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좀 이상한 면이 있었다.
항상 저녁 6시가 되면 광장에 나와 비둘기에게 먹이
를 준다. 게다가 정확히 1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과 비둘기 만을 바라본다. 때때로 토지와
눈이 마주치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바보같은 미소를
짓는다.
옷도 비싸보이고 행동도 그저 그런 녀석이 아닌 것
같다.
때때로 굉장히 최신형의 페라리가 그의 앞에 멈추고
그 안에서는 모델같은 여자가 튀어나와 그를 데려가
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도 일감 중 하나라 생각했는데.... 토지의
생각이 틀린 것 같다.
오늘도 그는 광장에 나와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준다.
토지의 시선은 어느덧 그가 있는 쪽으로 고정된다.
20살 정도?
그 정도로 보이는 그는 비둘기들을 보며 해맑은 미소
를 짓는다. 그 미소에 괜시리 화가 나는 토지다.
푸드덕 거리며 한마리의 비둘기가 토지의 어깨위에
올라 앉는다.
귀찮다.
쫓아 내는 것이 더 귀찮아 다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
보고 있는데 녀석은 떨어져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다.
게다가 자꾸만 꼬르륵 대는 배.....
2틀 정도 굶은 거 같다....
늘 생활이 되어 있기 때문에 죽을 만큼은 아니다...
그다지 뜨겁지도 않았지만 오랜만에 비추던 밝은 햇
살이 사라졌다.
'뭐야?'라고 고개를 든 순간, 그가 서 있다.
독일인 전형의 밝은 갈색머리, 깔끔한 외모.. 오똑한
.. 약간 구릿빛 나는.........그렇지만 하얀 피부.... 해맑은
미소 사이로 하얀 치아가 눈에 돋보인다.
갈색 코트를 입은 그 남자는 오히려 자신보다 더 소
년같아 보인다.
정말 깜짝 놀랐지만 토지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초점
없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안녕, 꼬마야?"
시선을 돌린다.
저 미소가 꼴보기 싫다.
"부.....부모님은............안 계........시니?"
무슨 의도로 저런말을 해대는 건지....
토지는 다른 일에 집중을 해 보려 하지만 모든 것이
따분한 상황에서 그가 하는 말은 신선한 충격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가 자신을 깨끗한 여관방으로
데려다 줄 거라는 생각때문인가?
"보............보호단체에 가야 하는 거 아냐?"
보호단체....
그 말에 움찔한다.
한마디로 고아원....
그 곳에 가면 지긋지긋한 규칙과 잔소리에 얽매이게
된다.
이 사람이 나를 그곳에 보내려는 건가?
'당신이 뭔데............'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가 가
만히 내 머리위에 손을 올린다.
"지.........집이 없니?"
대꾸하기 싫다.
없다고 하면 나를 그 악마들의천국-보호단체를 말한
다-에 집어 넣을 생각인가?
"보호단체엔 안 가."
퉁명스레 던진 그 한마디에 그의 얼굴이 바보같이 밝
아진다.
"버.........벙어리가 아니구나........ 너............... 형네 집에
안 갈래?"
토지는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 본다...
웃기는군....... 내가 왜 그의 집을 가?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토지는 그의 집에 와 있었다.
일감인가......... 이자식?
이렇게 생각한 순간..... 그가 무언가를 던진다.
엉겹결에 받아들자..... 그것은...... 옷......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차가운 햇살이 고개를 집어 넣으려 한다.
날씨에 대한 불만도....... 자신앞에 서 있는 남자에 대한 의문도 잊은 채
그냥 창가에 섰다.
우울한 날씨군,........
하지만 독일 날씨야 다 그게 그거 아니던가?
화려하진 않지만 결코 초라하지도 않은 .........
게다가 혼자 살기엔 너무 큰듯한 집.....
윙윙대며 켜져있는 컴퓨터 모니터.... 깔끔한 부억..... 몇몇개의 문이 있
는 걸로 보아 이게 다가 아닌가보다.
당연 크다고 단언할 수 있는 집...
갑자기 자신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직업에 의문을 갖게 된다.
재벌집 아들인가?
보통 남자들은 일<?>을 치룰때 자신들의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는다.
위험 부담이 크다고 생각해서인것이다.
특이한 사람이다.
토지는 창가에 서서 해 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관
찰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가 씩 웃는다.
그 미소에 머리가 이상해 짐을 느낀다.
난 아직 미성년자다..........
미성년자를...... 그것도 남자를 이런곳에 데리고 와서 그렇고 그런 짓을
할 인간이라면... 안 봐도 뻔한 거 아니겠어?
똑같아......
이 사람도..........
어른들은 원래 그래.......... 그래............
똑같은 짐승.
토지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주섬주섬 옷을 벗어대기 시작했다.
이제 막 남자다운 골격을 내비추고 있는 토지의 몸은 조각같이 섬세
하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옷을 벗는 토지를 보며 그 남자가 기겁을 하는
것이 보인다.....
"이........ 이봐......... 왜...... 왜이러는 거야........?"
처음부터 더듬대는 저 말투도 싫다.
깔끔한 저 마스크도 갈갈이 찢어 발기고 싶다.
하지만
그의 외침에 멈칫한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멈추라는 얘긴가?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
내가 너무 말라서 그런가?
그런뜻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멈추라는 의미였다....
왜지?
왜 멈추라는 거지?
빵 한조각이 먹고 싶었어.
단지 빵조각과 베이컨이 먹고 싶었다........
하다못해 뮌헨 길거리에 그 흔하디 흔하게 널린 훈제 소세지라도......
그런데 왜 저런 눈으로 나를 보는걸까?
내가 뭔가를 잘못한걸까?
그가 나의 손을 잡는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얼떨결에 뿌리친다.
조용한 침묵.....
"네.....네가..... 머.......물방을 알......려 주려고.... 그...그런거야..........."
머물다니..... 누가? 내가.........? 내가 왜 이 큰 집에 머무른다는 거지?
"지...... 집이 없잖아.....너......."
수치심이랄까?
뭔가 기분나쁜 느낌이 자신을 옭아맨다.
해맑은 웃음.....
왜 저렇게 배시시하게 웃는거지?
내가 애고, 니가 어른인데....
왜 자꾸 이런 기분이 들까?
"나...... 난 호....혼자 살아.......... 너....랑 나랑 둘이...... 살....살아도.... 집은
넓으니까........."
도대체 왜 자신과 같이 살고 싶어하는 지 토지는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사람.... 굉장한 말더듬... 그에 반해 말이 많다.
자신에게 자꾸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긴장했는지 땀이 보
인다. 닦아주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은 또 왜일까?
그의 말 하나하나... 거슬린다.
아무 생각 없이 눈을 비볐다.
항상 당황하거나 뭔가를 생각할라치면.. 눈이 가렵다.
"어..... 아.....잠.....잠깐.... 눈을...그렇게 비벼대면... 가...각막이......"
그 말에 손을내린다. 무슨 소린진 모르지 손을 내려야 할 것만 같았다.
"여.......여기 있지 않을래?"
"...................."
"계....계속 같이 살자는 게 아니고.... 그....그냥.... 너 갈 데 생길 때 까지
만....."
계속되는 싸늘한 침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잘조잘 잘도 떠들어 댄
다.
다시금 시선을 창기로 돌리자 그제서야 입을 다무는 그....
"꼬르르륵......."
자신의 뱃속에서 나는 소리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가 보인다.
"배.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