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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태블릿-51화 (5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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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1시.’

최강현은 초조했다.

‘미치겠군.’

안타까운 말이지만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범인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피해자를 미끼로 삼아 범인을 잡을 속셈이었지만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었다.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범행이 일어나길 기다리던 그때,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소리를 듣는 순간 최강현은 달렸다.

‘저기다!’

멈춰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한 최강현은 쓰러져 피를 토하고 있는 사내와 그를 붙잡고 울먹이는 여성을 발견했다. 최강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범인으로 짐작되는 사내를 찾기 위해 기운을 끌어 올렸다.

‘도망간 건가?’

그러다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명의 사내를 발견했다. 최강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저 표정을 지워도 느껴지는 이질감...!’

느껴진다. 이것이 기운을 끌어올린 이유였다. 평범한 사람에겐 뿜어지지 않을 피의 냄새가 그 사내에게선 느껴졌다.

그런 최강현의 시선을 느낀 걸까. 사내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더니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걸어가는 사내를 최강현이 뒤따랐다.

‘범인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사내의 행동을 확인할수록 최강현의 마음은 기울어갔다.

‘이유 없이 주변을 방황하기만 한다. 또한 일부러 경찰들이 있는 곳으로만 다니는 느낌. 아니, 인적이 드문 곳으로 다닌다고 해야 하나.’

어느새 확신으로 다가오는 사내의 행동이다. 그때 뒤돌아보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최강현은 조금 당황했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행동했다. 그러자 사내가 다시 앞을 보더니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후우.”

긴장감을 느끼며 최강현은 다시 그를 쫓아갔다.

‘조용하다.’

이제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좋아. 슬슬 준비를 해야겠어.’

사내가 골목을 돌았다. 최강현은 지금을 기회라고 여기며 달리기 시작했다. 골목을 꺾어 사내를 제압할 생각이다. 분명 품속에 살인을 했다는 증거물이 있을 것이다. 마음을 다잡으며 골목을 꺾으려는 순간 눈앞으로 무언가가 나타났다. 놀란 마음에 미처 반응도 하기 전, 최강현은 견디기 힘든 통증을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그제야 나이프를 들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푸욱.

사내는 다시 한 번 최강현의 복부를 찔렀다.

“크헉!”

그리고 비튼다.

“커으윽.”

최강현은 다급히 손을 뻗어 사내의 공격을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몸에서 기운이 빠진 상태였다.

“크큭, 잘 가라, 병신.”

사내가 비웃었다. 하지만 화를 낼 기운도 없던 최강현은 다시 한 번 안간힘을 쓰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사내의 얼굴을 잡았다. 힘을 가하려 했지만 손에 기운이 없었다.

“제, 제길...!”

최강현의 행동을 지켜보던 사내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손을 뒤로 쫙 빼며 최강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손을 뻗는 살인마의 모습에 최강현은 시간이 멈춘 느낌을 받았다.

‘아, 안 돼!’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온 걸까.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최강현이 주먹을 뻗었다. 그 주먹이 정확히 살인마의 복부에 명중했다. 파괴력이 없을 거라 여긴 살인마가 무시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크억!”

엄청난 통증이 전신을 타고 흘러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사내가 비틀거린다.

“형님!”

그리고 조한무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달려오며 소리쳤다.

“가서 잡아!”

조한무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범인은 복부를 부여잡고 인상을 쓴 채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최강현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조한무가 다가와 최강현을 부축하며 구급차를 불렀다.

“예, 빨리, 최대한 빨리 오세요.”

조한무를 전화를 끊고 최강현을 살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크윽, 마, 말 시키지 마라.”

상처는 심했지만 다행히 목숨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다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상태여서 최강현은 조금씩 의식을 잃어갔다. 어느새 최강현의 두 눈이 감겨 있었다.

조철우는 누군가에게 쫓기는지 다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묻어 있는 핏자국을 감추기 위해 옷을 거꾸로 입은 것 같은데...”

어둠으로 인해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조철우의 안목은 정확했다. 조철우는 걸음을 옮겨 그 사내를 쫓았다. 사내는 주위를 한참이나 두리번거리더니 공원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틈을 타서 조철우는 전화를 걸었다.

“여기 산매공원이다. 다 데리고 와라.”

(예.)

대답을 듣자마자 전화를 끊은 조철우는 사내가 화장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왔습니다.”

“그래, 지금 저기 화장실에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내가 있다. 주위를 감싸라.”

“예.”

몇 명의 동료들이 공원으로 들어가더니 화장실 주위를 포위했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조철우의 동료들이 뒤를 돌아보며 눈치를 살폈다. 조철우는 그들에게 손짓을 몇 번 하더니 이내 방금 나온 노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지?”

낮게 중얼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안되겠다 여겼는지 동료들과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어떻게 된 거야!”

화장실엔 아무도 없었다. 조철우가 극에 다다른 분노를 감당하지 못한 채 화장실 문을 발로 찼다. 그리고 그곳에 떨어져 있는 뭔가를 발견했다. 조철우가 다급히 그것을 주워들었다.

“이, 인피 면구...!”

조철우가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기 전에 나왔던 노인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아니, 주름살로 가득한 인피면구를 쓴 살인마를 찾기 위해서.

다음 날.

최강현은 정신이 드는지 천천히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과 코를 찌르는 약품 냄새뿐이다. 고개를 돌리자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조한무가 보였다. 최강현이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몸에 힘을 줬다.

“크윽.”

동시에 복부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감각이 전신으로 퍼졌다. 순식간에 몸에서 힘이 빠진 최강현이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 한 번 일어나 앉기 위해 애썼다.

“주, 죽겠군.”

겨우 앉은 자세를 취한 최강현은 곧바로 눈을 감은 채 기를 복부로 집중시켰다. 그러자 시리던 그곳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상처는 천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행동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눈을 뜬 최강현이 꽤나 편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졸고 있던 조한무가 고개를 한 번 휘청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잡아!”

최강현은 조한무의 모습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최강현과 시선을 마주친 조한무가 이내 헛기침을 하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혀, 형님. 일어나셨습니까?”

“그, 그래. 너 뭐했냐?”

“아니, 꿈을 꿨는데 그 살인마 녀석을 잡으려고...”

조한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제야 살인마에 대한 생각이 났는지 최강현이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그래, 어제 어떻게 됐어? 잡았어?”

최강현의 진지한 말에 조한무도 평소대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놓쳤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

최강현은 못내 아쉬웠지만 애써 표정을 감추곤 대답했다.

“그보다 괜찮으십니까?”

“아직 걷지는 못할 것 같다. 하루 정도 쉬면 될 것 같으니까 그만 가봐라.”

“예? 하지만...”

“괜찮아. 그만 가 봐.”

최강현의 명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조한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그럼 몸조심 하십시오.”

“그래.”

조한무가 병실에서 나가자 최강현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기억이 나는군.’

최강현은 사내의 얼굴을 한 번 만졌었다. 그때 느껴졌던 묘한 느낌이 아직 손가락 끝에 남아 있다.

‘뭐였을까? 인피면구? 흐음.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

생각을 하는 도중 통증이 올라왔지만 꾹 참으며 기경팔맥운기법을 기반으로 기를 운용했다. 고통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상당히 심했던 상처가 거짓말처럼 아물어가고 있었다.

눈을 뜬 최강현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 상처가 완전하게 나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걸어 다니는 데에 이상은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놀랍군.”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많았던 최강현은 곧바로 간호사를 불렀다.

“오늘 퇴원을 하려고 합니다.”

“네?”

간호사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걷기도 힘드실 텐데 퇴원은 무리라고 여겨집니다.”

간호사의 말에 최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보세요. 괜찮죠?”

“어, 어떻게...”

오랜 간호사 생활을 했지만 그 정도의 상처를 입고서 이렇게 걷는 사람은 처음 봤다.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걸을 수 없어야 정상이다. 최강현이 계속해서 퇴원을 요구하자 간호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담당 의사를 불렀다.

“최강현씨, 아직 상처가 많이 아프실 텐데 퇴원을 하시겠다는 겁니까?”

“네.”

“흐음. 상처를 한 번 살펴보죠.”

최강현이 옷을 들어 복부에 난 상처를 보여줬다. 그러자 중년인 의사가 눈을 크게 뜨더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흐음. 놀랍군요.”

“제가 자연치유력이 높습니다.”

황당한 말이지만 딱히 뭐라 대답할 수도 없었다.

최강현의 아물어버린 상처와 멀쩡히 걸어 다니는 모습을 확인한 이상 의사도 퇴원수속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간호사, 퇴원수속을 밟으세요.”

“네.”

최강현은 그날 퇴원할 수 있었다.

병실에서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지만 이제는 밖으로 나온 상태다. 잠깐의 휴식을 최대한 즐긴 최강현은 다시 살인마를 잡기 위해 움직여야 함을 알고 있었다.

“정말 아쉽군, 그때가 최고의 기회였는데...”

하지만 이젠 과거일 뿐이다. 더 이상 그 일에 연연하지 않기로 하며 앞일을 생각했다.

“다음 살인 장소는 인천이다. 인천은 서울의 왼쪽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인천 지도로 확인했을 때 그와 가장 유사한 곳은... 석모도!”

다음 장소를 확인했지만 이것도 100퍼센트라고는 할 수 없다. 그저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보아 가장 확률이 높다고 여길 뿐이다.

“방법이 없을까?”

최강현은 일단 친구의 죽음을 볼 수 없었다.

“으음.”

고민은 길었지만 답은 간단했다. 그저 알려주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최강현은 박철현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말할 내용을 미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친 최강현이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최강현은 박철현의 목소리에 반가움을 느끼며 대답했다.

“나야.”

(어, 웬일이야? 시간 나서 한 번 오려고?)

“아니, 전해줄 말이 있어서.”

(음? 뭔데?)

“너, 혹시 석모도에 갈 일 있냐?”

(엇, 너 어떻게 알았어? 여자친구랑 주말에 석모도 가기로 했는데.)

최강현은 박철현의 말에 표정을 굳혔다.

“크흠. 너 거기 가지 마라.”

(왜?)

“연쇄 살인마가 주말에 거기 갈 거다.”

(정말이야? 근데 너 그런 사실은 어떻게 알았냐?)

최강현은 잠시 숨을 돌리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아는 사람 동생이 살인마한테 당했거든. 알겠지? 가면 위험하니까 다른 데서 놀아.”

(으음. 그래, 알았어. 굳이 위험한 곳에 갈 필요는 없지.)

“정말이냐?”

(어. 정말이야.)

“믿는다. 가면 알지?”

(안 간다니까!)

최강현은 박철현의 고함 소리를 듣고서야 마음을 놓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가시지 않는 이 불안함은 무엇일까.

“불안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방에만 박혀 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길을 가다 살인마를 만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최강현은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걸으며 불안감을 씻기 위해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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