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화
모닥불이 타는 모습을 보며 네 여비서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한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휴우! 누군 좋겠네.”
“그러네요.”
“진짜 요란하게 하시네요.”
“오랜 만에 만났으니 그렇지. 우리도 그러잖아.”
이런 소리를 토하며 네 여비서는 점점 붉게 타오르는 모닥불의 높아지는 불길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할 일이 없고 무료하니 마른 장작만 모닥불에 자꾸 던져 넣어 불길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제 국왕과 쉽게 접하기 힘들게 된 처지라 외로움이 차가운 겨울 바다의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로인해 추위도 더 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요란하게 흔들리는 캠핑카를 바라보며 블루아이가 조심스럽게 옐로우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미국에 오면 좋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야.”
“그래요. 우린 이제 끝났나 봐요.”
“그래도 기회는 많아.”
“왜요?”
“왕후님도 임신 중이고 인비 마마도 임신 중이잖아.”
“어머,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여자로 더구나 국왕의 후궁도 못되고 그저 필요할 때 보온 역할과 배출구 노릇만 살아야 하니 처량한 신세다. 그렇다고 그래도 높은 지식이 있다지만 도통 머리는 국왕이 온통 지배해 버린 뇌구조라 딴 생각은 생각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다.
본시 어려서부터 그리 교육 받았다. 아울러 자라서는 이성으로써 국왕은 네 여자에게는 깊이 각인되어 목숨까지 아낌없이 주고 싶은 그런 인물로 변해 버렸다.
네 여비서가 한숨을 토하는 것은 어떤 미래의 자신들을 생각해서는 아니다. 다만 뜨거운 젊은 피를 가진 여성으로 옆에서 요란한 정사 소리를 모두 들으니 약간 신세가 처량하고 외롭다고 느낄 뿐이다.
“아흐윽! 아흑!”
간간히 크게 들리는 제니퍼의 감창소리에 네 여비서는 살며시 몸을 꼬고 있었다. 자신들의 몸도 조금씩 달아오르기 때문이다. 할 일 없이 귀를 기울여 정사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아무리 국왕의 여자라지만 국왕을 제외하고는 모두 위험인물이다. 그러니 조금만 이상한 기미가 들리면 바로 침실로 뛰어 들어 가야 하는 것이 네 여비서의 임무다.
국왕이 토해내는 작은 호흡소리나 그 상대역인 제니퍼의 크게 지르는 감창소리의 패턴까지 귀를 세우고 듣고 있었다.
“하앗! 하앗!”
가쁘게 토해내는 제니퍼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경험으로 보아 여자가 파정에 이르기 직전임을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네 여비서는 모두 똑 같은 심정으로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금 최고로 좋겠네.’
왕궁이나 혹은 별궁이라면 침실과 연결된 밀실이나 아니면 침대 옆에서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 정상적인 임무다. 아무리 크다고 해도 캠핑카는 너무 좁았다. 지금은 밖에서 조금 열린 문틈으로 들리는 소리로 감을 잠을 수밖에 없었다.
“한 고비 넘어갔어.”
“그렇군요.”
간드러진 비명을 토하는 제니퍼의 감창소리로 그녀가 막 한차례 파정이 끝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왕은 여자가 최소한 세 번 이상 토해야 겨우 토하는 정도로 정력이 절륜한 체력을 지녔다.
네 여비서는 아래에서 진득한 느낌이 들어 급하게 휴지를 찾고 있었다. 한 결 같이 다소 격한 정사소리로 인해 자기가 한창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저절로 지리고 있었다.
이윽고 연달아 터지는 감창소리에 네 여비서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었다.
“금방 끝났네요.”
“오랜 만에 접했으니 금방 싸버리게 되는 거지. 우리도 항상 그렇잖아.”
“그러네요. 고르게 숨 쉬는 것 보니 잠이 든 것 같은데 들어가 볼까요?”
“아니, 폐하께서 더 깊이 잠든 나중에 들어가 보자고.”
사람은 실재로 경험하는 실습을 통해서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저 눈으로 보거나 듣고도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항상 같은 것 같지만 조금씩 다른 동작이나 감창소리를 토했다. 다른 여자들의 여러 종류의 정사를 지켜보거나 지근거리서 자주 듣다 보니 네 여비서는 배우는 것도 많았다.
그래서 네 여비서는 점점 자신들도 모르는 섹시 머신으로 변하고 있었다.
필요할 때 모하르 샤 국왕이 어디든 버튼만 누르면 아래의 계곡에서는 애무나 어떤 예비 동작이 없어도 감로수가 철철 흐른다. 그렇게 아주 요상하게 변한 색에 강한 몸이지만 국왕이 직접 건들지 않으면 어떤 남자의 야한 모습을 보아도 감각 자체가 없었다.
물론 지금 같은 경우야 언제 자신들도 부를지 모르니 몸은 저절로 준비상태로 이르고 있었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 변한다. 그리고 자신이 자주 반복해서 어떤 정신적인 주문을 걸다보면 몸도 변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가 취면에 걸린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오직 모하르 샤 국왕만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숙명으로 이제 몸도 완전히 변했다.
“블루님, 한국이 난리도 아니더군요.”
“그래, 청와대가 완전히 뒤집어졌어. 더구나 억지로 청와대에서 몰래 빼돌려 위약금으로 물어준 자금이 신무기 개발예산이라고 드러나 결국 군인들도 반발하고 있어. 정보원도 마찬가지고.”
“도대체 무슨 자금인데 그렇죠?”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연구자금이라는 거야. 그것이 드러났으니 이래저래 문제가 더 커진 거지.”
“정보원은 무슨 자금이고요?”
“북한으로 투입하는 비밀 공작원들의 지원 자금을 모조리 사용했다는 거야.”
“그렇다면 문제가 아주 복잡해지겠네요.”
“아직은 아니지. 언론까지는 모르니까. 하지만 우리가 조금 일찍 아는 것이지 조만간 언론에도 공개될 거야. 핵을 빼고 미사일 개발 자금 정도로. 그리고 해외 공작금이라고 밝힐 것이고.”
“그렇겠네요.”
이때 통신 담당으로 많은 정보를 접하는 화이트 아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블루님, 한국에 있는 소피아 공주님이 또 사고를 치신 것 모르죠.”
“무슨 사고?”
“그레이 왕궁에 정식으로 공문을 보냈다고 하네요.”
“무슨 공문?”
“소피아 공주님의 개인재산 내역에 대해 소상하게 밝혀 달라고요.”
“뭐? 벌써 자기 재산을 챙긴다는 거야?”
“그런 모양입니다. 그리고 또 이상한 요구를 했답니다.”
소피아 공주는 아리아 왕후의 여동생인 공주로 입양된 상태다. 그리고 만 16세까지는 모하르 샤 국왕이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후견인이다. 16세 이후 결혼 전까지는 후견인과 공동 재산관리다. 족보상으로 소피아 공주는 아리아 왕후의 여동생이라 모하르 샤 국왕의 사촌여동생이다.
“무슨 요구?”
“아랍에는 사촌 남매란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나요?”
“아, 사촌 오빠가 사촌 여동생을 취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를 말하는군.”
“어디 그게 오빠만 해당되나요? 여동생도 원하면 사촌 오빠 부인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있지요.”
“그래서?”
“개인 재산 내역을 보내 달라며 한자리 남은 비(妃)는 자기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아리아 왕후님께 편지를 보냈답니다. 자기가 결혼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반드시 그 자리를 비워두어야 한다고요.”
이런 소식을 이야기하며 네 여비서는 왜 모하르 샤 국왕이 정비자리 4개 중에 3개만 채우고 한자리를 비우고 제니퍼를 빈으로 놔두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영악한 공주님이네.”
“영악한지 무서운지 모르죠. 남학생들을 마구 패고 다닌다니 성깔은 보통이 아닙니다.”
많은 왕비와 빈이라는 후궁을 두고 있으니 단순하게 사랑으로 따지면 평가야 달라진다. 하지만 왕정국가에서 정비와 후궁이라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왕위계승권은 정비(正妃) 소생은 먼저 낳은 왕자가 그냥 왕위 계승 순위에서 앞자리에 선다. 재산권 분배에서 정비 소생인 왕자와 공주만 권리가 있다.
모든 왕자와 궁주는 2대1로 정해진다. 정비는 왕자의 지분과 같다. 그리고 왕세자의 경우는 다른 왕자의 4배를 물려받는다. 그러니 자식이 있고 없고는 노년의 생활 자체가 바뀔 수밖에 없다.
후궁의 자식도 자식이라 그들은 대부분 재산권 분배 대신 국왕 생전에 증여 방식으로 적당한 재산을 넘겨주고 있었다. 아울런 후궁들도 마찬가지로 생전에 재산을 받지만 그런 경우도 정비 몫을 넘어가면 안 되는 율법이 적용된다.
왕정 국가인 국왕의 재산은 복잡하게 나뉜다. 국왕의 개인 재산이 따로 있고 왕실 공동자금이라고 따로 존재한다. 재산 분배는 국왕 개인재산을 말하는 것이고, 왕실 공동자금은 통치자금이나 왕실을 유지하기 위한 궁전이나 기타 시설물이나 각종 기물을 통칭한다.
소피아는 본시 친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별도로 있어 그 재산에 대한 변동사항을 알려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된지는 아나?”
“저야 모르죠. 알아볼까요?”
“그걸 뭐 하러 일부러 알아봐. 아리아 왕후님이 알아서 처리하시겠지.”
본시 후견인인 국왕이 직접 챙겨야하나 지금은 아리아 왕후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관리하게 된 동기는 남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보석원석을 아프칸의 왕궁으로 가져와 가공해 판매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이런 잡답을 나누다가 화이트아이가 슬며시 캠핑카 안으로 들어갔다. 국왕과 제너퍼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 아침에 일어나 입을 옷가지를 잘 챙겨 놓기 위해서다.
사막의 겨울은 무서울 정도로 추웠다.
네 여비서는 경호원들이 외곽을 지키는 가운데 둘씩 짝을 지어 부둥켜 앉고 자다 일어나다를 반복하며 밤을 지세우고 있었다.
오오오옹.
아주 멀리서 늑대 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제니퍼가 찾아온 이후 네 여비서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항상 외부에서 지내는 일이 지속되고 있었다.
어느새 한해가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낮에는 커다란 소음을 내며 지하수 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드디어 지하수가 터지게 되었다. 급하게 물맛을 본 김수훈이 다소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그냥 맹물이네.”
지하수 개발이 날이면 날마다 대박은 아니다. 이번에는 그저 지하 300미터 퍼 올린 오염되지 않은 그저 그런 물이다. 그래도 생수사업이야 할만 했다.
김수훈은 크리스마스에 터진 생수라고 해서 산타워터라고 이름을 지었다.
“제니퍼, 제니퍼가 여기 생수 사업장까지 관리하지.”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고속도로회사와 주정부 관료를 만나 이 지역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건립한다고 하고 휴게소 옆에 생수공장을 만들어서 운영해.”
“예!”
“지분 반은 제니퍼가 가지고 나머지는 모두 농장 개발 자금으로 넘겨주고.”
“그렇게 하죠.”
김수훈은 이런 지시를 하며 자기가 구상한 농장과 도시 설계도를 찾아온 개발 팀에게 넘겨주었다.
“대략 그린 것이니 참고해요. 그리고 반드시 간이 비행장을 만들고요. 방법은 도로로 평소에 이용하고 건조장으로도 이용하게 넓게 도로를 만들어 사용하면 됩니다. 특별한 경우에는 차량은 외부로 우회하는 간선 도로를 이용하게 하고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네요.”
자신의 전용 비행기의 이착륙이 쉬워야 미국에 오면 잠깐이라도 들릴 수 있으니 하는 지시다.
김수훈은 제니퍼와 같이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하게 되었다.
“오빠, LA에는 안가요?”
“거기를 갈 시간이 없어.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알았어요. 그럼 다음에 제가 모하르로 찾아가죠.”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전용비행기를 타고 빠르게 뉴욕으로 가게 되었다.
뉴욕은 한창 한해를 보내는 송년회로 인해 무척 바빴다. 송년과 신년 축제 열기로 인해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돌아다니고 있었다.
“폐하, 은비 마마는 한국으로 떠났어요.”
“그래? 떠난 다고 말이라도 하지. 그랬으면 코스를 달리했을 건데.”
“아마 급한 변수가 한국의 정치권에서 일어난 모양입니다.”
한국 정치에 큰 변수가 생기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던 이은혜는 이미 한국으로 떠나고 없었다.
김수훈은 한국 주재 아프칸 대사관과 연락해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사백호가 대사관과 연락을 끝내고 급하게 보고했다.
“폐하, 대통령 탄핵이 확실합니다.”
“여야가 뭉쳤군.”
“예, 내년도에 총선을 같이 한다는 조건으로 여야 정치인들이 합의했다고 합니다.”
“대통령 임기는?”
“선거법을 바꾸어 내년에 새로 4년 임기를 시작하는 선거를 여야에서 계획하고 있답니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동시에 하는 방법이랍니다.”
“그래? 그러면 내년 봄이면 완전히 결판이 나겠군.”
이런 이야기를 듣자 김수훈은 어쩌면 이은혜가 정당을 새로 만들려고 급하게 돌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밑에서 고분고분 일하기를 거부하는 성품이니 자신이 직접 정당을 만들 것이 분명했다.
‘혹시 장인어른을 대통령으로 출마 시키려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은혜는 전에 분명히 국회부의장 정도가 최선이라고 단언했었다.
김수훈은 뉴욕에서 미국에 투자한 여러 기업의 회장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들과 만나 자신에게 배당되는 주식배당은 모두 재투자하는 형태로 조치했다.
처음 생각에는 배당금은 다른 쪽으로 투자하려다 한국이 너무 혼란스럽게 변하고 국가부도 직전까지 도달하자 한국에서 철수해버린 자금들에 대한 처리가 급했다. 미국의 사업체 자금은 일단 제자리에 재투자 방식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감사라뇨. 저도 돈 벌자고 하는 재투자인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재투자를 결정하시면 회사의 주식가치가 10퍼센트 이상은 상승합니다. 그리고 은행 차입금 이자도 0.5퍼센트는 내려가고요.”
“그래요? 그런 파급 효과가 있었군요.”
자칫 원유가 상승과 리비아에서 사용한 전비로 인해 조금 위축될 미국 경제는 되살아나게 되었다. 무엇보다 김수훈이 한국에서 철수한 일부 자금을 미국의 증권시장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락으로 이르는 한국에서는 풋옵션으로 투자하고 미국에서는 정상적으로 주식에 투자를 했으니 투자에 관한한 비상한 머리를 쓰고 있었다.
클린턴을 만나 그가 요구하는 리비아 산 원유를 넘겨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미국의 네바다에 대규모 농장 건립을 한다고 투자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번 투자로 돈 좀 만지겠군.’
핫머니로 자금을 굴리다 보니 그에 치중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었다.
‘한국은 내년 초까지는 바닥이 유지되어야 해.’
한국 주식가격이 낮게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풋옵션으로 증권 시장에 투자한 단기자금은 내년 초에 환수되기 때문이다. 한국국민들에게는 너무 잔인한 행동이지만 그가 굳이 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는 한국경제는 사실 너무 거품이 많다고 판단했다. 주식시장도 필요이상으로 과열된 상태라 한차례 정도 조정이 있어야 된다고 판단했다.
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김수훈은 자신이 가진 자금과 또한 외교적이나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해 한국의 썩어 버린 환부를 극약 처방으로 도려내고 있었다.
‘멍청한 정치인들도 사그리 사라져야 한다고.’
더구나 무기판매도 이제까지는 일방적으로 밀어 줬지만 유럽국가나 미국도 가격을 내리는 추세라 마냥 밀어주기도 곤란했다.
‘혼 좀 나야 다시 정신 차리지.’
앞으로는 아주 정상적으로 가격이나 제품에서 다른 나라보다 우수해야 한국 제품을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