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 (4/7)
  • 외전 1

    아랑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아니, 평범에서 조금 거리가 먼 걸까. 다른 남자들보다는 선이 가늘고 배우는 것은 춤이었다. 현대 무용을 한 탓에 몸 선이 유달리 예뻤고 나름 인기도 많은 편이었다. 요란스러운 것을 꺼리는 탓에 주로 혼자 다니거나 몇 안 되는 친구와 다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다시 부르게 될 일이 없을 이름 연희우. 본인의 기억 속에서도 잊힌 이름이었다.

    희우는 여덟 살 때부터 누나의 손을 잡고 춤을 배웠다. 남들보다도 빠른 습득력과 유연한 몸. 아직은 성장기이니까, 하며 몇 년을 쉬고 다시 시작했지만 그 끼는 어디 가지 않았다. 손짓 하나가 사람을 홀릴 듯이 굴었다. 유려한 얼굴이 나긋한 표정을 지으면 지나가던 이들도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했다.

    그 세상에는 양인도 음인도 없었지만 다들 희우의 기묘한 페로몬에 홀린 듯이 굴었다.

    희우는 남들에게 밝히지 못한 비밀이 있었다. 남들과 다른 몸,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흔적은 길게 자신을 따라왔다. 그것은 희우를 위축되게 만들었고 홀로 고립되게 만들었다.

    나는 어딘가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어, 누나. 자신과 나이 차가 있는 누나와 상담했던 이야기였다. 희우는 어릴 적부터 어딘가를 홀린 듯이 보거나 홀로 조용히 말이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희우의 누나는 덜컥 겁이 나 연희우, 희우야 하며 애타게 더 불렀다. 희고 뽀얀 얼굴에 말간 미소가 맺히면 누나는 그제야 불안함을 감추었다.

    휘익, 손짓이 올곧게 뻗어 나갔다. 가벼운 몸이 한 차례 빙글 돌고 고개가 젖혀졌다. 해소되지 않는 욕구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였다. 희우는 남들과 같이 공부하고, 전공을 선택하고, 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춤을 췄다. 사뿐히 몸이 떠올랐다 가라앉으면 이 일렁대는 기분을 가라앉힐 수 있어서.

    희우는 홀로 울었다. 텅 빈 구멍을 메울 길이 없어 거울을 보고 울었고 춤을 추면서도 울었다.

    그리고….

    첨- 버엉, 무엇인가 물속으로 잠기는 소리와 함께 호수에 큰 파문이 일었다. 곧 잔잔해진 물결 속에 흰 손이 불쑥 솟아올랐다. 촤악- 첨벙이는 소리가 숲속을 울렸다.

    “흐윽, 허억-.”

    살려줘,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휙, 하며 누군가 제 몸을 낚아채는 것을 느끼며, 눅눅하고 안정감 있는 향이 폐부를 가득 채울 즈음 희우는 눈을 감았다.

    *

    궁 안에서는 은밀한 소문 하나가 떠돌고 있었다. 고귀한 분이 꽃을 주웠고, 그 꽃을 탐하려 농을 했다는 아리송한 소문이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알음알음 다 퍼졌을 즈음엔 벌써 몇 달이 지난 뒤였다. 물론 당사자들은 들을 일 없는 소문이었다.

    물론 소문의 고귀한 분은 태성국의 황제인 기연훤이고 그가 주웠다는 꽃은 아랑이었다. 어느새 겨울이었다. 가벼웠던 옷이 도톰해졌다. 아랑의 짧았던 머리카락도 조금 자라나 귀 뒤로 옆머리를 넘긴 상태였다. 어리숙했던 모습은 없고 조금 더 성숙해진 낯으로 눈을 깜빡였다.

    팔락, 책을 넘기는 손짓이 보드라웠다. 아이들이 글을 익히는 것처럼 차근차근 익혔던 아랑의 책의 내용들이 점차 어렵게 바뀌었다. 대부분은 역사나 법도에 관한 내용들이었고, 지금 새로 펼쳐 든 책은 얼마 전 선현이 들고 왔던 가벼운 내용의 책이었다. 책 속 저잣거리에 대한 설명은 지루했던 아랑이 호기심 가득하게 빠져들 만큼 재미있었다.

    겸과 선현은 이제 자유라면서 궁을 나간 지 한 달째였다. 연훤의 희락기를 멋대로 당겼던 매향화 일 이후로 셋이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후궁전을 정리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기울었다. 그전에도 나왔던 이야기였으나 별달리 명분이 없었던 탓에 차일피일 미루던 일이었다.

    물론 그 악역은 겸과 선현이 맡았다. 선현은 자신이 저지른 일도 있었고 -비록 그것이 잘되라고 한 일이긴 했지만- 유겸은 더 이상 황제한테 시달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게 그 뜻이었다.

    대신들의 반발은 가뿐히 밟아 눌렀다. 의견을 내밀어도 그동안 그냥저냥 웃음으로 넘겼던 연훤이어서 내명부 정리 이야기를 듣고 연훤에게 반발했던 이들은 머리카락이 썩둑 잘려나갔다. 그가 드물게 분노하며 검을 빼 들었던 탓이었다.

    아랑은 안락하게 침궁에서 지내고 있어서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 아니, 모르는 척하는 것에 가까웠다. 선현은 종종 그때 일을 사과하고 포르르 달려와서는 연훤의 행적을 일러댔다.

    “어찌 저에게 자꾸 알려 주시나요?”

    “아니, 폐하는 딱 봐도 동생에게 낭창한 여우처럼 굴 텐데 나처럼 이야기해 주는 사람은 있어야지, 안 그래?”

    짓궂게 웃는 선현의 모습을 보고는 아랑도 웃음이 나와 포슬포슬 따라 웃었다는 것은 비밀이었다. 가끔 뜨문뜨문 떠오르려는 기억은 밀어뒀다. 지금이 좋으니까. 그러다가 순진하게도 정인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었던 처음이 떠올랐다. 어색했던 그 분위기를 재차 떠올리며 정인까지는 아니었겠구나, 하고 아랑은 생각했다.

    *

    책을 접고 일어나면 밖이 어수선해진다. 추운 날인 탓에 금세 어둑어둑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아랑은 겉옷을 걸치며 침궁을 빠져나갔다. 슬슬 그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아랑은 노을 지는 밖을 보며 겨울의 정원을 살폈다. 봄과 여름과 달리 정원은 황량하기만 했다. 뒤로 궁인 몇이 따라나섰지만 아랑은 정원 끝의 입구만 쳐다보며 기웃거렸다.

    “마마, 고뿔 드시면 폐하께서 경을 치십니다.”

    코를 훌쩍였더니 어느새 다가온 궁인이 고했다. 괜찮은데, 아랑이 손을 살래살래 흔든 찰나였다. 연훤의 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휙 돌린 아랑이 성큼 걸음을 옮겼다. 작은 걸음이 어느새 뜀박질로 바뀌어 있었다. 연훤은 놀란 눈치로 걸음을 빨리했다.

    “조심-!”

    연훤이 휘청이는 아랑의 몸을 얼른 안아 들었다. 가뿐히 안아 드는 손길은 매번 놀라웠다. 연훤은 아랑이 마중 나온 것이 기꺼운지 입가에 미소가 맺혀 있었다.

    “보고 싶었어요.”

    폭 안기며 아랑이 말했다. 드문 애교에 연훤이 그의 뺨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겼다. 안아 든 손길이 편안했다. 드물게 응석 부리는 느낌이라 연훤이 물었다.

    “혹,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

    “그냥, 조금 심심했어요. 맨날 궁에만 있으니까….”

    아랑의 말에 연훤의 머릿속에 그의 단조로운 일상이 떠올랐다. 자신이 밤새 몸을 탐하고 나면 지쳐서 해가 중천에 걸릴 즈음에야 일어났고, 일어나서는 간단한 식사와 가벼운 운동, 그리고 독서가 대부분인 일상이었다. 그나마 선현이 있을 때는 들어와서 말동무를 해주기도 했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기묘한 외로움이 얼굴에 비쳤다.

    “아랑, 몰래 나가 볼까?”

    “…?”

    충동적인 물음이었다. 아랑의 눈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아랑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연훤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귀여운 움직임에 푸슬푸슬 웃음이 흘렀다. 그렇게 두 사람의 비밀 일정이 얼렁뚱땅 잡히는 순간이었다.

    *

    비밀이라고 해도 궁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평복으로 갈아입은 아랑이 고개를 돌렸다. 한쪽에서는 연훤이 허릿대와 검을 챙기고 있었다. 아랑은 제 목에 두른 복슬복슬한 털목도리를 만지며 연훤의 곁에 섰다. 밖으로 나서니 드러난 곳이 추웠다. 장갑까지 단단히 챙겨 끼고서는 마구간으로 향했다.

    투레질하는 말은 다른 말들보다 몸집이 꽤 커 보였다. 연훤은 익숙하게 말을 달래며 아랑을 가까이로 끌었다.

    “엄청… 커요.”

    “응, 그래도 착한 녀석이야.”

    휙, 하며 말 안장 위에 앉혀진 아랑의 눈이 동그래졌다. 뒤따라 말에 오른 연훤이 아랑의 몸을 자신에게 기대게 하며 고삐를 잡았다. 뒤에 선 이들에게 가볍게 고갯짓한 연훤이 말 옆구리를 차며 빠르게 궁 문을 빠져나갔다.

    살을 엘 듯이 추운 바람이었다. 아랑은 눈을 뜬 채로 보려다가 찬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눈, 떠야지.”

    말발굽 소리가 우렁찼다. 빠른 움직임이 점점 느릿하게 잦아들었다. 꾹 감겨 있던 눈을 조심스럽게 뜬 아랑은 탁 트인 호수를 바라봤다. 추운 날에 물이 조금 얼었는지 서서히 지고 있는 햇살에 호수가 반짝거렸다. 아랑이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던 연훤은 맨 처음 그가 물에서 나왔다는 것이 떠올라 손을 잡고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어디 가요?”

    “글쎄, 시찰? 아니면 사람 구경이라고 해야 할까.”

    아랑은 연훤의 손을 잡고 순순히 움직였다. 걸음을 얼마나 옮겼을까,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풍경이 보였다.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과 그 사이를 누비는 아이들, 그리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아랑은 연훤의 손을 꼭 잡고서 넋을 놓은 채로 사람 구경을 했다. 눈을 떠서 본 것이라고는 궁 안의 세계가 전부였던 그에게는 조금 신기한 풍경이었다. 어쩐지 활력이 넘쳐나는 기분이 들었다.

    “쌉니다, 싸요-!”

    “여기 좀 보고 가세요~.”

    손에 먹거리를 쥔 아이들 얼굴엔 웃음보가 터졌다. 꺄르륵 웃으며 지나가는 아이들을 아랑이 홀린 듯이 쳐다봤다. 아랑이 입을 헤벌린 채로 구경하는 것을 쳐다본 연훤이 웃음을 삼키며 손끝으로 그의 턱을 올려줬다. 합, 하고 입을 닫은 아랑이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고 연훤의 손을 꼭 잡았다.

    “신기해?”

    “많이요, 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음… 제일 큰 시장?”

    자신이 다스리는 곳에서 제일 큰 번화가를 단순하게 말한 연훤이 아랑이 행여나 옆 사람에게 부딪힐까 봐 어깨를 감싸며 자신 쪽으로 당겼다. 순순히 당겨오는 몸에서 풍긴 옅은 향이 코끝을 스쳤다. 연훤이 입술로 아랑의 머리카락 위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며 말했다.

    “평소보다 소란스러운 걸 보니 잘 맞춰 나왔군, 저기로 가 볼까?”

    연훤이 가벼운 움직임으로 아랑의 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막았다. 아랑이 막은 것이 아니라 연훤이 제 향으로 덮은 것이 다였지만 아랑은 코끝에 스친 익숙한 향에 그저 배시시 웃고는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눈에 익지 않은 것투성이였다. 투박한 인형을 놓고 경품이라고 소리치는 상인도 있었고 먹거리를 팔면서 한 입 먹어 보라며 손짓하는 상인도 있었다.

    아랑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서 연훤의 손을 잡고 자신도 모르게 그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연훤은 아랑이 눈을 반짝이며 신기하다는 듯 감탄하는 것을 찬찬히 살폈다.

    궁에서의 모습보다 활기 넘치는 모습에 입안이 썼다.

    아랑이 고기 꼬치 앞에서 기웃거리는 동안 연훤이 주변을 살폈다. 평소 시장의 모습보다 활기찼고 다들 여기저기서 경품을 놓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연훤?”

    연훤은 늘 자신에게 연훤 님, 폐하, 하고 부르는 아랑을 향해 정인은 이름을 불러 줘야지, 하며 번잡한 호칭을 다 뗀 이름을 부르게 했었다. 그것이 익숙해지기까지 또 한참이었는데,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이 불러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내렸다. 손에 불그스름한 꼬챙이를 쥔 아랑이 얼른 계산을 해 달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귀여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단어였다. 연훤은 자신이 건넨 돈을 보고 당황한 상인을 보며 손을 저었다. 꼬치 스무 개를 사고도 남을 돈을 받은 상인은 그저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아랑, 그걸로 정말 괜찮나?”

    그 빨간 게? 양념의 색이 어쩐지 위험해 보였다. 무슨 양념인데 저렇게 빨개? 연훤의 심각한 표정에 아랑이 푸스스 웃었다. 자신도 이게 무슨 맛인지도 모르면서 샀다. 아니, 반쯤은 홀린 듯이. 그냥 소금구이도 있고 갈색 양념을 바른 맛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빨간색이 자신의 눈길을 끌었다.

    “흣-.”

    입안을 화끈하게 데우는 자극적인 맛에 아랑이 멈칫했다. 우물우물, 꾹 닫힌 입술이 어쩐지 빨갛게 달아오른 거 같아서 곁에서 보고 있던 연훤이 당황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질 만큼 코끝을 찡하게 찌르는 매운맛에 아랑은 입안의 고기를 꿀꺽 삼키고 나서는 숨을 뱉었다.

    “맛있어….”

    맛있다고? 연훤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아랑이 그 손을 놓고 자신의 입술을 꾹 눌렀다. 달아오른 입술은 화끈화끈했고, 꼬치의 맛은 어딘가 먼 기억을 떠오르게 할 것만 같았다. 연훤은 의심했다. 맛있다니. 얼굴은 울 것 같은데. 입술도 빨갛게 익어 있었다. 연훤의 표정이 이상해지는 것을 본 아랑이 꼬치를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먹어 봐요! 진짜 맛있어요.”

    코끝을 스치는 향이 뭔가 위험하게 느껴졌다. 잔뜩 기대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아랑을 피할 수 없었다. 안 돼, 라고 거절하면 어쩐지 시무룩하게 눈꼬리를 늘어뜨릴 것 같아서 연훤은 살점 하나를 빼 물었다.

    그리고 연훤은 순간 말을 잃었다. 아무런 표정 없이 우물우물 씹는 모습에 아랑은 화가 났나 싶어 그의 얼굴을 살폈다. 평소에 간을 심심하게, 혹은 적당히만 넣어 먹었던 연훤은 입안에 훅 끼쳐 들어오는 매운맛에 정신이 다 혼미할 지경이었다. 맛있다고? 혓바닥을 고문하는 이것이? 연훤은 적응되지 않는 매운맛에도 행여나 아랑의 기분에 찬물을 끼얹을까 봐 묵묵히 매운 고깃덩이를 씹어 삼켰다. 귓바퀴가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연훤이 아랑의 손을 꾹 쥐었다.

    “아, 아- 나, 갑자기 과일 차가 먹고 싶은 거 같아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과일 차 천막이 팔락거렸다. 낮게 후, 후 숨을 뱉는 연훤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랑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음료를 파는 곳으로 향했다. 입꼬리가 파르륵, 웃음이 나올 것처럼 떨려왔다. 혼이 쏙 빠진 채로 자신에게 손이 잡혀 끌려오는 연훤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귀여웠다.

    매번 진지하고 무게감 있고 다정한 모습만 보여 주던 그의 색다른 모습에 아랑은 기분이 간질간질했다. 그는 괴로워하는데 왜 이렇게 즐겁지? 포도차를 두 잔 고른 아랑이 고개를 돌리자 연훤이 돈을 건넸다.

    연훤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차를 비워냈다. 달달하고 시원한 향이 입안을 진정시켜 줘서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그가 웃고 있는 아랑을 봤다.

    “매웠어요?”

    “아니. 전혀.”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아랑의 눈이 동그래지며 정말? 하고 속살거렸다. 아직 조금 남은 빨간 고기 꼬챙이가 어쩐지 무서웠다. 이미 다 들킨 것 같은 상황에 머쓱한 얼굴이 된 연훤이 쑥스럽다는 듯이 아랑의 귀에 소곤거렸다.

    “…뭔가 조금 매웠던 거 같기도….”

    대답한 연훤의 색다른 모습에 기분이 간질거렸다. 순식간에 꼬치를 다 먹은 아랑은 차를 홀짝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연훤도 아까보다는 진정된 것인지 저건 뭐냐는 아랑의 물음에 조곤조곤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사람이 모여드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니 그곳에서 모두 함께 어울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투박하지만 흥겨운 음악 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다들 그 음악이 익숙한 것인지 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고, 슬금슬금 구경 오는 이들도 이끌어 함께 춤을 췄다.

    “연훤. 여기는… 맨날 이렇게 춤을 춰요?”

    아랑의 순진한 물음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가 잘 맞춰 나왔다고만 말을 했지, 오늘이 추운 겨울을 잠재워 달라는 축제가 열리는 날이라고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마 내 기억이 맞는다면 축제… 아랑!”

    그러다가 불쑥 손 하나가 아랑을 이끌었다. 연훤이 반사적으로 제 허리춤에 달린 검을 틀어쥐었다가 앞의 상황에 손을 놓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앳된 소녀들이 아랑의 손을 잡고 춤추는 원 안으로 당겼기 때문이었다. 음악과 박수 소리가 커졌다. 아랑은 당황한 채로 연훤을 봤고 연훤 또한 아랑을 꺼내오려고 움직이려던 순간이었다.

    “춤춰요!”

    꺄르륵 웃음을 터뜨린 주변 사람들 사이로 어색하게 춤을 따라 하는 아랑이 보였다. 이렇게? 소녀에게 물어보자 소녀들은 도리질 치다가 아랑이 틀린 손짓을 고쳐 줬다. 신나는 음악이 한층 더 경쾌해졌다. 탁 타닥, 가벼운 군무에 휩쓸린 아랑은 어느새 익숙하게 그 안에서 춤을 췄다. 환하게 웃으면서, 누구보다도 가벼운 손짓과 발짓으로.

    아랑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팔짱을 끼기도 했다. 연훤은 조금 언짢은 기분이었지만 아랑이 활짝 웃는 모습에 멈칫하고선 홀린 듯이 그의 얼굴만 쳐다봤다.

    나만 보고 싶다. 저 웃는 모습을, 기묘한 욕심이 자꾸 샘솟았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음에도 갈증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괜히 나왔다는 생각과 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서로 부딪혔다.

    “연훤-!”

    화악, 하고 향기가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색색 쉬는 숨이 다디달았다. 품에 안긴 몸은 익숙하게 자신에게 안겨들었다. 고개를 든 아랑이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가둔 것은 자신일 텐데, 이렇게 데리고 나온 것을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기묘한 죄책감과 알 수 없는 사랑스러운 감정에 연훤은 아랑의 몸을 단단히 감싸 안았다.

    “이제, 돌아갈까?”

    얼른 이 가녀린 몸을 탐하고 싶었다. 욕심에 불을 지피는 이 몸의 가랑이 사이를 벌리고 들어가 제 흔적을 진득이 남기고 싶을 정도였다.

    발긋한 뺨을 손으로 쓸어 주자 아랑이 그 손에 얼굴을 기대왔다.

    “다음에 또, 같이 나와 줘요.”

    “응, 물론이지.”

    가둘 수 없다면 자신이 따라나서면 됐다. 이 웃음을 보고 싶은 거지 가둔 채로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아니니까. 기묘한 집착을 짓누른 연훤은 아랑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그를 품에 안은 채 자신들 만의 둥지로 돌아갔다.

    짧고도 즐거웠던 외출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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