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의 태블릿-44화 (44/137)

00044 2권 =========================

잠시 후.

대기실로 박진수가 들어왔다.

“형, 저 왔어요.”

“그래, 왜 이렇게 늦었냐?”

“주차 하고 길을 잘 몰라서요.”

“그래. 어쨌든 준비하자. 곧 시작한다. 그리고 대화할 때는 강사님이라고 불러라. 뭐, 조금 엉뚱하긴 하겠지만 마땅한 호칭이 없어서.”

“예.”

최강현이 대기실에서 박진수와 준비를 하는 동안 이미 강단에서는 안내자가 최강현을 소개하고 있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오늘 아주 멋진 말씀을 들려줄 최강현씨를 불러보도록 하죠.”

안내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최강현은 그 말을 듣고 강단으로 올라섰다. 많은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최강현입니다.”

최강현은 인사를 하고 다시 장내를 살폈다. 많은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띠고 있었다.

“저는 솔직하게 아직 살아온 날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이야기 할 것도 많지 않죠. 하지만 조금이라도 학생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준비 했으니 재밌게 들어줬으면 고맙겠네요.”

간단한 설명을 끝으로 최강현은 준비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평범한 나날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살아온 새로운 삶에 대해서도 말이다. 틈틈이 등장하는 내용의 주제는 믿음이었다.

“기적은 누구에게 주어질까요, 여러분?”

최강현이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췄다. 장내는 침묵으로 덥혔고 그때를 노리며 다시 최강현이 말했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자, 그 길의 끝에 꿈이 있다고 믿는 자에게 기적은 주어집니다. 물론 이것은 저만의 생각입니다. 또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불완전한 대답이기도 하죠. 여러분이 나머지 답을 찾아보길 바랍니다. 기적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최강현이 다시금 학생들을 살폈다. 그러다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정시혁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믿는 이에게는 답을 줄 것입니다.”

최강현은 약 30분을 이야기하며 막을 내릴 준비를 했다. 그러다 표정을 바꾸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이라는 주제로 저와 이야기를 나눠볼 학생이 있습니까? 물론 없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대화를 통해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와 대화를 원하는 학생은 손을 들어보세요.”

최강현의 질문이 끝나는 순간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허나 그 순간 손을 든 학생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박진수였다. 언제 학생들 틈에 숨어 있었는지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좋아요. 거기 학생, 이름이 뭐죠?”

“박진수입니다.”

“올라오세요.”

최강현의 말에 박진수를 거리낌 없이 강단으로 올라섰다. 최강현은 미리 준비해 뒀던 의자를 꺼내오도록 부탁했다. 준비 된 의자에 최강현과 박진수가 앉았다.

“저와 이야기를 나눌 학생입니다. 이름이 박진수라고 했던가요?”

“네.”

“좋아요. 미안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말을 놓도록 하죠. 괜찮은 가요?”

“물론입니다.”

최강현은 박진수를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짜인 각본이었지만 최강현은 최대한 진심을 담아내었다.

“그럼 내가 하나 묻겠어.”

“예.”

“나는 어렸을 적에 다리가 몹시 좋지 않았지. 하지만 너무도 운동을 하고 싶어 10년이란 세월을 운동에 바쳤어. 헌데 결국 사고가 나버리고 말았지.”

“다치신 겁니까?”

“그래. 아주 심각했지. 결국 나는 운동을 포기할 상황에 처하고 말았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의사까지도 그렇게 말하더군.”

“어떻게 말입니까?”

“재활치료를 해도 두 번 다시는 선수생활을 할 수 없다고 말이야. 나는 절망에 빠졌지. 그럼 내가 질문을 하나 하겠어. 학생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박진수는 조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라면 재활에 힘을 썼을 겁니다.”

“왜지?”

“다시 최고가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니, 틀렸어. 그저 믿음으로 움직이기엔 모든 상황이 좋지 않았어. 자네는 그 상황을 경험해 본 적 있나?”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믿을 수 있나?”

“제 마음이 그렇게 외치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사람이 세상을 인지할 때 다섯 가지 감각을 사용한다고 하지.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겠어. 다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거나, 맛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혹은 직접 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 사실을 어떠한 감각으로 인지한 적이 있나?”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나? 최고가 될 수 있다고? 과학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논증으로 다시는 운동을 할 수 없다고, 선수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어. 두 번 다시는 최고가 될 수 없다고 말이야. 학생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지?”

“저는 단지 믿을 뿐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을 잊었나?”

최강현의 말에 박진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상에 열이란 것이 있습니까?”

“물론이지.”

“그러면 차가움이란 것도 있겠지요?”

“그렇다네.”

“아닙니다. 그런 것은 없지요.”

강의실은 이 반전에 순간 적막이 흘렀다.

“많은 열, 더 많은 열, 초열, 백열, 아니면 아주 적은 열이나 열의 부재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가움이란 것은 없지요. 영하 273도의 열의 부재 상태로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이하로 만들 수는 없지요. 차가움이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가움이란 단어는 단지 열의 부재를 나타낼 뿐이지 그것을 계량할 수는 없지요. 열은 에너지이지만, 차가움은 열의 반대가 아닙니다. 그저 열의 부재일뿐이지요.”

강의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렇다면 어둠은 어떻습니까? 어둠이란 것이 존재하나요?”

“그렇지. 어둠이 없다면 밤이 도대체 왜 오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어둠 역시 무엇인가 부재하기 때문에 생기지요. 아주 적은 빛, 보통 빛, 밝은 빛, 눈부신 빛이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아무 빛도 존재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둠이라 부르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제로 어둠이란 것은 없지요. 만약 있다면 어둠을 더 어둡게 만들 수 있겠지요, 그럴 수 있나요?”

“그래, 요점이 뭔가, 학생?”

“제 요점은 강사님이 잘못된 전제를 내리시고 있다는 겁니다.”

“잘못되었다고? 설명해 줄 수 있겠나?”

“강사님, 강사님의 말에는 이분법적인 오류가 있었습니다. 생명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선함이 있다면 악함도 있다는 말씀, 또한 그렇다와 아니다라는 두 가지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최강현은 묵묵히 박진수의 말을 들었다.

“강사님, 과학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다는 점조차 설명을 못합니다. 전기와 자기를 말하지만, 볼 수는 없지요.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건 물론이구요. 죽음을 생명의 반대로 보는 건 죽음이란 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무지해서 그런 겁니다. 죽음은 생명의 반대가 아니라 단지 생명의 부재일뿐이지요. 강사님은 제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자랐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지 않나?”

“그렇다면, 저의 성장 과정을 눈으로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 강사님?”

최강현은 논리가 성립되어 감을 보고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강사님은 제가 성장한 과정을 목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을 증명하지도 못했으니 저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자란 것이 아니군요.”

강의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이 강의실에 강사님의 뇌를 본 사람이 있나요?”

강의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기에 강사님의 뇌를 듣거나, 느끼거나, 맛보거나, 냄새 맡은 적이 있는 분계십니까? 아무도 그런 적이 없는 것 같군요. 그러면 과학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논증으로 강사님의 뇌가 없다고 말하는군요. 그렇다면 강사님의 강의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습니까?”

강의실은 고요했다. 최강현은 심오한 표정으로 박진수를 응시했다.

“사실을 믿는 수밖에 없겠군.”

“바로 그겁니다. 그게 바로 모든 것을 움직이고 생명 있게 만드는 것이지요.”

박진수의 말이 끝나고 두 사람은 잠시 입을 열지 않았다. 지켜보는 많은 학생들이 눈을 감고 이야기의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최강현이 말했다.

“고맙군.”

“아닙니다. 저야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박진수가 내려가고 최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들으셨습니까? 믿음. 그 사실을 믿는 다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생명입니다.”

다시금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저에게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운동선수죠. 하지만 사고를 당했습니다. 재활치료를 한다고 해도 다시는 운동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그럼 제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저의 친구가 재활치료를 해도 운동을 하지 못할까요?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없는 겁니까?”

“아니요!”

강의실이 학생들의 목소리로 울렸다. 그것은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하는 묘한 마력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군요. 최고가 될 수 있는 거였군요. 지금 그 친구가 이곳에 와 있습니다. 강의실 문 바로 앞에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입니다.”

조명이 그곳으로 옮겨갔다. 정시혁의 모습이 모든 학생들에게 포착되었다.

“지금까지 저의 강의를 들어주신 모든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저의 친구 정시혁 학생이 치료를 통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까?”

최강현의 질문에 가장 빠르게 대답한 것은 박진수였다. 그리고 박진수의 대답을 따라 또 다시 강의실이 울렸다.

“믿습니다!”

학생들의 대답에 최강현은 정시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시혁의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정시혁 학생. 자네는 믿을 수 있나?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네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이 상황을 말이야.”

강의가 끝나고 최강현과 박진수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후우. 기운이 다 빠지네.”

“그러게요. 형, 정말 잘했어요.”

“너야말로.”

“근데 이런 글은 어디서 찾았냐?”

“뭐,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들 섞어 봤어요. 저도 어디서 봤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그래. 잘했다.”

최강현이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배정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 자네. 꽤나 잘하더군.”

“감사합니다.”

“그래, 수고했네. 그래도 강의를 해줬으니 수고비는 줘야겠지.”

“아닙니다.”

최강현은 거절했으나 배정일이 끝내 주머니에 봉투를 넣고 말았다.

“그럼 다음에 보세.”

“예.”

배정일이 나가자 최강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도 가자.”

“네.”

최강현이 대기실에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그때 눈앞에 있는 휠체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시혁?”

정시혁이 문 앞에 있었다. 그 까칠했던 녀석이 처음으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워요.”

“뭐?”

“고마... 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최강현의 입가로 감추지 못할 웃음이 피어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