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3 (6/7)
  • 외전 3

    연훤이 기억을 잃었다. 오 태감은 사라졌던 편두통이 다시 생기는 것 같았다. 이제는 황비마마가 된 아랑에게는 무엇이라고 고할 것이며, 기억을 잃은 자신의 주군에게는 무엇이라 설명을 드려야 할지 도통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저 익숙하게 희락기를 억제하는 약을 삼키고 집무실에 앉은 채로 잠깐 잠이 들었던 연훤이었다. 어제와는 다른 계절과 어제보다는 더 지쳐 보이는 오 태감을 보며 연훤이 물었다.

    “오 태감, 낯이 왜 그런가.”

    엉뚱한 말에 오 태감은 자신도 모르게 반문을 하고 말았다. 분명 어제는 여름이었는데 왜 겨울옷을 입고 있는 것인지, 연훤은 도통 알 수 없었다. 어디 아프냐는 연훤의 물음에 오 태감이 공손하게 답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을 찬찬히 듣고 있던 오 태감은 결국 하얗게 질려서 태의를 불렀다. 연훤은 소란스러운 상황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오고 어쩐지 중요한 뭔가를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폐하, 오늘이 며칠인지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 나와 장난치자는 건가? 들여름달-5월-이 아닌가.”

    연훤의 선선한 대답에 오 태감과 홍 태의만 두 눈을 마주쳤다. 두 노인네의 안색이 창백한 것에 연훤 또한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홍 태의는 약에 의해 기억이 잠시 소실된 것일 수도 있으며, 차차 돌아올 것이라고 말을 남겼다. 탕약을 올리겠나이다, 하며 종종걸음을 하며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걸음이 바빴다.

    “오 태감.”

    “예, 폐하.”

    “내가 한 해 가까이 기억을 잃었다는 것인가?”

    “정확하게는 폐하의 기억에서 한 해가 지나 마름달-11월-초의 겨울이옵니다.”

    어쩐지 공기가 불을 땐 것처럼 훈훈했다. 여름의 더운 기운이 아닌 추운 겨울을 데우는 그 따뜻함. 오 태감은 나태하게 앉아 있는 연훤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때는 아직 아랑을 만나기 전이었다. 그 당시의 연훤은 다소 성격이 나쁘고 충동적인 면이 있어서 조그마한 실수로도 무언가 크게 어긋날 것 같아 가슴이 다 조마조마했다.

    연훤은 그런 오 태감의 생각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탁자 위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눈을 감았다 뜨니 반 이상이나 날아간 시간이야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귀찮은 일이 있으면 후궁전에 있을 유겸과 청선현에게 맡겨도 될 일이었다.

    다만 그의 기억 속에는 두 사람이 아직 후궁전에 있다는 것과, 현재는 출궁을 한 상태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큰일이라면 큰일이었다.

    “일단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유겸과 청선현을 부르게.”

    “저어… 폐하.”

    “왜 그런 얼굴인가, 오 태감.”

    오늘따라 유난히도 창백하고 아련한 얼굴이라 연훤은 입안이 떫어졌다. 오 태감은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씀을 드려야 하나 막막한 마음밖에 없었다.

    “폐하께서 두 마마님… 아니, 두 분께 출궁을… 허하여 더 이상 궁에 계시지 않사옵니다.”

    연훤이 눈을 뜨자마자 들은 것 중 제일 황당한 말이었다.

    *

    먼저 자리를 떴던 홍 태의가 황제와 황비가 머무는 침궁으로 향했다. 연훤이 자신의 짝이며 하나뿐인 정인이라 공표하며 첩지를 한 차례 더 올려 주고서도 아랑에게 따로 궁을 하사한 것이 아니라 제 침궁 안에 꽁꽁 숨겨두듯 감춰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랑은 그 안에서 자유로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홍 태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랑은 맨 처음 보았던 짧은 머리카락이 아닌, 목을 덮을 정도로 차분히 긴 머리카락을 촘촘한 빗으로 된 비녀로 한 면을 쓸어 넘긴 상태였다. 도톰한 옷에 색상만 다를 뿐 연훤과 비슷한 무늬를 그려놓은 옷을 입은 아랑의 얼굴에는 발그레하게 홍조가 들어 있었고 처음보다도 보기 좋게 살이 올라 생기가 있어 보였다.

    “마마, 그것이… 그것이….”

    홍 태의 또한 오 태감과 같은 마음이었다. 대체 뭐라 설명한단 말인가. 폐하께서 기억을 잃으셨다? 그런데 마마는 전혀 기억을 못 하신다? 다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인데 그 말문을 여는 것이 어려워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찻잔을 만지던 아랑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혹,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

    “아니, 아니옵니다, 마마! 실은 폐하께서….”

    “연훤이…?”

    자연스레 나온 연훤의 이름에 홍 태의가 파르륵 몸을 떨었다. 황제의 진명을 부르다니, 총애가 남다르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게 사실이었구나. 홍 태의는 잠시 말을 멈췄다. 후, 후- 하며 숨을 고르며 행여나 누가 더 들을까 싶어 목소리를 낮추며 답했다.

    “폐하께서… 기억을 잃으셨사옵니다….”

    쨍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파편이 튀었다. 아랑이 움직임을 멈춘 채로 눈을 깜빡였다. 파편이 손등을 스쳤고 찻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당황하며 마마! 하며 부르는 소리가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 아랑이 그것을 수습하기도 전에 방을 뛰쳐나갔다.

    “마마, 천천히… 제발, 천천히 뛰십시오…!”

    아랑의 몸에 상처가 나게 만들다니 나는 죽었다, 나는 죽었어, 홍 태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그 뒤를 따랐다.

    홍 태의, 내 귀한 이의 몸에 상처가 나면 그대는 죽네.

    언젠가 딱 한 번 조용히 불러 말을 하던 기연훤이 떠올랐다. 홍 태의는 울고 싶었다.

    찬 바람이 폐 속을 가득 차게 만들었다. 달리느라 옷들이 거추장스러웠다. 행여 자신이 고뿔이 들까 싶어 옷을 꼭꼭 챙겨 입으라고 하던, 어젯밤에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목소리가 조금 아득해졌다.

    “하아-….”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정원은 삭막했다. 눈을 느릿하게 깜빡여도 봤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이의 걸음은 익숙하나 얼굴은 익숙하지 않았다. 아랑은 가슴이 답답하고 찌르르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자신이 정인이었다고? 제 첫 기억에 다정하게 속살거렸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표정이 저러했나? 어제 본 남자의 얼굴이 갑작스레 기억나지 않았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남자의 걸음에 마른침이 꼴딱꼴딱 넘어가고 이상한 위압감만 자리했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고 계시나요. 눈을 깜빡이면 눈물이 새어 나올 것 같아 겨우 뜬 채로 다가오는 연훤을 바라봤다. 메마른 표정으로 느슨하게 자신을 보는가 싶더니 곧 자연스레 스쳐 지나갔다.

    정인이라며.

    거짓말쟁이.

    막혀 있던 숨이 탁, 하며 터져 나왔다. 허억, 하며 다시 숨을 삼켰나 싶었는데 시야가 핑그르르 돌며 누군가 자신을 부르며 붙잡는 게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익숙하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아니어서 눈물이 났다.

    “마마, 마마!”

    그 기묘한 아수라장을 지켜보던 연훤은 알 수 없는 통증에 가슴을 문지르며 그곳을 빠져나갔다.

    *

    물에 빠진 듯 귀가 먹먹했다. 물에 빠진 게 아니라 불구덩이에 들어온 건가. 온몸이 아팠다. 눈가에는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정신이 혼미했다. 더듬더듬 옆을 더듬으면 허전한 이불만이 손에 스쳤다. 겨우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이 보였고 눈을 감으면 까마득한 더운 물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열이 이렇게 나서 어째….”

    흐릿한 정신 속에 들리는 목소리는 익숙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정신이 멍한 와중에 지탱하고 있던 무언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정인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거짓이었던 거지, 은연중에 알게 되어버린 아랑은 열이 펄펄 끓는 와중에 눈물만 뚝뚝 흘렸다.

    “연훤은요…?”

    “…음… 일하고 있을걸.”

    아랑을 만나기 전엔 일만 했던 그였다. 아픈 이를 다른 곳에 옮길 수는 없으니 자신이 밖으로 나가 있던 것이리라, 기억이 안 난다 하면서도 하는 짓은 다정하기 짝이 없었다.

    모르려면 아예 모르던가. 선현이 불퉁하니 입을 삐죽이며 아랑의 이마에 수건을 갈아줬다. 옆에 끼고서 잔뜩 먹여 놓더니 말짱 도루묵이었다. 겸이 연훤에게 가 있는 상태였고 선현은 아랑이 걱정되어 몰래 빠져나온 참이었다. 새액새액, 숨소리가 짙어지는 것을 확인하며 선현은 방 밖으로 나섰다. 오 태감이 밖을 서성거리다가 한걸음에 다가와서 고개를 조아렸다.

    “잠들었어, 폐하는 좀 어떠신가.”

    “여전히 기억이 없으시다 하옵니다….”

    “일은 여전히 잘 처리하고 있고 말이지?”

    선현의 입매가 삐뚜름했다. 맨 처음에 대뜸 정인이다, 하고 아랑을 데리고 왔을 때가 저절로 떠올랐다. 그랬으면 적어도 저 가엾은 이 고생은 시키지 말았어야지, 괜히 화가 나서 발을 뻥뻥 차며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 않아 초췌한 낯의 겸이 보였다. 그쪽에서도 딱히 이야기가 편하게 풀린 것 같지 않았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한숨부터 내뱉었다. 겸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

    연훤은 겸이 나가고 난 뒤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정인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이 하나로 내궁도 다 정리하고 후계도 그분께만 보겠다고 단언하셨지요.’

    처음엔 겸이 농을 치나, 싶었다. 장난이 담기지 않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을 한 탓에 그런 생각도 접어버렸지만. 그러다가 눈을 감으니 자신과 마주쳤던 이가 아릿한 향을 남기며 쓰러졌던 게 기억났다. 어땠더라, 머리카락은 길었나, 얼굴은? 눈 색은 어떠했지.

    정인이라고 데려왔다고 하는데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매우 불쾌한 일이었다. 연훤은 검미를 느릿하게 문지르며 턱을 괴고는 한숨을 뱉었다. 처리했어야 할 일들은 다 처리되어 있고, 자신들의 친우들은 이제 후궁이 아니라 어엿한 한 사람 몫을 하려 궁을 나갔다고 했다.

    타닥, 타닥. 손끝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무엇이냐고 직접 물어봐야 할까, 그리하자니 유겸이 전해 준 말로는 기억 잃은 이를 자신이 데리고 와 정인이라고 속여 탐했다고 했다. 뒷덜미가 뻐근했다. 일하는 것에 지장이 없으니 굳이 기억을 찾을 필요가 없을 듯한데 무언가 가슴 한쪽에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후회할걸요.

    일은 할 수 있으니까 괜찮은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유겸이 내뱉고 간 말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귀찮은 건 딱 질색이었다. 연훤이 결국 집무실을 나섰다. 오 태감 대신 서 있었던 궁인이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익숙한 침궁인데, 연훤은 밖에 서서 잠시 자신이 들어갈 곳을 천천히 살폈다.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은데 알 수 없었다. 연훤이 거침없이 들어가 문 앞에 서자, 옆에 서 있던 궁인들이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진한 탕약 냄새가 허공에 맴돌았다. 희고 가는 팔이 침상 밖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 태의가 조용히 진맥을 하다 말고 고개를 조아렸다. 가볍게 손을 휘적이자 태의가 조용히 읍하며 말을 고했다.

    “오전보다 열이 내렸사옵니다. 계속 폐하를 찾으셨사온데….”

    “나가 보게.”

    “예, 예에….”

    어딘가 불안한 눈초리로 기웃거리던 태의가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코끝에 약 향이 아른아른했다. 급히 손을 올려두어 이불 위에 손이 덩그러니 나와 있는 것을 의자에 앉으며 살짝 건드렸다.

    새액, 새액. 뱉는 더운 숨이 공간을 울렸다. 과연, 이런 얼굴이었나. 아파 누워 있는데도 애련한 빛이었다. 가만히 보기만 해도 가슴께가 간질간질했다. 아니, 쿡쿡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앓으며 누워 있는 이를 보니 괜한 죄책감마저 일었다. 움찔하더니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조심스럽게 움켜쥐는 손에 따끈따끈 열이 올라 있었다. 그 움직임에 연훤은 잠시 숨을 멈췄다.

    “으… 흐….”

    아랑이 눈을 찡그렸다가 곧 뜰 듯이 깜박거렸다. 그 움직임을 따라 손도 꼼지락거리고 어딘가 다디단 향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흐릿하게 떠진 눈꺼풀 사이로 시선이 또르륵 따라왔다.

    “연훤….”

    소곤거리는 숨소리가 간지러웠다. 연훤은 아무런 대답 없이 손만 잡힌 채로 아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눈을 뗄 수 없어, 대답도 없이 그렇게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아랑의 눈가에 물기가 어룽어룽 맺혔다.

    “-거짓말쟁이….”

    톡, 하고 힘없이 고개가 넘어갔다. 쥐고 있던 손에 힘이 스륵 빠져 잡고 있던 것을 놓은 것을 보곤 손을 정리해 이불을 덮어 주려 한 찰나였다. 흰 손등에 빨갛게 선 자국에 연훤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걸음이 침궁을 빠져나가고 있던 홍 태의를 다시 데리고 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

    연훤이 기억을 잃은 지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그 행적이 조금 기이했다. 아랑은 다음 날 열이 내렸고 태의와 궁인들의 보살핌에 조금씩 기력을 차렸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도, 열흘이 지나도 어딘가 시무룩한 아랑의 낯에 애가 닳아 애꿎은 오 태감만 중간에서 고생하고 있던 중이었다. 조곤조곤 말을 하며 해사하게 웃던 마마님이 시무룩하니 입을 닫은 지 며칠째였다.

    “그이는?”

    “오늘은 일어나셔서 오전에 잠깐 선현님과 같이 산책을 갔다 침궁으로 들어가셨다 하옵니다.”

    창밖을 바라보던 연훤이 멈칫했다. 눈썹이 불만스럽게 꿈틀거렸다. 따닥, 탁자 위를 두드리는 손끝이 조금 신경질적이었다. 그는 하던 일도 멈춘 채 한곳을 찬찬히 노려보고 있었다.

    “왜?”

    “예?”

    오 태감은 자신도 모르게 반문을 하고 나서는 아차,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제 정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연훤은 그렇게 생각하며 첫날에는 아는 척도 안했던 주제에 그를 신경 쓰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사흘은 겸상도 하지 않다가 오 태감의 말에 상을 차려 함께 밥을 먹은 날이었다. 아랑은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 앉으려다가 멈칫하며 그 건너편에 자리했다. 곁에 서 있던 궁인이 눈치껏 수저를 옮겼고 달그락달그락 작은 소리만 내며 움직였다.

    아랑이 숟가락에 밥을 뜬 채로 가만히 연훤을 보다가 혼자 화들짝 놀라 따로 반찬을 집어 먹었다. 그 행동을 두어 번 하더니 이내 반도 먹지 못한 상태로 차로 입가심만 조용히 하고 있었다.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반찬을 올려 주던 연훤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밥을 뜬 채로 가만히 멈추었던 아랑이었다. 어색한 시선이 두어 번 마주치고 나니 입맛이 뚝 떨어졌는지 아랑은 결국 식사를 물리고는 시무룩한 걸음으로 침궁으로 향했다. 그 모습이 못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대체 뭐지, 뭔데 자꾸 눈앞에서 살랑거리지. 기억을 잃어도 취향을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는지 연훤은 자신도 모르게 아랑에게 자꾸 진득한 시선을 건넸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 답답해지고 있었다. 날씨가 조금 풀리는 듯하여 정원을 거닐고 있으면 그 끝에는 아랑이 서 있었다. 환하게 웃다가도 자신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웃음을 뚝 멈추는 표정에 오히려 연훤의 기분이 이상했다.

    “홍 태의는 여전히 모른다 하는가.”

    “아마 폐하께서 드시는 희락기를 억제하는 약의 영향이지 않을까 아뢰었습니다.”

    “태의는 목숨이 두 개인가?”

    늘 먹던 약제에 이상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 말고는 원인을 알 수 없어 약을 올렸던 홍 태의도, 그 약을 달였던 궁인도 목숨이 간당간당하여 딱 죽을 맛이었다. 연훤은 말과는 다른 심드렁한 표정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정인이 있는데 왜 억제제를 먹은 거지?”

    “황비마마께서 몸이 약하시어 폐하께서 결정하신 일이옵니다.”

    아랑은 이미 연훤의 희락기를 두 차례나 받았다. 그 끝은 혼절이었다. 다른 향을 탐하기도 싫고 오롯이 아랑의 아래만 탐했던 탓에 일어난 사단이었다. 연훤은 양인 중에서도 상양인이고 아랑은 음인 중에서도 몇 없고 귀한 향인이었다. 그것도 다른 이들과는 다른 몸에 연약하기까지 한 연인인지라 연훤이 억제제를 먹으며 희락기를 아랑에게 맞춰온 것이었다.

    “내 이번 희락기는?”

    “약을 취하셨으나 평소와 달리 아직 오지 않은 상태이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소리였다. 기억도 잃고 억제된 희락기가 언제 시작될지도 몰라 조금 골치 아픈 느낌에 연훤이 제 미간을 문질렀다. 기억이 없을 때에 희락기가 오면 서로 골치 아프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폐하, 폐하…!”

    다급한 걸음 소리와 함께 궁인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에 오 태감이 먼저 나서 경을 치려는 순간이었다. 그 궁인의 얼굴이 너무나 익숙했다.

    “비마마를 지키던 이가 아니더냐, 무슨 일이냐.”

    “황비마마께서, 마마께서….”

    “그이가 왜?”

    덜컹, 사색이 된 궁인을 보며 연훤은 자신도 모르게 그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궁인에게 아련하고 야릇한 향이 묻어 있었다. 어디서 맡았던 향기지? 신경을 건드리는 향에 그의 손이 궁인의 멱살을 쥐었다.

    “헉, 허…! 폐… 폐하…!”

    “그가 왜, 아랑이 어찌 되었다고?”

    다급하게 외친 궁인의 말을 들은 연훤이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마마께서 희락기가 오신 듯한데 문을 걸어 잠그셨사옵니다!”

    연훤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침궁으로 향했다.

    *

    아랑은 조금 슬펐다. 아니, 조금 더 많이. 자신에게는 연훤밖에 없어서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연훤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자신 없이도 잘 지내는 그 모습을 견디는 것도 힘들었다. 밤이면 늘 찾아와서 머리카락을 넘기고 간지러운 말을 속살거리던 이가 없어졌다. 함께 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빈자리가 허전했다.

    걱정을 가득 안고 입궁했던 선현과 함께 가벼운 산책을 하다가 그가 문득 아랑의 팔을 붙잡았다.

    “아랑, 희락기가 언제였지?”

    코끝을 살랑대는 향기에 선현이 물었다. 아랑의 희락기는 다른 이들에 비해 들쑥날쑥했다. 몰아치듯 오는가 하면 잔잔하게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게 저번 달의 이야기였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연훤이 온종일 함께 있었다.

    “아마… 이맘때쯤…?”

    “당장 들어가자.”

    선현 또한 음인이라 같은 음인의 향을 미세하게나마 느꼈다. 평소보다 짙게 느껴졌다면 희락기가 오기 전이란 소리였다.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몸에 열기가 스믈스믈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아랑을 방에 앉혀두고 나간 선현이 이것저것 지시하고는 가볍게 인사를 남겼다.

    “며칠 뒤에 올게. 그때는 겸 누이랑 같이 올 테니까 일단 몸부터 추스르고….”

    “으응, 알겠어요. 조심히 가세요.”

    팔랑팔랑 흔드는 손에 힘이 없었다. 탁. 순식간에 고요해진 방에 아랑은 얕은 한숨을 뱉었다. 눈매며 뺨이며 발긋하게 열이 올랐다. 손바닥으로 꾹꾹 누른들 식지도 않고 열기만 따끈하게 느껴졌다.

    선현이 가기 전에 내린 지시로 궁인이 방안에 들러 물 잔을 내려놓고 종종걸음으로 나갔다. 아랑의 시선이 어딘가 몽롱했다. 이렇게 희락기를 앓으면 아무것도 기억 안 나던데,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자신을 지켜 줄 연훤이 없었다.

    아랑이 충동적으로 문을 걸었다. 달칵, 하며 고리가 걸리는 소리에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마마, 마마…?! 문 좀 열어 주세요…!”

    그 생각이 자신을 서글프게 만들어 답도 하지 않은 채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연훤의 향이 흐리게나마 남은 베개를 끌어안았다. 눈을 감았다 뜨면 연훤의 기억도 돌아오고, 희락기도 다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채로 아랑은 몸을 웅크렸다.

    *

    짧은 소식에 연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궁인들을 손짓으로 물린 연훤이 문을 열어 보았으나 덜컹, 하는 소리만 들렸다. 눈가가 찌푸려지는 것을 지켜보던 오 태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마마, 폐하께서 드셨나이다.”

    안에서는 작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연훤이 참지 못하고 한 차례 더 덜컹! 하며 소리가 나도록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오 태감이 땀을 비죽비죽 흘리며 연훤을 향해 말했다.

    “마마를 불러 보심이 어떠십니까, 폐하.”

    “…황비?”

    툭 뱉어진 말이 더 서럽게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 태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 더 다정하게요, 하며 채근하는 모습에 연훤은 그게 뭐냐는 듯 오 태감을 쳐다보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황비, 문 좀 열어 주게.”

    “폐하…, 폐하께선 황비마마의 함자를 부르셨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실없이 굴었다고? 고민하는 사이 향이 좀 더 짙어졌다. 어서요, 하며 재촉하는 오 태감을 흘겨본 연훤이 이제 문이 열리겠지 생각하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아랑, 문을 열어다오.”

    문 너머는 고요했다. 이게 뭐냐며 연훤이 오 태감을 한 번 더 쳐다보려는 순간이었다. 달칵, 하며 작은 소리가 들렸다. 오 태감은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다른 궁인들을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조심스럽게 열린 문 틈새로는 울음기 가득한 얼굴을 한 아랑이 보였다. 차마 올려다보지도 못한 채 내린 시선, 축축한 속눈썹, 발긋한 뺨에 잘근잘근 깨물어 부어 있는 입술이 보였다. 훅 끼쳐 나온 향이 지독하게 달았다.

    어딘가 익숙한 향에 연훤의 아래가 찌릿하게 울렸다. 익숙한 데다, 문이 잠겼던 탓에 지독하게도 가득 고여 있던 향이었다.

    “…연훤이에요…?”

    자신은 계속 기연훤이었다. 아랑의 물음이 어떤 뜻인지는 알았지만 연훤은 어찌 대답할까 하며 아랑을 찬찬히 내려다봤다. 아련한 미인은 어딘가 골이 난 듯 입술을 삐죽였다.

    “거짓말쟁이.”

    “아니,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거-.”

    훅 끼쳐오는 향이 폐부 가득히 찼다. 나른하고 어딘가 보드라워서 잔뜩 벗겨 탐하고 싶을 정도였다. 연훤은 왜인지 그에게 잘못했다고 빌어야 할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뺨을 감싸자 아랑이 멈칫하며 눈을 깜빡였다. 작은 짐승이 온기를 찾아가듯 부벼오며 아랑이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내가 대단히 잘못을 했겠지.”

    연훤이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속살거리며 거리를 좁혔다. 울망거리는 눈매를 조심스럽게 닦았다. 따끈하고 말랑한 뺨과 촉촉한 입술이 연훤의 엄지에 닿았다. 희게 드러난 목선이 보였다. 열기로 발긋하게 달아올라 한 입 베어 물고 싶을 정도로 보드라워 보였다.

    “내가 잘못했으니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

    어쩐지 조심스럽게 굴어야 할 것 같아 나긋하게 물으며 연훤이 자신의 체향을 풀자 아랑이 몽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휘청하며 바닥으로 주저앉을 뻔한 몸을 안아 올렸다. 너무 가볍게 들린 몸에 놀란 것은 오히려 연훤이었다.

    탁. 침궁의 문이 다시 닫혔다.

    옷자락이 사락사락 풀렸다. 아랑은 도리질하다가도 연훤이 조금만, 하며 속살거리면 마지못해 끄덕이며 손을 잡았다. 이미 몸은 잔뜩 달아올라 있었다. 연훤이 꼿꼿하게 선 남성기를 한 손에 쥐며 부드럽게 쓸었다. 음모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를 더듬어 올라가 뾰족하게 선 유두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흐으응… 응.”

    여린 신음에 아래를 잔뜩 헤집고 싶을 정도였다. 아랑은 연훤이 제 다리 사이에 자리를 하자 자연스럽게 두 다리를 벌려 연훤의 허리에 감았다. 따끈한 체온이 몸에 닿는 느낌이 야릇하게 느껴졌다.

    움직임이 기억을 잃기 전과는 다르게 조심스럽고 또 뻣뻣한 느낌이었다. 생각을 하기도 전에 손이 먼저 움직였다. 엄지 끝에 톡톡 걸리는 젖꼭지를 누르고 빙글빙글 돌려도 봤다. 우물대던 아랑의 입술이 벌어지며 야릇한 신음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는 울고 있었다. 연훤이 몸을 숙여 눈물에 입술을 댔다. 그가 소곤소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울지?”

    “그냥… 기억도 못 하는데 다정해서.”

    울먹이는 대답을 듣고 가슴이 쿵, 하며 뛰었다. 순간 시야가 뒤틀리며 자신이 본 적 없던 아랑이 활짝 웃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뭐지, 그러나 아주 잠깐의 찰나여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연훤이 아랑의 코끝에 자신의 코끝을 부볐다. 입술은 닿지 않았다. 아랫도리는 이미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연훤의 아랑의 것을 쥐고 느리게 희롱하며 아래로 몸을 내렸다. 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할 때마다 빼곡히 깨물어 남기던 순흔은 만들지도 않고 느릿하게 입술로 몸 위에 입맞춤만 내렸다.

    아랑이 순간 멈췄다.

    “아, 아-!”

    연훤이 아랑의 남성기를 입에 물었다. 귀두 끝을 혀로 문지르며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춥, 춥… 하고 젖은 소리를 일부러 내며 고환이며 그 기둥을 자극했다. 이내 연훤은 아랑이 입안에 얕게 싸지른 정액을 제 손에다가 뱉으며 빳빳하게 선 제 좆에다가 문질렀다.

    엎드리게 할까, 그러면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아래를 주무르다가 아랑의 두 다리를 잡아 슥 올리니 애액으로 흥건히 젖은 아래가 보였다. 흥분으로 할딱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빨리, 빨리이….”

    그리고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 내밀한 공간까지. 연훤은 눈앞이 휙 도는 기분이 들었다.

    *

    침상 위에는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철벅철벅, 애액이 젖어 튀는 소리까지 적나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제어하지 못한 향이 풀풀 날리고 소유욕을 과시하듯 상대의 몸에 눅진하게 달라붙었다. 실체가 없어 알 수 없지만, 형태가 보였다면 진득하게 붙는 향의 감촉까지 다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흐앙, 아, 아아…!”

    “하, 아랑, 아랑… 젠장.”

    욕지기가 절로 튀었다. 벌어진 두 다리가 연훤의 팔 위에서 달랑달랑 흔들렸다.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연훤의 좆은 비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예민한 곳을 긁어댔다. 아랑은 부르는 소리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도리질만 했다.

    “거기, 아냐, 아냐아… 하읏, 아, 아…!”

    발끝이 움츠러들었다. 아랑의 눈은 물기에 젖어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희락기에 접어든 몸뚱이는 양인의 씨물을 원했다. 아랫배가 징징 울리고, 뒤에다 잔뜩 싸질러 놓은 정액이 좁은 틈새를 비집고 흘러내리는데도 갈증이 일었다. 연훤은 벌어진 입술에 재차 입술을 대며 혀를 빨았다. 퍽, 퍽. 살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더 깊게 비집고 들어온 것이 아랑에게 자지러질 듯한 신음을 내뱉게 만들었다.

    “내가, 흐으, 잘못했어, 응? 아랑, 하….”

    우습게도 아랑의 짙은 체향과 은밀한 가랑이 사이를 보고 나서는 뒤통수를 맞은 듯이 정신이 돌아왔다.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기억에 잠시 혼란이 일었으나 유혹적으로 감겨오는 몸체에 연훤은 함락되고 말았다. 평소와 다른 느낌에 조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랑의 젖꼭지가 퉁퉁 부어올랐다. 연훤이 기억이 돌아오자마자 한 짓이었다. 그가 아랑의 코끝을 문지르고 입술을 빨았다. 아랑의 손끝이 남성기를 쥐며 조금 흔드는가 싶더니 애타는 자극을 찾아 더 아래로 파고들었다. 음핵을 문지르는 아랑의 손길이 조금 다급했다.

    “안 돼, 여긴 나만 만져야지….”

    자연스레 손깍지를 끼며 그 움직임을 막았다. 아랑의 눈가에 눈물이 또륵또륵 흘렀다.

    “흐앗, 아앙, 아흐윽… 안, 안 돼… 빨리이….”

    허리가 달싹거렸다. 흰 배에 잇자국이 얼룩덜룩 나 있었다. 홀쭉한 배가 불룩 솟은 듯이 보였다. 아랑이 더듬더듬 제 아랫배를 더듬으며 몸을 떨었다. 사정을 하고서도 단단한 좆이 느릿하게 빠져나와 아랑의 다리 사이를 희롱했다. 미끄덩거리는 느낌과 뜨거운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연훤은 아랑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빨리, 주세요….”

    아랑이 할딱거리는 숨을 삼키며 팔 하나를 뻗었다. 연훤의 손이 자연스럽게 깍지를 껴오며 남은 한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느릿하게 쓸었다. 애액이 번들거리고 있어 흉흉해 보일 지경이었다. 연훤은 아랑의 남성기 위를 문지르다가 흥분으로 발갛게 물든 여성기 위를 문질렀다. 쪽, 쪽 하며 귀두 끝이 살에 달라붙은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아랑의 숨이 가빠졌다.

    꾸욱-, 진득하게 짓누르고 들어가는 힘에 아랑의 몸이 펄떡 튀었다. 반으로 갈라지는 통증과 이상야릇한 감각에 고개가 한껏 젖혀졌다. 희게 드러난 목덜미에 얼룩덜룩 잇자국이 나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연훤 자신이 해 놓은 흔적이 그제야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다.

    “아, 하, 하윽…… 읏…!”

    뚝뚝 끊기는 신음이 허공에 흩어졌다. 시야가 가물가물 흔들렸다. 벌어진 입가로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흘렀다. 연훤이 빠듯하게 조여오는 감각에 이를 악물며 몸을 숙였다. 아찔한 통증이었다. 잘못 움직였다가는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 같은 감각에 그가 긴 숨을 뱉었다. 귀두가 겨우 밀려 들어가고 나서야 연훤은 짙은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는 아랑의 뺨을 쓸고 입맞춤을 하며 호흡을 삼켰다. 우물거리는 내벽에 연훤이 몸을 천천히 물렸다.

    꾸욱!

    “하악…! 아, 연훤, 연훤… 안 돼-.”

    “쉬이… 조금만, 윽, 힘을 빼 줘… 천천히, 응?”

    자신이 무슨 말을 뱉는지도 모르고 아랑이 도리질을 했다. 연훤의 말을 듣고도 멍한 정신에 눈물만 퐁퐁 흘리며 몸을 뒤쳤다. 선명한 자극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연훤은 깍지를 낀 아랑의 손끝에 자잘한 입맞춤을 하고, 빨갛게 부어 있는 유두를 문질렀다.

    파드득 튀는 아랑의 몸에 엇박자로 호흡을 맞추듯 연훤의 성기가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통통하게 부어 있는 남성기가 보였다. 꽉 쥐고 있는 손을 뺄 수가 없어 짧게 혀를 차고는, 젖꼭지를 문질러 주며 짧게 허릿짓을 했다.

    자욱한 향이 몸을 짓눌렀다. 포근하게 감싸는 듯하다가 진득하고 야릇하게 핥아 올렸다. 아랑의 사정을 봐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연훤이 재차 한숨을 뱉고는 툭, 툭 허리를 쳐올렸다.

    “하아…!”

    탄성 같은 신음이 터지는 것을 확인한 연훤은 아랑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스윽, 슥. 마찰하는 소리가 이내 방 안에 요란하게 울렸다. 살이 철썩 부딪히며 젖은 소리가 났다. 흥건하게 고여 있던 애액이 찰박찰박 흘러내렸다. 빠듯하게 벌어진 여성기가 연훤의 좆을 가득 삼키고 있었다.

    쩌억, 쩍, 달라붙으며 희게 거품이 일었다. 연훤 또한 뜨문뜨문 흘리던 말수가 점점 줄어들고 거친 숨소리만 내뱉었다. 간혹 아랑이 연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면 그에 대답해 주듯 입술을 빨며 혀를 섞었다.

    연훤은 평소보다도 진득하게 움직이다가 아랑의 몸체를 확 끌어당겼다. 퍽-! 하며 살을 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젖혀졌다. 뿌리 끝까지 짓눌러 넣은 탓에 다리 사이로 연훤의 까슬한 음모가 전부 다 느껴질 정도였다. 아랑의 남성기에서는 희멀건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좆을 물고 있는 내벽이 펄떡펄떡 심장 뛰듯이 뛰었다. 포궁구 끝까지 밀어 넣은 귀두 끝이 맥박치며 기다렸다는 듯이 그 안을 가득 적셨다.

    “응, 흐으응, 아, 아아….”

    아랑은 짐승 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흐느끼고 있었다. 긴 자극에 이지를 상실한 눈매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고통보다도 강한 쾌락에 어쩔 줄 몰라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연훤은 향을 폐부 가득히 삼켰다. 아랫배가 홧홧하게 달아오르고 그의 눈매 또한 사납게 일렁이고 있었다. 꾸욱, 더 들어갈 곳도 없으면서도 몸을 더 붙이며 아래를 문질렀다.

    힉, 힉 하며 쉰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잠시 소강상태가 된 듯 두 사람의 숨소리만 가득 울렸다. 아랑이 몽롱한 얼굴을 한 채 손을 움직였다. 더듬더듬 느리게 움직인 손이 제 아랫배를 더듬었다.

    “흐으….”

    무언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중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소리. 연훤은 그 말에 휙 돌아 깊은 허릿짓과 함께 애액이 새어 나오지 못하게 제 좆을 부풀렸다. 아찔한 쾌락에 젖어 든 결합이었다.

    *

    짐승처럼 흘레붙은 날이 꼬박 사흘이나 지났다. 아랑의 희락기와 연훤의 희락기가 겹친 바람에 평소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났던 것이었다.

    연훤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땐 기억이 온전히 돌아와 있었다. 기억을 잃었던 그때 일도 전부 함께 기억하고 있었다. 아랑은 연훤의 희락기를 온전히 받고선 며칠을 더 앓았다.

    “저한테… 잘못했죠?”

    “응… 용서해 줘, 아랑.”

    내가 잘못했어. 속살대며 흰 손등에 뺨을 부볐다. 며칠 고생을 한 아랑은 살이 쏙 빠져 있었다. 그게 못내 속상했다. 조곤조곤 속살대는 아랑의 말에 연훤은 귀 기울였다.

    “나… 연훤의 연인이 아니었는데, 왜 거짓말했어요?”

    그러고는 그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듯, 잠시 머뭇거린 연훤이 아랑의 뺨을 쓸었다. 말간 시선이 간지러웠다. 입을 맞추고 싶고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향을 짙게 삼키고 싶었다. 연훤이 대답했다.

    “…예뻐서. 그대에게 첫눈에 반했나 봐.”

    자신이 기억을 잃고서도 아랑에게 눈길이 갔다는 건 연훤만의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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