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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태블릿-13화 (1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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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해 처음으로 우승을 했다. 최강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열렬히 환호했다. 그 열기는 시합이 끝난 다음날까지도 이어졌고 거리에는 붉은색 티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떻게 된 거지?’

자신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치료해주기는 했다. 헌데, 그것과 미래가 달라진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지만 조금만 머리를 굴려보면 알만한 사실이었다.

‘그렇군. 내가 치료를 해주면 안 되는 거였어.’

국가대표 선수들이 다치는 것은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었다. 헌데 본래 대구에서 회사를 다녀야 했을 최강현이 새로운 길로 접어들면서 서울로 올라왔고 그들을 치료했다. 그것도 아주 건강할 정도로 말이다. 여기서부터 미래는 꼬인 것이다.

‘침착하자.’

월드컵, 그것도 결승전에서 우승을 한 것은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에 영향을 끼칠 일임에 분명하다. 최강현은 이제 미래가 바뀌지 않을 때와 또한 바뀔 때를 대비해야 했다.

‘미치겠군.’

절로 이마가 찌푸려진다. 최강현은 방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많은 잡념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후우.”

고민을 뱉어내며 이내 무엇도 생각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자연의 기운이 온 몸의 혈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기분에 정신이 맑아졌다. 꽤나 시간이 지나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래, 고민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한 최강현은 조금 휴식을 취하고 다시 한 번 이메일을 확인했다.

-결승전을 앞두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 사고 당하다.

목숨에 지장은 없으나 상처로 인해 결승전에서 탈락.

‘으음.’

진작 이 글을 읽지 못했던 것이 조금 아쉬웠다.

‘나의 행동으로 미래가 바뀐다는 건 확실하군.’

이미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최강현은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했다.

‘미래를 바꾸지 않기 위해 조심할 것이냐, 아니면 신경 쓰지 않을 것이냐.’

최강현의 눈이 번뜩였다.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다. 겨우 이런 일에 휘둘려선 안 된다. 최강현은 더 이상 자신의 행동으로 달라질 일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니.’

그리고 다시금 파일을 읽어 내려갔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일이다. 조금 더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파일을 살폈다.

최강현은 가족들을 보기 위해 대구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찾는 것이라 느낌이 묘했다.

“크흠.”

최강현은 헛기침을 하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갑작스런 목소리에 어머니가 거실로 나왔다.

“지은이니?”

“어머니, 저에요.”

“강현아!”

어머니가 다가와 최강현을 안았다.

“죄송해요. 연락도 잘 못 드리고.”

“아니다. 왔으면 되었다. 밥은 먹었니?”

“예. 먹었어요.”

“그래, 그래. 아버지는 작업실에 계시 단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최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똑. 똑.

“들어와라.”

문을 열고 들어서니 종이냄새가 코끝을 때렸다.

“아버지, 접니다.”

최강현의 목소리에 아버지가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집 나간 녀석이 무슨 일이냐?”

“저, 이제부터 혼자서 사업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사업?”

“예. 초기자금이야 지금은 조금 모자라지만 곧 모아질 겁니다.”

아버지인 최인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재밌구나. 서울로 올라간 이유가 그거였더냐?”

“예.”

“능력만 보여줬다면 바로 내 회사를 물려줄 수도 있었다.”

최강현은 아버지의 눈을 직시했다.

“제 스스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는 나에게 인정받을 생각은 말아라.”

“예.”

다행이었다. 최인의 표정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자신의 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데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대견한 표정이다.

“그래, 쉬어라.”

“예. 아버지.”

최강현은 곧이어 저녁을 먹으며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내일 관암사에나 들리려고 해요.”

“관암사는 왜 가려구?”

최강현의 말에 어머니가 물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이 많아서 인사도 하고 그리고 바람도 쐬고, 한 이틀정도 있다가 올 생각이에요.”

최강현의 말에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려무나.”

“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거실로 옮겨 과일을 막으며 최강현은 품에서 봉투를 꺼내었다.

“어머니. 이거 용돈으로 쓰세요.”

비록 부유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손으로 용돈을 준다는 것은 꽤나 뿌듯한 일이다. 그리고 받는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아주 행복한 일이고 말이다.

“이게 뭐니?”

“어머니 용돈이에요.”

“괜찮다. 넣어 둬라. 필요할 때 써야지.”

최강현은 극구 사양하는 어머니의 주머니에 억지로 봉투를 넣었다.

“저는 많아요. 꼭 용돈 드리고 싶었어요.”

어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 고맙다.”

어머니에게 드린 돈은 50만 원이다. 용돈치고는 적은 편이지만 너무 큰돈을 주면 걱정할까봐 자제했다. 그리고 최지은과 최혁에게도 봉투를 주었다.

“이건 너희 용돈이다. 함부로 쓰지 말고.”

“오빠, 고마워!”

“형, 잘 쓸게.”

워낙 아버지나 어머니가 용돈을 안 주다보니 쓸 돈이 넉넉지 않을 것이다. 최강현은 동생들에게 각각 30만원씩 주었다.

‘다음에도 주면 되니까.’

그리고 저녁이 되어 오랜만에 자신의 방에서 잠이 들었다.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전신을 감싸 안았다.

‘매일 청소하시나 보구나...’

아무도 쓰지 않는 방이 너무 깔끔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항상 청소를 한다는 뜻이다. 최강현의 눈시울이 문득 붉어졌다.

“힘내자.”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인사를 올렸다.

“어머니, 저 갔다 올게요.”

“그래. 이틀이라고 했지?”

“네.”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마친 최강현은 집을 나와 팔공산에 올랐다.

팔공산 관암사에 위치한 노스님을 만난 최강현은 인사를 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스승님, 과연 제가 하는 일이 잘하는 것인지 전 아직 모르겠습니다.”

“허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나는 모른다. 하지만 믿음이 있어야 걸음을 옮길 수 있다.”

노스님의 눈동자에 서린 확고한 신뢰가 최강현을 감쌌다.

“스승님...”

“난 널 믿는다. 헌데 너는 너를 믿지 못하느냐?”

노스님의 질문에 최강현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이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무엇이 말이냐?”

“스승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언제나 저를 일깨워 줍니다.”

최강현의 말에 노스님이 미소 지었다. 이후로도 최강현과 노스님의 대화는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최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하루 여기서 자고 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최강현은 다시 인사를 하고 전에 지냈던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최강현은 방에서 U패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불운한 천재, 박진수. 가난을 딛고 로스쿨에 입학했으나 스스로의 한계를 넘지 못하다.

‘흐음.’

그리고 실력은 좋으면서도 돈이 없어 꿈을 포기한 많은 이들이 파일에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기업을 운영하다 보니 인재들에 관심이 많았던 탓이리라.

“이들을 내 곁에 두자.”

결심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문득 중요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어머니 생일도 며칠 남지 않았구나.’

-어머니의 52번째 생신. 선물로 향수를 사드렸는데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 내일 내려가야겠다.”

그리고 마당으로 나가 노스님에게 배웠던 수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나무를 앞에 두고 몸을 움직이며 손과 발을 움직이는데 그 빠름은 놀라웠으나 파괴력은 없어 보였다. 그러다 최강현의 손바닥이 굵은 나무 기둥에 살짝 닿았다.

퍽!

거의 힘을 쓰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들려오는 소리는 거대한 폭발 같았다. 성인 남자 네 명은 팔을 뻗어야 안을 수 있는 기둥이 흔들리며 나뭇가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최강현의 눈동자가 번쩍였다.

휘휙-

떨어지는 나뭇잎을 향해 빠르게 주먹을 날렸다. 손바닥으로 치고 발로 밀며 어깨로 들이받는 동작들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뭇잎은 날려가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 주먹을 휘두르거나 한다면 나뭇잎은 다가오는 바람에 방향을 틀게 된다. 허나 지금은 다르다. 최강현의 공격은 정확히 명중했고 나뭇잎들은 바스러지며 바닥을 가득 채웠다. 한차례 아름다운 움직임을 보여주던 최강현은 나뭇잎이 모두 바닥으로 떨어지자 움직임을 멈췄다.

“후우.”

부드러운 움직임과는 달리 그 안에 깃든 파괴력은 놀라웠다.

“어느 정도는 되는구나.”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노스님이 천천히 다가왔다.

“허허, 많이 늘었구나.”

“감사합니다.”

노스님이 물끄러미 최강현을 바라봤다.

“대련이나 한 번 하겠느냐?”

“예.”

아마도 오늘의 대련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최강현은 따스한 눈빛의 노스님과 마주 보며 기를 끌어 올렸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허, 오거라.”

노스님 역시 빠른 시일 내로 최강현이 내려가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대련을 하자고 권유했다. 오늘의 시합에서 노스님은 최대한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핫!”

최강현이 먼저 움직이며 주먹을 뻗어갔다. 그에 노스님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오른 손으로 최강현의 손목을 잡고는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겼다. 그에 중심이 무너지며 최강현이 비틀거렸다. 노스님은 그런 최강현의 등에 손을 올리더니 살짝 힘을 가해 밀었다.

“으윽.”

한순간에 넘어지며 바닥에 코를 박았다. 하지만 곧바로 일어나며 다시 자세를 취했다.

‘역시, 스승님은 대단해. 그러고 보니 스승님도 기를 사용하는 것인가?’

지금까지 그것에 대해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대련을 통해 최강현은 확신했다.

‘분명해. 스승님도 기를 사용한다.’

다만 순수한 수련으로 얻어진 내공이기 때문에 최강현처럼 치료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최강현의 생각과는 달리 노스님은 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오랜 수련으로 자연스럽게 몸에 쌓여진 기운은 있었으나 그것은 극히 미약했다.

“후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처음 배웠던 내용들을 떠올렸다.

‘움직임을 주시하자.’

최강현이 자세를 잡는 사이 천천히 걸어오는 노스님이 보였다. 노스님은 최강현의 복부를 향해 발을 밀었고 최강현은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짝 몸을 틀었다. 노스님의 공격한 발이 지면으로 내려옴과 동시에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어깨를 부딪쳐왔다.

“큭!”

최강현도 지지 않고 어깨에 힘을 가해 공격을 했다. 서로의 어깨가 부딪히며 타격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역시 최강현이었다. 빠른 손놀림으로 서로에게 공격을 가했지만 조금씩 뒤처지는 최강현, 그의 눈이 어느 순간 번쩍였다.

‘지금이다!’

처음으로 발견한 틈이었다. 노스님이 오른 팔을 뻗는 순간 이미 앞으로 나가고 있는 최강현의 왼손이 노스님의 겨드랑이를 노리며 접근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더 이상 공격을 성공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최강현은 자신이 공격당할 것도 감수한 채 일격을 날렸다.

“하앗!”

퍼벅!

그리고 동시에 서로에게 공격을 성공시키며 몸이 빠르게 떨어졌다. 최강현은 허공에 붕 떠서 바닥으로 떨어졌고 노스님은 뒤로 밀려나 이마를 조금 찌푸릴 뿐이었다.

“하, 하하.”

하지만 최강현은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공격을 성공시킨 것이다.

“많이 늘었구나.”

“감사합니다.”

최강현은 스님의 말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스승님.”

“왜 그러느냐?”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가 되었다. 그 의지를 읽었음인가. 노스님은 돌연 고개를 끄덕였다.

“가려 하느냐?”

갑작스런 물음이었으나 최강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예.”

“허허, 그래. 짧았지만 수고했다.”

“아닙니다. 하루지만 저는 또 스승님에게 배웠을 뿐입니다.”

노스님이 천천히 다가왔다.

“강현아.”

“예. 스승님.”

“무언가를 해야 할 때는 항상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라. 그것이 진정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알겠느냐?”

최강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예.”

이제는 관암사를 떠나야 한다.

‘다시 찾을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군. 뭐, 나중엔 여유가 생기겠지.’

오늘은 이곳에서 저녁을 보내고 내일 아침 일찍 나설 것이다. 최강현의 시야에 잡힌 관암사의 건물은 고풍스러웠으며 또한 굳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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