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33)

나는 손가락도 까딱할 힘이 없어 축 늘어져서 녀석의 밑에 깔려 있다. 

녀석도 사정의 여운으로 나른한 모양인지 나를 끌어안은 채 미동을 하지 않는다. 

이 공간에는 에어컨이 가동되는 소리와 내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있는 

녀석의 얕고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혹시 녀석은 이대로 잠이 들어버린 걸까? 

조금 전 격렬했던 정사로 서로의 체온이 높은 데다 안긴 상태로 있으니 조금 덥다.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조금 움직였다. 

아아......!!!!!!!!!!!..............믿을 수가 없다. 

내 안에 이어져 있는 녀석의 것이 다시 꿈틀거리며 커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째 이런일이!!!!!! 

최음제는 혹시 내가 아니고 녀석이 먹은 것이 아닐까?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커지다니!!!!!!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빨리 이 순간을 모면하고 싶어 다시 한번 몸을 움직였다. 

등뒤에 있는 녀석이 그제야 고개를 드는 것이 느껴진다. 

"움직이지마. 조금만 더 이렇게.....잠시......안고만 있을게" 

하.....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점점 내 안에 있는 녀석의 것이 팽창하는 것이 느껴진다. 

덜컥 겁이 난다. 한 번은 멋모르고 했다고 하지만........그 찢을 듯한 생생한 고통이.... 

나는 어찌할 줄 모르고 녀석의 말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잠시 후 녀석은 살며시 몸을 움직여 조심스럽게 이어진 부분을 떼고 

일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바닥을 딛고 내려서는 발소리가 들린다. 

나는 엉거주춤 들고 있던 엉덩이를 힘없이 침대에 내렸다. 

이상하게 나를 안고 있었던 녀석의 체온이 사라지고 나니 허전함과 함께 

몸이 급속도로 차가워지는 것 같다. 

에어컨의 냉기가 그 때서야 피부에 느껴지며 몸에 소름이 돋는다. 

바닥에 내려선 녀석은 그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엎드려서 꼼짝도 하지 않는 

내 몸 위에 무엇인가를 덮어주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톡!....찰칵" 

스위치 켜는 소리와 욕실문이 조심스럽게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제서야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내가 깔고 앉은 이불에 정액으로 젖은 얼룩이 보이고, 내 다리에 흘러내린 수건이 보인다. 

아까 샤워 후 녀석이 허리에 걸쳤던 큰 수건으로 내 몸을 덮어주었었나 보다. 

나는 그 수건을 끌어다 이불의 얼룩을 문질러 닦고 내 하체 주변도 대강 닦았다. 

이 침대에서 몇 일전 녀석과 첫 키스를 하고.......오늘......조금 전에.......안겼었다. 

그 때 녀석은 내 얘기를 듣고 호기심에 이끌렸던 듯 키스를 했고, 

나 역시 놀랬었지만 그런 녀석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고 응했고 들떴었다. 

오늘 역시 녀석이 호기심에 최음제라는 약을 먹였겠지만, 

나는 알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묘한 기대감으로 녀석에게 끌려, 안긴 후 쾌감을 느꼈다. 

녀석은 단순히 호기심이었겠지만,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야겠지만.......나는....... 

몸에 닿는 에어컨 냉기가 너무 춥게 느껴진다. 현실을 보라고 질책하는 것 같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호기심과 흥분으로 일을 치른........허...무...하...다. 

나는 이제야 현실 속에 돌아와 알 수 없는 비참함을 느낀다. 

내가 그 동안 녀석에게 품었던 감정이 그냥 단순한 동경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깨달아지며, 여전히 그 전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로 

돌아 갈 우리 사이를 생각하니 도저히.....지금의 현실이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잠잠했던 욕실에서 이제야 물소리가 들린다. 

짧은 시간은 아니었는데 녀석도 욕실에서 지금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단순한 호기심에 약을 먹이고 나를 안은 것을........후회하고 있을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읖조렸던 녀석의 낮은 음성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된다. 

'.....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 

서서히 고개를 쳐드는 알 수 없는 슬픔과 혼란스러운 내 감정 탓인지 

덩그란히 혼자 지키고 있는 삭막한 이 공간이 견딜 수 없게 숨이 막힌다.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어졌다. 이 알 수 없는 혼돈스러운 감정에서 도망치고 싶다. 

나는 쫓기는 사람처럼 허둥지둥 옷을 꿰어 입고 가방을 챙겨 오피스텔을 나왔다. 

뒤에서 얼핏 나를 부르는 녀석의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놓고 욕실로 들어가 옷도 벗지 않은 채 

샤워기 아래서 찬물을 맞으며 한참을 서 있다. 

녀석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그저 끌린다는 이유로 녀석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것은 내 감정을 숨기기 위한 

허울좋은 포장이었다. 나는 지금에서야 이 감정의 실체를 깨닫는다. 

아.....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에 젖어 달라붙은 옷을 벗어 한쪽 구석에 밀어놓고 대강 손으로 

문질러 씻기 시작했다. 앞은 그런 대로 씻었지만 뒤는....... 

내 몸에 있는 것이지만 한번도 내 것 안에 손을 넣어본 적이 없어 조금 망설여진다. 

손으로 만져보니 욱씬거리는 통증만 있을 뿐 미끌거리는 정액의 느낌은 전혀 없다. 

그럼 아까 뒤에서 들렸던 부스럭거리는 소리는......포장된 콘돔을 뜯는 소리였나..... 

샤워를 마치자 너무 큰 피로감에 침대에 눕자마자 몽롱하게 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아스라이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이 들렸지만...... 

지금은......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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