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33)
  • 토요일이다. 나는 약속한대로 녀석의 집으로 서둘러서 왔다. 한쪽에 정교자상이 놓여 있다. 

    우리는 먼저 점심을 먹은 후 시험 계획을 짰다. 일단 중요과목을 훑기로 했다. 

    '사각사각' 수학문제를 풀며 샤프를 열심히 움직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되었다. 나는 풀다가 막힌 부분이 있어 참고서를 뒤적이고 있다. 

    녀석을 보았다. 녀석은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지만 책은 보고 있다. 

    막힌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녀석이 옆으로 앉더니, 그 문제를 간단하게 푼 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나는 놀래서 다른 문제를 내밀었는데 그것 역시 깔끔하게 

    풀고 핵심을 잘 짚어 이해하기 쉽게 보충설명을 해준다. 

    "와! 대단하다. 이렇게 풀면 되는구나. 수학선생님보다 더 설명을 잘 해." 

    "그래?" 

    "서울학교 애들은 수준이 높아?" 

    "그렇지 않아. 하기 나름이야." 

    "어떻게 이런 문제를 쉽게 풀어? 공부 잘했나봐?" 

    "아니, 마음 잡느라고....... 겨울에 고액 과외 받았어." 

    그렇구나. 도움을 주겠다는 나의 예상과는 틀리게 내가 녀석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 

    시간을 보니 벌써 7시다. 대강 책을 밀어놓고 가져온 도시락을 먹었다. 

    놈의 집에는 텔레비전이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시간을 뺏길 것이 없다. 

    "커피? 아니면 콜라?" 

    "너는?" 

    설마 공부하는데 그 때처럼 캔맥주는 아니겠지? 

    "나는 커피." 

    "그럼 나도 커피 줘......... 내가 끓일까?" 

    "아니. 원두 내리면 돼." 

    익숙한 솜씨로 커피를 꺼내 커피메이커에 담아 물을 붓고 스위치를 켠다. 

    밥 먹은 후라 소화도 시킬 겸 나도 일어서서 서성이며 상을 치운다. 

    방을 둘러보니 흔한 사진 한 장 보이지 않고 눈요기할게 없다. 정말 삭막하다. 

    "가족은 없어?" 

    "서울에 아버지가 계셔." 

    "어머니와........ 형제는?" 

    "이혼하셨어. 어머니는 재혼해서 일본에 있고, 나 혼자야." 

    그래서 혼자 지내는구나............ 이 녀석도 외로운 놈이구나............ 

    담배를 한 대 꺼내 핀다. 

    집에 담배 피는 사람이 없어 담배냄새를 싫어하는 편인데, 이 녀석이 피는 담배향은 좋다. 

    녀석이 머그잔에 커피를 따르며 묻는다. 

    "어쩌지? 내가 블랙으로 마셔서 설탕과 프림이 없는데." 

    "그럼 나도 블랙으로 마실래." 

    못미더운 눈으로 머그잔을 건넨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한 모금 마시는데........ 

    .......!!!!!!.......으윽....쓰다. 

    뱉지고 못하고 그냥 꿀꺽 삼켰다. 더 이상 마시지 못하고 들고만 있다. 

    "잠깐 담배 좀 사올게." 

    녀석이 담배를 끄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남은 커피를 개수대에 흘려버리고 싱크대 위에 놓았다. 

    어라. 담배가 반갑 가량 남아있는데......... 간식 사러 갔나? 

    나는 다시 상 앞에 앉아 정리한 책과 참고서를 폈다. 

    조금 후 녀석이 돌아와 가스렌지에 물을 얹고, 사온 군것질거리 몇 개를 상위에 놓는다. 

    이 녀석 입맛도 참 별나다. 

    커피는 쓰게 마시는 놈이 과자는 죄다 단 것 뿐이다. 

    빼빼로, 홈런볼, 자유시간, 칙촉, 쵸코하임.........보기만 해도 느글느글 질린다. 

    이렇게까지 초콜릿 매니아 일 줄은....... 

    그러고 보니 처음 온 날 아주 진하게 코코아를 타 주었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 중에 제일 덜 달 것 같은 홈런볼을 까서 몇 개 먹는데, 녀석이 머그잔을 내민다. 

    보니 연한 갈색의 커피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다고 했는데? 

    싱크대 쪽을 보니 일회용 커피믹스 박스가 보인다. 

    "잘 마실게. 혹시....... 커피 때문에 일부러 나갔다 온거야?" 

    "아니. 과자 사는데 덤이라고 줬어." 

    "어디서? 나도 가는 길에 엄마 가게에서 쓰라고 사가야겠다." 

    "아니. 끝났어. 반짝 세일이었거든." 

    "그럼. 나 지금 잠깐 가서 사올게." 

    "아니. 내가 마지막으로 집어 왔어." 

    "내일 또 할까? 거기가 어딘데?" 

    "그냥 그런 곳이 있어. 자, 공부하자!!!" 

    자식! 그냥 좀 알려주지. 이 곳에서 16년 넘게 살았지만, 과자 몇 개에 일회용커피를 

    덤으로 끼워주는 곳은 본 적이 없다. 

    혹시 오토바이 타고 몇 정류장 떨어진 큰 마트에라도 다녀왔나? 

    우리 집은 재래시장을 이용해서 모르지만, 가끔 신문에 섞여 들어오는 

    전단지보면 덤 상품을 많이 주던데......... 

    흠..........보기보다 알뜰한 녀석이네. 

    우리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10시가 조금 넘어 나는 정리를 하고 가방을 챙겼다. 

    내일은 일요일이니 오전에 서점에서 만나 필요한 문제집을 구입해서 공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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