 경호원에게 다가갔다.

경호원은 최강현의 눈치를 보며 주위를 살폈다.

‘도망칠 생각인가?’

최강현이 조금 마음을 조급히 하며 빠르게 다가갔다. 기를 손끝에 집중해 주먹을 뻗는데 경호원의 눈빛이 달라졌다.

‘음?’

몸은 말랐지만 상대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았다. 최강현의 주먹을 양 손으로 감싸더니 공격 방향 그대로 밀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최강현은 넘어지지 않았다. 제자리에 버티며 물끄러미 경호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의외군.”

“이, 이럴 수가...!”

자신의 실력에 자신을 갖고 있던 경호원이었지만 최강현의 상대는 아니었다. 최강현은 빠르게 경호원을 제압하고 회장실의 문을 열었다.

“노크도 없이 무슨 일이야!”

비서실장으로 착각했는지 주창수 회장이 소리를 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굴을 가린 낯선 사내의 모습에 주창수 회장의 안색이 붉어졌다.

“누, 누구냐!”

최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야 산더미지만 목소리를 듣고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최강현은 그저 발걸음만 옮길 뿐이다. 오히려 그 상황이 더 두려웠던 걸까. 주창수 회장은 끝없이 말을 걸어 왔다.

“누, 누구냐니까!”

그럼에도 대답이 없는 최강현의 모습에 주창수 회장은 결국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최강현은 그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주먹을 말아 쥐고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당장이라도 날아들 것 같은 주먹에 주창수 회장은 눈동자를 떨었다. 그 모습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한참동안.

집에 도착한 최강현은 거실로 나와 TV를 켰다. 때를 맞추어 원하던 내용이 나왔다.

「루게릭T-1에서 발견된 물질은 다름 아닌 단백질이었습니다. 본래 루게릭병의 경우 특정 단백질인 유비킬린2(Ubiquilin2)가 손상된 다른 단백질을 처리하거나 회복시키는 재생시스템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루게릭병 환자들은 바로 이 기능을 다하지 못합니다. 한데 루게릭병을 치료한다는 약물인 루게릭T-1에서 단백질이 소량 검출되었으니 이것은 분명 누군가의 의도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지금 그 누군가가 밝혀졌습니다.」

최강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뉴스의 내용을 들었다.

「OX기업의 장동주 이사가 M기업으로 기밀을 유출하였고 그 내용을 본 M기업의 박민기 이사가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 루게릭T-1의 알약을 대량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단백질을 소량 투입하여 다시 시중에 푼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상당히 큰 충격으로 시민들에게...」

거기까지 들은 최강현은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여겼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났군.’

최강현은 장동주 이사의 주식을 팔아 막혀 있는 자금의 흐름을 뚫을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 살인마 사건만 해결된다면 M기업도 끝을 내리라 여겼다.

다행히 OX기업의 자금은 다시금 원활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떠나갔던 계약자들이 돌아왔고 은행에서도 대출의 길을 열어줬다.

뉴스가 보도되고 OX기업의 주식이 다시 상승했고 그때 팔았던 장동주 이사의 주식 값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며칠 만에 OX기업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제 그 녀석만 잡으면 끝인가.’

최강현이 가부좌를 풀며 생각했다.

‘내일이군.’

최강현은 혹시나 마주칠 살인마를 생각하며 먼저 출발할 생각이었다.

‘오늘 출발해야겠지.’

어느새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다. 최강현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방에서 나왔다. 그때, 꽤나 오랜만에 이민경을 만났다.

“와, 정말 오랜만이네...”

무언가 아쉬운 느낌이 들어 있는 말투였지만 최강현은 애써 무시했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게. 내가 요즘 바빠서.”

“그래...?”

“미안. 조금 여유 생기면 밥이라도 먹자.”

“으, 응. 알았어.”

이민경의 눈동자에서 아쉬움이 번진다. 최강현도 알아차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 밥 맛있게 먹고 공부 열심히 해.”

“응.”

최강현은 밖으로 나와 긴 한숨을 쉬었다.

“후. 나도 모르겠군.”

최강현은 중얼거리면서도 무엇을 모르겠다는 건지 알지 못했다.

석모도로 가기 위해선 배를 타야 한다.

‘외포리 선착장이군.’

최강현은 석모도로 갈 수 있는 외포리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꽤나 걸렸지만 아직 하루라는 여유가 있었다.

최강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박철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다.”

(어, 무슨 일이야?)

“너, 석모도 진짜 가면 안 된다. 알지?”

(알아, 인마! 지금 바쁘니까 끊어!)

“그래. 다음에 보자.”

최강현은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이미 범행의 대상이 바뀌었다. 하지만 난 살인범을 잡아야만 해. 이대로 손을 놓고 있다가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최강현은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릴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의욕을 잃을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최강현은 살인범을 잡아야만 한다. 물론, 그 이유가 다는 아니다.

‘불안해. 그래, 가장 큰 이유는 이거겠지. 그냥 둔다면...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함.’

잡념은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한다. 마찬가지로 최강현 역시 생각을 끝내는 순간 선착장에 도착해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여긴가?”

최강현이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낯익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눈동자를 빛냈다.

최강현은 천천히 걸어가 그의 곁에 섰다. 그의 고개가 돌려졌고 시선이 느껴진다.

“오랜만이군요.”

그가 말을 걸어왔다. 최강현 역시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조철우씨.”

두 사람이 만났다. 조철우는 복수를 위해서 의지를 불태웠고 최강현은 다른 의미로 또한 의지를 끌어 올렸다.

‘어차피 어긋난 미래다. 내가... 모두 바꿔주마.’

그렇게 배가 오기를 기다리며 두 사람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배가 도착했고 두 사람은 배에 탑승했다. 그리고 석모도를 향해 가며 수평선을 바라봤다. 끝도 없는 바다, 그리고 그곳에 비친 하늘은 하나가 되어 시선을 어지럽힌다.

꽤나 많은 생각들이 천천히 풀어지고 질문을 던진다. 몇 개는 답이 되어 돌아오고 몇 개는 허물없이 사라지는 순간, 그때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어느새 석포리 선착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배에서 내려 주위를 살폈다.

“오늘 어쩌실 겁니까?”

“여기 있을 겁니다.”

최강현은 조철우의 기분을 이해했다. 그래서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알겠습니다. 아마 내일 점심시간은 지나야 올 겁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기다려보죠.”

조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긍정의 의미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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