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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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오니아 대륙 남부에 있는 사르칸트 제국은 백 년이나 지속되던 대륙 전쟁을 일거에 끝낸, 명실상부한 대륙의 패자다. 피오니아 대륙은 위아래가 볼록한 모래시계처럼 생긴 땅으로, 사르칸트는 그 아래쪽의 주인이었다.

    어째서 남부의 패자가 대륙의 패자가 될 수 있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이유는 이렇다. 피오니아의 홀쭉한 중앙부엔 만년설이 뒤덮인 그랜드-할루카 산맥이 있고, 그 위로는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빙벽과 얼음만이 존재한다. 물론 그곳에도 생명이 존재했다. 천 년 전 북방을 자기의 영토로 선포하고 잠이 든 드래곤 힐라그라스는 자신이 허락한 영토 아래서만큼은 생명이 살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고로 그곳은 국가이되 국가일 수가 없다. 인간의 땅이 아닌, 용의 땅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삼 요소란 국민, 주권, 영토인 법.

    사람이 살아도, 그들을 다스리는 인간이 있어도 점유하는 땅이 없다면 그건 나라가 될 수 없다. 고로 북에서 아무리 사람들이 떼지어 살아도 그건 나라가 아니고, 제국이란 명칭 역시 붙일 수 없다. 이게 바로 사르칸트가 대륙의 패자인 이유였다. 잠정적으로 용이 차지한 영토는 인간들이 다툴 수 있는 바 못 되었기도 했고 말이다.

    어쨌거나 사르칸트가 제국이 되자 무너진 나라는 수도 없었다. 한때 우글거리던 작고 큰 왕국들은 어떻게든 버티려고 애썼지만, 그저 그뿐. 많은 이들이 한줌 고혼이 되어 사라졌으며,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본래 정복이란 대단히 잔인한 것이다. 사르칸트의 황제는 정복령의 왕족들을 살려 두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점령지의 왕족이 살아 있다면, 그것은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된다. 삭초제근, 풀을 베려거든 뿌리까지 뽑는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예외도 있었다.

    사르칸트 제국은 자신에게 반항하는 자들은 용서하지 않았지만, 자진해서 왕국을 바친 이들은 자국의 귀족으로 만들어 포용했다. 이 경우 점령지의 국민들은 독립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왕족이 자진해서 나라를 버렸기에 구심점을 찾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르칸트는 그래서 뒤의 경우를 더 선호했지만, 앞서 말했듯 저건 극히 일부의 이야기로 대부분의 왕국들은 결사 항전 끝에 죄다 죽기를 택했다. 몰락 끝에 남은 것은 점령지에 꽃처럼 흩어진 왕족들의 수급뿐이었다. 왕족 몇은 도망친 이도 있었지만, 사실 그게 다였다. 사르칸트의 지배하에 들어온 나라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도망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냥 목숨만 건진 채 부평초처럼 떠돌던 왕족들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한 헛된 발버둥들이 모두 사그라든 끝에, 사르칸트는 제국의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명실상부한 대 사르칸트 시대의 개막, 제국의 건국이었다.

    그리고 200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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