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33)

녀석과 시험공부를 같이 하면서부터 나는 종례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가게로 달려간다. 

아침에 미리 부탁해놓은 포장도시락을 들고 바쁘게 오피스텔로 가서 

함께 저녁을 먹고 12시 정도까지 집중해서 공부하는데 웬만한 독서실보다도 낫다. 

거기다 녀석이 맘 잡고 받았다던 고액의 과외 덕분인지 상당히 실력이 있어 

내가 애매해 했던 부분을 알기 쉽게 가르쳐주어 공부하기가 수월하다. 

녀석은 수학뿐만 아니라 영어와 다른 과목을 모두 잘 한다. 

암기과목 역시 중점부분만 정리해서 넘겨준다.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데 왜 수업시간에는 모르는 척 발표도 하지 않는 걸까? 

이제는 서먹하거나 어색하지 않아 곧잘 녀석에게 말을 걸었고 녀석도 자주 웃는다. 

"이대로만 하면 이번에 5등 안에 들겠다." 

"평상시에는 어느 정도 했는데?" 

"간당간당 반에서 10등정도......." 

"...............학과는 정했어?" 

"컴퓨터에 관련된 학과나 공대계열 쪽.........." 

"의외네." 

"뭐가?" 

"이과계열보단 문과계열 분위기인데" 

"컴퓨터나 공대 쪽이 취직이 쉽잖아." 

"취직 때문에 이과계열로 정한 거야?" 

"우리 집은 남자가 나 하나거든. 내 위에 누나가 있는데 갑자기 집안에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대학을 포기하고 엄마 일을 돕지만, 요즘은 형편도 나아졌고 

엄마는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길 원해." 

".......그럼, 대학은 어디 목표인데?" 

"글쎄........그야 목표는 Y대나 H대를 생각하지만......" 

"생각하지만?" 

"모의고사 보면 서울에 있는 낮은 대학 정도고, 잘 봤다 싶으면 좀 알려진 대학...... 

그것도 열심히 했을 때 말이지. 지방대학은 그런대로 무난한 것 같은데..... 

서울은 아무래도 좀 어렵겠지?" 

"그렇지 않아.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 가자." 

"너는?" 

녀석은 잠시 생각하는 듯 뜸을 들인 후 말한다. 

"우리 열심히 해서 Y대 함께 다니자!"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녀석 꿈도 크다. 얼마나 코피 터지게 공부를 해야 하는데..... 

아니다!!! 녀석은 지금 내게 가르쳐 주는 실력을 보니 노력하면 가능하겠지만......나는....... 

하기사, 목표를 높게 잡고 공부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래. 꼭 함께 다니자." 

오늘은 방과 후 청소당번이라 학교에 남았다. 

대강 청소를 하고 나오는데 누가 뒷통수를 친다. 보나마나 성재다. 

"임마. 너 요즘 집에 꿀 발라 놨냐? 끝나면 쏜살같이 없어지는 게.......너 연애하지?" 

"무슨? 기말이 얼마 안 남았는데......." 

"짜식. 그 때 나랑 같은 독서실 끊기로 했잖아?" 

"아......그냥 집에서 하는 게 편해." 

"너 과외받냐?" 

"아니, 무슨 우리 집 형편에..... 나 늦었어. 먼저 간다." 

나는 인사를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시계를 보니 오늘은 가게에 들리기에는 

시간이 늦다. 오피스텔에서 시험공부를 시작하고부터는 꼭 엄마가게에 들려 저녁식사분과 

함께 녀석의 아침 식사분을 준비했는데........ 오늘은 그냥 시켜먹어야 겠다. 

"44, 45, 46, 47....." 

오피스텔에 들어가니 녀석이 땀을 흘리며 바닥에 엎드려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날씨도 더운데 힘도 좋다. 50까지 세고는 일어선다. 

"날씨도 더운데, 일부러 땀 흘리네." 

"어. 요즘 규칙적인 생활을 했더니 살이 붙는 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나도 그렇다. 꼬박 앉아서 공부하고 식사를 제 시간에 했다. 

"나도 요즘 살이 찐 것 같아. 나도 운동 좀 해 볼까?" 

"아니. 딱 보기 좋아. 밖에 덥지? 콜라 줄까?" 

"내가 꺼내 마실게." 

"그래. 나 세수 좀 할테니 쉬고 있어." 

녀석이 욕실로 가는 것을 보고 냉장고를 열었다. 여전히 휑하다. 음료와 물, 맥주..... 

다행히 내가 넣어 둔 포장도시락은 없다. 꼬박 아침으로 챙겨먹었나 보다. 

나는 콜라 2개를 꺼내 상위에 놓고 책을 꺼내 놓았다. 녀석이 금방 나온다. 

우리는 총정리에 들어갔다. 저녁을 중국집에서 시켜먹고 나머지 공부를 했다. 

이대로면 분명히 이번 시험은 자신있다. 나는 자신감과 흡족감에 피곤하지도 않았다. 

남은 이틀은 대강만 정리해도 여유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가방을 챙겼다. 

"내일은 토요일인데 여기 와서 함께 밤샘할까?" 

"그래. 내일은 집에 들렸다가 잘 준비해서 올게." 

"잘 가." 

"응. 잘 자." 

이제 인사도 자연스럽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내일 녀석과 함께 밤샘한다는 기대감에 왠지 조금 들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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