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33)
  • 오피스텔로 가기 위해 급하게 집을 나서 몇 걸음 옮겼을 때, 

    골목 모퉁이에서 어떤 남자와 아쉬운 작별을 하는 누나가 보인다. 

    한 손에는 엄마의 말처럼 한약상자를 들고 있다. 

    누나는 왜 원희형이 말도 없이 사라졌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승주에게 물어보기 전 

    누나에게 알아본다면 더 확실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누나---" 

    남자가 간 쪽을 물끄러미 보던 누나가 내 목소리를 듣고 놀라 종종걸음으로 다가온다. 

    "어머. 몸도 아픈 얘가 왜 밖에 나와있어. 이 시간에 어딜 가려고?" 

    나는 빨리 확인 싶은 생각에 바로 본론을 얘기했다. 

    "알고 싶어!!" 

    "........뭘?" 

    누나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듯 다그치듯이 말하는 나를 놀래서 본다. 

    "나도 이젠 어리지 않아!! 다 이해할 수 있는 나이야!! 그런데 왜 내게만 말 안 해주는데?" 

    "......혹시 엄마가 말 한거야?" 

    "누가 말 한 것은 중요하지 않아. 나는 이 집 식구 아니야? 

    "그야........ 아직 말 할만한 단계가" 

    "어쩐지 누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엄마와 누나는 항상 내게만 숨기고 " 

    "숨긴 것 아니야. 차차 기회 봐서 말하려고 했어." 

    "그게 언젠데.....언제나 그랬어. 엄마와 누나는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만 빼놓고.." 

    "그게 그렇게 섭섭했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나도 한 식구로서 알 권리가 있어!!" 

    "뭐? 알 권리~ 얘가 점점~ 아직 사귄지 얼마 안돼서, 우리 서로에 대해서 확실하게 모르고" 

    "뭐?" 

    어, 어!! 지금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사귀다니?? 

    "그렇잖아!! 아직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고, 단지 몇 번 만나 데이트했을 뿐인데...." 

    "누나 그게 무슨 말이야? 데이트라니?" 

    "너, 방금 전에 나랑 헤어진 남자보고 말하는 거 아니었어?? 

    "뭐?....!!!!!!" 

    어쩐지 지금 이 상황이 오피스텔에서 승주와 말하던 상황과 묘하게 닮아있다. 

    서로 주어를 빼버리고 말을 하다보니 핀트가 어긋난 느낌......... 

    맙소사!!!! 혹시 승주와 말 할 때와도 서로 다른 얘기를 했던 걸까? 

    머릿속에 생각이 마구 뒤엉켜서 혼란스러웠었는데 그 한 자락 끝을 잡은 느낌이다. 

    .......이런!!!!!...... 나는 황급히 누나에게 몸을 돌린 채 오피스텔로 달렸다. 

    승주의 슬픈 표정이 계속 내 가슴을 후빈다. 

    오피스텔 입구에 도착했을 때,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몸을 던지듯 뛰어 

    열림버튼을 급하게 눌러보지만, 엘리베이터는 미련없이 올라가 버린다. 

    한시라도 빨리 보고싶은 생각에 숨 고를 틈도 없이 곧장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너무 무리했다 싶게 다리근육이 팽팽히 땡겨오고 숨이 턱까지 찼지만, 

    이보다 더 급한 것이 마음에 들끓는 의문이기에, 숨 돌릴 틈 없이 벨을 눌렀다. 

    "삐리리리리-----삐리리리리------삐리리리리----" 

    아직 들어오지 않은 걸까? 조급한 마음으로 벨을 마구 눌렀으나 인기척이 없다. 

    혹시 나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문을 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싶어, 

    주먹이 아플 정도로 '쾅쾅' 두드려봤지만 여전히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질 않는다. 

    온 복도에 울릴 정도로 두드리다 생각을 바꿔, 아래로 내려와 7층을 올려다보았다. 

    불이 꺼져 있고 창문이 닫혀진 채다. 

    주차장으로 뛰어가 녀석의 오토바이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고, 

    그 날 본 스포츠카 역시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보기 위해 주머니를 뒤져보니 흔한 10원짜리 동전조차 없다. 

    나는 그렇게 1시간 넘게 서성거리다 내일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던 누나가 나를 보자 한마디하려 했지만, 내가 빨랐다. 

    "누나!!"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뛰어나가 힘없이 돌아온 내가 할 말 있다는 심각한 표정으로 

    부르자, 누나는 '얘가 왜 이러나?' 싶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누나" 

    "왜?" 

    "........누나" 

    "왜 자꾸 불러?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호적에 니 누나라고 되어있어. 뭔데?" 

    엄마가 아직 들어오시지 않았기에 물어본다면 지금이 적합한 기회인 것은 확실한데, 

    내가 물어본다면 누나가 순순히 대답해줄까? 

    "........누나! 내가 지금부터 묻는 말에 솔직하게 말해 줄 수 있어?" 

    "너 아까부터 이상하게 왜 그래? 무슨 얘긴데 그렇게 뜸을 들여?" 

    "내 말에 대답부터 해. 말해 줄 수 있어? 없어?" 

    "어머~ 얘가 어린애처럼 왜 그래? 뭔데 들어보고~" 

    "아니. 꼭 말해줬으면 해." 

    내가 자못 결의에 찬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하자, 누나가 리모콘으로 텔레비전을 끄고 

    내 쪽으로 돌아앉아, 진득하니 기다리지 못하고 눈빛으로 재촉한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원희형이 말도 없이 사라졌었지?" 

    "그래. 그랬었지....갑자기 그건 왜?" 

    "아빠 돌아가신 것과 원희형이..........혹시........... 무슨 연관 있어?" 

    "너. 오늘 이상하다. 지난 얘기를 새삼스럽게.......너 그러고 보니....... 

    몇 일전 길에서 만난 네 친구라는 얘, 혹시......." 

    누나의 말에 나는 뜨끔해졌다. 

    "혹시라니? 그 녀석은 나와 같은 초등학교 나온 놈인데 갑자기 그 자식은 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먼저 선수를 치며,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했다. 

    누나가 잠깐이지만 의심스러웠던 눈초리를 거두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한다. 

    "아니......그냥 좀." 

    "그냥 좀 이라니? 설마 누나도 그 녀석 인물에 반해, 한 눈에 뻑 간 거 아니야? 

    그 자식 좋다고 목매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가끔 나이 든 누나들도 길에서 

    노골적으로 대쉬 한다니까.... 그 날 누나가 놀랜 얼굴로 말을 더듬기에, 

    누나도 그런 가.벼.운 여.자.들처럼 녀석에게 한 눈에 갔는 줄 알았지. 왜 관심 있어?" 

    아이들은 앓고 나면 영악해진다는 어른들의 말이 틀리지 않나 보다. 

    내가 이렇게 단순한 머리를 굴려가며, 누나의 긍지 높은 여자자존심을 살짝 건드려 

    자연스럽게 얘기하길 유도하는 걸 보면......... 

    아니나 다를까. 

    "어머. 얘가 무슨!!! 내가 나이가 몇인데, 교복 입은 고딩에게 반하겠니?" 

    "난 또~ 그럼 그렇지. 한 순간 누나의 수준을 의심했다니까. 그런데 왜 그리 놀랬어?" 

    "그건.....뭐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네 친구라는 애, 원희랑 너무 꼭 닮아서 놀랬어." 

    "형이랑?" 

    "그래. 거기에다 안경만 쓰면 딱 원흰데.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똑같아서, 

    나 속으로 얼마나 많이 놀랬다구." 

    아!! 역시!!! 설마 그럴 리가 했는데........... 승주가 원희형이구나!! 

    성재 전화받고 설마하며, 반나절 넘게 고민했던 문제가 누나의 말로 의외로 쉽게 풀렸다. 

    그렇다면 왜 그동안 내 앞에 코빼기도 안 비추던 형이, 굳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형이 아닌 척하며,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일까? 

    그 동안 함께 지냈던 시간이 짧다면 짧을 수 있지만, 또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왜 내게 형이라는 것을 밝히지 못한 것일까? 

    아니 왜 밝히지 않은 것일까? 나와 그런 관계까지 맺어놓고....... 

    조금 더 있으면 엄마가 오실 시간이다. 누나에게 힘들게 꺼낸 얘기를 일단 들어야겠다. 

    "누나. 얘기 딴 데로 돌리지 말고, 내가 물은 거 대답해 줘. 

    아빠의 죽음과 원희형이 무슨 연관이 있긴 있는 거야? 그래서 형이 말도 없이 떠난 거고?" 

    "지나간 일은 왜 갑자기 궁금한데?" 

    "갑자기 궁금한게 아니야. 계속 궁금했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엄마와 누나는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말 안 해줄 것이 뻔하고, 내 앞에서 형 얘기조차 

    꺼내지 않았잖아. 거기다 형이 아빠 기일에 맞춰 해마다 인사 왔다고 했는데, 

    나한테는 그런 얘기조차 해주지 않았잖아. 이제는 왜 그런지 정말 알고 싶어. 

    아니. 나도 알아야 해! 

    나 엄마나 누나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지 않아. 

    어떤 얘기를 해도 이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야. 

    말 해줘, 누나. 꼭 듣고 싶어. 부탁이야. 응?" 

    누나가 가만히 나를 보며 얘기를 해도 될 것인가 갈등하는 것이 느껴지기에, 

    나는 그런 누나를 향해 아주 간절히 듣고 싶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하기를 기다린다. 

    "........그래. 그렇게까지 말하니......아빠 돌아가신 것에 맞춰 원희가 사라진 것은......... 

    아빠의 죽음과 연관 있어. 더 정확히 말하면 아빠의 죽음이 원희랑 관련있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 아빠가 원희형 때문에 돌아가시게 됐다는 거야?" 

    처음 듣는 사실에 나는 무척 당황해하며, 충격받은 얼굴로 누나에게 되물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말하기는 뭐해도 원인제공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내가 알기로는 원희아버지와 우리아빠가 둘도 없는 친구로 알고 있어. 

    의형제를 맺을 만큼. 

    너는 기억나지 않겠지만 나 어렸을 땐,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셔서 

    내가 삼촌이라 부르기도 했을 정도니까." 

    "그랬어?" 

    "그런데 그 아저씨가 발길이 뜸해지시더니 서울로 가셨다고 들었어. 

    그 후 아빠와는 계속 연락을 하며 지내신 것 같은데, 아저씨가 서울에서 위험한 사업을 

    하고 계시다는 것과 그것 때문에 이혼하셨다는 얘기를 안방을 지나가다 우연히 들었어." 

    "위험한 사업이라니?" 

    "글세. 잘은 몰라도 조직을 끼고서 하는 음성적인 사업이었다고 나중에 엄마한테 들었어. 

    그 사업으로 아저씨는 돈은 크게 버셨지만, 그 만큼 위험이 따르기에 항상 신변에 

    위협을 받으셨나 봐. 그것을 알게 된 아빠가 원희를 보호 명목으로, 서울에 직접 가셔서 

    우리 집으로 데려 오셨고, 우리랑 얼마간 살게 된 거야." 

    "..........." 

    "그런데 아저씨의 사업이 날로 커지면서 본의 아니게 작은 조직들을 흡수하게 되고, 

    그 때문에 다른 큰 조직이 위기감을 느끼게 됐나봐. 

    다른 큰 조직에서 아저씨에게 그 사업의 포기각서를 쓰게 하고 통째로 삼키기 위해, 

    그 미끼로 쓸 원희의 행방을 수소문했나봐." 

    "그래서?" 

    "정보망을 통해 그 소식을 들은 아저씨가 급히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원희를 데리고 

    이혼한 부인이 있는 일본으로 잠시 몸을 피해 있기로 했다나 봐. 

    잠복근무 중이던 아빠는 엄마에게 연락을 취해, 당장 기차역에 가서 서울로 가는 

    기차표 2장을 끊고, 원희를 기다리라고 했었나 봐." 

    "엄마한테?" 

    "응. 그리고 원희 학교에도 전화를 걸어서 원희에게 뒤도 보지말고, 

    바로 택시타고 기차역으로 가서 엄마를 찾으라고 하셨대. 아빠는 함께 있는 동료에게 

    대강 사정설명을 하고 원희를 데리고 서울로 가시기 위해, 급하게 차를 몰아 

    약속장소인 기차역으로 가셨지만, 와 있어야 할 원희가 오지 않았대." 

    ".....왜?" 

    "어디를 들렸다 왔는지, 겨우 기차 떠날 시간에 간당간당하게 왔나봐. 

    아빠랑 함께 원희를 기다리던 엄마가 길이 엇갈렸나 싶어 찾아보겠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 

    원희가 도착했고, 또 어떻게 알았는지 원희 뒤에 조직원 3명이 따라 붙었대. 

    감이 빠른 아빠가 그들을 보자마자 원희에게 빨리 기차에 타라고 이르곤, 

    그들을 막기위해 몸싸움을 벌리다 형사라고 밝히며 조용히 물러날 것을 말했지만, 

    기차가 떠나려고 하자 급해진 그들 중 한 명이......... 품에 있는 칼로 아빠를 찌른거야." 

    "....아아..........." 

    "그 와중에 이상한 예감이 든 엄마가, 급히 기차를 타는 곳으로 뛰어오다 그것을 다 보셨대.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아빠를 불렀고, 떠나는 기차 안에서 그 광경을 다 본 원희랑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엄마는 그 순간 모든 원망을 다 담아 원희를 보았대." 

    "..........어떻게....그런 일이....." 

    "그래서 한 동안 원희 얘기를 입에 담지 못한거야. 원희가 그 날 곧장 기차역으로 왔었다면, 

    그런 일은 피할 수 있었을텐데......하시며 엄마는 원희를 원망하시고 탓하셨어." 

    "......아아......그럴 수가....." 

    "엄마가 그러시더라. 아빠는 항상 '그 친구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줄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말이 씨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엄마는 용서를 구하며 찾아오시는 아저씨를 몇 번 거부하시다..... 

    고모에게 두 분의 옛날 얘기를 듣게 되셨대." 

    "옛날 얘기라니?" 

    ".......안성에 사시는 고모가 예전에 못된 양아치에게 강간당하고, 감금까지 당했는데........ 

    그 때 아저씨가 나서서 고모를 구하고, 사람을 다치게 해서, 소년원까지 가시게 됐었나봐. 

    그 후로 아저씨는 평범하게 살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너도 알지? 이유야 어찌됐건, 사회에서 냉담하게 외면한다는 것을." 

    "................." 

    "그 일로 아빠는 항상 아저씨께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하셨고, 형사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음성적인 일을 하는 아저씨를 뭐하고 함부로 탓할 수도 없었고,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대. 그런데 사업이 너무 커져버려 아저씨 신변이 곤란하게 되자, 아빠가 자청하셔서 

    원희를 데려왔고, 또 자청해서 직접 원희를 무사히 아저씨에게 양도하려다가 그만, 

    그런 일이 벌어진 거야. 엄마도 고모에게 숨겨진 얘기를 듣고, 왜 아빠가 그토록 

    아저씨 일에 마음을 쓰셨는지 알게 되었지만, 쉽게 용서가 되지 않으셨대." 

    "................." 

    "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원희의 일로 엄마도 마음이 많이 아프셨나봐." 

    ".....형의 일이라니?" 

    "눈앞에서 바로 자기를 지키려다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죄책감으로, 어린 나이에 

    주위에서 말릴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망가트려 가며, 싸움을 하고 문제를 일으켰나봐. 

    엄마가 가게를 내기 전에 몇 일 집을 비우신 거 생각나니?" 

    "응. 그 때 외가댁에 다녀오신다고........." 

    "아니, 그 때 서울에 있는 원희를 찾아가 조용히 타이르셨대. 그 뒤로 원희의 폭주가 

    조금 잠잠해지고, 엄마도 아저씨의 도움으로 목 좋은 곳에 가게를 내셨어. 

    아저씨는 좀 더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가게를 물색해 주셨지만, 엄마는 시간이 많으면 

    잡생각이 든다고 몸을 바쁘게 움직일 수 있는 작은 가게 하나면 충분하다고 거절하셨어." 

    "그랬었구나.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래. 그래서 어린 너에게 말하긴 좀 그랬어. 너가 원희를 친형처럼 따랐고, 

    또 원희도 자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기에, 너를 바로 볼 수가 없었을 거야. 

    오더라도 살짝 가게에만 들려 엄마에게만 인사를 하고 갔으니......이제 다 알았지?" 

    나는 누나에게 들은 이야기를 어두운 방안에 누워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 때 화장실에서 엿들은 대화 중.........사. 죄. 라는 것이 아빠의 죽음과 연관되었을 줄은.... 

    '민하야. 내가 직접 말하고 네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어.' 

    '다 알았는데도 그렇게 부르는 것을 보면 역시 내가 용서가 안되는 모양이구나. 

    미안하다. 깊은 상처를 줘서..........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그래서 그렇게 아프게 얘기했구나. 그래서 내 앞에 나타나지 못했었구나. 

    그 동안 승주, 아니 원희형에게 다가간 것도 나였다. 형은 아마 조용히 나를 지켜보려 

    했었겠지만,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석처럼 끌려 형의 주변을 맴돌며, 

    형의 곁에 다가가고 싶어 기회를 일부러 만들어 다가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 약을 먹이면서까지 나를 안은 것일까? 나야 그런 감정이었다고는 하지만, 

    형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다른 여학생이 있었으면서....... 

    동시에 두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할까? 

    그 간 형이 나에게 보인 것은 연장자로서의 자상한 배려도 있었지만, 

    연애감정도 다분히 있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 애정의 깊이가 짝사랑 끝에 

    이뤘다던 서울의 여학생에 비해 어느 정도인지는 형만이 알겠지만 말이다. 

    어찌됐건 잃었다고 생각했던 원희형을 다시 찾은 것만으로도 일단 감사해야겠지만, 

    나와 원희형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예전처럼 사이좋은 형과 동생사이로 만족해야되는 것인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자신이 없다. 

    하아! 산 너머 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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