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여름
* * *
이번 여름은 방심했다가 뒤통수 맞는 계절이었다. 7월 초까지 서늘하다 갑자기 더워져, 초복인 7월 16일이 되면서는 에어컨을 켜도 실내 온도가 잘 내려가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홍시 문구점 주인 양진환은 본격적인 여름이 오면서부턴 새벽 6시 반부터 집을 나서곤 했다. 그나마 그때 땀을 말리는 시원한 바람이 불기 때문이었다. 출근을 늦게 하는 게 문제지, 서둘러 문구점으로 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구점으로 들어오는 초등생들에겐 패턴이 있다. 다짜고짜 아저씨 이거 있어요? 묻는 애, 혼자 조용히 뭔가를 집어와 계산대 위에 올려놓는 애, 살 것도 없으면서 문구점 안을 빙빙 도는 애 등등. 별의별 애가 있지만, 나열하다 보면 비슷하게 느껴지고 만다. 그들이 얼추 빠져나간 뒤에야 여유를 찾은 양진환은 카운터에 올려둔 휴대폰을 켜 주식 앱을 곧장 눌렀다.
“에이, 씨….”
국내 주식장이 방금 막 열렸지만, 제가 산 주식은 어째 기세가 좋지 못했다. 오늘은 조금이나마 오른다고 해서, 지난 일주일간 넣은 돈만 몇백에 달했다. 양진환은 다른 주식들이 순식간에 치고 올라가는 걸 보며 한숨을 쉬었다. 38세. 이젠 누가 뭐라 해도 30대 후반인 나이다. 점점 조급해지긴 하지만 남은 2년이라도 빡세게 살면….
한탄을 하던 양진환이 입구에서 들리는 전자음에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예, 어서 와요.”
바로 일어난 양진환이 제 불평하던 입을 손으로 쓱 닦았다. 흰 반소매 티셔츠에 청반바지, 검은색 장화까지 야무지게 신은 아이의 이름은 준희. 체구가 유독 작은지라, 처음엔 유치원생인 줄 알았었다. 1학년이면 당연히 작긴 하지만, 준희는 그중에서도 특별하게 작은 편이었다. 입은 티셔츠부터 장화까지 하나같이 다 조그매 보인다. 카운터 앞으로 튀어 나간 양진환이 뭘 부랴부랴 싸 들고 들어온 준희에게 말을 걸었다.
“준희 뭐 필요해요?”
“네에, 아저씨…. 이거….”
손목에 걸린 파우치를 연 준희가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돌이에요….”
작은 손에 벅차게 들린 두 개의 돌. 바다에서 주운 듯 매끄럽고, 묘하게 푸른 빛이 돌고 있었다.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금방 아아, 반응한 양진환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돌을 받아들었다.
“준희 이거 아저씨 주는 거야?”
“네에…. 아저씨 돌이에요….”
“내 돌이라고 이걸 주워 왔어? 어디서?”
“아부지가 강에서 물고기 잡을 때…. 준희가 주웠어요. 기념이에요.”
음, 2초간 말을 정리해본 양진환이 준희네 가족이 강으로 피서를 다녀왔음을 예감했다.
야무지게 파우치를 닫은 준희는 양진환을 빤히 올려다보다 앞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저씨…. 젤리 저거요…. 다섯 개 있어요?”
“어, 있지.”
천천히 세 걸음 남짓 다가선 준희가 젤리 통 쪽으로 손을 뻗기 무섭게, 양진환이 길쭉한 젤리 다섯 개를 꺼내 이거? 하며 준희에게 보여주었다.
“네에. 제일 좋아하는 젤리예요…. 맛있어요.”
“어, 그러니? 하하.”
아저씨도 좋아해, 준희 입맛이 고급이구나, 같은 말을 바로 떠올릴 순 없었다. 양진환은 이런 말에 억지 미소밖에 지을 수 없는 제 타락한 감성을 탓하며, 그래도 열심히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아저씨도 좋아해요…?”
“어, 당연하지.”
그 말에 눈을 끔벅거리던 아이가 몇 번이나 작은 주먹을 쥐었다 놓았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얼굴이 살짝 굳기도 잠시.
“그러면… 하나…. 아저씨 줄까요…? 준, 제 거 줄 수 있어요.”
말버릇인 듯 ‘준희 거’ 하려다 ‘제 거’로 고친 준희가 양진환을 쳐다봤다.
“어?”
“제가 삼천 원 있어서…. 친구들 네 명이라서….”
그렇게 말하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준희가 꼬깃꼬깃하게 접힌 천 원짜리 지폐 석 장을 꺼냈다. 손목에 아슬하게 걸린 파우치 두 개가 달랑달랑 흔들리다 못해 떨어질 것 같았다. 아마, 친구들 돌까지 챙기느라 파우치가 두 개로 늘어나 버린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손으로 파우치를 받쳐준 양진환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저씨는 젤리 많아. 아저씨는 괜찮고…. 준희 이거 오늘 열 개 가져갈래?”
“…네에?”
“에이, 준희…. 전에 아저씨가 사탕도 많이 줬는데 모른 척하는 거야?”
끔벅끔벅, 눈을 감았다 뜬 아이가 다른 곳을 쳐다보다 부끄러운 듯 입을 열었다.
“모른 척 아니에요… 아저씨….”
진심으로 웃음이 나온 양진환이 준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매번 친구들 간식까지 사느라 돈을 많이 쓰는 준희를 알고 있어서다. 친구들도 다 준희와 비슷한 애들이었다. 다만 정해진 용돈이 준희보다 적고, 굳이 등교 시간에 시간을 내 제게 돌을 가져다주진 않을 뿐이다. 준희의 순수한 마음에 보답하고자, 양진환은 박스에 있던 젤리들을 모두 꺼냈다. 그래도 벅차지 않게 손으로 쥘 수 있는 정도다.
“이거 다 가져가자.”
“삼천 원으로 다섯 개만 사잖아요….”
계산을 철저하게 할 줄 아는 아이는 아니지만, 늘 사 먹는 젤리가 다섯 개에 3천 원인 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으음….”
차마 아버지가 월초마다 찾아와 100만 원씩 “선불”하며 돈을 놓고 간다는 걸 말하지 못했다. 오늘은 그것과 별개로 젤리는 선물로 줄 작정이지만. 학기가 3월에 시작되었으니 여름방학을 앞둔 지금, 7월까지 500만 원이 쌓인 셈인데, 거기서 50만 원도 동나지 않은 채다. 양진환은 매번 아직 돈이 많이 남았다고, 얘기를 하려 했지만 준희네 아버지는 준희와 피가 섞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돈 안 받을라고요. 하며 물은 적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군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빠나 엄마를 닮았겠구나, 하는 막연한 예상이 맞아떨어진 건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문구점을 찾은 적이 있어서였다. 인파 속에서도 한 번은 더 쳐다볼 만큼 눈에 띄게 예쁜 남자는 준희와 같은 틀에서 찍어낸 것처럼 닮아 있었다. 사라, 느그들 사고 싶은 거 다 사, 하는 덩치 큰 남자와 달리, 예쁘장한 남자는 안 돼, 재혁이 그거 다 가져오면 안 돼, 전부 살 수는 없어, 하며 아이를 말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준희는 양손에 젤리 두 개만 들었지만 다른 아이 하나는 간식은 물론 장난감에 카드, 도화지, 가위, 미니 빗자루 등 별의별 걸 다 사려고 했었다.
“하여튼 준희 돈 없는 거 아니고….”
너희 아버지가 맡긴(?) 돈만 해도 어마어마하단다. 양진환은 젤리를 카운터로 가져가며 혼자서만 뜻 모를 웃음을 머금었다. 하루에 3천 원으로 제한을 걸어놓은 것도 그 예쁘장한 남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양진환은 작은 봉투를 하나 뜯어 그 안에 젤리들을 넣어주었다.
“오늘은 그냥 가도 된다니까. 아저씨가 선물로 주는 거야.”
발꿈치를 들고 돈을 내미는 아이를 제지한 양진환이 고개를 저었다. 얼떨결에 비닐을 건네받은 준희는 뭘 더 많이 들고 있게 돼버렸다. 양진환의 그런 반응에 의아해진 준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아빠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요. 저번에 사탕 받았을 때도 혼났어요….”
“아.”
사탕 개수가 많긴 했다. 선물 세트 같은 거긴 했지만, 며칠 지나 몇 푼이 아쉬워 남자가 맡긴 돈에서 깠는데. 아빠라는 사람은 문구점에 돈 꽂아둔 걸 모르는 건가? 뭐, 부부라도 일일이 다 보고할 필요는 없으니까. 양진환이 주변을 쳐다보다 카운터 위에 올려둔 돌 두 개를 발견했다.
“준희가 이미 아저씨한테 돌 이거, 줬잖아.”
하나를 쥐고 카운터의 유리면에다 똑똑, 두드리며 소리를 내자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그러다 이내, 자기 힘으로 정당하게 지불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하얀 뺨에 복숭앗빛 물이 들었다. 뿌듯해하는 것이다.
허허, 하고 저도 모르게 웃은 양진환이 준희도 좋지, 했다.
약간은 부끄러운 듯, 그러나 뿌듯한 얼굴로 한 번 끄덕인 준희가 네에, 대답했다.
뒷걸음을 치며 안녕히 가세요, 하는 준희에게 그래, 준희도 잘 가, 대답해준 양진환이 뒤늦게 준희가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한 걸 깨달았다. 파우치 안 돌들이 부딪히는 소리에, 이젠 비닐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섞여 작은 규모의 시장이라도 준비하는 모양새였다. 이 학교 애들은 한 달, 아니면 두 달에 한 번씩 벼룩시장 비슷한 걸 열어 저학년 아이들에게 경제관념을 심어주곤 했다. 그때 좀 어려 보이는 애들이 바리바리 손에 뭘 싸 들고 등교하곤 하는데.
준희는 어느새 자동문을 열고, 문방구 통창에 어렴풋이 비치고 있었다.
작아서 시트지 위로는 보이지도 않는 아이.
그까지 키가 안 닿는 저학년 학생들은 꽤 된다. 하지만 준희는 고학년이 돼도 시트지를 넘을 수 있을지. 괜한 걸 궁금해한 양진환이 밖에서 뭐가 움직이는 듯해 시선을 돌렸다.
느릿느릿, 차도 가장자리에서 움직이고 있는 차 한 대. 창문 쪽으로 붙은 양진환이 그 길 끝에 준희가 있는 걸 알아챘다. 어둡게 선팅이 된 차량이긴 하지만 앞 차창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월초마다 제게 백만 원씩 던지고 가는 남자. 양진환은 투박하기 짝이 없는 그가, 아이를 염려해 등굣길에 몰래 따라붙는 걸 몇 번이나 봐온 터였다.
“오늘도네.”
중얼거린 양진환이 시선을 떼며 돌 두 개를 만졌다.
유리면에 부딪히는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맑게 들렸다.
2분쯤 지나 고개를 돌려보자 준희도, 검은 차량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등보다 큰 하늘색 가방과 안이 비치는 검은 장화.
양진환은 무심코 유리면 쪽에 얼굴을 붙여 하늘을 쳐다보았다. 집에서 정신없이 나오기만 하느라 날씨가 어떤지는 신경 쓰지 못하는데. 장화 신은 아이를 보면 비라도 오는 걸까? 양진환은 날씨 요정이 따로 없네,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다른 학생들이 들어오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