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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태블릿-16화 (1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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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민경과 함께 경마장을 찾아간 최강현은 바로 자리를 잡고 주변의 상황을 파악했다.

“조금 있으면 경기 시작하겠네.”

그리고 연습 삼아 천천히 달리고 있는 기수들과 말을 바라봤다.

“와, 말 엄청 크다.”

“그치? 왠지 꿈이 좋아서 와봤어. 돈 많이 따면 맛있는 거 사줄게.”

“칫, 안 따면 안 사준다는 거네.”

“음, 그렇게 되나? 하하.”

그렇게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서도 말들을 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우승 후보가 저 6번 말인가? 하지만...’

최강현의 시야에 보이는 6번 말의 기운은 딱히 좋지 않았다. 오히려 4번 말의 기운이 가장 좋았다.

‘4번의 기운이 가장 좋아. 고민하지 말자.’

결국 최강현은 자신의 능력을 믿고 도박을 걸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몸을 풀고 있는 열 마리의 말들을 지켜보며 마음에 드는 세 마리를 골라내었다.

‘이번 경기에 열 마리 말들이 출전한다. 그 중에 1등, 2등, 3등을 모두 맞추자.’

아마 삼복승식을 맞출 경우 들어오는 배당률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래서 욕심이 났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말 세 마리를 찾지 못할 경우 최강현은 다른 쪽으로 배팅을 할 생각이다.

‘가장 기운 좋은 녀석은 역시 4번이다. 그리고 7번이군. 마지막이 문제야.’’

나머지 말들은 모두 엇비슷했다. 딱히 어느 말이 더 뛰어나다고 말하기엔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러다 시선이 기수에게로 향했다.

‘으음?!’

다행히 4번기수와 7번기수의 기운은 아주 좋았다. 그리고 그 4번, 7번기수들 보다 훨씬 깨끗하고 큰 기운을 발산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가장 기운이 약한 1번 말의 기수였다. 하지만 기수의 기운이 너무 좋아 감히 시선이 떼어지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기 6분 전.

“강현아, 몇 번 말에 걸 거야?”

“으응? 아아. 글쎄. 아직 고민 중이야.”

“헤. 나는 1번 말한테 5만 원 걸었어.”

“그래?”

최강현은 결국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휴. 어쩔 수 없군.’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4번과 7번 말에게만 돈을 걸었다.

‘10만 원이면 큰돈은 안 되겠네.’

불법 사설 경마장이 아닌 이상 10만 원 이상은 배팅이 금지 되어 있다.

‘그래도 맞추면 좋겠다.’

실패해도 상관은 없다.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거기다가 다른 일로도 충분히 돈은 벌 수 있다. 족히 치료술만 잘 사용해도 몇 억은 쉽게 벌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알리고 싶지 않은 생각도 있기에 그것은 끝내 돈이 한 푼도 없을 때에 사용할 일이다.

그리고 경기 시작 1분 전.

OMR에 마킹을 끝내고 창구로 향해 마권을 발급받았다.

“네,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경마 중계를 하기 위해 전문 아나운서가 목을 풀기 시작했다. 어느새 모든 말들이 출발지점에 도착해 있었다.

“은근히 떨린다, 그치?”

“응. 되면 좋겠지만 안 되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래, 재미로 하는 거잖아.”

최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동자에 힘을 줬다. 마치 빛이 난다고 착각할 만큼 집중을 했다.

‘좋아. 오차는 없다. 이제는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드디어 경기는 시작 되었다.

“네! 이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삐- 삐!

출발 소리와 함께 말들을 가로 막던 문이 열리고 기수들이 말들과 교감하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2번 마, 출발이 아주 좋습니다! 뒤에 있던 6번 마, 4번 마를 제치고 앞으로 나섭니다! 네, 7번 마, 7번 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경기에 돈을 건 사람들은 조금씩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빠져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2번, 뭐하는 거야!”

“에잇. 젠장. 꼴찌잖아!”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꽤나 시끄러웠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될수록 목소리 또한 커져만 갔다.

‘후우. 아직 나쁘진 않아. 가능성은 있다.’

아직 경기 초반이기 때문에 지금의 순위는 큰 영향이 없다. 다만 적어도 하위권에 처지지는 말아야 한다. 다행히 최강현이 선택한 말들은 모두 중상위권에 속해 있었다.

4번 말이 3위를, 7번 말이 4위를, 그리고 1번 말이 6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열 마리의 말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순위라면 해볼 만했다.

“네 랩 타임이 아주 뛰어난 선두의 말들이 조금씩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랩 타임이란 200m마다 측정하는 말들의 기록이다. 조금씩 속도를 높이는 선두의 말과 그 선두의 말을 따라가기 위한 후미의 말들이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드디어! 결승 주로에 도착하기 직전입니다!”

‘시작인가?’

결승 주로란 경마에서 가장 각축전을 벌이게 되는 최종의 직선 구간을 말한다. 그 거리는 각 경마장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400~500m이다. 스퍼트 구간이라고도 부른다.

“왔습니다!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5번 마! 마지막 스퍼트를 하는군요!”

“와아! 힘내라!”

“2번, 뭐하는 거냐!”

사람들의 환호와 경마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경마장을 울렸다.

“3번 마! 3번 마! 앞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2번, 따라 잡히며 뒤로 처지고, 4번 마! 7번 마! 엄청난 스피드로 속도를 올립니다!”

지금껏 힘을 비축하고 있던 4번 마와 7번 마가 마지막으로 속도를 높였다. 기수가 자세를 잡고 말들은 근육을 꿈틀 거리며 지면을 박찼다. 선두를 유지하던 5번 마가 순식간에 따라잡히며 뒤로 처졌다.

‘괜찮네.’

마지막 200m를 남겨두고도 1번 말은 아직도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최강현의 눈이 빛났다.

‘역시 안 되는 건가? 포기하길 잘했군.’

그리고 결승점 150m를 남겨두고 선수 다툼이 치열할 때, 드디어 1번 마를 타고 있던 기수가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 보니 1번 마를 타고 있던 선수는 지금까지 스퍼트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았다.

‘음?’

그때였다.

“이, 이럴 수가! 1번 마! 1번 마! 엄청난 속도로 선두의 말들을 제치고 있습니다! 5번 마를 제치고 8번 마를 제칩니다!”

믿기 힘든 스피드로 선두를 제치며 끝내 4번 마와 7번 마까지도 빠르게 앞질렀다. 그리고 결국 1위는 1번 말이 차지했다. 모두들 엄청난 이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지막으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상황을 정리했다.

“네, 결국 1번 마가 1위를, 4번 마가 2위를, 7번 마가 3위를 했습니다.”

이변 속에서도 가끔씩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 귀를 울렸다.

“1, 1번. 1번이다! 우와!!!”

“내, 내가 맞췄어!”

또한 옆에 멍하니 서 있던 이민경 역시 손을 천천히 떨었다.

“가, 강현아.”

“응?”

최강현은 대답하며 상당히 아쉬운 마음으로 1번 마를 탄 기수를 봤다. 허나 놀라움은 진심이었다.

‘엄청나다. 말의 체력이 부족함을 알고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을 택했다. 그리고 성공했고.’

그래도 최강현이 고른 말도 2위와 3위를 했기에 꽤나 높은 금액을 받을 거라 예상 되었다. 그때 이민경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 1번 했는데... 어떻게 되는 거야?”

그리고 전광판에 나타나는 배당률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되긴. 돈 번 거지.”

1번 마에 돈을 건 사람은 극히 적었다. 해서 단승식이지만 이민경도 꽤나 큰돈을 벌게 되었다.

잠시 후, 꽤나 귀찮은 절차를 거치고서야 돈을 받게 된 최강현은 세금이 20퍼센트가 넘는 다는 사실에 이마를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괜찮네. 후후.’

배당률은 90배였다. 많은 사람들이 최강현과 같은 선택을 했는지 그렇게 높은 배당률은 아니었다. 그래도 10만 원을 걸어 900만 원을 벌었다. 물론 세금을 떼고 받은 금액은 700만 원이 조금 넘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좋군. 하지만 아직도 돈은 부족해.’

의외로 이민경이 높은 배당률로 2백만 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1번을 택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했을 터인데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최강현과 이민경은 그날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녘.

악몽을 꾸는 건지 잠을 자고 있는 최강현이 신음을 흘리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으윽.”

그리고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번쩍 떴다.

“헉, 헉.”

잠에서 깬 최강현은 자신이 꾼 꿈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매우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만 느껴질 뿐이다.

“악몽을 꾼 건가? 후.”

그와 동시에 머리를 스쳐가는 하나의 문장이 있었다.

-대구에서 발생한 두 번째 지하철 참사 사건. 그야 말로 악몽과 같았다.

전에 읽었던 파일에 적힌 문장이다. 하지만 자신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대구로 내려갈 일도 별로 없었으며 지하철을 탈일은 더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왜 지금 이런 생각이 떠오른 걸까?’

의문이지만 피곤한 마음에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생각을 거듭했지만 동시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최강현은 뻐근한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

“으아함-”

간단하게 씻은 후 시간을 확인하니 조금 있으면 하숙집 아주머니가 아침을 차려줄 시간이었다.

“배고프다.”

게으른 표정으로 자기 배를 문지르며 방에서 나가자 몇 명의 학생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최강현도 의자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안녕?”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서 이민경이 걸어오고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와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 그리고 몽롱한 시선이 왠지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방금 일어났거든. 머리가 엉망이지?”

“아니.”

그러고 보니 어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마장에 갔었다. 제대로 데이트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여자로 보여서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친한 친구니까. 뭐, 심심하면 같이 놀 수도 있는 거지.’

오늘은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오늘 뭐해?”

최강현이 간단하게 물었다.

“음, 공부하겠지? 왜?”

“그래? 뭐, 딱히 할 일 없으면 같이 바람이나 쐴까?”

“응?”

“아니, 뭐. 바쁘면 어쩔 수 없고.”

얼버무리는 최강현의 말에 이민경이 고개를 푹 숙였다.

“괘, 괜찮아.”

“그래?”

“응.”

최강현도 조금 몸을 틀며 시선을 돌렸다.

“그럼, 밥 먹고 나가자.”

“응.”

아침을 먹는 시간이 상당히 어색했다. 하지만 미묘한 기류가 왠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어색하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미묘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방에서 캐주얼한 옷을 차려 입고 거울을 확인했다. 180이 넘는 키에 나쁘지 않은 외모, 거기에 감춰진 능력까지.

‘뭐, 이 정도면 어디 가서 꿀리진 않지.’

자신감으로 무장한 채 방문을 열고 이민경의 방 앞에 섰다.

똑. 똑.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리자 문을 빠끔히 열고 고개만 내민 이민경의 얼굴이 보였다.

“크, 크흠. 뭐해?”

“미안. 조금만 기다려 줘.”

“그래.”

아무래도 여자이다 보니 준비하는 시간이 긴 모양이다. 그로부터 30분이 지나고 드디어 이민경의 방문이 열렸다.

“오래 기다렸지?”

“아니. 괜찮아.”

“그럼 갈까?”

뭔가 미묘한 느낌으로 하숙집을 나서며 산뜻한 아침 공기를 마셨다.

“날씨 좋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바다 같았고 옆에는 함께 있어줄 사람이 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에 절로 미소가 피어나왔다.

“어디 갈까?”

최강현이 별 생각 없이 물었다.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었기에 한 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으음. 놀이공원 갈래?”

“놀이공원?”

“응!”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영화관이나 시내로 가는 것보다는 훨씬 시간도 빨리 갈 것 같았고 특히 최근 들어 놀이공원이 가본 적이 없어 기대도 되었다.

‘재밌겠다.’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데 이민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싫어?”

“응? 아니. 좋아.”

최강현의 말에 이민경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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