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7)
  • 1

    첨- 버엉, 무엇인가 물속으로 잠기는 소리와 함께 호수에 큰 파문이 일었다. 곧 잔잔해진 물결 속에서 흰 손이 불쑥 솟아올랐다. 촤악- 첨벙이는 소리가 숲속을 울렸다.

    “흐윽, 허억-.”

    살려줘,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

    태성국(太星國)

    비단신을 신은 자가 거침없이 정원의 돌길을 걸었다. 군청의 옷에 금사로 새겨진 용이 빛을 받아 한껏 일렁거렸다. 머리를 올려 금관을 쓴 남자가 자신의 뒤를 따르려는 태감을 향해 가볍게 손짓을 하고는 한 인영을 향해 다가갔다.

    “아랑.”

    아랑(娥郞), 이름처럼 꽃과 같이 어여쁜 사내였다. 여인처럼 가녀리다기보다는 무언가 음심을 자극할 듯 보이는 모습이었다.

    고요하게 낮은, 그리고 힘이 실린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낮은 음성에 정원에 말가니 앉아 있던 그, 아랑이 호수 위의 청둥오리를 보던 시선을 떼고 뒤를 돌아봤다. 밤을 닮은 먹빛 머리카락이 움직임에 살랑거렸다. 막 집무를 끝마치고 빠르게 걸음을 옮겨 침궁의 정원으로 찾아온 남자가 재차 그를 부르며 다가섰다.

    “연훤 님.”

    “날이 차가워지는데, 또 이렇게 얇게 입고 나와 있는 건가?”

    아랑이 금관을 쓴 사내를 부르며 어색하지만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표정을 풀지 않으며 말하는 연훤을 살피던 아랑이 말을 고르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이곳 태성국의 황제인 연훤은 그런 아랑의 행동을 가만히 살피다가 손수 그를 끌어 일으켰다. 한 손에 들어오는 손목도, 쉽게 딸려오는 몸도 가볍기 짝이 없었다.

    향긋한 향이 코끝을 훑고 지나갔다. 연훤이 아무런 말 없이 차가워진 아랑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자, 그에게 잡힌 손을 어색하게 꼼지락거렸다.

    “아직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게야? 아픈 곳은 없고?”

    “예에-… 저는 괜찮아요. 폐하, 아니, 연훤 님이 저를 보살펴 주셔서… 읏.”

    작은 짐승처럼 꼬물거리던 손이 연훤의 입술에 닿았다. 아랑의 손끝에서조차 아무것도 모른 채 조절하지 못한, 향인의 분내가 고스란히 다 느껴질 정도였다. 아랫배가 조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귀한 향인이다.

    연훤의 눈에 잠시 음습한 기운이 맴돌았다. 아랑이 눈치채지 못하고 손을 움츠렸다. 숨이 닿는 곳이 간지럽기만 했다. 연훤이 아무런 말 없이 아랑의 손을 만지고 있던 찰나에 꼬륵-, 하고 가까운 곳에서 귀여운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주인인 아랑이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잡힌 손을 빼냈다.

    “또 굶었느냐?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건가.”

    “아, 아니에요, 아까 당과랑 홍차를 먹었고….”

    연훤이 혀를 찼다. 얼마간 지켜본 결과 아랑의 말은 그것만 먹었다는 것을 뜻했다. 책에서도 향인은 음인보다 더 가녀리다고 그렇게나 묘사되어 있더니, 실제로도 이리 가녀릴 줄이야.

    “가자, 이르지만 일찍 상을 차리라 해야겠구나.”

    연훤의 곁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태감이 그 언짢은 기색을 눈치채고 자신의 곁에 서 있던 궁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랑을 반쯤 품에 안고 있던 탓에, 아랑만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움직임들이었다.

    “들어가자꾸나. 손이 이리 차가워서야, 원.”

    연훤이 혀를 짧게 찼다. 치렁하게 내려온 옷자락이 익숙하지 못해 휘청이는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아랑의 눈이 동그래졌지만, 이 며칠 동안 겪은 일에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금세 연훤의 옷깃을 잡았다.

    “연훤 님, 자꾸 이렇게 안고 그러시면 다른 이들이 흉을 볼지도 몰라요….”

    “종알종알, 새가 지저귀나. 간지럽기만 하구나. 내가 황제인데 누가 대놓고 나를 흉볼까. 응? 얼른 살이나 찌렴, 이래서야.”

    아랑은 그런 연훤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의 체향이 훅훅 느껴졌다. 시원하고 아랫배가 간지러워지는 듯한 향이었다.

    향인, 향기 향(香)에 사람 인(人)을 써서 붙여진 말로, 일반적으로는 음인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이었다. 양인과 향인은 일반적인 이들과는 다르게 서로의 체향을 맡을 수 있고, 그것에 발정을 했다. 태생적으로 시원하고 싱그러운 향을 뿜는 음인과는 달리, 향인은 손끝에서부터 향이 나부끼고, 체액은 달며, 양인, 혹은 정인을 만나 짝을 맺으면 성별에 상관없이 수태까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평범한 이들과는 다른 향이 남을 미치게 하고, 그 나긋함이 사람을 취하게 만들고, 연약하기 짝이 없어 금방 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양인들이 음인이 아닌 향인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그 짙은 향이 양인의 짐승처럼 들끓는 열기를 없애 주고 더 편안한 안정을 주기 때문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향인을 봤다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는 높은 이들에게만 진상될 정도로 고귀한 상품(上品)이 되어버린 향인은 역사 속에 잠길 것처럼 되고 말았다.

    태성국을 다스리는 황제 기연훤은 날 때부터 황제의 별을 타고 났었다. 강한 양기와 총명한 머리까지. 황가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필히 제왕의 길을 걷게 되었을 상양인으로, 남다른 풍채가 돋보일 정도였다.

    선황이 붕(崩)하고 즉위한 젊은 황제 연훤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런 연훤이 여느 때와 같이 가벼운 사냥 대회를 열어 사냥을 나왔을 때였다. 평소와는 달리 그 흔히 보이던 토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 오늘은 텄구나, 하며 말 머리를 돌리려던 참이었다. 빈손으로 돌아가 본 적이 없는 그는 조금 찝찝한 마음에 다시 깊은 곳으로 향했다.

    “뭐지?”

    홀로 남은 그가 활을 움켜쥐었다. 사냥감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살수라고 하기에는 살기가 하나도 없어 기척이 고스란히 다 느껴질 정도였다. 바스락, 작은 걸음 소리에 연훤은 말 위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사아악, 훑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음산하고 또 달콤했다.

    ‘……달콤?’

    단것은 딱 질색이라 하며 입에도 안 대는 그에게 군침이 맴돌게 하는 향이었다. 바스락, 조금 더 하면 그것이 나올 것 같았다. 무슨 향이지, 목덜미에 식은땀이 났다가 서늘한 바람에 식어 사라졌다. 오히려 더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쿵, 쿵, 이것은 공포인 것일까. 아니, 이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연훤은 알 수 없는 기분에 마른침을 삼켰다. 얼른, 나타나라, 주문을 외듯이 천천히 숨을 뱉었다.

    ‘어디지, 어디.’

    쿵쿵, 심장이 알 수 없는 감정에 요란스럽게도 울렸다. 솜털이 삐죽하게 서는 긴장감.

    “-아….”

    숨소리와 같은 음성과 함께 나무 뒤에서 사람 하나가 튀어나왔다. 난생처음 보는 복장에 몸 선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물에 빠진 것인지 전신이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다.

    “누구냐.”

    연훤은 활을 겨눈 채로 상대를 살폈다. 헉, 헉 하는 마른 숨소리가 넓은 공간을 채웠다. 젖은 몸이 나무에 힘겹게 기대섰다. 그가 고개를 들자, 흰 피부에 축축하게 달라붙은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다각다각, 말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가까워지는 연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가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도, 와….”

    순식간에 눈이 감기며 몸이 무너져 내렸다. 손쓸 새도 없이 넘어진 상대에 말이 놀라 날뛰려는 것을 워, 워 하며 진정시켰다. 연훤은 말에서 내려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엎어진 몸을 돌리자 벌어진 입술 사이로 미세하게 앓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몸이었다. 연훤은 그의 코 아래 손을 대었다가 자신의 겉옷으로 그를 감싸 들었다. 휙, 하고 들리는 몸에 멈칫했다가 투레질하는 말 곁으로 다가섰다.

    “쉬이, 조금만 고생하자꾸나.”

    말을 달랜 그가 안장 위에 올라앉았다. 품에는 힘겹게 숨을 뱉는 남자를 안은 채로 연훤은 빠르게 숲을 빠져나갔다.

    *

    연훤이 남자를 주워 온 지 이레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태의는 남자의 맥을 짚으며 연훤이 얼마 전 들었던 말을 다시금 뱉었다. 침상 곁에 의자를 둔 그가 조금은 매서운 눈초리로 자신을 보는 게 두려워 태의는 한 번 더 읍했다.

    “손님께선, 기력이 쇠약하시고 물에 빠진 충격에 고여 아직 일어나지 못하십니다.”

    맨 처음, 자신이 시체를 주워 온 것인가 할 정도로 남자는 온몸이 젖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어느 곳의 복장인지 알 수 없는 옷 모양새에 결국 젖은 옷을 찢어내고 몸을 이불로 둘둘 두른 채로 태의를 만났어야 했었다.

    “홍 태의, 짐은 그 소리를 들으려고 오늘 그대를 부른 것이 아니다.”

    “흠, 흠. 폐하. 짐작하신 대로 손님께서는 향인임을 아뢰옵니다.”

    연훤의 얼굴에 흥미로움이 돋았다. 자신의 침상에 푹 파묻힌 그의 뺨에는 처음과 달리 발긋하게 혈색이 돌았다. 처음 주워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서적에 적힌 바로는 향인들은 정인을 만나면 수태가 가능하다고 하옵니다.”

    “알아, 질리도록 들었지. 지긋지긋한 발정기도 끝을 맺겠군.”

    “그, 폐하. 정인을 만나야 한다고 제가….”

    “정인이 되면 되지 않느냐?”

    기묘한 당당함에 홍 태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래, 이런 남자였지. 그러나 그의 자신감은 몸에 두른 거대한 기운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서 홍 태의는 더 이상 말을 않고 환자의 상태를 찬찬히 살폈다.

    이불 밖으로 비죽 나온 손이 가느다랬다. 발정기, 흔히 높으신 분들께선 고상한 단어로 양인과 음인이 겪는 발정기를 희락기라고 말했다. 짐승처럼 눈에 뵈는 것 없이 흘레붙는 걸 어찌나 고상히도 말들 하는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음인의 희락기는 이틀에서 삼일, 매달 조금씩 겪는 일이고, 서적에 따로 적힌 향인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그들의 희락기가 음인이 겪는 날보다 더 길다고 간략하게만 적혀 있었다. 양인이 겪는 희락기는 1년에 두 번 정도,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이 나라의 황제이기도 한 연훤은 그마저도 약으로 억누르는 것이 다였지만.

    “폐하, 폐하께서 진상된 향인의 향이 역겹다고 내치지만 않으셨어도 이리 길게….”

    “홍 태의.”

    “송구합니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봐 온 태의였기에 연훤은 별다른 말 없이 손을 가볍게 저었다. 연훤은 눈을 감고 잠이 든 향인에게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일단 향인인 것을 함구해라, 궁 안에는 표독스러운 자들이 아주 많으니.”

    “예, 폐하,”

    홍 태의가 조용히 읍하며 방을 빠져나갔다. 의자를 당겨 침상 곁에 기댄 연훤이 곤하게 깊은 잠에 빠진 남자를 살폈다. 조금 앳된 얼굴인 것 같기도 했다. 하루 일정이 모두 끝나면 늘 똑같이 해 온 일이었다.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조회 중에도 잠이 든 얼굴과 분내 같은 향이 코끝에서 아른아른했다.

    이불 위로 올려진 남자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대어도 보고 조금은 차가워졌나 싶어 손을 감싸고 주물러도 봤다.

    “얼른 눈을 떠 보렴.”

    그의 반응을 알고 싶었다. 왜 황제의 사냥터에 홀딱 젖은 채로, 그것도 귀하디 귀한 향인이 그러고 있었던 것인지.

    호기심에 주워왔으나 이렇게 누워만 있는 꼴을 보자고 데려온 것은 아니었다. 힘없이 늘어진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깍지를 껴 마주 잡고는 입가로 당겼다. 손끝에서부터 나는 보드라운 체향에 입안에 침이 저절로 고일 지경이었다.

    깨물고 싶은 건가, 그 생각을 이어갈 찰나, 잡혀 있던 손끝이 움찔거렸다.

    “으-….”

    달싹이는 입술,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사이로 어둠을 닮은 시선을 보았다. 연훤은 홀린 듯이 그 느릿함을 쳐다보았다. 달싹이는 입술 틈새로 ‘무울…’ 하는 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연훤이 아차 하며 잡고 있던 손을 놓고 협탁에 준비된 다기에 찻물을 부었다. 몸을 뒤척이며 끙끙거리는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등을 감싸 안았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몸이 힘없이 기대오며 마른 숨을 토했다.

    연훤이 찻잔을 입술에 대 주자, 그는 금세 꼴깍꼴깍하며 목울대를 울렸다. 흐릿했던 시선이 점차 또렷해졌다. 단숨에 비운 잔에 한 번 더 찻물을 채워 다시 입가에 대 주니, 이제는 손끝으로 받치며 찻물을 삼켰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그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물렸다. 품속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드디어 일어났구나.”

    자신도 처음 느끼는 달달한 음성이었다. 행여나 경계를 할까 싶어 다정스럽게도 꾸며진 목소리가 우스웠다.

    “여, 흐, 콜록, 여긴……?”

    기침을 하며 겨우 말을 뱉는 남자의 표정이 이상했다. 무언가 어색하고, 난생처음 보는 걸 마주한 것마냥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방과 주변, 그리고 눈앞에 있는 기연훤까지 아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의 표정이 겁을 먹은 듯 일그러지며 말했다.

    “나, 누구예요…?”

    소름이 돋았다.

    *

    남자는 어딘가 이상했다. 맨 처음 입고 온 옷들이 그러했고, 짧은 머리 모양이나 그 색이 그러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떼는 게 영 어색한 느낌도 들었다. 어린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는 것마냥. 뜨문, 뜨문.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매가 흐릿하게 쳐지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홀린다는 게 이런 것인가. 연훤은 그가 욕심이 났다. 그가 자신이 누구냐고 물어왔을 때 알 수 없는 희열감에 사로잡혔다. 이건 내 거야.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은밀한 감정이었다.

    조금은 알 수 없는 기분. 이걸 소유하고 싶은 것인가 향인에 대한 호기심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당장엔 아무 생각 않기로 했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는 태성국의 복식을 알지 못했고, 말투 또한 조심스러웠다.

    곤두선 경계심이 기꺼울 정도였다.

    “연훤 님.”

    “아랑, 몸은 좀 괜찮느냐.”

    이제는 제법 그 이상한 태를 벗은 남자, 아랑이 연훤의 물음에 해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연훤은 얼마 전 깨어나자마자 혼란스러워하는 그에게 말했다.

    ‘아랑(娥郞), 네 이름이란다.’

    ‘아랑?’

    ‘그래, 그리고 짐의, 아니. 내 정인이지.’

    연훤의 속삭임에 아랑은 무언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자신에게 다정하게 속살거리는 남자는 딱 보아도 귀태가 나는 미인이었다. 거기에 옷에 다 가려지지 못한 풍채며 위압감에 손발이 떨릴 정도여서 아랑은 조금 겁을 먹고는 뭉그적대며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그 행색에 연훤은 손을 뻗어 이불 위에 올려진 아랑의 손을 조심히 잡아끌었다.

    ‘아랑, 네가 기억을 잃고 나를 거절하려는 것이냐.’

    ‘하지만, 전, 사내고, 아무것도… 아무것도….’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울 것 같은 연훤의 표정에 아랑이 그의 말이 진정 사실인가 싶어 입을 다물었다. 망설임이 보여 연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물에 발을 헛디뎌 빠지고 난 뒤로 이레나 깨지 못했다. 대체 짐을, 나를 얼마나 애태울 작정이었지?’

    ‘이레…?’

    ‘되었다. 나를 잊어도 다시 처음처럼 어여뻐해 주면 되는 것을.’

    부드럽게 감기는 손에 홀린 듯이 연훤을 바라보던 아랑이 화들짝 놀랐다. 가까이 다가선 얼굴 때문에 아랑은 자신의 두 뺨이 열기로 홧홧해지는 것을 느꼈다.

    물에 빠졌다는 말은 연훤이 아랑을 처음 발견했을 때 물에 젖어 있어 지레짐작하고는 한 말이었다. 그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자신이 물에 빠진 것조차 잊은 듯해 나른한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어찌 되었건 연훤은 눈앞의 사내가 수척한 모습보다 생기 있는 모습이 훨씬 더 보고 싶었다. 조금, 더. 뭐라고 해야 할까. 무방비하게 올려다보는 뺨을 감싸며 다정한 정인이 되어 아랑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런 낯간지런 행동이라니. 연훤은 속으로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조금은 익숙해진 방이었다. 아랑은 환자도 아닌데 유리 세공품을 다루는 것마냥 조심스럽게 자신을 내려주는 연훤을 흘긋 바라봤다. 자신은 얼굴을 밝히는 것일까, 단정한 얼굴을 보고는 괜히 얼굴이 홧홧해져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연훤 님, 이제 괜찮습니다. 걱정을 끼쳐드렸네요….”

    “이런, 그런 말 마렴.”

    다정한 웃음이었다. 아니, 조금 차가운 것 같기도 했다. 왤까. 저렇게 꿀이 떨어질 듯 이야기해 주는데 알 수 없었다. 아랑은 조금 알 수 없는, 손끝에 무언가 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연훤의 시선이 한껏 느슨해졌다. 아랑의 작은 움직임에도 자신을 사로잡는 향이 맴도는 것 같았다. 향을 갈무리하는 법을 모르는 향인은 자신의 향긋한 체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탓에 침궁의 궁인들은 범인(凡人)으로만 들였다. 아무도 향인의 향을 맡지 못하게. 연훤이 짧게 숨을 삼키는 소리를 냈다. 아랑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따라 코를 씰룩이며 킁킁거렸다.

    시원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어릴 적부터 단련하는 양인답게 체향을 갈무리하고 있던 연훤이 잠시 방심하는 틈을 타 그 향이 고스란히 아랑에게 흘러 들어갔다. 아랑의 눈시울이 발긋하게 달아올랐다.

    연훤은 아차 하며 자신의 향을 갈무리하며 아랑의 손을 당겼다. 달달한 향이 한껏 맺혀 있는 것 같았다. 단것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입에 침이 고였다. 관리가 된 보드라운 입술에 아랑의 손끝이 닿았다.

    “아, 제발, 그러지….”

    “내 정인께서는, 나를 기억해 주지도 않고, 겁을 먹고 피하려고만 하는구나.”

    “아니, 아니에요, 피하려고 한 것….”

    아니, 피한 게 맞아. 낮은 음성이 방 안 가득히 울렸다. 다정히 웃어 주던 웃음이 사라지고 어딘가 싸늘한 표정만이 남은 연훤의 반응에 아랑이 입을 달싹였다. 가슴께가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니까, 그게, 무서워요….”

    연훤에게 잡힌 아랑의 손이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괜찮아, 기억날 때까지 보살펴 줄 테니.”

    나지 않아도, 괜찮겠지. 속으로 그 말을 삼키며 의중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연훤은 아랑을 품에 끌어안았다.

    *

    밤이 오면 등은 훨씬 더 방안을 환히 밝혔다. 궁인들은 어색해하는 아랑을 씻기고 얇아서 제구실을 할 것 같지 않은 속옷에 연하늘빛 침의를 입히고 허리에 붉은 매듭을 둘렀다.

    귀를 덮을 정도의 머리카락을 차분히 빗어 넘기고는 입술에 붉은 연지만 가볍게 발라 주고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당한 일에 아랑은 침상 위에 멀뚱히 앉아 일렁이는 빛 무리를 쳐다봤다.

    ‘이상한 옷.’

    머릿속이 뿌옜다. 지금 입은 옷은 몸을 가리는 게 아니라 선을 고스란히 드러낼 정도여서 아랑은 애써 제 몸을 내려다보지 않고 주변만 조심히 살폈다.

    ‘어여삐 하고 있으렴.’

    진중하고 묵직한 음성이 다시금 생생하게 느껴졌다. 눈을 뜨자마자 보게 된 첫 남자. 아랫배를 간질이는 듯한 기묘한 향, 웃지 않는 눈, 단단한 몸과 다정히 구는 손. 떠올릴수록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 덜컹하고 문이 흔들렸다.

    아닌가? 아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창가로 다가섰다. 손쉽게 열리는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둑한 하늘에 콕콕 찍힌 별 무리, 환히 뜬 선명한 보름달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온 지 얼마나 지났더라. 숨을 삼키는데 자신을 간지럽히는 향이 진득하게 다가왔다. 쿵쿵, 심장이 뛰는 소리일까?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더 은밀한 곳이 울리는 것 같았다. 뭐지.

    “으-….”

    아랫배? 아니, 조금 더 아래였다. 간지럽기도 하고 약하게 통증이 일어 옷을 구깃구깃해질 정도로 붙잡았다. 간지러워. 이상한 간지러움을 해소하고 싶었다. 맞붙는 허벅지를 약하게 비비며 휘청였다.

    덜컹, 이번에는 확실히 들려온 소리였다. 흰 침의를 입은 사내가 들어와 침상을 살피는가 하더니 이내 아랑이 서 있는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아랑? 추운데 대체…….”

    몇 걸음 옮기지 않아 성큼성큼 걸어온 연훤이 아랑의 어깨를 감쌌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리니 아랑의 두 뺨이 발긋하게 달아오른 게 보였다.

    “아-!”

    아랑의 입에서 순간 달큰한 숨이 터져 나왔다. 창을 닫으려고 움직였던 연훤이 멈칫했다. 침실을 꾸몄다는 말에 헛웃음 치며 느긋하게 왔건만.

    “연훤 님, 나, 이상해서….”

    아랑이 연훤을 끌어안았다. 손이 그의 옷 위를 배회하듯 느릿하게 쓸었다. 갈증이 이는 듯한 움직임. 실내화조차 신는 걸 깜빡한 아랑의 발끝이 알 수 없는 찌릿함에 저절로 곱아들었다. 연훤은 훅, 하고 끼쳐오는 달큰한 향을 삼켰다. 향이 무기라면 웬만한 사내는 짓누를 수 있을 만큼의 끈적하고 묵직한 향이었다.

    아랑이 그를 밀어 넘어뜨렸다. 잠시 방심한 사이 일어난 일이라 등이 얼얼할 정도였다.

    “학, 하아…….”

    연훤은 단 숨을 색색 뱉으며 자신의 몸 위로 올라탄 아랑을 올려다봤다. 어설피 연훤의 가슴팍을 짚고, 그의 배 위에서 엉덩이를 문질렀다.

    “아, 흐윽, 나, 간지러워… 연훤, 연훤니임….”

    음란한 향이었다. 아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침의 자락이 젖어 들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서툴게 들썩이는 허리며 혼자 부들거리며 옷을 꼭 쥐는 행색을 보며 연훤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맺혔다. 슬금슬금 몸을 타고 내려가는 아랑이 다시금 엉덩이를 들썩일 찰나에 연훤이 몸을 일으켰다.

    등을 감싸 안으며 연훤이 아랑의 목덜미를 핥았다. 쭙, 춥, 젖은 소리를 내며 빠는 행동에 아래가 다 저릿했다. 연훤은 가볍게 아랑의 몸을 들어 올려 휘장을 걷었다. 풀썩 넘어뜨린 아랑의 옷깃이 흐트러졌다.

    “조금 더 기다리려고 했건만.”

    하의는 입지 않아, 딸려 올라간 옷자락 사이로 흰 다리가 드러났다. 허리 매듭이 아슬아슬하게 침의를 잡고 있는 꼴이었다. 능숙하게 끈을 풀며 옷깃을 헤쳤다. 뽀얀 살결과 함께 맨둥맨둥한 아래가 보였다. 하, 연훤은 마른침을 삼키며 아랑의 유두를 입에 물었다.

    “아…!”

    연훤의 어깨를 잡는 손이 밀어내려는 것인지, 아니면 잡아당기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연훤은 혀끝으로 작은 유실을 살살 굴리는가 하면 이로 살점을 조금씩 긁으며 그 끝을 자극해댔다. 아랑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에 자리 잡고선 그 주변을 자근자근 깨물어댔다. 몸이 달았다. 아니, 그저 자신의 착각인 것일까?

    약을 써도 통하지 않는 자신인데, 지독한 향에 사로잡힌 기분이었다. 연훤은 아랑의 가슴을 게걸스럽게 핥았다. 연훤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쓸린 아랑의 성기 끝에서 말간 액이 똑, 똑 떨어져 아랫배를 지저분하게 적시고 털 한 올 없는 치골로 타고 흘렀다. 옆구리며 엉덩이를 쥐었다 놓은 손이 거칠 것 없이 아랑의 성기를 쥐었다. 그리고 앳된 색의 피부를 느릿하게 문지르는가 하면, 엄지로 벌어진 귀두 끝을 살짝 헤집었다.

    거추장스러운 옷은 벗어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단단한 몸에서 열기가 풀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랑은 머릿속이 점점 멍해지는 것 같았다. 얼른 아래를 긁고 싶었다. 무엇이든, 빨리.

    울컥, 무언가 쏟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싹함에 두 다리 사이에 연훤을 낀 채로 아랑의 몸이 한껏 움츠러들었다. 향이 더 짙어졌다. 연훤은 휘말리는 듯한 기분에 고개를 한번 내젓고는 다시 몸을 숙였다. 아랫배에 입을 맞추고 춥, 춥 핥으며 치골 위의 연약한 살을 깨물었다. 부들부들한 피부에 자신의 성기도 몸집을 키워대고 있었다. 향인의 안은 뜨겁고 축축하다 들었는데. 연훤의 입술이 아랑의 성기를 스쳤다. 허벅지 안쪽을 더듬어 깨물고 점점이 붉은 자국을 남겼다.

    연훤의 입술도 타액으로 축축이 젖었다. 고간 사이로 가까워질수록 향이 짙었다. 제 손가락을 혀로 가볍게 적시며 상대의 아래를 탐하려던 찰나였다. 미끈한 애액이 문질러졌다.

    하.

    “아랑, 젖었구나. 이리 쉬이 젖어서야.”

    손끝에 묻어난 애액을 연훤이 거리낄 것 없이 삼켰다. 아랑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가 제 몸을 더 진득하게 핥을수록 아래가 더 간지러웠다. 빨리, 만져줘.

    “흣, 하아, 아아, 제발, 제발….”

    약하게 도리질 치며 허리를 들썩였다. 연훤은 그 작은 재롱에 웃으며, 흥분으로 도톰하게 부푼 회음을 손으로 눌렀다. 아니, 그곳을 눌렀다고 생각했다. 쑥, 하고 손끝이 밀려 들어갔다. 뭐지, 자신이 너무 아래를 더듬은 것인가 싶어 잠시 사고가 정지됐다.

    “하앙, 아!”

    허리가 휘며 바르르 떨리는 몸, 울컥하며 손끝을 적시는 뜨끈한 애액. 폭 젖은 소리와 함께 연훤의 손가락이 물러났다. 흥건히 젖어 번들거리는 손이 보였다. 착각이, 아니었어.

    연훤은 애액이 묻은 손 그대로 아랑의 오금을 잡아 들어 올렸다. 휙, 꺾이는 허리. 발긋하게 달아오른 둔덕이 보였다. 일반 성인 남성의 것보다 작은 고환이 위로 축 늘어지며 은밀하게 숨어있던 공간이 드러났다. 발정난 냄새였다. 애액을 흥건히 흘려 비문까지 적신 뒤였다. 붉은 실선이 보여 그 위를 쭈욱 살피니 작은 음핵까지 당당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여성기였다.

    향인의 향 근원지가 그곳임을 알리듯 짙고 음란한 향이 헤쳐나왔다. 움찔움찔 몸을 떨 때마다 그곳도 흠칫거렸다. 헉, 허억, 머릿속이 둔해졌다. 두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걸치며, 남성기를 고스란히 밀어 올렸다. 꿀꺽, 전쟁 때도 긴장한 적 없었던 연훤이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그곳을 손끝으로 꾸욱 벌렸다. 얕게 벌어지는 것과 붉은 속살은 틀림없는, 여성기였다.

    “하아, 으응 연훤, 아, 제발, 간지러워… 아, 아응….”

    헐떡대는 숨소리가 들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연훤이 손끝으로 그곳을 더듬었다. 쩌억, 쩍. 손길 따라 벌어지는 작은 둔덕에서 울컥, 하고 액이 비어져 나왔다.

    연훤이 고개를 숙였다.

    “흐아아…!”

    스읍, 쯥, 쫍, 연약한 여성기에 입맞춤을 하듯 움직였다. 혀가 그 주변을 간지럽히듯 핥는가 하면 작게 벌어지는 곳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피부를 간지럽히는 더운 숨결에 솜털이 다 일어설 지경이었다. 스읍, 쫍… 빨아 핥아 올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몸을 타고 내려왔다. 쩍쩍 달라붙는 입술과 혀가 내벽을 핥았다. 우둘투둘한 내벽은 침입자에 놀라 어쩔 줄 모르고 움츠러들었다. 연훤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혀 놀림으로 게걸스럽게 움직여 울컥하고 역류하는 액을 꿀떡꿀떡 삼켰다. 두 사람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약에 취한 듯, 체액이 그를 집어삼킬 듯 굴었다. 연훤의 혀와 손가락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그러나 작고 좁은 곳은 아직 침입자를 받아들이질 못했다.

    “아, 아악, 으응, 아파아, 흑, 연훤, 연훤 님….”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아랑의 고환이 연훤의 코에 걸렸다.

    “하하, 젠장, 이런 걸 숨겨두고 있었다니….”

    연훤은 이불보를 쥐는 아랑의 손을 잡아 스스로의 성기를 잡게 했다. 움찔대는 고환까지 감싸 쥐게 하고서는 애액이 흥건한 살결 위를 훔쳤다. 아직, 이곳에 침입하기엔 너무 좁았다. 그러던 와중, 연훤의 눈에 향유가 걸렸다. 그는 손에 가득 부은 향유를 가볍게 데우듯 손을 움직이며 자신의 성기 위를 한번 쓸고, 아랑의 비문을 건드렸다.

    “나중에, 조금 더 익숙해지거든 씨물을 넣어 주마.”

    “하아, 하아, 왜, 왜에, 지금 넣어 줘요, 넣어, 흐읏 아…!”

    겁먹었을 때와는 달리 잔뜩 흐트러진 모습으로 아랑이 헐떡였다. 여성기가 애가 달아 발랑거렸다. 연훤은 조금 안타까운 듯 얼굴을 구기고는 오물오물 조여드는 비문을 헤집었다. 촘촘하게 쪼이는 감각에 눈가를 찡그렸다. 진한 향에 머리가 울릴 정도였다. 까닥했다간 자신도 희락기가 같이 올 것 같았다.

    “힘을 풀어야, 여기를 쑤셔 주지 않겠니.”

    울먹임 가득한 얼굴에 입을 맞췄다. 언제 사정했는지 모를 정액이 아랑의 배 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억지로 벌리고 들어서고 싶지만, 끄트머리도 못 들어갈 것 같았다. 아쉬운 대로 연훤은 아랑의 살결에 자신의 귀두를 비볐다. 뜨끈한 체온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아랑. 손 떼야지.”

    간지러움을 참지 못한 아랑이 다리를 벌리고 자신의 손을 내려 여성기의 음핵을 문질렀다. 움찔움찔 몸을 떨 때마다 연훤의 손가락이 파고든 뒤쪽에도 힘이 들어갔다. 구멍이 쩌억 쩍, 벌어질 때마다 애액이 손가락을 타고 주룩, 흘러내렸다. 이리 물이 많아서야.

    연훤이 아랑의 손을 당겨 자신의 성기를 잡게 했다. 한 손에 다 쥐어지지 않을 정도의 굵기에 헐떡이던 아랑이 멈칫거렸다.

    “큰일 나. 피를 보고 싶은 게야?”

    억지로 한다면 할 수야 있다만, 요 며칠 동안 보살핀 탓에 마음이 약해진 모양이었다. 답지 않게 연훤이 참으며 말했다. 아랑은 향유가 흥건히 묻어 있는 연훤의 성기를 느릿하게 쓸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뒤를 쑤시는 감각에 놀라 멈칫거린 게 몇 차례.

    “오늘은 뒤쪽으로만 하는 거야, 아랑.”

    “흣, 흐읏 그치마안, 아, 아흑….”

    손의 각도를 달리하자 금세 달큰한 숨소리가 뱉어졌다. 손끝에 걸리는 도톰한 내벽을 짓누르듯 문지르자 아랑의 몸이 잘게 튀었다. 느린 손짓이 자극점을 노리듯 점차 빨라졌다. 아랑에게 몸을 바짝 붙인 채로 마치 삽입할 듯이 구는 손 탓에 아랑이 쥐고 있던 연훤의 성기가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아직 빠듯할 것 같은데, 오물오물하는 구멍을 보다가 자신도 참기가 어려워진 연훤은 남근을 슥슥 문질렀다.

    “아랑, 엎드리렴.”

    흥분으로 혼곤한 아랑이 고개를 까닥이며 느릿하게 몸을 뒤집었다. 열기로 발긋하게 달아오른 등과 흰 엉덩이가 보였다. 연훤은 아랑의 어깨 언저리를 잘근잘근 깨물며 엉덩이 사이를 푹푹 찔렀다. 삽입이 아닌 그저 흥을 돋우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실수인 척 여성기 위를 문지르고 엉덩이 골 사이에도 뜨끈하게 열 오른 성기가 슥슥 문질러졌다. 아랑은 엉덩이를 쭉 뺀 자세로 이불을 꼭 쥐었다. 톡톡, 하며 엉덩이를 두드리는 손길이 이상할 만큼 자상했다.

    “흐앗, 아, 아아…!”

    꾸욱, 두툼한 귀두 끝이 작은 구멍을 억지로 비집었다. 힘을 빼라며 아랫배를 문질러 오는 손길이 앞을 더듬으며 바짝 선 작은 남성기를 쥐었다. 눈가에 고인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아래쪽 두 구멍 전부에서 액이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처럼.

    연훤은 앞으로 나아가는 몸을 끌어당겼다. 즈윽, 살을 벌리고 들어오는 성기에 내벽이 쩍쩍 달라붙었다. 벌어진 입에서 타액이 줄줄 흘렀다. 헉, 허억. 아랑이 겨우 숨을 뱉는 것을 보면서도 연훤은 어깨에 입을 맞추며 아랑의 남성기를 만지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귀두 끝을 스칠 때마다 숨어 있는 여성기가 움칠거렸다. 모르고 지낼 때는 몰랐는데, 자신을 드러내자마자 요란스럽게도 존재를 알려왔다. 빨리, 씨물을 내놓으라는 듯.

    쿡, 하고 찌르는 움직임에 파드득 몸이 튀었다.

    “흐, 흐으으, 앙, 아, 연, 연훤….”

    흐느낌이 섞인 음성에 몸을 바짝 붙인 연훤이 아랑의 몸을 바짝 끌어안으며 추삽질을 했다. 퍽, 퍽,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스럽기도 했다. 어떡해애, 커다란 몸에 깔린 작은 몸이 바르작거렸다. 조금 더 깊게 품으려고 드는 것인지, 아니면 빠져나가려고 움직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땀이 바작바작 배어 나와 검은 머리카락이 이마며 뺨에 엉망으로 들러붙었다. 긴장으로 흘린 땀이 미끈했다. 연훤은 움츠러드는 다리를 벌리게 하며 뒤를 쑤석거렸다. 힘을 풀지 못한 아랑이 엉덩이를 뒤채면 반쯤 물리고 있던 성기가 퉁, 튕겨 나왔다.

    “아랑, 힘, 좀… 후우, 끊어먹을 셈이냐.”

    아랑이 흐느끼며 도리질 쳤다. 향이 점점 짙어졌다. 열성인 양인들이 있었다면 눈을 뒤집고 달려들었을 만큼의 진한 향이었다. 연훤은 혀를 짧게 차며 아랑의남성기를 쥐고 있던 손을 아래로 더 내렸다.

    “아-!!”

    팔꿈치로 겨우 지탱하고 있던 몸이 풀썩 쓰러졌다. 손끝이 자그마한 음핵을 스치자마자 바르르 떨리며 기다렸다는 듯이 액이 주륵 흘러내렸다. 절정이었다. 손만 댔는데도 이렇게 자주 사정해서야.

    스치기만 한 것인데도 벌벌 떨어오는 예민한 몸을 느끼며 연훤은 아랑의 어깨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아래를 헤집는 손은 좀 더 거침없어졌다. 비죽하니 발기한 음핵을 손끝으로 희롱하듯 빙글빙글 돌리는가 하면 두 손가락으로 꼬집듯이 집어왔다. 부드럽고 간지럽게, 살살 문지르는 손길에 아랑의 허리가 들썩거렸다.

    “흐윽, 흐읏….”

    연훤은 더운 숨을 훅훅 뱉으며 튕겨져 나와 있던 단단한 성기를 아랑의 엉덩이 사이에 끼우고 느릿하게 문질렀다. 금방이라도 비문에 찔러 넣을 듯 성기가 들썩거렸다. 연훤은 빨리 이것을 해소하고 싶었다.

    “흡, 흐읏, 아, 제발, 제발….”

    꾸욱 밀려 들어오는 성기에 아랑의 몸이 덜덜 떨렸다. 연훤의 성기가 벌어진 여성기의 살결을 문지르고 미끌거리는 애액으로 음핵을 재차 문질렀다. 남성기보다도 저릿한 반응을 보이는 게 처음 겪어서인 건지, 아니면 향에 휩쓸렸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보다는 훨씬 더 편하게 쑥, 쑥 밀려 들어가는 남근에 연훤은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휘장이 내려진 침상에는 더운 숨이 가득 들어찼다. 헉, 허억… 말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아랑은 뜨끈하게 마찰하는 성기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몸을 뒤채다가도 깊숙이, 도톰히 부푼 곳을 내찌를 때마다 앓는 비명을 흘렸다.

    “빨리, 빨리이, 아, 빨리, 제발….”

    이불을 꼭 움켜쥐었던 손이 뒤를 향해 허우적거리며 뻗어졌다. 더듬더듬 올라간 손이 연훤의 허벅지를 더듬는가 싶더니 손끝을 세우며 그의 엉덩이를 콱 움켜쥐었다. 아니, 할퀸 것에 더 가까웠다.

    “큭-.”

    꽤 따끔한 기척에 이를 악물었던 연훤이 당황했다. 씹, 고상한 남자의 입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욕지기가 흘러나온 것도 같았다. 아랑의 내벽에 울컥, 사정한 연훤은 황당한 낯을 했다. 뜨끈한 정액이 안을 그득히 채웠다. 일반인과는 다른 양에 작은 움직임에도 틈새로 허연 액이 삐져나왔다.

    “아랑, 아랑?”

    한껏 긴장한 몸이 주륵 엎어졌다. 퉁 튕겨 나온 성기 끝에서 허연 액이 튀어나와 연훤의 손자국이 남은 흰 엉덩이 위에 뚝뚝 떨어졌다.

    연훤이 이불을 대충 당겨 자신의 성기를 대충 닦고선 아랑을 살폈다. 그는 눈가가 짓무를 정도로 울고서는 기절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이런.”

    꼴이 말이 아니었다. 연훤은 손을 뻗어 아랑의 엉덩이를 벌렸다. 움찔, 하며 흘러내린 뭉글뭉글한 흰 액이 골을 타고 흘러 여성기까지 적셔들었다. 향인이 수태할 수 있다는 게 이것 때문일 줄이야. 연훤은 휘장을 살짝 걷었다.

    “오 태감.”

    “예, 폐하. 목욕물을 올릴까요.”

    “입이 무거운 자들만 불러라, 씻어야겠구나.”

    “예.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휘장이 내려가자 다시 침상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온 듯했다. 연훤은 웅크린 채로 색색 잠에 빠진 아랑의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이 애처롭고도 어여뻐서…….

    어여뻐?

    “하하, 미쳤군, 향에 미쳤어.”

    정인 행세를 하더니 미친 것인가. 연훤이 제 입가를 쓸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랑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뭐, 어여쁜 것도 괜찮겠지.”

    으응-, 작은 뒤척임에 연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흐르는 액이 보기가 싫었다. 희락기라고 하기엔 너무 짧게 끝이 난 정사였다.

    “무엇이 네 음심을 자극한 것이냐.”

    궁금증이 일었다.

    *

    순진하게도, 눈을 뜬 아랑은 부끄러워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온몸을 드러낸 것으로도 모자라 누군가가 자신의 은밀한 곳에 얼굴을 박고서 그런 일을 할 줄 몰랐기에, 자신을 챙기는 연훤을 흘긋흘긋 훔쳐보다가도 그 모습이 생각나 얼른 고개를 숙이곤 했다.

    “아랑.”

    “으, 으응, 예, 폐하.”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부러 이름을 부르라 시켰건만. 깨어나자마자 궁인이 부르는 호칭에 덩달아 놀란 아랑이, 여태껏 잘만 불러오던 이름을 두고 폐하라고 불러댔다. 연훤이 혼자 화를 삭이는 와중에 아랑은 입술이 바짝 바르는 기분이었다. 연훤의 회청색의 눈을 보고 있자니 아래가 다시 저릿해져 오는 것 같아서.

    “아랑.”

    “네. 네?”

    힘주어 부르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드는 아랑을 보며 연훤은 짜증이 조금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두 뺨이 발긋해져서는 시선을 어디다 둘 줄 몰라 음, 음 하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꼴이었다. 귀엽게도.

    일부러 일정을 몇 가지 물리고 정자에 다과 상을 차렸건만, 처음 정인이라 했을 때보다 더 어색한 상황이었다.

    “무엇 때문이냐.”

    “무엇, 이요…?”

    아랑은 금방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갸름한 턱선이나 낭창한 몸이 자꾸 떠올라 연훤도 입안이 썼다. 약과를 하나 잡아 아랑의 입술 위로 툭툭 두드리니 아랑이 아기 새가 된 것마냥 야금야금 받아먹었다. 연훤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 입술에서 목덜미, 그리고 그 아래까지.

    “폐하…?”

    “그 호칭은 집어치우거라. 연훤이라고 부르라 했건만.”

    “그, 화나셨나요?”

    연훤의 대답에 아랑이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물었다. 소매에 반쯤 가려진 두 손을 꼬물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연훤의 손 위를 덮었다. 감싸 쥐었다는 게 더 옳았다. 마치 홍시처럼, 톡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낯을 하고선.

    “짐과 한 색사가 그리 부끄럽더냐.”

    “연훤 님!”

    누가 들을까 싶어 아랑이 손으로 연훤의 입술을 덮었다. 반응도 순진하고, 이 향인을 어찌한다. 이미 놓을 생각 따위 없는 연훤은 아랑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기꺼웠다. 촉, 촉. 손바닥에 입을 맞추자 간지러운지 부르르 떨어왔다.

    “그래, 응? 자주 부르거라.”

    내외하듯 떨어져 있었던 몸을 휙 끌어안았다. 폭 감기는 몸에 향긋한 향이 맴돌고 있었다. 연훤은 홀린 듯 아랑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코끝을 부볐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두 입술이 닿을 거리였다.

    “아랑, 넌 내 정인이다. 기억해두렴.”

    “흣, 연훤… 님….”

    쪽, 쫍, 연훤은 가볍게 아랑의 입술을 빨았다. 눈을 꼭 감고 부들부들 떠는 상대의 모습을 가벼이 감상하며 연훤이 설핏 웃었다. 기억이 돌아오더라도 제 품 안에 품어야 하지 않겠나. 조금은 이대로 기억이 안 돌아와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입맞춤이 멎자 이제 다 끝난 것인가 싶어 슬그머니 눈을 뜨는 아랑의 모습에 연훤은 그의 목덜미를 감싸며 진득한 입맞춤을 했다. 응, 으응. 작은 비음이 입술을 핥는 소리에 묻혀들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아랑은 제 입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을 꾹 눌러 참았다. 가는 숨소리만 허공으로 흩어졌다. 다과를 즐기다 말고 입을 맞추고, 몸을 기대니 손이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 아흡….”

    “더, 벌려야지, 아랑.”

    제 몸을 끌어안은 사내의 음성이 바닥을 긁듯이 낮았다. 얼핏 멀리서 본다면 품 안에 안고 있는 것만 보일 터였다. 그러나 지금, 아랑은 다리가 쩍 벌어진 채 한 다리는 연훤의 허벅지 위에 걸쳐져 있었고, 등 뒤로는 그의 팔이 어깨를 감싸 쥔 상태였다. 남은 한 손은 입을 맞출 때 순식간에 아래로 파고들어선 속곳 위를 꾹, 꾹 느릿하게 눌러댔다.

    연훤은 어깨를 쥐었던 손을 놓으며 자꾸 숙여지는 아랑의 고개를 들게 했다.

    “속옷이 다 젖었군, 자꾸 이렇게 단내를 풀풀 풍겨서야, 혼자 두지도 못하겠고.”

    “단, 내…? 아, 제발, 만지면, 안 돼…!”

    연훤의 방해로 아랑은 다리를 오므리지도 못한 채 숨을 헐떡거렸다. 손만 조금 더 움직이면 천을 헤치고 손가락이 파고들 것만 같았다. 간밤의 색사처럼. 아직 자극을 잊지 못한 몸은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부르르 떨었다. 흰 뺨이 금세 발긋하게 물들었다. 아랫배를 슬금슬금 긁어대는 간지러움에 아랑은 입술을 꿈질꿈질 물었다.

    “얼른 여기를 쓸 줄 알아야지. 아랑, 오늘 밤에도 기분 좋은 일을 할까?”

    속곳 위로 아랑의 남성기를 쥐며 가볍게 주물렀다. 말랑말랑한 살덩이가 단단해진 것이 느껴졌다. 감촉이 천 너머로 다 느껴질 지경이었다.

    약한 자극에 아랑이 새된 비명을 지를 찰나였다. 벌어지는 입술을 머금자마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달갑지 않은 기척이 느껴졌다. 추읍, 입술을 빠는 젖은 소릴 내고, 아랑이 연훤의 품속으로 축 늘어졌다.

    “무슨 일이냐.”

    잠깐의 정사에 흐트러진 목소리를 바로 잡으며 말했다. 숨을 할딱이던 아랑이 눈을 깜빡이자 그의 코끝에 입을 맞추고는 연훤이 고개를 돌렸다. 떨어진 곳에서 시립해 있던 이는 오 태감이었다.

    “그….”

    “괜찮으니 말하라.”

    “간밤의 일로 소문이 난 듯합니다.”

    “그런데?”

    간밤에 있었던 색사에 관한 일이었다. 단속을 한다고 했었으나 급하게 바꾼 이들 중에 입이 가벼운 자들이 있었나 싶었다.

    “청우(靑玗)냐, 아니면 유백(柳栢)이냐. 아니면 다른 곳 먼저 소식이 들어갔느냐.”

    즉위 후 자신을 따라 전쟁까지 함께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자신들의 자식을 진상할 줄이야 꿈에도 알았겠는가. 일반 양인과는 달리 음인의 향을 즐기지 않을뿐더러, 희락기도 약으로 버텼던 그였다. 황제 자리에서 밀려날 구실 따위는 없었지만 나서서 적을 만들 필요가 없어 그냥 두었건만.

    “두 곳 모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아주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군.”

    “…연훤 님?”

    기억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랑은 연훤의 대화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연훤은 그들과 서약을 할 때 원하는 것을 들어 주겠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 아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로 어깨 길이 이상의 머리를 유지하는 태성국의 사람들과 달리 유난히도 짧은 머리를 하고 있어 흐트러진 모양새를 삭삭 쓸어주니 반듯한 이마가 드러났다. 벌어진 다리를 마저 당겨, 두 다리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라가게 했다.

    “아랑, 네가 색사에 대해 너무 몰라 곤란하구나.”

    언제 진지한 이야기를 했냐는 듯, 다정하고 달콤해진 연훤의 목소리가 속살거렸다. 색사, 그 단어에 금방 또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며 연훤은 웃었다.

    “그냥 두거라.”

    “네?”

    “아니, 아니다.”

    오 태감은 연훤의 지시를 받잡으며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선선한 바람이 살랑살랑 흘렀다.

    *

    청우와 유백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자식을 후궁전에 넣을 생각조차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황제는 여전히 굳건했고 아름다웠으며 흔히 없을 상양인으로, 결국은 음인을 필요로 한다고 했었으니.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황제, 기연훤이 평범한 음인의 향을 질색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웃긴 것은 음인도 뭣도 아닌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었고.

    타닥타닥, 방 안의 원목 탁자를 두드리는 손이 느릿했다. 곱상하게 단장을 하고 앉은 여인, 유 겸은 한 자락 소문에 실소를 했다. 드디어 자유구나.

    황제의 안배에 갑갑한 집을 벗어난 뒤로 지금껏 평온한 생활이었다. 가능하다면 침궁 손님에게 온갖 방사를 다 알려 줘 저 콧대 높은 황제를 부디 놓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

    연훤은 집무실에서 올라오는 상소문을 읽고 있었다. 하여간 귓구멍만 빠른 노인네들. 자신들이 밀어 넣은 자식들의 앞길이 영 밝을 것 같지 않아 보이니 이리 발 빠르게도 상소문이 올라왔다.

    그리고 밖에서 짜랑짜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께 아뢰어 주게.”

    “마마, 폐하께옵선 지금 공사다망하시어….”

    “오 태감.”

    주절주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상소문을 내려놓으며 연훤이 ‘들이게.’ 하고 말했다. 마지못해 문이 열렸다. 거침없이 걸어 들어온 두 사람이 가볍게 읍했다. 짜랑짜랑 울리는 장신구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빠르기도 하지.”

    “폐하를 뵈옵니다.”

    “경하드립니다, 폐하.”

    선선하게 대답하는 여인과 성급히도 축하 인사를 올리는 사내였다. 비슷한 또래의 두 사람 중 여인이 그런 사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쳤다. 그래, 이런 사람들이었지. 연훤이 웃으며 어좌에 편히 기댔다.

    “오 태감, 손님께 차를 내어드려라.”

    “예, 폐하.”

    여인 쪽이 먼저 자리에 앉고 가볍게 인사했다. 홀가분해 보이는 듯한 인상이었다.

    “송구합니다, 폐하.”

    “무슨 기쁜 소식이 있어 두 사람이 그리 다정히도 들어왔는가?”

    “드디어, 합방을 하셨다는 소식에 달려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밤새 울음소리가 가득했다면서요?”

    “선현아.”

    “그렇지만, 겸 누이. 폐하를 보셔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두 사람 때문에 헛웃음이 다 나왔다. 친우였으나, 일등 공신들의 잠깐의 실수로 한순간에 후궁으로 들어오게 된 두 사람이었다. 허울 없이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겸이라고 불린 여인이 한번 타박을 하면, 선현이라고 불린 사내가 시무룩하니 입술을 삐죽였다.

    유겸과 청선현. 유백의 차녀와 청우의 삼남이었다.

    세 사람은 막역지우에 가까웠다. 신분이 한 번도 걸림돌이 된 적 없이 평탄히도 지내왔는데, 전쟁과 황제의 즉위, 그리고 두 아버지의 오판으로 인해 조금은 애매한 상황이 되었었다.

    평범한 범인인 겸과 음인인 선현. 집안에서 썩 중요한 패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터라 그렇게 쉽게 처우가 결정되고 말았다. 황제가 된 연훤이 말했다.

    ‘너희들에게 약조하마.’

    “자유를 주신다 하셨지요. 그땐 어찌나 철없으셨는지.”

    “나름 줬지 않나.”

    “어, 그럼 정인을 맞이하면 보내 준다는 건 거짓이었어요?”

    선현의 철없는 말에 겸이 웃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분위기에 연훤의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뭐, 노력은 해보겠다만.”

    “큰 기대는 안 합니다, 그나저나 누굽니까? 그리 소리 소문도 없이.”

    “어느 집 귀한 자제가 입궁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요.”

    지금은 어쩐지 자신들의 자유에 관한 이야기보다도 침궁에 꽁꽁 숨겨 놓은 이를 더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연훤이 삐뚜름하게 웃었다. 그런 묘한 웃음을 눈치챈 두 사람이 흠흠, 헛기침을 하며 궁인들이 두고 간 차를 쉼 없이 홀짝였다.

    “향을 따라가다가… 주웠지.”

    말만 해도 입안이 달았다. 아침부터 수작을 건 탓에 지금은 단잠을 자고 있으려나, 싶었다. 아랑은 쉽게 달아오르고 발정했다. 연훤이 미묘하게 기분 좋은 표정인 것 같아 보여, 소문을 캐내러 찾아온 두 사람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폐하, 농담 마시고요.”

    참지 못한 겸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연훤이 오히려 왜 그러냐는 듯 쳐다봤다.

    “진정 주워왔다. 물에 빠졌다가 나온 것인지 젖은 채로 눈앞에서 쓰러졌는걸.”

    “그… 어느 집 자제인지는 모르고요?”

    “글쎄.”

    하아, 깊은 한숨이 터졌다.

    “어디의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무방비하셔도 됩니까.”

    “자네들도 보면 수긍하게 될걸.”

    “대체 뭘요.”

    “그이가 내 사람이란 거?”

    미묘한 당당함에 두 사람이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선현은 이제는 모르겠다는 얼굴로 다과를 한입에 삼켰다. 다 큰 어린애 같은 기분에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겸만 힘이 축축 빠지는 느낌이었다.

    “내 씨를 품게 될 거다.”

    시큰둥했던 두 사람의 표정이 달라졌다.

    *

    세 사람의 대화 따위 알 리 없는 아랑은 선잠을 자듯 꾸벅꾸벅 졸다가 눈을 떴다. 맨다리에 이불자락이 감겼다. 잠깐 연훤을 배웅하려고 일어났던 것 같은데, 무엇 때문인지 재차 옷을 헤집고 늘어지는 탓에 숨을 헐떡이다가 잠이 든 것 같았다. 흰 침의만 겨우 당겨 입고는 꼬르륵 울리는 배를 문질렀다.

    눈을 감았다 뜨면 기억이 나지 않을까 했는데 머리는 여전히 텅 빈 백지 같았다. 그 백지에 하나, 하나씩 연훤이 알려 주는 것들을 새기는데 그래도 허전했다.

    사타구니 아래가 아릿했다.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자꾸 만져대던 손길만 떠올라 아랑은 홧홧한 뺨을 식히려 손을 파닥였다.

    그의 손은 조금 더 컸는데. 아랑은 배를 느릿하게 문지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아래로 내렸다. 아니, 내려갈 뻔했다.

    “아랑 님, 식사를 올릴까요?”

    “아, 아? 네, 네!”

    화다닥, 불에 덴 사람처럼 아랑이 침상 위에서 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했었지? 아래가 움찔거렸다.

    그냥 모른 채로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금세 방 한편에 식사가 차려졌고 아랑이 끈을 재차 묶으며 침의를 입은 채로 침상에서 내려왔다. 궁인은 그런 아랑의 상태에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달그락, 수저를 놀리는 손길이 느릿했다. 따끈한 국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조금은 칼칼한 듯한 맛이었다. 보는 사람이 없어 먹는 속도는 느릿했다. 고기 완자를 반으로 툭 잘라 우물우물 씹었다. 짭조름하게 입맛 돋는 장조림까지 일품이었다. 향을 고스란히 머금은 야채도 느릿하게 씹으며 밥을 떴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른 느낌에 수저를 내리고 한쪽에 준비된 옷으로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사람을 부르면 분명 누군가 들어와 입는 것을 도와주겠지만 아직까지는 너무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다 입고 나니 연훤의 용포처럼 화려한 복장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새였다. 누군가의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평범한.

    창문을 여니 해가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밤새 잠도 못 자고 겨우 잠들었다 깨서 다시 한참을 시달리고, 눈 뜨니 오후라니. 자꾸 시간이 휙 하고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안 피곤하신가….”

    자신이야 중간중간 기절하듯 자버렸지만, 연훤은 그러지 않아도 멀쩡하기만 했다. 엄청 좋은 걸 챙겨 먹은 것마냥 쌩쌩한 얼굴이라고 해야 할지. 아랑은 의자를 끌어다 창 앞에 두고 편안히 자리에 앉았다. 바람이 선선했다. 예전과 다르게 평온한 일상이라 마냥 기분이 좋은 느낌도 들었다.

    예전?

    텅 빈 머릿속에 흐릿하게 무언가 스쳐 지나간 기분이 들었다. 뭘까. 아랑은 감았던 눈을 느릿하게 떴다. 두 손끝이 톡톡 부딪혔다. 초조해지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숨을 내쉬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부지런히 상을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랑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눈을 살짝 감았다. 조용한 것은 좋으나 뭔가 이상했다.

    “어?”

    코끝에 시원한 향이 스쳤다. 고개를 돌리니 아직 텅 빈 방이 보였다. 아랑은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었다. 시립해 있던 궁인들이 화들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아랑 님?”

    “아, 저기, 잠시만….”

    아랑이 머뭇거리듯 대답하고는 몸을 휙 돌려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시원한 향이다. 빠른 걸음이 어느덧 뜀박질이 되었다. 궁인들은 그의 행동에 놀라 뒤늦게 뒤따랐다.

    “-연훤 님.”

    집무를 마치고 가벼운 차림으로 막 정문을 들어서고 있던 연훤이 보였다. 조금 놀란 듯 보이는 얼굴에 아랑은 멈춤 없이 달려가 품에 폭 안겼다. 연훤은 뭐지, 하면서도 단내를 푹 풍기며 안기는 아랑을 안았다.

    “이런, 심심했나 보구나.”

    심심? 그제야 자신이 느낀 이상한 감각이 심심함이란 걸 깨달은 아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겸과 선현, 두 사람을 집무실에서 오래 상대한 탓인지 조금은 귀찮음이 있었던 그의 얼굴에 느슨한 웃음이 걸쳐졌다. 연훤은 아랑을 가뿐히 안아 들었다. 같이 걸어갈 생각이었던 아랑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연훤의 목에 팔을 둘렀다.

    “내려 주세요, 연훤 님….”

    “음? 뭐라고? 들리지 않는걸.”

    궁인들이 아랑의 뒤를 따랐다가 목격한 상황에 당황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걸음은 느긋했다. 연훤은 어찌할까 하며 고민을 했다.

    “연훤 님?”

    연훤은 품에 안겨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아랑을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향이 너무 달았다.

    도착한 곳은 온천욕을 즐기던 과거의 황후를 위해 만들었다던 커다란 탕이었다. 황제의 욕실보다도 더 화려하게 꾸며진 이곳은 현 황제인 기연훤도 종종 온천욕을 하러 오는 곳이기도 했다. 탕은 사람 여럿이 들어가고도 남을 크기였다. 욕탕 한편에는 찻잔을 올릴 수 있는 옥으로 된 자그마한 탁상이 물속에 잠겨 있었다. 흔들흔들, 푸른빛을 띠는 물결이 하늘하늘 움직였다.

    첨벙, 큰 울림과 함께 큰 파문이 일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연훤의 목덜미에 묻어났다. 가볍게 들어간 탕에서 신음이 들리게 된 것은 일 다경도 지나지 않았을 시간이었다.

    “하, 아으, 왜, 왜 자꾸 거기를….”

    “너무 좁지 않니, 응? 내 것을 여기에 물어야 할 것인데.”

    차박차박,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연훤의 허벅다리 위에 앉아 몸을 기댄 아랑의 몸이 흠칫, 하고 튀었다. 다리 사이를 파고든 손은 아랑의 남성기를 가볍게 쥐고 느릿하게 문지르는가 싶더니 금세 아래를 문질러왔다. 움찔하면 뜨거운 물이 꿀렁이며 들어올 것만 같았다.

    습한 기운이 내려앉아 속눈썹이며 머리카락 끝이 축축했다. 아랑의 얼굴 또한 달아올라, 가벼운 손장난이 진심이 되게끔 굴었다. 연훤은 본래의 목적은 아니었으나 자연스럽게 안겨오는 몸을 당겨 안았다. 풍기는 향이 물에 눅눅하게 젖어 입안을 달게 만들었다.

    연훤이 발갛게 달아오른 아랑의 목덜미에 입술을 부볐다. 말랑말랑한 촉감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자제심을 잃었던 적이 있었던가. 몽글몽글한 향에 취해 아무런 생각 없이 잠겨 들고, 탐하고 싶었다. 아랑의 몸이 흠칫 튀었다.

    “음, 으응….”

    연훤의 손끝이 음부를 스칠 때마다 아랑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다른 한 손에 잡힌 남성기도 움찔거렸다. 다리를 다 벌리지도 오므리지도 못한 자세로 아랑은 힉, 힉 하는 가는 숨만 내뱉어왔다. 작게 아래를 벌리면 미끈한 액이 묻다가 물속에서 흐드러졌다. 달겠지. 아랑의 움직임에 자극을 받은 연훤의 남근이 아랑의 몸에 스쳤다. 입구를 톡톡 두드리다가 좁은 구멍을 찾아 헤집었다. 한 번 보았던 연한 속살이 손끝에서 뭉개졌다.

    “하앙…! 응, 연, 훤, 아, 뜨거워서, 힉-.”

    “뭐가 뜨겁지, 응? 물속에서도 이렇게 미끌미끌하게 젖어서 어쩌려고 그래.”

    허벅지에 눌린 엉덩이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걸치듯 뒀던 손가락이 당겨 들어갈 것 같았다. 연훤은 이내 축 늘어지며 몸을 기대오는 아랑의 가슴을 주물렀다. 판판하고 살집이 없는 몸체. 작은 자극에도 빳빳하게 선 유두가 손끝에 걸렸다. 얕은 절정에 숨을 할딱이며 몸을 떠는 아랑의 유두를 꼬집듯이 쥐었다.

    흡, 하며 숨을 삼키고는 연훤의 어깨에 기댄 머리가 한 차례 도리질했다. 살결 위를 더듬다가 작게 부푼 음핵이 손끝에 걸려들었다. 연훤은 통통한 그것을 꾹, 꾸욱, 살짝 누르며 손끝으로 굴려댔다. 아랑의 흰 다리가 모아질 줄 모르고 헤벌어진 채로 허리를 휘었다. 젖꼭지를 문지르던 손이 다시 내려가 바짝 선 남성기를 한 손에 쥐었다. 말랑한 듯하나 단단한 살덩이였다.

    쪽, 쪽… 젖은 소리가 목덜미며 귓가에 닿았다. 연훤이 아랑의 귀두 끝을 문지르며 벌어지는 구멍을 꾹꾹 눌렀다.

    “야하네.”

    “흣, 아니, 아니야….”

    “아니긴.”

    다리를 다 벌리고, 구멍도 열 듯 굴면서. 짓궂은 음성에 아랑이 울먹거렸다. 왜 이 손을 뿌리칠 수 없을까. 이상하게도 다정한 듯 야살스러운 손길과, 노곤노곤하게 퍼지는 시원한 향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남자의 손이 닿는 곳을 빨리 긁고 싶었다.

    “-!”

    첨벙, 하고 물이 튀었다. 음핵을 문지르던 손이 미끄러지며 꽁꽁 숨어 있던 구멍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 안…!”

    “좁아, 쉬이, 착하지.”

    아랑의 손보다 두꺼운 연훤의 손가락 하나가 쑥 밀려 들어왔다. 밀려 들어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내벽을 헤집는 듯 빙글빙글, 축축하게 젖은 속을 휘적거렸다. 뜨거운 내벽이 손을 감쳐물었다.

    “여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

    “아니이, 아, 그러지 마아….”

    갑작스러운 삽입에 연훤의 물음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성기를 애무하던 손이 곧 내려와서 보드라운 고환을 주무르는가 싶더니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 빨갛게 달아올랐을 음핵을 문질렀다. 엉덩이에 연훤의 성기가 꾹 눌렸다.

    “아랑, 귀여운 내 연인.”

    달달한 음성이 목덜미를 스쳤다. 주문을 외우듯이 구는 그의 음성이 이상하게도 낮게 바닥에 끌리는 것 같았다. 음산하고, 아니 조금 더 나아가서는 음란한 감각에 잠겨 들 것 같았다.

    “알려 줄까?”

    “흑, 흐읏, 몰라아, 뭐어, 무얼….”

    다정한 음성과는 별개로 아랫구멍을 헤집는 손은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움찔움찔, 아래가 떨릴 때마다 손가락이 깊게 파고들었다.

    “내 손가락을 게걸스럽게 삼키는 곳이 어딘지, 알려 줘?”

    그의 몸이 등 뒤로 한껏 겹쳐 들었다. 손가락이 하나 더 밀려 들어왔다.

    찌걱, 찌걱 젖은 소리가 욕실 안을 울렸다. 아랑은 히끅대는 숨을 삼키며 제 손가락을 물었다. 벌어진 다리가, 눈을 아래로 내리면 다 보일 정도였다. 알려 준다며 속살거린 그가 불현듯 손가락을 빼며 언제 뒀는지 모를 큰 천을 펼쳐 바닥에 깔았다. 허벅지 위에 앉아 있던 아랑의 몸을 들어, 그 위에 앉히며 아랑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연훤이 물속에 잠긴 아랑의 두 다리를 주무르는가 싶더니 엉덩이가 걸쳐질 정도로 몸을 당겼다. 벌어진 가랑이 사이에 연훤의 숨결이 닿았다.

    “연훤 님, 제발, 아아…!”

    “이곳이 벌렁거리는구나, 아랑. 빨아 주랴.”

    으으응, 아랑은 고개를 휘저었다. 두 다리는 어느새 연훤의 어깨에 걸쳐져 당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허벅지 안에 그의 잇자국이 꾹꾹, 남았다. 물기인지 아니면 애액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젖은 아래가 고스란히 다 보여졌다. 연훤의 손끝이 그 살을 벌렸다. 붉은 속살이 움찔거렸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구나. 향인을 곧잘 꽃으로 비유하는 이유가 이래서인가, 싶을 정도로 단내였다. 잠시 이성을 잃으면 자신마저도 희락기가 올 것 같은 그런 기묘함.

    “이곳에 질구가 있어, 아랑.”

    “질, 구…?”

    생전 들을 일 없던 단어에 머리가 어질했다. 어째서인지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은 기분에 아랑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고 싶었다. 엄지손 끝으로 음핵을 문지르며 다시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뒤틀리는 몸이 야했다. 손가락만으로도 이만큼 죄어오면 자신의 좆이 들어갔다간 끊어질지도 몰랐다.

    “내 좆이 들어갈 곳이야.”

    듣는 것이 부끄러울 만큼 상스러운 단어에 아랑의 음부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나른하게 웃은 그가 아랑의 아래를 문질렀다. 울퉁불퉁한 내벽이 손끝에 드드득, 걸렸다. 더 깊은 곳에 씨물을 품을 질구가 있을 것이다. 어찌 설명해 줘야 할까. 성기가 뻐근하게 당겨오는 느낌에 연훤은 자신의 것을 남은 손으로 주무르며 아랑의 음부를 문질렀다. 애액이 줄줄 흘러 움찔대는 비부를 적시고 있었다. 한번 맛본 곳이 생각나 여성기를 헤집던 것을 멈추고 아랑의 다리를 벌려 그 사이를 짓찧고 싶었다.

    “흑, 아냐아, 안 들어가, 안 들어가요… 으응….”

    들어갈걸, 손가락을 두 개째 문 그곳은 연훤이 손가락으로 속살을 벌리자 움찔거리며 헤벌어졌다. 안쪽은 좁디좁은 길이었다. 미성숙한 곳일 수도 있고. 자신이 과연 얼마나 인내를 할 수 있을까.

    “거기이, 넣지 마아…, 거기 말구….”

    “여기 말고? 그럼 어디?”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얕은 자극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몸이었다. 물속에 잠겨 있던 연훤의 몸이 불쑥 수면 위로 올라왔다. 촤악, 하며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아랑의 다리를 벌린 그의 움직임이 거칠기 짝이 없었다. 묵직하게 몸집을 키운 남근이 그 사이를 스쳤다.

    “여기는 아직 안 돼, 다쳐.”

    관계하기에 아무런 상관없는 몸이면 모를까, 딱 보아도 여리기 짝이 없는 몸뚱이였다. 질벽을 헤치고 들어가고 싶은 욕구는 높았으나,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뽁,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손가락이 빠져나왔다. 벌어진 구멍이 빠끔빠끔 애액을 토해냈다. 연훤의 손끝이 자신을 한 번 집어삼켰던 뒤쪽으로 향했다.

    “히익, 응, 으응… 이상해, 이상해요….”

    연훤은 흐린 눈으로 울먹이는 아랑의 입술을 쪽쪽 빨았다. 아랑 또한 헤벌어졌던 입술을 오므리며 연훤의 입술을 갈구하듯 굴었다.

    타액이 달았다.

    *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다. 어디지, 아랑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는데,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물소리 같기도 했다.

    내가 누구더라. 그 속을 걷다가 멈췄다. 자신이 걸어왔던 곳을 다시 되돌아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추웠다. 어둡고 깊은 물속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무서워….

    문득 내려다보니 자신의 손마저 어둠 속에 묻혀든 것이 보였다. 무서워.

    눈가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어떡하지. 스스로가 왜 여기에 있는지도,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겠다.

    ‘-랑.’

    공간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득하고 축축한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어디지.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싶었다. 코끝에 시원한 향이 스쳤다. 어디서, 맡아 봤더라.

    ‘아랑.’

    갑작스레 빛이 확 밀려 들어왔다.

    “아랑, 이런. 아파?”

    “흣, 흐읏, 으응…?”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눈을 깜빡였다. 갑작스레 확 느껴진 빛에 아랑이 몽롱한 기색을 지우며 주변을 살폈다. 사정과 동시에 기절하듯 눈을 감았나 싶더니 잠시 후, 끙끙 앓는 소리를 낸 탓에 조심스레 그를 불렀던 연훤이었다.

    아랑이 멍하게 눈을 깜빡, 깜빡하더니 그제야 제 몸 위를 올라탄 연훤을 올려다봤다.

    “연, 훤 님….”

    “왜 우는 거지? 응? 싫었나.”

    싫다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휘휘 저었다.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캄캄한 어둠을 몰아내 준 연훤을 당기듯 끌어안았다. 꾸욱.

    “힉, 흐으응….”

    “쯧, 그리도 더 하고 싶었던 게야.”

    “앗, 아아, 아니이, 그게 아닌데, 흑, 아응….”

    비부 안에 사정을 한 탓에 약하게 움직일 때마다 미끈거렸다.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살덩이가 또 단단하게 몸집을 키웠다. 연훤이 고개를 내려 아랑의 코끝에 자신의 코끝을 부볐다. 그리고 촉, 촉 다디단 입맞춤을 남기고는 얕게 허릿짓을 했다. 아- 살짝 벌어지는 틈을 타 입술을 머금으며 혀로 입안을 헤집었다.

    *

    궁은 발 없는 말이 제일 빨리 돌았다. 소문은 가지각색으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황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이를 주워와 침궁에 감금했다는 소리까지 돌 정도였다.

    소문의 근원이 되는 자는 그저 웃으며 그 소문을 전달하려 온 친우를 쳐다봤다.

    “그래서, 진짜이옵니까?”

    단정히 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린 선현이 물었다. 후궁으로 입궁했으나 자유를 주겠다는 약조 아래 아주 자유분방하게 떠돌던 음인이었다. 그 곁에는 친누이같이 지내던 겸이 늘 함께 있었다. 겸 또한 머리카락에 수수한 장식 하나 꽂고 미색의 의복을 입은 단정한 차림으로 찻잔을 잡았다.

    “폐하께서 꽤나, 흉악하다고 소문이 커졌지 뭡니까.”

    “흉악?”

    내가? 연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겸을 바라보니 거짓을 말하지 않는 그 또한 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 연훤이 실로 어이가 없다는 듯 등받이에 기대며 탁자를 두드렸다.

    “왜 그렇게 소문이 난거지?”

    “밤마다 침궁에서 그, 울음소리가 난다 하더이다.”

    울음소리라면 아랑의 신음을 말하는 것일 터. 생각을 해보니 하루걸러 하루, 혹은 다과 시간에 들어가서 분탕질을 해놓고 온 적도 있었다. 네 사랑스러운 그곳을 길들여야지, 하며 좁은 구멍을 문질러 흥분케 하고, 손가락으로 휘적거리는가 하면 향이 짙어진 흰 다리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서 게걸스레 핥은 적도 있었다.

    꿀을 삼킨 듯 달았지. 향인은 체액도 그리 달 수가 있나 싶었다. 가볍게 던져진 말에도 이렇게 진지하게 떠올랐다. 향기 탓일까. 하는 행동 하나하나 다 시선을 끌었고 어여뻤다. 마음을 안 줄 수 없었다.

    “폐하.”

    “뭐. 겨우 어여쁜 이를 만나 재미 좀 보겠다는데, 그리 소문을 흉하게 내서야.”

    연훤은 한 번도 내비친 적 없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런 반응을 볼수록 궁금해졌다.

    침궁에 숨은 가련한 인물이 누구인지. 선현은 궁금해져서 입이 근질거렸지만, 그런 자신을 말리는 겸을 보며 시무룩하게 처졌다.

    연훤은 웃으며 차를 마셨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을 생각하니 씁쓰름한 차 맛도 매우 달게 느껴졌다. 아랫배가 당겼다. 당장이라도 이 일들을 물리고, 철없는 청년처럼 굴고 싶어졌다.

    “겁이 많아서 안 돼. 아직 나한테도 수줍음이 많은데.”

    오늘은 또 어떻게 달래어 볼까. 손으로 헤집고 입술로 빨았던 곳이 오늘 아침에는 불그데데하게 부어 있었다. 다른 곳을 만져 볼까, 아니면 껴안고 향을 맡아 볼까. 자신의 손이 닿으면 자연스레 안겨오며 붉히는 얼굴이 기꺼웠다. 짧지만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스치는 것도 기꺼웠고, 손톱을 세워 자신의 등을 할퀴는 것도 좋았다.

    그와 지낸 지 한 달이 넘었다. 힘이 빠져 팔뚝을 긁을 때도 있었고, 혹은 매달린 채 등을 할퀸 적도 있었다. 자신의 목욕을 담당하던 궁인이 보고 놀란 이후로 아랑의 손톱이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아랑은 힘겨울 땐 손끝이 하얘지도록 연훤의 몸을 안아왔다. 품 안에 쏙 들어오던 몸이 자꾸 떠올랐다.

    “하아, 그대들 때문에 일이 하기 싫어졌네.”

    “…폐하께선 원래 일을 싫어하지 않으셨습니까?”

    겸이 매우 떫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선현도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훤은 쿵짝이 잘 맞는 두 사람을 보며 어딘가 배신당했다는 얼굴로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뭐가 그리 궁금해서 그러나. 그대들 아비들이 말하라 이르던?”

    “궁에 들어온 이후로 제대로 이야기한 적 없다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그이는 음… 그냥 아련해. 잡으면 손가락 틈새로 빠져나갈 것같이 굴어.”

    “그럼 이대로 침궁에만 숨겨두실 것입니까?”

    겸의 말에 연훤이 입을 다물었다. 토독, 토독. 탁자 위를 두드리는 손길은 느릿했다. 연훤의 침묵이 길어져도 재촉은 없었다. 느긋하게 차 마시는 움직임만 일정하게 보였다. 머릿속이 복잡하기는 했다. 멋대로 군다면 당장에라도 황후 자리라도 줄 수 있을 터인데, 그렇게 하기에는 아랑이 너무 연약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켜줄 이가 자신밖에 없었다.

    “당장에 귀비는 어렵겠고.”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겸 누이.”

    어딘가 철없는 연훤의 말에 겸이 이마를 감쌌다. 당장에 궁 안에 있는 후궁들은 다 어찌하려고 이러시는가, 싶을 정도였다. 당장에 자식이 없는 자신과 선현 또한 비(妃)의 품계에 있건만, 연훤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누구인지도 모르며, 아직 자식도 없는 사람을 귀비에 앉히고 싶다고 돌려 말하고 있었다.

    “저희들이야 폐하의 편이니 그분이 귀비마마가 되시든, 혹은 황후마마가 되시든 상관할 일이 아니겠지만, 다른 이들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막는 게 그대들이 해 줄 일이 아니었던가.”

    연훤이 두 사람을 향해 웃었다.

    *

    구체적인 일을 정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일을 할 마음이 사라진 연훤은 자리를 떴다. 얼떨결에 끔찍한 숙제를 떠안아버린 두 사람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한 채로 앉은 것을 구경한 뒤였다.

    오 태감은 가볍게 몸을 돌린 연훤의 뒤를 부지런히 따랐다. 가볍게 손짓을 해, 먼저 침궁으로 궁인을 보냈다. 연훤이 당도하기 전에 모든 것을 준비해 둘 요량이었다.

    “오 태감.”

    “예, 폐하.”

    “그대도 내가 철이 없어 보이나?”

    오 태감이 드물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훤은 그 모습을 잠시 보는 듯하다가 고개를 돌리며 정갈한 돌길을 걸었다. 일정한 걸음걸이 뒤로 오 태감이 뒤따랐다.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나, 그대 눈에도 내가 무언가 이상해 보이긴 하겠군.”

    “아니옵니다, 폐하. 그저….”

    “그저?”

    “…사랑에 빠진 사내 같으시옵니다.”

    사랑? 연훤이 하하, 하며 시원하게 웃었다. 체향이 기분 좋게 일렁였다. 별것 아닌 말에 기분이 둥둥 떴다.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던 찰나였다. 빠른 걸음 소리가 느껴져 시선을 돌리니 침궁으로 향하는 쪽문에서 궁인 하나가 다급히 쫓아 나와 읍했다.

    “무슨 일이냐.”

    오 태감이 앞서서 묻자 궁인이 연훤을 향해 읍하고선 오 태감을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침궁의 손님께 이상이 생겼습니다.”

    “뭐?”

    “아랑? 아랑이 왜. 무슨 일이냐. 당장 짐에게 고하라.”

    그 작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연훤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전까지 달게 울었던 이가, 갑자기 왜? 궁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알맞은 단어를 찾지 못해 머뭇거리다가 매서운 눈초리에 침을 꼴깍 삼키며 소리쳤다.

    “희, 희락기가 오신 듯하옵니다!”

    “……!”

    연훤이 그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지름길이나 다름없을 궁인이 다니는 쪽문을 향해 달려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