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33)
  • 나는 주소를 적은 노트와 펜을 들고 제일 먼저 보이는 PC방을 찾았다. 

    일단 서울로 가는 열차시간표와 예매현황을 살피고, 서울 지도검색에 나섰다. 

    내가 목적한 형의 아파트를 찾아 위치를 확인하고, 

    교통정보를 수집하여 꼼꼼히 노트에다 적어내려 갔다. 

    집으로 돌아와 근간 몇 십 번을 눌러, 머릿속에 숫자를 되내이지 않아도 

    손가락이 기억하는 형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반복되는 여자의 멘트. 

    재발신을 눌러 성재한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성재가 바로 받는다. 

    [아, 여보세요~] 

    분위기를 잡아 한껏 목소리를 까는 통에 팔에 소름이 다 돋는다. 

    여친과 통화할 때 내는 접대성 목소리인가 보다. 

    그냥 평소처럼 해라!!!! 

    "미안, 나 민하야." 

    [이 씨. 괜히 무게 잡았잖아~ 왜 아까 가르쳐준 전화번호가 틀려?] 

    "아니, 그 형과는 통화됐어. 너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서...... 

    [뭔데? 빨리 얘기해. 나 여친 전화 받아야 해.] 

    "응. 수련회 언제 간다고 했지?" 

    [뭐야! 왜~ 계속 튕겨보지? 짜식, 마음에 있으면서 기집애처럼 내숭떨긴!! 

    다음 주 목요일부터 2박 3일 예정이야. 준비물은..] 

    나는 말을 계속 이으려는 성재의 말을 자르고, 전화 건 목적을 말했다. 

    "성재야. 너 좀 팔자!!" 

    [갑자기 뭔 소리야? 뜬금없이 나를 팔다니?] 

    "말 그대로 우리 엄마한테 너 좀 팔겠다고. 나 내일 급히 여행가야 하는데, 

    엄마가 쉽게 허락을 안해줄 것 같아서, 너랑 교회수련회 간다고 너 핑계 좀 댈게. 

    혹시나 우리 엄마가 확인전화 걸면, 내일 가서 일요일 아니, 월요일에 온다고 좀 해 줘. 

    [엥~ 그런거야 내 전공이지만........너 도대체 내일 어디 가는데?] 

    "그건......나중에 얘기할게. 우리 엄마가 전화하시면, 

    나 내일부터 너랑 수련회 가는 걸로 말 맞추는 거다. 알았지? 그렇게 알고 끊는다. 

    후-우, 이제 집에 오실 엄마한테 둘러대고 허락 받는 일만 남았다. 

    나는 공책사이에 꽂아 둔 성적표를 꺼내서 펼쳐보았다. 

    원희형과 열심히 시험공부 한 덕분에 반 석차가 2등인데다, 전교등수도 19등이다. 

    이 정도면 엄마의 허락을 얻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마음이 급해진 나는 엄마에게 허락을 맡기도 전에 아니, 혹시라도 

    허락하지 않더라도 감행할 생각이기에 가방을 꺼내 여행에 필요한 몇 가지를 챙겼다. 

    마지막으로 아까 정보수집해서 꼼꼼히 적은 노트를 넣고 통장을 찾아 잔금을 확인했다. 

    아아!! 한시라도 빨리 원희형을 만나 오해를 풀고 싶다. 

    나를 아낌없이 보여 주고 싶다. 

    엄마는 성적표를 보고 크게 흡족해하시며, 아무 의심없이 쉽게 여행을 허락하셨다. 

    누나는 뾰루퉁하게 삐져서 성차별이라는 둥, 내리 사랑이라 둥 하며 

    올 여름에 자기도 마음대로 친구들과 여행을 가겠다고 난리다. 

    그런 누나를 보고 엄마는 보내 주겠단다. 

    단, 보호자가 확실한 신혼여행을........ 

    형의 아파트까지 오는 시간이 왜 이리 길고, 더디게 느껴지는지...... 

    어렸을 때 한참 상상해봄직한 순간이동이라던가, 신비한 초능력을 떠올리며 

    1분 1초라도 더 빨리 형 앞에 서서, 형의 얼굴을 마주보고 싶어졌다. 

    오후 4시 정도에 형이 산다는 서울의 이 곳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 

    상가 입구에서 형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나 되풀이되는 똑같은 소리....... 

    형이 사는 아파트는 위치 좋은 곳에 있어 찾기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동 출입구 현관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게 되어있어, 난 순간 당황했다. 

    먼저 형의 집 호수인 2001을 누르고 호출버튼을 눌렀으나 역시나 묵묵부답. 

    혹시.........이사를 가버린 것은 아닐까? 

    이른 낭패감을 맛보며 주위를 둘러보다, 경비원 제복을 입은 아저씨를 발견하고 반가워 

    이사여부를 확인했더니, 다행히 이사소리는 금시초문이라며 

    "그 총각 조금 아까 외출하는 것 같은데-" 

    하신다. 나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서성이다가 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아 언제 돌아올지 모를 형을 기다리고 있다. 

    단지가 큰 아파트 같은데, 사람들이 다 어디에 꼭꼭 숨어있는지 다니는 사람이 별 없다. 

    나는 간간히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차를 무료하게 세고 있다. 

    어? 그러고 보니 주차장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다시 나오는 것을 못봤다. 

    지하주차장과 동이 바로 연결되어 있을거라는 생각이 그제서야 났다. 이런!!!! 

    마침 장바구니를 들고, 비밀번호를 누르는 아줌마를 급히 따라 102동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에 타고 맨 위의 20층을 눌렀다. 함께 탄 아줌마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낸다. 

    아줌마, 나이를 생각하세요!! 제가 설마 아줌마에게 반해서 따라 왔겠어요!!! 

    층계에 걸터앉아 기다린게 벌써 몇 시간째인지......... 

    조급하게 시계를 보며,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때마다 층수를 확인하고 꾸준히 기다린다.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구절이 떠올려지며 쓴웃음을 짓는다. 

    벌써 새벽 1시가 다 되어간다. 상가까지 나갔다 온 것이 2번. 

    갈 때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형이 올까봐, 문틈에 기다려달라는 메모지를 끼우고 

    급히 내려가,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 보고 빵과 우유를 사와 저녁을 떼웠다. 

    들어올 때 비밀번호를 몰라 서성대다, 한 번은 꼬맹이를 따라 

    또 한번은 배달맨을 따라 들어와 궁상맞게 계단에 숨어 앉아 형을 기다린다. 

    조금 아까 형의 집 맞은 편 사람들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문을 열고 내다 보길래, 

    꺾어져 있는 반층을 더 올라가 엘리베이터 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를 내밀고 

    확인해보기를 몇 십 번......이제는 차갑고 단단한 층계에 오래 앉아있어, 

    엉덩이가 배기고 온 몸이 찌뿌등 해지며 기다리는 형은 안오고 졸음이 온다. 

    "드드드드.........띵!! 문이 열렸습니다." 

    "...크크.....웬일이야. 오늘 재원이 집을 다 구경하고......." 

    인기척에 바로 몸을 일으켜 내려다 봤다. 

    ........!!!!!.........형이다!!!.............................. 

    그런데, 형 뒤로 어떤 누나, 아니 호리호리한 몸에 머리를 기른 화려해 보이는 

    젊은 남자가 형의 허리를 뒤에서 꼭 끌어안고 밀착한 채, 끈적하게 몸을 비비고 있다. 

    형은 개의치 않는 듯 떨궈내지 않고 현관열쇠를 꽂고 있다. 

    "사-락" 

    그 모습에 놀라고 허탈해지며 몸에 힘이 빠져, 가슴에 끌어안고 있던 가방이 

    가슴 아래로 흘러내려 가며 옷감을 스쳐 소리가 났다. 

    컴컴하고 조용한 계단에서 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이 멈칫거리며 내 쪽을 돌아본다. 

    밝은 곳에서 본다면, 아마 지금 내 얼굴에는 핏기가 다 빠져나가 유령 같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만나는 형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깨끗하게 차려 입고 나왔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다리를 저려가며 쪼그리고 앉아 마냥 기다렸는데........ 

    ...........고작...........고작, 모습을 보인 형은................................................ 

    형은 계단에 서 있는 나를 잠시 흠칫 놀래며 돌아봤을 뿐,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아니!! 내가 없는 존재처럼 눈길을 돌려 차갑게 외면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어떤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아무렇지 않게 현관을 열고 들어가려는 형을 겨우 소리내어 불러본다. 

    "혀, 형!!!..........." 

    들어가려던 형이 순간 멈칫거리지만, 나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형!! 원희형!!!" 

    나는 또 형이 모르는 체 외면할까 싶어, 급히 계단을 내려와 형을 불러 세운다. 

    형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던 젊은 남자가 팔을 풀며, 형에게 말한다. 

    "뭐야~ 이 꼬맹이 재원이와 아는 사이였어?" 

    "..........." 

    형이 천천히 뒤를 돌아, 손을 뻗쳐 내림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설마.......날.........돌려보내려고............정말 안보겠다는 거야!!!! 

    형이 입을 열기까지 단 몇 초지만, 나는 눈물이 고이며 아프게 입술을 꼭 깨물었다. 

    "미안,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보자." 

    다행히 같이 온 일행에게 말을 건넨다. 젊은 남자는 눈치 빠르게 아무 말 묻지 않고, 

    외국사람처럼 양팔을 들어 어깨를 들썩이며 '그럼, 할 수 없지'란 제스처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탄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것이 보이자, 

    형은 나에게 들어오라는 소리도 없이 현관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형!!! 내가 전부 오해했어!!! 그래서 형에게 말하고 오해를 풀고 싶어서........" 

    "............"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 형 때문에 입안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어쩔바를 모르겠다. 

    .........형...........제발 .......나를 돌아봐 줘!!!...........형..........내게 기회를 줘.................. 

    "...........형.........좋아해............" 

    힘들여 말한 나의 고백에 움찔 어깨를 떨 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형이 말한다. 

    ".........늦었어........." 

    ............!!!!!!!..........늦......었........다.......니........ 

    내가 형에게 다가가기는 이제......너무 늦은 거야?? 

    온 가슴이 마치 난도질당하듯 찢겨지는 것 같다. 

    "........혀엉........." 

    "..........."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듯한 걸 억지로 참으며 형을 부르자, 

    대답대신 천천히 내 쪽으로 몸을 돌려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마주 선다. 

    여차하면 손잡이를 잡아당겨 문을 닫아버릴 것 같아, 

    나는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며 다시 한번 떨리는 음성으로 힘겹게 불러본다. 

    "........혀어..ㅇ......." 

    ".......지각이야..........이렇게 한참을 기다리게 하다니." 

    ".........???........." 

    나는 순간 무슨 말뜻인지 몰라, 눈을 깜빡거리며 형의 눈을 보았다. 

    형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떨리며 눈 주위가 살짝 붉어져 촉촉해지고, 

    이어 따뜻한 웃음기가 천천히 번진다. 

    아아, 그 말은.......내가 형을 좋아한다는 고백에 대한!!!!!!!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를 그렇게 한참을........기다렸던 거야? 

    "....형~" 

    내가 형의 표정을 읽고 들뜬 목소리로 부르자, 

    형의 얼굴은 기쁜 듯 환하게 웃음이 번지며, 환영한다는 표시로 한 팔을 천천히 벌린다. 

    "형!!!" 

    나에게는 마치 안기라는 싸인으로 보였기에, 형에게 몸을 던지듯 와락! 끌어안았다. 

    갑작스런 내 행동을 예상 못했는지, 

    형의 몸이 뒤로 주춤 넘어질 듯 밀려나는 것이 느껴졌지만, 팔을 풀지 않았다. 

    곧이어 형이 양팔에 힘주어 꼭 끌어안아 준다. 

    "스르륵 쾅!!" 

    내 바로 뒤에서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형 품에 얼굴을 부비며, 언젠가부터 그리워진 익숙한 향에 

    비로소 안도감을 느낀다. 

    그것도 잠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겁지겁 급하게 

    서로의 입술을 찾아 혀를 엉긴다. 

    아아!! 가슴이 터질 듯 벅차 오른다. 

    언제 신발을 벗었는지, 어느 틈에 옷이 벗어지고, 벗겨졌는지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체, 

    서로에게 목말라 끊임없이 갈구하듯 키스를 한다. 

    그 와중에도 이것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 

    서로의 몸을 정신없이 더듬고 애무해가며, 한 시라도 떨어질까 두려워 

    꼭 붙은 채 놓을 줄을 모르고 걸음을 옮긴다. 

    어느 새 우리는 거실을 지나 침대에 몸을 눕히고, 정신 없이 키스를 하고 있다. 

    조금 더....더....가실 줄 모르는 갈증에 우리는 떨어질 줄 모르고, 

    서로에게 몰두할 뿐이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이렇게 온 몸으로 그리워했던 적이 있었던가? 

    지금까지 누군가를 이렇게 온 몸으로 간절히 원했던 적이 있었을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겨우 입술을 떼곤 서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 뜨거운 열기에 어쩔 줄 몰라한다. 

    아직도 한참 모자란 느낌이다. 

    형의 뜨거운 입술이 내 귓가를 배회한다. 

    ".......하아.....민하........" 

    "......흣........" 

    온 몸에 짜릿하게 퍼지는 흥분감에 몸을 떨었다. 

    형이 낮게 부르는 소리만으로도 내 몸은 반응해서 안기고 싶어 안달한다. 

    ".....민하야........민하........." 

    "...아아..........혀..엉.............." 

    내 귓가에서 한 숨처럼 부르는 형의 낮은 소리에 나는 몸을 움찔 떨며, 

    흥분된 소리로 겨우 답한다. 

    "하아.......민..하......민하야......." 

    형이 내 몸을 뜨거운 손으로 훑으며, 귓가에 간지럽게 속삭인다. 

    그 달콤함에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것 같이 몽환적이다. 

    "후우.......사.랑.해" 

    귓가에 뜨거운 숨을 불어놓으며, 나지막히 고백하는.....사랑해......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 

    그 한마디에 온 마음, 아니 온 몸이 벅차 오른 듯 감동하여 떨린다. 

    ".....아아....나도....나도 형을 사랑해." 

    내 고백에 형이 고개를 들고,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한다. 

    ".......하아.......오래 전부터 너만 생각했어........." 

    "내가 너무 늦게 알아버려......미안해." 

    "아니." 

    형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땀에 젖은 내 머리를 쓸어주며, 

    내 이마와 눈, 코, 입에 가볍게 키스한다. 

    그러면서 소중한 것을 조심스럽게 만지듯, 내 몸을 부드럽게 애무하며 말한다. 

    "...........너무 그리웠어." 

    "나도" 

    "지금도 너만 생각하고, 너만을 원해." 

    ".......거짓말......." 

    형이 멈칫거리며 고개를 들어 의아한 듯 나를 내려본다. 

    방에 불을 켜지 않았지만 침대가 창가 바로 옆인데다, 달빛이 은은히 비춰 

    코앞에 있는 형의 얼굴표정이 잘 보인다. 

    "거짓말이라니?" 

    ".......조금 아까 함께 온 그 사람 누구야?" 

    "설마.......질투하는 거야?" 

    형의 얼굴이 못믿겠다는 듯 기쁘면서도 장난스럽게 눈을 빛낸다. 

    "당연하잖아. 나만을 생각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기쁜데." 

    형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내 귓불을 할짝할짝 핥는다. 

    간지러운 그 느낌에 나는 온 몸이 오싹거리며, 다시 흥분되어간다. 

    "아흣......말 돌리지마......아아..... 그 사람, 형과 어떤 관계길래 그렇게...아~.... 

    끈적거리며 뒤에서 달라붙는데도.....흣.......그냥 놔두는 거야?" 

    내가 말하는 와중에도 형은 쉬지 않고 내 예민한 귀 주변을 혀로 자극하며, 

    한 손으론 내 가슴을 부드럽게 애무한다. 

    아무래도 이 쪽 방면에 선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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