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33)
  • 복도로 나오니 냉방이 잘 된 노래방과는 달리 후덥지근하다. 

    그래도 냉기가 빠져 나갈까봐 노래방 문을 꼭 닫아놔서 그런지 조금 전 머리 속까지 

    울리게 하던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약하게 들려 좋았다. 

    노래방 들어오면서 보였던 복도에 있는 남자화장실의 빈칸에 들어가 급히 바지를 내렸다. 

    이런.........조금 빨갛게 익어 화끈거리는 것이 쓰리다. 

    밖에 두런거리는 남자말소리와 함께 화장실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여름엔 맥주가 최곤데.......씨발.....물을 자주 빼서 귀찮아. 안그러냐? 

    "........" 

    아마 옆 호프가게의 손님인가 보다. 지퍼 내리는 소리가 울린다. 

    "야! 씹새끼야. 제수씨 언제 인사 시킬거야?" 

    약간 거칠게 내 뱉는 젊은 남자 목소리에 이어 귀에 익숙한 음성이 들린다. 

    "제수씨는......형수다. 임마. 쿡쿡." 

    승주 목소리 같은데...........제수씨???.........형수????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씨발!! 생각만 해도 좋냐? 아주 얼굴에 꽃을 달았구만!!!! 

    좋기도 하겠지~~ 풋.풋.한 영.계.라니~~" 

    "왜 부럽냐?" 

    맞다!!!!! 분명 저 낮은 톤의 굵은 목소리는 승주다. 

    ...................제.수.씨.................풋.풋.한.영.계...................... 

    무슨 소리지?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녀석과 붙어 있으면서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녀석과 나는 동급생이니까 분명 나는 아닐테고.......... 

    .........그럼 혹시 몇 일전 결석했을 때??!!! 

    "씨발......천하의 바람둥이가 짝사랑에 목 맨 순정파였다니......이루니 좋냐?" 

    "말해봐야 입 아프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심하게 맞은 기분이다. 

    ..................짝사랑에 목 맨 순.정.파..............이.루.었.다.고............... 

    아릿하게 가슴 한켠이 아파와 손으로 가슴을 쥐어 잡았다. 

    천하의 바.람.둥.이!!!! 그래서 키스라던가 나와의 관계 시 그렇게 능수능란 했었나!! 

    "씨발.....좋기도 하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는 나이에, 

    떨어져 있으면 고무신 거꾸로 신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그래.....그렇겠지.......... " 

    조금 사이를 두고 녀석의 씁슬한 소리가 들린다. 

    ............떨어져 있다면.........역시..........서울에!!!!!!....................... 

    그래서 학교까지 아프다고 핑계 대고 몇 일씩 결석하면서, 

    서울에 있는 그 여학생과........ 

    나는 우.습.게.도 뭐라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씨발.....왜 갑자기 땅은 파고 지랄이야. 얼굴 펴. 씹새끼야!!! 

    모처럼 기분 좋게 마신 술, 다 깨네. 담배나 한 대 내놔 봐." 

    담배까지 피우고 나가려나 보다. 나는 바지를 내린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소리가 날까 움직이지도 못한 채, 저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참담한 기분을 맛보고 있다. 

    그런 거였나......나에게 할 말이 있었다는 것이........그 여학생 얘기를 하려고....... 

    실수였었다구.....그냥 호기심이었다고.........그래서 미안하다고.......하려고.................. 

    녀석은 관계 후에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었다. 

    나는 최음제를 먹이고 호기심 때문에 관계를 가졌었기에 사과하는 줄 알았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나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내게 미안했었니? 

    아니면 그 여자를 생각하며 그 여자를 향해 죄책감 때문에 읖조린거야?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는 의미를......... 

    아니. 미안하다는 의미보다 왜 내게 약을 먹이고 그렇게 만들었니? 

    왜 하필 나야??!!!! 

    왜 이렇게 마음 아프고, 지독한 배신감이 느껴질까? 

    "찰칵.....찰칵......" 

    "후우--" 

    라이터 켜는 소리와 연기를 내뿜으며 한 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의 담배 피는 모습이 그려진다. 괴로움에 두 눈을 꼭 감았다. 

    "너 어제 걔 만나서 다 불고 사죄한다더니 불었냐?" 

    "아직......." 

    이건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사.죄.........어제 그렇게 뜸들인 것이.......... 

    점점 확실해졌다. 

    우리 일은 단순한 호기심에 의한 불장난이었다는 것을, 

    그저 어른들이 탐닉하는 세계에 대한 치기 어린 호기심이었을 뿐.................. 

    이런 줄 까맣게 모르고 혼자 착각하고, 설레면서, 기대한 내 자신이 너무 바보스럽다. 

    후후...그러면 그렇지.......남자끼리......그럴 일 없는데.........혼자 바보처럼 들떠서......... 

    "씨발!! 언제까지 끌건데? 이제 깨끗하게 정리해야지." 

    "그래. 정리해야지." 

    ...........정.리............그 말이 내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다. 

    어제 승주와 시내에서 가진 데이트 같았던 시간들은, 

    녀석이 나에게 최대로 배려한 최후의 만찬쯤이 되는 것인가...... 

    "퉤!!! 날씨도 좇 같은데, 그만 땅 파라. 호진이가 우리 화장실에서 빠져 죽었는지 알겠다." 

    "그래." 

    "........참!! 너 그 약 써봤지? 효과 죽이냐?" 

    아!! 이 사람이 그 날 녀석과 통화한 친구인가 보다. 그 약이라면 내게 먹인 최음제!!!!!!! 

    나는 녀석의 대답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두 사람은 발걸음을 옮기면서 말을 한다. 

    "죽이지. 끝내줬다." 

    "씨발......홍콩 간다더니 정말인가 보네. 너 남은 것 싸그리 내게 넘겨." 

    "그 약은 뭐하게?" 

    "크크.....찍어논 애가 있는데, 넘어올 듯 넘어올 듯 감질나게 꼬리를 뺀단 말이야. 

    이번에 그 약 써서 한 입에 꿀꺽 먹어야지." 

    먹는다는 저속한 표현을 쓰는 저런 사람이 녀석의 친구라니..... 

    녀석 또한 그 약을 써서 나를 먹은 셈이 되는가? 나는 너무 허탈했다. 

    문 밖을 나서려는 것인지 소리가 멀어진다. 

    "잠은 우리 집에서 잘 거지?" 

    "씨발!!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오늘은 우리 어마니 얼굴 한 번 뵈야지. 그리고 

    내 동생도 아까 남자친구랑 노래방..........." 

    밖이 조용하다. 겨우 겨우 지탱하고 있던 몸이 빠지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런 거였나...........겨우.....이런 것 때문에 그 동안 혼자서 그렇게 고민했었나......... 

    가슴이 답답해오면서 무언가 불덩이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다. 

    "민하야~ 민하야~" 

    밖에서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는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민하야~ 여기 없어?" 

    내 파트너가 걱정이 돼서 나를 찾는 것 같다. 나는 멍한 정신을 겨우 챙기면서 일어나 

    옷을 추리고 복도로 나갔다. 그 여학생이 안절부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데인 곳은 괜찮아? 아무리 기다려도 들어오지 안길래, 걱정이 돼서....." 

    "아니. 괜찮아. 그것보다 미안하지만....." 

    내가 말을 꺼내자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보는 세림이란 여학생의 얼굴이 

    귀까지 붉어지며 나와 눈을 못 맞추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 모습이 무척 익숙하다. 

    .............나도 승주를 보았을 때 저런 눈빛에, 저런 얼굴표정이었을까? 

    "응.......뭔데?" 

    "아이들에게 나 먼저 간다고 말 좀 전해 줘." 

    "왜? 데인 곳이 많이 아픈거야? 괜히 내가 잘못해서..........." 

    "아니야. 데인 곳은 정말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여학생 얼굴이 금방 울 듯이 바뀌며, 곤란한 듯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을 한다. 

    "......혹시......내가 마음에......안 들어서. 그래서" 

    "아, 아니야. 그냥. 집에 빨리 들어오라고 했는데....그래. 그런데 늦어버려서" 

    갑자기 옆 호프집의 문 앞에서 급한 남자의 소리가 들린다. 

    "씨발!!! 야. 임마! 아닐 수도 있잖아!!!!!!" 

    우리가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니, 문을 사납게 재치고 나오는 승주가 보인다. 

    한 눈에 보기에도 무척 화가 난 모습이어서 섬뜩하다. 

    아!!! 눈이 마주쳐 버렸다. 나는 놀래서 나도 모르게 한 두 발자국 뒷걸음을 쳤다. 

    승주가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뒤이어 따라 나와 그런 승주의 팔목을 잡은 

    노란머리의 남자가 굳어있는 나를 놀랜 듯이 쳐다본다. 

    녀석이 잡힌 팔을 털어 내며, 잔뜩 화가 나서 굳은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듯이 말을 뱉는다. 

    "김.민.하!!!!" 

    "........." 

    "이게 뭐야!! 혹시나 했더니......." 

    내 앞에 있는 여학생이 나와 마찬가지로 겁을 잔뜩 먹고 몸을 움츠리며 

    내게 이런 상황을 묻듯 쳐다본다. 나는 그 여학생에게 잠시 눈길을 맞추었다. 

    갑자기 승주가 앞으로 몸을 내밀어 내 팔목을 확 잡아챈다. 나는 엇 소리 못하고 

    녀석에게 팔목을 꽉 붙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꼴이 되어버렸다. 

    나는 잡힌 팔목을 다른 손으로 떼어내려고 애쓰며 급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이거 놔!!! 놔!!" 

    "잔 말 말고 따라와. 지금도 겨우 꾹 참고 있으니까." 

    어금니를 악물고 진짜 참고 있다는 듯 낮게 내뱉고는 잡은 팔목을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더 꽉 부여잡고 몸을 끌어당긴다. 

    꽉 잡혀 저려오는 팔목의 아픔보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위태로운 승주가 너무 무섭다. 

    나는 질질 끌려 굴러 넘어질 듯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밖은 거센 바람과 세찬 빗줄기로 태풍이 온 것을 실감케 한다. 

    꼭 지금의 승주 모습과 흡사하여, 나는 불안감에 몸을 움츠리고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반항하지만, 녀석은 전혀 개의치 않고 내 팔목을 단단히 잡아끌고 그 빗속에 안긴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려 버린 걸까.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머리에 물을 쏟아 부은 듯 

    퍼붓는 빗줄기에 금새 온몸이 흠뻑 젖어버리고 눈조차 바로 뜨기 힘겹다. 

    승주는 이런 폭우 속에서도 전혀 주저 없이 내 팔목을 꽉 잡은 채, 

    건물 뒤편을 돌아 가로등도 없는 어둡고 후미진 곳으로 끌고 간다. 

    그 곳은 복잡한 건물 앞편과는 다르게 마치 다른 세계처럼 죽은 것처럼 조용하고 컴컴하다. 

    겨우 몇 대의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는 것을 식별할 수 있을 뿐 어지러운 빗소리만 들린다. 

    녀석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을 조금 앞으로 뻗는다. 

    "삑!!" 

    짧은 기계음과 동시에 그 곳에 있던 차 한 대의 후진등에 불이 들어와 잠시 환해지며 

    밝은 색 스포츠카의 뒷모습이 보이고, 셔터가 굳게 내려진 창고 같은 주위 건물이 식별된다. 

    승주는 그 차의 보조석을 열어 나를 거칠게 안으로 밀어 놓곤 문을 세게 닫는다. 

    "으윽! 쾅!!!!!!" 

    낮은 차체에 부딪히지 않게 몸을 웅크려서 밀려 타는 바람에, 머리와 어깨가 등받이에 

    세게 부딪혀 얼얼하다. 녀석이 그 사이 반대쪽 운전석의 문을 열고 

    올라타는 것이 보여 나는 도망치려 급히 몸을 돌려 문으로 손을 뻗쳤다. 

    "쾅!!!! 어딜!!" 

    녀석이 재빨리 올라타 문을 닫고, 내 뒷덜미를 빠르게 낚아챈다. 

    "....아악.....이거 놔!!!! 놔!!!!!" 

    나는 갑자기 뒷덜미를 잡힌 탓에 몸이 운전석으로 젖혀진 상태가 되었지만, 

    공포감과 불안에 심하게 팔을 내저으며 오로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심하게 바둥거렸다. 그 바람에 차체도 심하게 요동을 치며 흔들거린다. 

    "이런, 가만히 있어!!!!!" 

    "싫어!! 내릴 거야!!! 놔!!!" 

    녀석이 보조석으로 건너와 내 두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붙자고, 심하게 발버둥치는 

    내 몸을 등받이에 파묻히게 녀석의 몸으로 힘껏 누른다. 나는 그 무게에 잠시 주춤거렸다. 

    녀석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 팔을 푼 채 몸을 조금 옆으로 굽힌다. 

    "....????...........!!!!!.......으앗!!!" 

    내 기댄 등받이가 갑자기 뒤로 젖혀 버리는 바람에 몸이 균형을 잃고 시트와 함께 뒤로 

    젖혀졌다. 녀석은 그런 내 위에 엎드린 자세로 몸에 무게를 싣고 올라타, 

    자유로워진 내 양 팔목을 재빨리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격하게 입술을 포개려 얼굴을 내린다. 

    "시, 싫어!! 싫어!!! 안 돼!!!...........하, 하지마!!!!" 

    나는 녀석의 얼굴을 피해 고개를 이리 저리 돌렸다. 

    턱과 얼굴에 녀석의 까칠한 수염이 닿아 따끔거리면서도 오싹한 느낌에 얼굴을 숙였다. 

    "...하아!........하아!..........." 

    ".....으흐.........하.....하지마!!.......아아..........시........싫.......어..............." 

    ".......후우...........하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