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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팔공산에 올라가는 초입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정상을 찍고 올라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왔을 수도 있다.
소수의 인원들은 이제야 등산을 준비하며 오르기도 했다.
‘벌써 오후 2시라.’
이곳에 오기 전에 점심을 먹고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최강현도 이젠 수련할 장소를 찾기 위해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팔공산은 대구광역시의 중심에서 북동 방향으로 약 20Km지점에, 태백산맥이 남으로 힘차게 내딛다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곳에 우뚝 멈추어 장엄하게 솟은 산으로 해발 1,192M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과 서봉이 어깨를 나란히 웅자를 겨루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최강현은 스스로의 힘으로 천천히 팔공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역기 공기가 맑구나.”
산을 오르며 공기를 들이 마시자 온 몸이 절로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걸음을 옮기면서 적당한 수련장소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어디가 좋을까.”
최대한 자연의 기운이 흘러넘치는 곳을 찾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다 이곳 팔공산에서도 유독 기운이 모여 있는 곳이 느껴졌다.
“가보자.”
그리고 최강현은 힘을 가해 그곳으로 이동했다. 팔공산의 명소 갓바위불상을 보러 가기 전에 하나의 절간이 보였다.
“관암사?”
이곳이다. 자연의 기운이 다른 곳보다 유독 집중되어 있었다. 절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의 방해도 받지 않을 것이고 홀로 공부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꽤 있기에 잘 수 있는 방도 있을 것이다. 음식도 시간 마다 차려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흠, 여기서 지내볼까.”
일단은 산으로 올라와 장소를 정하고 텐트 같은 물품을 살 생각이었지만 이젠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다.
“일단 스님부터 만나봐야겠다.”
마음을 정하고 관암사로 들어가 마당을 쓸고 있는 노스님에게 다가갔다. 헌데 그 옆모습이 꽤나 낯이 익었다. 인자한 미소, 그리고 세속을 꿰뚫어보는 시선.
“엇, 스님.”
최강현의 목소리에 노스님이 고개를 돌렸다.
“허허, 오랜만이구려, 시주.”
그랬다. 지난 번 팔공산에 올랐을 때 만났던 그 노스님이었다.
“여기서 지내셨군요.”
“예. 헌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제가 이곳에서 조금 지내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노스님은 최강현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러더니 이내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최강현의 긴장된 마음을 한순간에 녹였다.
“물론이지요. 시주.”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저 이곳에서 무언가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지요.”
최강현은 노스님의 말에 뜨끔거리는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별 다른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노스님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시선이다. 최강현은 그저 고개만 꾸벅 숙일 뿐이었다.
최강현은 숙식비를 주고 자신이 지낼 방으로 들어갔다. 좁지만 아늑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좋다. 이왕 온 거, 확실히 하고 가자.”
그리고 지난 한 달 동안 자연의 기를 공부하며 중요하다 여긴 모든 문서를 담은 파일을 한 번 훑어봤다.
내용을 머릿속에 넣고 최강현은 앉은 자세를 유지한 채 양 손을 무릎에 살짝 올려놓았다.
“흡, 후.”
가장 먼저 지금까지 해왔던 기경팔맥운기법의 내용에 따라 몸속의 기운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은 입 바로 밑에 있는 승장혈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천돌, 담중, 구미혈을 지나 복사뼈에 위치한 구허혈까지 몸속의 기운을 회전시킨다.
‘좋아. 잘 움직이는구나.’
그리고 발끝으로 이동한 기운은 뒤로 돌아 다시 혈을 타고 위쪽으로 흘러간다. 백회혈을 지나고 인당 혈, 인중 혈을 지난 후에는 천돌 혈에서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일주천이다.
‘몸 안의 기운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 위해선 호흡도 아주 중요하다.’
호흡을 들이마시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약 15초, 내 뱉는데 걸리는 시간이 약 15초였다. 한 번의 호흡이 완성되는 데 30초가 걸렸다. 하지만 최강현은 마음에 차지 않았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호흡을 하기 위해 애썼고 그날은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데에 결국 1분까지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지금은 1분이 한계군. 호흡을 천천히 할수록 몸속의 기운들이 더욱 활발해지고 밖에서 유입되는 자연의 기운이 진해지는구나.’
어느새 자연의 기운을 느끼며 몸속에 쌓은 지 세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지만 조금 몸에 익숙해지면 또한 그보다 편할 수가 없다.
번쩍.
눈을 뜨는 순간 동공에서 광채가 흐른다는 표현은 지금 쓰이는 말 같았다. 마치 세속을 초탈한 자의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시선은 빠르게 평소대로 돌아왔다.
“후우.”
최강현은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여섯 시네.”
여섯 시면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최강현은 밖으로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절을 올리고 나와 밥을 먹고 있었다.
“이야, 냄새 좋은데?”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그릇 하나에 음식과 밥을 담아 방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밖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조용히 먹고 싶었다.
음식을 다 먹고 다시 나가자 노스님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최강현은 노스님에게 다가가 인사 했다.
“저녁 잘 먹었습니다.”
“허허, 그러셨다니 다행입니다.”
노스님의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줬다.
“그보다 시주, 지금은 답을 찾았습니까?”
“무슨 답 말씀입니까?”
“기적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아아...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솔직한 말에 노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미래에 그 답을 찾기 위한 여행이 시작 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이 질문을 생각하십시오. 가야할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최강현은 노스님의 말을 가슴깊이 새겼다.
“알겠습니다. 꼭 그러겠습니다.”
마치 자신의 미래를 알고 말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해가 떨어지고 다시 방으로 돌아간 최강현은 자연의 기운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며칠 후.
관암사에서 지내니 좋은 점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다쳤을 때, 자연의 기운을 이용하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 운이 좋았지.’
길을 가던 꼬마 아이가 넘어져 다리가 까진 모습에 별 생각 없이 다가가 그곳을 살펴봤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흘러나온 기운이 아이의 상처에 흡수되었고 그 순간 믿을 수 없게도 상처는 깨끗하게 사라져버렸다. 그 후로는 치료술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고 등산객 중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는 몰래 다가가 도와주기도 했다. 단, 심한 상처의 경우에는 꽤나 기운을 소모했지만 그래도 크게 무리할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이지만 치료 실력이 쌓이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꽤나 흘렀네.’
그리고 지금 최강현은 다른 일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흐음. 이걸로 충분할까?’
무언가 부족했다.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최강현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 부족한 것이 뭔지 알 수 있었다.
‘힘. 힘이 부족해.’
실질적으로 스스로를 지킬 힘이 부족했다. 그때 생각난 사람은 노스님뿐이었다.
“그래, 이번 기회에 배우자. 분명 노스님은 날 도와주실 거야.”
최강현은 곧바로 노스님을 찾아갔다.
“스님.”
“무슨 일이신가, 시주.”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허허, 시주의 부탁이라면 들어드려야지요.”
“감사합니다.”
최강현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행동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스님.”
“예.”
마치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최강현을 바라보는 노스님이었다.
“저를 수련시켜 주십시오.”
수련이라는 말에 노스님이 부드럽게 웃었다.
“허허, 수련이라 하셨습니까?”
“예.”
솔직히 노스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자신을 보고 한 눈에 파악하는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은은한 위압감까지. 최강현은 노스님이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시주. 저는 그저 사찰을 지키는 노인에 불과합니다.”
“저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노스님이 눈이 날카로워졌다.
“강해지고 싶습니까?”
“예.”
“그리하여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최강현은 이것이 노스님의 시험임을 깨달았다. 입에 발린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말할 뿐이다.
“불행을 막으려 합니다.”
“불행이라...”
노스님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허나, 시주의 불행을 막기 위해 다른 사람이 고통에 빠질 수 있습니다.”
“고통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면 그리 해야겠지요.”
“세상에 고통 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습니다. 시주.”
최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스님. 저는 말을 돌려 할 줄 모릅니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서 제 가족을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제야 노스님이 빙그레 웃었다. 노스님의 시선에 비친 최강현은 결코 악한 사람이 아니었다.
“시주. 저는 믿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예. 스님.”
그리고 노스님의 고개가 끄덕여 지는 것으로 최강현의 수련은 시작 되었다.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