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애들이 너무 많다. (20/20)
  • 4. 애들이 너무 많다.

    〈제국 원년 273년, 4월 18일. 오전에 잠시 맑고, 오후에 흐림〉

    간밤에 애가 열이 났다.

    유모가 조심스레 들어와 애가 아프다고 말해서 알았다.

    평소 같으면 그냥 내버려 둘 텐데, 굳이 날 깨운 걸 보니 이상해서 갔더니 열이 무척 높았다.

    기침, 오한, 발열.

    언제부터 아팠냐고 물었더니, 오후부터였다고 한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 왜 그런 말을 나한테 안 하지?

    왜 하필 로메인이 없을 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한바탕 화를 내려다가, 그게 문제가 아니어서 일단 의원을 깨웠다. 아마 자기들은 의원을 깨우지 못하니 날 깨운 모양이다.

    일어난 의원들이 해열제를 지어 주었다. 가루로 만든 해열제를 물에 개어 먹이려고 하는데, 애가 약이 썼는지 잘 안 먹는다.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어디서 모유에 섞여 먹으면 약을 잘 먹는단 소리를 들은 게 생각이 났다.

    유모도 셋이나 있는데 굳이 내 젖을 먹일 필욘 없어서 버리고 있었는데….

    어차피 버리는 젖, 애한테라도 먹자는 심정으로 짜서 섞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잘 받아먹었다. 열은 한 시간 뒤에 내렸다.

    혹시 싶어 유모들을 다 불러 놓고 교대 근무를 시키라고 했다.

    내가 요즘 바빠서 사람 감독을 못 했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사람을 더 뽑든가, 바꾸든가 해야겠다.

    〈동년 4월 20일. 햇빛 반짝〉

    에디는 이틀간 열이 오르락내리락했다가 오늘 열이 다 내렸다.

    그나마 젖은 제때 제대로 먹고, 변도 잘 봤다.

    애가 먹성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언제 소식을 들었는지, 전하와 아버지가 와서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고, 에디를 보고 갔다. 제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알아보는지, 방긋방긋 웃는 게 기특했다. 따라온 여동생은 에디를 보고 오오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조금 놀랐다.

    쟤가 벌써 저렇게 컸나?

    그나저나 아버지는 역시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네 여동생은 한 번도 안 아프고 잘 크던데, 왜 네 아들은 맨날 아프냐?”

    꼭 오면 저렇게 복장 터지는 소리를 한마디씩 하고 간다. 정말 아버지 때문에 성질만 난다. 그게 지금 나한테 할 말인가? 애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미치겠는데.

    콱 죽여 버리려다가 참았다. 저런 인간이라도 어머니 남편이고, 내 아버지고, 여동생 보호자니까. 만일 아버지가 어디서 칼 맞아 죽는다면, 분명 혓바닥 잘못 놀려서 죽은 것일 테다.

    늦둥이 키우면 사람이 좀 철도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머니는 애를 둘을 키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내일은 로메인이 돌아온다고 한다.

    아무리 유모가 있어도 로메인 하나만 못한 거 같다.

    어서 왔으면 좋겠다. 보고 싶다.

    〈4월 21일. 하루 종일 맑음!〉

    로메인이 왔다.

    로메인이 나간 건 도적 소탕 때문이다. 원래 이 시기엔 도적들이 없는데, 화전민이 유입되는 바람에 공작령 근처 도로가 엉망이어서 소탕하러 간 거다.

    솔직히 공작 부군이 그런 일 하는 건 영 맘에 안 든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사람들 눈 때문에 간 건데, 간 사이 이런 일이 있어 속상하다.

    돌아온 로메인은 에디가 아팠다는 소리를 듣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놀랐겠군요. 괜찮습니까?”

    “에디는 괜찮아요. 열도 내렸고….”

    “에디야 물론 괜찮겠지요. 그 개월 수의 아이들이 밤에 열 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원래 아이들은 아프면서 자라니까요. 지금 내가 말하는 건 당신입니다 렉시. 혼자 무서웠을 텐데…. 괜찮습니까?”

    애가 아니라 날 먼저 걱정하는 로메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로메인이 화들짝 놀라 달래 주며 미안하다 말하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게 바로 행복이란 것이겠지.

    난 정말 결혼 잘한 거 같다.

    〈5월 1일, 비 내린 뒤 안개〉

    요즘 에디의 먹성이 좋아졌다. 원래는 젖 반병을 먹었는데, 거의 한 병을 다 먹는다.

    대신 하루에 젖을 일곱 번 먹었다가 한번 줄었다.

    수유 텀이 길어지고 양이 는 걸 보니 애가 슬슬 크려나 싶다.

    참, 저번에 사고 친 유모들은 모두 보냈다. 생각해 보니, 애가 아픈 걸 말 안 한 게 나도 너무 괘씸해서…. 오늘부턴 새 유모들이 아이를 본다.

    젖유모 빼놓고는 모두 교체했는데, 저번에 아이가 아픈 일로 로메인이 화가 단단히 났나 보다. 그나마 젖유모가 살아남은 건 오로지 내 덕분이다. 로메인은 모두 다 바꾸려고 했으니까.

    “그 밤에 당신을 깨우다니, 제정신이 아니군요. 애초에 유모를 들인 이유는 당신이 쉬라고 한 겁니다. 당신은 이 거대한 성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육아는 그들이 해야 할 직분인데 그걸 감히 당신에게 전가하다니…!”

    귀족가의 시녀들 출신을 유모로 들인 것이 잘못이었다며, 그는 안 간다 버티는 유모들을 모두 내쫓았다. 새 유모를 뽑는 일은 후작 부인이 도와주셨다.

    “남자들이 다 그렇지. 이런 건 여자가 봐야 안단다. 어머, 아가. 너를 비난하는 건 아니란다. 애초에 이번 유모들은 다 로메인이 뽑았다며?”

    후작 부인은 투덜대며 여기저기 연락을 넣어 늙수그레한 유모들을 여럿 섭외했다. 생각해 보니 로메인이 데려온 유모들은 나이들이 제법 젊었다. 젊으니까 애들을 잘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하긴 어린아이를 키우는 건 체력이 반이니… 로메인의 생각도 일리는 있었지. 덕분에 그 사달이 일어나긴 했지만….

    〈6월 7일〉

    날이 조금씩 더워진다. 새로운 유모들은 에디를 잘 보고 있다. 그제는 에디가 뒤집는 시도를 하는 걸 보았다. 흠, 제 아버지를 닮은 걸까? 기사가 될 애들은 어릴 적에 싹이 보인다는데.

    물론 애가 한다고 해야 시키는 거겠지. 거기다 공작 자리도 있고.

    뭐 애가 커서 뭘 하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지. 지금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안 아프고. 뭐 그러면 된다.

    유모들 말론, 다음 달 즈음엔 이유식을 시작해도 된다고 한다. 이유식이라…. 잘 먹을까?

    잘 먹으면 좋겠다.

    요즘 애가 쑥 컸다. 날 알아보는 걸까? 내가 살짝 말을 거니 웃으면서 옹알이를 했다.

    에디는 처음보다 많이 예뻐졌다.

    피부도 희어지고, 숱도 많아서 이젠 어디 가도 사랑스럽다는 소리를 들을 법하게 변했다. 하긴 누구 아이인데. 아무렴.

    하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 피부가 조금 덜 하얀 거 같다. 아무리 남자애라도 피부가 조금 흰 게 나은데…. 태어날 때 빨갛게 생기면 희댔는데, 왜 우리 에디는 안 그럴까? 나는 어릴 적부터 피부가 백옥 같았다는데, 얘는 누구를 닮아서 이러는 걸까.

    그래도 이목구비는 날 닮았으니 예쁘단 소리는 들을 거다.

    어서 크렴, 에디.

    〈9월 7일, 비〉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서 백부에게 진찰을 받았다. 자꾸 체하고, 졸아서 어디가 문제가 있어도 확실히 있다 싶어서 받은 진찰이다.

    어디가 아파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가만히 진찰하시던 백부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한다 싶더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전하. 감축드립니다.”

    “뭐가 말인가요? 제 건강이요?”

    “아이고, 모르셨군요. 전하, 회임하셨습니다. 에디의 동생 말입니다.”

    “……예?”

    너무 당황했다. 에디를 낳은 지 얼마나 됐다고?

    “애, 애라뇨? 원래 아이를 낳고 이 년간은 애는 안 들어서는 거 아니었나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연년생 형제들이 없겠지요. 하하하!”

    “…….”

    안 그래도 가을이라 바쁜데, 이게 무슨 난리람?

    로메인에게 말했더니 빨개진 얼굴로 만세를 해서 무안해 죽는 줄 알았다. 그렇게 좋은가? 아니 뭐, 나도 좋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빠른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긴 에디에게도 형제가 있긴 해야 하니까, 낳을 때 빨리 낳는 게 좋긴 하지만.

    기쁘기도 하고, 조금 심란하기도 하고 그렇다.

    어쩐지 이상하게 신 게 먹고 싶더라.

    저번에 로메인이 얻어다 준 속곳을 입긴 해야겠다. 첫애와는 달리, 이번엔 입덧이 심하다.

    〈제국 원년 275년, 7월 9일, 더움〉

    오하라가 오늘 또 토를 했다.

    에디랑 다르게 얘는 먹는 게 너무 까다롭다. 미각이 얼마나 예민한지 모른다.

    에디는 슬슬 유모 수를 줄이고, 가정교사를 들일 때가 되었는데 오하라 때문에 유모 수를 줄일 수가 없다.

    매일 매일 에디가 얼마나 순한 애였는지를 깨닫는 나날이다.

    보통은 여자애가 순하고, 남자애가 사람 미치게 한다는데 어찌된 게 우리 집은 그 반대인지 모르겠다.

    어린 것이 벌써부터 성미가 대단하다. 맘에 안 드는 유모가 젖을 내밀면 젖을 깨물어서 피를 내질 않나, 목이 쉴 때까지 울질 않나.

    이유식은 안 먹는 게 너무 많아서, 고기를 먹일 때마다 늘 고군분투다.

    아이는 고기를 먹어야 잘 크는데…. 저래서야 어디 키가 크려나 걱정이다.

    제 아버지가 안아 줘야 잠이 드는 건 어떻게 좀 고쳐야 하는데….

    덕분에 로메인이 고생이 많다.

    기사가 아니었다면 그 기나긴 밤을 어떻게 견뎠을까….

    역시 남자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

    〈제국 원년 278년, 3월 7일, 눈〉

    셋째가 생겼다.

    이번은 오하라같이 놀랍지는 않다. 이젠 나도 경험치가 있는지, 진찰 전에 대충 눈치를 챘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놀라운 건, 원래 용의 피가 섞이면 애가 잘 안 태어난다고 한 거 아니었나? 나랑 로메인이 궁합이 좋은 건가.

    여하간 셋째가 싫진 않다. 어머님에게 말해서, 유모를 구하는 게 조금 귀찮아질 것 같긴 하지만….

    아직 로메인은 모르는데, 오늘 밤에 깜짝 놀라게 해 줘야겠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278년, 3월 8일〉

    로메인이 발을 삐어서 의무실에 누웠다. 나 때문이다.

    어제 내가 로메인을 앞에 두고 셋째가 생겼다 이야기했는데, 멍청하게 계단가에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이 바보 같은 남자가 그만 그 자리에서 펄쩍 뛰다가 뒤로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데굴데굴 구르는 로메인을 보는데, 얼마나 눈앞이 아찔하던지.

    아무리 기사라도 10미터가량 되는 계단가에서 구르면 다친다. 참 어처구니없는 건, 아플 텐데도 불구하고 계속 웃고 있었다는 거다. 오죽하면 의무실로 옮기는 기사가 혹 머리가 다친 건 아닌지 걱정했을까.

    덕분에 내 임신 사실은 하루가 가기도 전에 성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날 보면서 축하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하는 것도 민망할 노릇이다.

    〈278년, 7월 9일, 비〉

    조산기가 있어서 의원들을 불러 모았다. 이게 무슨 난리지…. 아이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로메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먼저 생각하라고 백부에게 말하는 중인데, 내가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

    내가 없으면 아이가 무슨 소용이냐고…. 자기도 따라 죽을 거란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맙소사.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다. 우리 에디와 오하라 생각하면 죽어도 죽을 수 없다. 내가 죽으면 저 남자는 분명 혼자 날뛰다 죽고 말 텐데, 그럼 우리 애들은 고아다.

    후작 부인과 후작이 계시지만 그 두 분만 믿고 있을 순 없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있긴 하지만, 아버지는 솔직히 믿음도 안 가고.

    조금 있다 산실에 들어간다.

    힘내자.

    〈278년, 7월 20일, 아마도 맑음〉

    며칠 만에 일기를 쓴다. 그 간은 아이가 태어난 뒤 정신이 없어서 쓰기 힘들었다. 사실 쓰는 지금도 조금은 힘들다. 이번 출산은 유달리 힘들었다.

    이번 출산은 시기가 빨라서 많이 걱정했고, 또 날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이 혼란해했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길까,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솔직히 나도 걱정 많이 했는데, 애를 낳고 나서야 이번 출산이 왜 예전과 달랐는지 알게 됐다.

    애가 쌍둥이였다.

    “…쌍둥이요?”

    강보에 싸인 애들을 보고 있는데 정신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쌍둥이라고? 진짜?

    늘 내 출산을 도와준 로메인의 백부가 재주도 좋다며 허허 웃었다.

    “아들, 딸이 한 명씩 느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미안합니다. 고생했습니다, 렉시.”

    눈물 줄줄 흘리는 로메인의 얼굴엔 감격과 안도가 동시에 자리해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 기쁘긴 한데… 솔직히 좀 얼떨떨하다. 셋이 아니라 단박에 넷이 되다니. 내 가족계획은 셋이 다였는데 단박에 무너졌다.

    그래 어쩐지 이상했지. 묘하게 다른 때보다 태동도 심하고, 무겁더라. 난 애가 그냥 좀 큰 줄 알았지… 설마 쌍둥이일 줄이야.

    세상에 이게 무슨 난리야.

    이제 나는 자손은 낳을 만큼은 다 낳은 거 같다. 공작가 역사상 이렇게 다산한 공작은 없다고 하는데, 이러다 나 미인공(美人公)이 아니라 다산공(多産公)으로 불릴지도 모른다.

    에디랑 오하라는 새로 태어난 동생들을 보고 신기해하고 있다. 에디는 벌써부터 남동생이 생겼다고 엉덩이를 흔드는데 그걸 보니 조금 걱정스러운 게 사라졌다. 침대에서 누워 아이들을 불렀다. 애들이 도도도 내게 달려왔다.

    “엄마! 일어나셨어요? 동생들이 너무 예뻐요!”

    “맞아요, 예뻐요!”

    에디와 오하라가 동시에 내게 매달리자 로메인이 빨개진 눈을 살짝 닦고 둘에게 주의를 줬다.

    “에디, 오하라. 아빠가 아까 뭐라고 그랬지?”

    “엄마 아프니까 얌전히!”

    “아프니까 얌전히!”

    팔을 팍 들고 짹짹대는 애들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에디, 오하라. 동생이 생기니 좋니?”

    “네! 너무 좋아요! 남동생이 있어요!”

    “저도 좋아요! 여동생이 있어요!”

    에디와 오하라는 서로 사이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둘이 좋아하는 놀이가 다르다 보니 생기는 문제는 종종 있어 왔다. 성별이 같은 동생들이 생기니 곧 그 문제가 사라질 것 같아 신났나 보다. 나는 심란했던 맘을 버리고 배시시 웃었다. 그래, 생각해 보니 짝이 딱 맞는 게 좋지 뭘. 아주 완벽하네. 

    애들이 짹짹댔다.

    “근데요 엄마, 동생들 너무 쪼끄매요. 언제 커요? 언제 동생들이랑 놀 수 있어요?”

    “나 동생이랑 소꿉놀이할래요.”

    “나는 공놀이! 공놀이할래요!”

    그걸 하려면 못해도 삼 년은 지나야 할 텐데. 나는 입가에 웃음을 매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들은 아직 어리니까, 많이 커야 그렇게 놀 수 있어. 많이 잠 자야 해.”

    “얼마나요? 백 밤 자면 돼요?”

    “헉, 백 밤!”

    이제 숫자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백이란 건 어마어마한 숫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 밤 자고, 엄마 아빠 말 잘 들으면 그렇게 될 거야. 그때까진 오하라와 에디, 둘이 사이좋게 지내야 해. 그럴 수 있지?”

    “쳇…!”

    “힝.”

    둘 다 단풍손을 꼼작대며 몸을 비비 꼰다. 가만히 보고 있던 로메인이 슬며시 끼어들어 애들을 달랑 안아 들었다.

    “어허, 엄마를 괴롭히는 이 못된 아기들은 누구지? 응?”

    “아앗 괴물이다! 괴물이 잡아 가요 살려 주세요!”

    “아빠, 아빠! 높이 높이 해 줘요!”

    커다란 팔에 달랑 들린 애들이 까르륵대며 웃는다. 로메인이 애들을 잡고 풍차처럼 빙빙 돌자 웃음이 더욱 커졌다. 한참을 그렇게 놀아 주던 로메인이 내가 피로함을 토로하자 고개를 끄덕이고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

    “자, 이제 나가자! 엄마한테 안녕 해야지?”

    “엄마 안녕! 내일 봐요!”

    “안녕! 안녕! 엄마 내일 봐요!”

    아이들이 나가자, 곧 눈앞이 가물가물해진다. 잠을 자기 직전에 생각했다.

    이제 가족계획은 다 끝낸 것 같으니… 앞으론 꼭 피임을 하자고.

    넷은 키우겠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283년, 7월 23일, 맑음〉

    날이 슬슬 더워졌다. 에디, 오하라, 란텔, 페니어는 체험 학습 겸 놀이 겸 죄다 외갓집에 보내 놨다. 일종의 피서다.

    산 아래 있는 페르귄 영지는 어쨌거나 이쪽 공작성보단 시원하다. 주변에 계곡도 있고 그러니 열심히 놀고 오라고 해야지. 페르귄 영지에서 아버지가 뭐라 뭐라 하는 항의 서한이 오긴 했는데, 아버지는 양심이 있으면 그 정도 고생은 좀 해 봐야 한다. 솔직히 나는 아버지가 공으로 키웠다.

    내가 뭐 애들 혼자 보냈나? 유모들이랑 기사들도 여럿 보냈으니 외려 일손은 더 늘어났을 텐데. 선생도 보냈고 말이다.

    덕분에 성이 오랜만에 조용하다.

    성을 다니는 시종들의 얼굴색부터가 다른 걸 보니 내가 잘했다 싶다.

    적어도 애들이 간 한 달간은 추가되는 기물 파괴는 없을 것이다. 일렉트락 조합에서 얼마나 유리창과 유리상, 건축 자재를 사들였는지 요즘 프로하우스 성을 새로 지을 거란 이상한 소문까지 돈다. 내가 미쳤나, 성을 증축하게.

    애들이 부순 건축 자재가 성을 증축할 정도라는 게 가슴이 아플 뿐이다.

    오랜만에 로메인과 둘만 보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요 근래 너무 바빠서, 그를 너무 내버려 두었다.

    〈283년 9월 20일〉

    …이상하다.

    …피임, 분명히 했는데…?

    〈283년 9월 21일〉

    나는 …지금 공작가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모두 나를 이제 미인공이 아니라 다산공이라고 부를 것이다. 확실하다.

    사람들 보기가 쪽팔리다. 다들 날 보며 짐승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대체 소문은 왜 이렇게 빠른 거람?

    아버지가 벌써부터 축하한다고 왔다 갔는데, 순간 열 받아서 기절할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났다. 말이 축하지 약 올리러 온 거겠지. 어머니를 보라. 어머니는 축하보다 걱정된다며 약재부터 보냈다.

    아버지에게 말한 놈은 나한테 잡히면 죽는다. 어떤 사이인지 모르는 놈이 없을 텐데, 감히 내 성에서 뻐꾸기 짓을 해?

    정말이지 미치겠다.

    로메인은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신발도 뒤집어 신고 나에게 달려왔다. 어쩔 줄 몰라하며 내 옆에 붙어 있는데, 오늘은 정말이지 로메인 꼴도 보기 싫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정말이지 애들이 너무 많다구…!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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