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33)
  • 수요일, 오늘 역시 자리가 비어있다. 오늘까지 못온다고 했다지만 그래도 기다려진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 뒷문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혹 녀석이 올까 싶어..... 

    성재와 경덕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뒤에서 낄낄대며 야단이다. 

    이틀을 승주 생각에 잠을 설쳤더니 머리가 아픈데다 아이들 웃는 소리조차 짜증이 난다. 

    뒤통수를 때린다. 보나마다 성재다. 나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뜩이나 짜증나 죽겠는데 왜 가만있는 사람을 건드리고 난리야!!!!" 

    "어...어...너 왜 그래? 내가 뭘 어쨌다고?" 

    평상시 한번도 화를 내지 않던 내 모습에 성재와 경덕이가 놀랜 모습이다. 

    나도 모르게 그만 신경이 날카로워서 소리를 지르고 만 것에 후회가 된다. 

    미안하기도 하지만 변명하기도 귀찮아 그냥 나와서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에 세수를 하고 거울 속에 나를 보았다. 정말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 

    온통 머릿속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승주 생각뿐이다. 

    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에 가득한 승주 생각을 물에 헹구어 내고 싶다. 

    내 발걸음은 당연한 것처럼 오피스텔로 향한다. 여전히 모든 게 그대로이다. 

    오토바이도 문틈에 끼워 둔 쪽지도....... 

    3번째 메모를 끼워두고 돌아섰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기다릴게. -민하'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펴놓고 생각에 잠겨 있다. 

    몇 일 새 나의 모든 생각의 기점은 승주로 시작해서 승주로 끝난다. 

    어떤 이유에 선지는 모르겠지만 승주는 3일씩이나 결석을 했다. 

    목요일까지는 온다고 했다지만 이대로 영영 못 보는 것이 아닐까 불안하다. 

    머릿속에는 녀석에게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일들이 나쁜 쪽으로 상상되어 진다. 

    거의 4일 동안 녀석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권승주라는 늪 속에 내가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민하야. 자니? 뭐 하느라 사람 온 줄도 모르고 있어. 공부하고 있었니?" 

    나는 내 생각에 빠져 엄마와 누나가 돌아온 줄도 몰랐다. 엄마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말을 걸었을 때야 겨우 알아 차렸을 정도다. 

    나는 얼떨결에 공부 핑계를 대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어. 지금 왔어요? 수학에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어 풀다보니, 온 줄도 몰랐네." 

    "아이구 기특해라. 다른 사람들은 자식들이 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학생본분에 맞지 않는 

    이상한 짓거리하고 다니면서 부모 애를 먹인다는데, 정이나 너나 그런 일 없이 

    바르게 커 준거 보면 엄마는 정말 고마워." 

    엄마 앞이라 내색은 못하지만 너무 찔린다. '학생본분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벌써 

    나도 저질렀지 않는가. 몇 일전 승주와....../////.......엄마. 미안해. 

    "민하야. 내일 학교 끝나고 가게에 들렸다 엄마랑 같이 집으로 오자." 

    "왜? 무슨 일 있어?" 

    순간 엄마는 조금 서운한 눈빛이다. 내가 무슨 말 실수를 한 걸까? 

    "내일 아빠 제사잖아. 엄마가 장 봐서 누나랑 가게에서 음식 만들어 놓을 테니까, 

    집에 오는 길에 들렸다 같이 들고 가자고.....깜빡 잊었었니?" 

    아아.....맙소사! 내가 정말 왜 이럴까? 아빠,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다. 

    승주 생각 때문에 아빠 제사는 정말 거짓말처럼 잊고 있었다. 나는 내일 끝나는데로 

    가게에 들려서 엄마와 함께 제사에 쓸 음식을 들고 집으로 오기로 약속했다. 

    아빠! 죄송해요. 아빠 돌아가신 날도 기억 못하다니....... 

    목요일, 조금 들 뜬 마음으로 일찍 등교했다. 녀석을 조금이라도 일찍 보고 싶어서. 

    그런데.......오전 내내 교실 문을 지켜보지만 녀석은 오지 않았다. 

    이제는 이렇게 기다리는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진다. 

    6교시 끝나는 종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이런저런 생각에 몇 일 계속 잠을 설친데다, 

    음악실에서의 음악감상은 수면제 효과를 주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거리길 몇 번, 

    잠깐 엎드린 것이 잠이 들어버려 종소리와 술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겨우 일어났다. 

    짧은 잠이 못내 아쉬워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길 몇 분, 음악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이제야 정신이 든다. 이런, 음악실은 본관과 많이 떨어져 있는데..... 잘못하면 수업에 

    늦겠다 싶어 급히 서둘러 책을 챙기고 문을 나서려 한 발을 내딛었다. 

    누군가 나와는 반대로 급히 음악실로 들어오면서 나가려던 내 팔을 낚아 

    안쪽 음악실 벽에 내 몸을 밀어 부친다.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음악책과 필통이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벽에 부딪힌 어깨와 등이 얼얼하다. 나는 얼떨결에 당한 일이라 그저 황당하기 짝이 없다. 

    나는 양 팔목을 상대방에게 붙잡혀 엉거주춤 만세한 자세로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다. 

    나를 벽에 밀어 부친 상대는 내 양팔을 꽉 잡은 채 내 어깨에 머리를 묻고 

    나에게 조금 기댄 자세로 급하게 뛰어왔는지 거칠게 숨을 내 고른다. 

    그리웠던 낯익은 향내와 함께 어렴풋이 향불 냄새가 맡아진다. 

    .............녀석이다!!!!!! 

    "스, 승주?" 

    짧은 순간이지만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한 느낌이다. 내 어깨에 머리를 묻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한시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다. 눈으로 보고 싶다. 

    순식간에 온 몸이 끓어오르는 열로 주체할 수가 없다. 

    "하--아........" 

    내 어깨에 묻고 있는 상대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이 순간조차 너무 길게만 느껴진다. 

    눈이 마주쳤다. 

    맞다!!!! 녀석이다. 몇 일 동안 내 마음을 송두리째 뺏어버린 녀석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 할 것도 없이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나는 녀석에게 목말라 정신없이 입술을 부비며 녀석을 갈구했다. 

    녀석도 이런 내 마음과 같은지, 내 입술을 정신없이 핥고 빨아 당긴다. 

    아아!!! 

    나는 그저 녀석이 내 앞에 돌아왔다는 기쁨과 흥분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곧이어 녀석의 뜨거운 혀가 미끄러지듯 내 입을 가르고 들어온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내 혀를 감아 키스에 뜨겁게 응했다. 

    녀석과 이렇게 마주하고 있지만 나는 녀석에게 그저 목이 마르다. 

    우리는 흥분한 채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아무 생각없이 키스에 몰두한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떨어져 있던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키스하고 또 키스했다. 

    서 있을 힘조차 없을 정도로 녀석에게 매달려 그렇게 오랫동안 키스를 하고 

    한참만에 겨우 입술을 떼고, 얼굴이 상기된 채 그제서야 녀석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얼굴이 조금 수척해져 있고 피곤하게 보인다. 

    다행히 아이들이 입방아 찧던 사고를 저지른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 녀석이 입고 있는 옷은 우리 학교 교복이 아니라 짙은 색의 세미 정장이다. 

    그 동안의 일에 대해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피곤한 얼굴을 보니 묻기가 어렵다. 

    겨우 한마디 해본다. 

    "어떻게 된 거야? 걱정했잖아?" 

    "미안해.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몸은 괜찮아?" 

    ........////////.......빨리도(?) 물어본다. 그 날 일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버렸다. 

    "일 처리하고 바로 학교로 달려 온거야?" 

    "오피스텔에 들렸는데 문틈에 끼워진 쪽지를 읽었어. 

    그리고 경비아저씨에게 네 얘길 들었어.........한참을 문 앞에서 기다렸다는 것을"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이 돼서......그 날도 너에게 말 없이 도망치듯 뛰쳐나오고....." 

    "기뻤어. 너가 그렇게 말도 없이 가버려서 다시는 나를 안 볼 줄 알았거든." 

    "설마.......그 날은........" 

    말을 하기가 곤란하다. 아직 녀석의 마음도 모르고 있는데, 

    내 감정에 대해 토로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 같아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맙소사.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린다. 

    "남은 수업에 들어가야지?" 

    "너는?" 

    "잠깐 너 얼굴 보려고 바로 달려온 것 뿐이야." 

    불안하다. 혹시 이대로 계속 못 볼 것만 같다. 

    "그럼 내일은 꼭 학교에 나오는 거지?" 

    "그래." 

    "정말 내일은 꼭 나오는 거 맞지?" 

    나는 어린아이처럼 계속 확인을 한다. 녀석은 그런 내 머리를 헝클리 듯 쓰다듬어 주며 

    조금 웃는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안도한다. 

    "그래. 내일은 너에게 할 얘기도 있고." 

    "할.......얘....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복도에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마 음악실 이동 수업인가 보다. 

    녀석은 바닥에 떨어진 내 책과 필통을 주워 내게 건네 준다. 

    "늦겠다. 내일 보자." 

    나는 녀석의 말에 궁금즘이 들지만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함께 복도를 나와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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