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16)

"그"는 좀 이상한 면이 있었다.

항상 저녁 6시가 되면 광장에 나와 비둘기에게 먹이

를 준다. 게다가 정확히 1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과 비둘기 만을 바라본다. 때때로 토지와 

눈이 마주치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바보같은 미소를 

짓는다.

옷도 비싸보이고 행동도 그저 그런 녀석이 아닌 것 

같다.

때때로 굉장히 최신형의 페라리가 그의 앞에 멈추고 

그 안에서는 모델같은 여자가 튀어나와 그를 데려가

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도 일감 중 하나라 생각했는데.... 토지의 

생각이 틀린 것 같다.

오늘도 그는 광장에 나와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준다.

토지의 시선은 어느덧 그가 있는 쪽으로 고정된다.

20살 정도?

그 정도로 보이는 그는 비둘기들을 보며 해맑은 미소

를 짓는다. 그 미소에 괜시리 화가 나는 토지다.

푸드덕 거리며 한마리의 비둘기가 토지의 어깨위에 

올라 앉는다.

귀찮다.

쫓아 내는 것이 더 귀찮아 다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

보고 있는데 녀석은 떨어져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다. 

게다가 자꾸만 꼬르륵 대는 배.....

2틀 정도 굶은 거 같다....

늘 생활이 되어 있기 때문에 죽을 만큼은 아니다...

그다지 뜨겁지도 않았지만 오랜만에 비추던 밝은 햇

살이 사라졌다.

'뭐야?'라고 고개를 든 순간, 그가 서 있다.

독일인 전형의 밝은 갈색머리, 깔끔한 외모.. 오똑한 

.. 약간 구릿빛 나는.........그렇지만 하얀 피부.... 해맑은 

미소 사이로 하얀 치아가 눈에 돋보인다.

갈색 코트를 입은 그 남자는 오히려 자신보다 더 소

년같아 보인다.

정말 깜짝 놀랐지만 토지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초점

없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안녕, 꼬마야?"

시선을 돌린다.

저 미소가 꼴보기 싫다.

"부.....부모님은............안 계........시니?"

무슨 의도로 저런말을 해대는 건지....

토지는 다른 일에 집중을 해 보려 하지만 모든 것이 

따분한 상황에서 그가 하는 말은 신선한 충격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가 자신을 깨끗한 여관방으로 

데려다 줄 거라는 생각때문인가?

"보............보호단체에 가야 하는 거 아냐?"

보호단체....

그 말에 움찔한다.

한마디로 고아원....

그 곳에 가면 지긋지긋한 규칙과 잔소리에 얽매이게 

된다.

이 사람이 나를 그곳에 보내려는 건가?

'당신이 뭔데............'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가 가

만히 내 머리위에 손을 올린다.

"지.........집이 없니?"

대꾸하기 싫다.

없다고 하면 나를 그 악마들의천국-보호단체를 말한

다-에 집어 넣을 생각인가?

"보호단체엔 안 가."

퉁명스레 던진 그 한마디에 그의 얼굴이 바보같이 밝

아진다.

"버.........벙어리가 아니구나........ 너............... 형네 집에 

안 갈래?"

토지는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 본다...

웃기는군....... 내가 왜 그의 집을 가?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토지는 그의 집에 와 있었다.

일감인가......... 이자식? 

이렇게 생각한 순간..... 그가 무언가를 던진다. 

엉겹결에 받아들자..... 그것은...... 옷......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차가운 햇살이 고개를 집어 넣으려 한다.

날씨에 대한 불만도....... 자신앞에 서 있는 남자에 대한 의문도 잊은 채 

그냥 창가에 섰다.

우울한 날씨군,........

하지만 독일 날씨야 다 그게 그거 아니던가?

화려하진 않지만 결코 초라하지도 않은 ......... 

게다가 혼자 살기엔 너무 큰듯한 집.....

윙윙대며 켜져있는 컴퓨터 모니터.... 깔끔한 부억..... 몇몇개의 문이 있

는 걸로 보아 이게 다가 아닌가보다.

당연 크다고 단언할 수 있는 집...

갑자기 자신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직업에 의문을 갖게 된다.

재벌집 아들인가?

보통 남자들은 일<?>을 치룰때 자신들의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는다.

위험 부담이 크다고 생각해서인것이다.

특이한 사람이다.

토지는 창가에 서서 해 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관

찰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가 씩 웃는다.

그 미소에 머리가 이상해 짐을 느낀다.

난 아직 미성년자다..........

미성년자를...... 그것도 남자를 이런곳에 데리고 와서 그렇고 그런 짓을 

할 인간이라면... 안 봐도 뻔한 거 아니겠어?

똑같아......

이 사람도..........

어른들은 원래 그래.......... 그래............

똑같은 짐승.

토지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주섬주섬 옷을 벗어대기 시작했다.

 이제 막 남자다운 골격을 내비추고 있는 토지의 몸은 조각같이 섬세

하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옷을 벗는 토지를 보며 그 남자가 기겁을 하는 

것이 보인다.....

"이........ 이봐......... 왜...... 왜이러는 거야........?"

처음부터 더듬대는 저 말투도 싫다.

깔끔한 저 마스크도 갈갈이 찢어 발기고 싶다.

하지만

그의 외침에 멈칫한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멈추라는 얘긴가?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

내가 너무 말라서 그런가?

그런뜻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멈추라는 의미였다....

왜지?

왜 멈추라는 거지?

빵 한조각이 먹고 싶었어.

단지 빵조각과 베이컨이 먹고 싶었다........

하다못해 뮌헨 길거리에 그 흔하디 흔하게 널린 훈제 소세지라도......

그런데 왜 저런 눈으로 나를 보는걸까?

내가 뭔가를 잘못한걸까?

그가 나의 손을 잡는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얼떨결에 뿌리친다.

조용한 침묵.....

"네.....네가..... 머.......물방을 알......려 주려고.... 그...그런거야..........."

머물다니..... 누가? 내가.........? 내가 왜 이 큰 집에 머무른다는 거지?

"지...... 집이 없잖아.....너......."

수치심이랄까? 

 뭔가 기분나쁜 느낌이 자신을 옭아맨다.

해맑은 웃음.....

왜 저렇게 배시시하게 웃는거지?

내가 애고, 니가 어른인데....

왜 자꾸 이런 기분이 들까?

"나...... 난 호....혼자 살아.......... 너....랑 나랑 둘이...... 살....살아도.... 집은 

넓으니까........."

도대체 왜 자신과 같이 살고 싶어하는 지 토지는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사람.... 굉장한 말더듬... 그에 반해 말이 많다. 

 자신에게 자꾸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긴장했는지 땀이 보

인다. 닦아주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은 또 왜일까?

그의 말 하나하나... 거슬린다.

아무 생각 없이 눈을 비볐다.

 항상 당황하거나 뭔가를 생각할라치면.. 눈이 가렵다.

"어..... 아.....잠.....잠깐.... 눈을...그렇게 비벼대면... 가...각막이......"

그 말에 손을내린다. 무슨 소린진 모르지 손을 내려야 할 것만 같았다.

"여.......여기 있지 않을래?"

"...................."

"계....계속 같이 살자는 게 아니고.... 그....그냥.... 너 갈 데 생길 때 까지

만....."

계속되는 싸늘한 침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잘조잘 잘도 떠들어 댄

다.

다시금 시선을 창기로 돌리자 그제서야 입을 다무는 그....

"꼬르르륵......."

자신의 뱃속에서 나는 소리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가 보인다.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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