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1화
<흑과 백 그리고 회색 24권>
사우디아리비아의 홍해와 접한 남쪽 도시인 지잔에서 남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시추작업이 한창이다.
드르륵 드르륵.
쇠파이프를 때려 박는 형식이 아니라 돌려서 파 들어가는 방식이다.
요란한 소리가 들리자 놀란 뱀들이 땅위로 기어 나와 돌아다니자 시추 작업하던 인부들이 놀라 도망치고 있었다.
후다닥!
“코브라다!”
메마른 사막에서 뭘 먹고 사는지 모르지만 커다란 코브라가 많이 보였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시추장비 주변에서 기어 다니자 김수훈은 경호원들과 같이 뱀 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쉭! 쉭!
괴이한 소리를 내며 바짝 독이 올라 머리를 부풀리는 코브라를 갈라진 나뭇가지를 이용해 잡고 있었다. 같이 뱀을 잡고 있던 사백호가 국왕의 안위가 은근히 걱정되어 말했다.
“폐하, 위험하니 저희들이 잡게 놔두세요.”
“아니야, 내가 잡아야 빨리 잡지.”
획!
“잡았다!”
빠른 속도로 뱀을 머리를 잡은 김수훈은 병에 코브라의 입을 물려 독액을 빼내고 있었다. 맹독이지만 의약품으로 사용이 가능하니 기왕에 잡은 뱀은 일단 독액을 채취하고 나서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을 구어 먹고 있었다.
김수훈이나 경호원들은 다들 전문 땅꾼이 버금갈 정도로 뱀을 잘 잡았다. 잘 구워진 뱀을 몸통을 맛있게 먹던 김수훈이 사백호에게 물었다.
“사백호, 먹을 만하냐?”
“예, 약간 비리지만 먹을 만은 합니다. 저는 뱀은 먹어 보지 않았는데 먹어보니 먹을 만하군요.”
“몸에 좋다니 이번 기회에 많이 먹어 두라고.”
“넷!”
처음에는 뱀을 출현으로 많이 놀라던 인부들도 같이 잡아먹고 있었다. 특이하게 보이는 요란한 색의 뱀들은 커다란 통에 집어넣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사백호가 물었다.
“폐하, 그 뱀은 어찌 하시려고요?”
“동물원에 보내려고.”
“아, 그러네요. 그런 뱀은 동물원에 없던 것 같군요.”
말이야 이렇게 하지만 김수훈은 유달리 뱀을 좋아하는 이은혜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뱀을 많이 잡아 놓았다가 혹시 은혜를 만나면 줘야지.’
묵묵하게 자신의 내연녀로 사는 이은혜라 특별하게 생각은 여전히 하고 있었다. 이은혜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니 공부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언제 태국이나 베트남으로 불러서 만나 왕코브라를 사 먹이는 것도 좋을 거야.’
지구상에서 독사로 제일 큰 덩치를 지닌 왕코브라의 경우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살고 있다. 그 지역은 뱀을 잡아 파는 곳이 많아서 해보는 생각이다.
집중해서 뱀을 잡다가 보니 주변에 많이 돌아다니던 뱀들은 어느새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전갈 역시 마찬가지로 잡아서 구어 먹고 있었다. 전갈을 구어먹자 아삭 아삭해 과자를 먹은 기분이 들었다.
“폐하. 전갈은 간식거리로 좋겠네요.”
전갈 역시 한방에서는 상당히 귀한 약재로 사용하고 있다.
작업장 주변에서 돌아다니던 뱀들이나 전갈들이 모조리 사라지자 김수훈은 시추장소 옆에 천막을 치고 지내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시추장비도 열을 식히기 위해 멈추었다. 경호원들과 같이 커다란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았다.
제일 가까운 마을이 4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그 마을에서 식량으로 사온 10여 마리의 양들 중에 한 마리를 잡아 구어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백호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여기서 혹시 석유가 나옵니까?”
“그야 두고 보면 알지.”
석유 시추장비를 동원해 파고 있으니 던지는 말이다. 그러나 김수훈은 사백호의 물음에 마음속으로 뜨끔했다.
‘아무것도 안 나오면 어쩌지? 하다못해 썩은 똥물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슬며시 텐트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후 김수훈은 시추작업 주변을 보다 넓게 돌아다니며 뱀이나 전갈 잡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그가 뱀을 잡는 동안 시추장비는 계속 풀가동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점점 지하 깊이 파 들어가고 있었다.
플라스틱 통에 다섯 개에 많은 뱀들이 담기자 김수훈은 헬기 조종사에게 지시했다.
“자네 모하르를 다녀와! 동물원으로 보내.”
“넷!”
수송헬기는 뱀이든 플라스틱 통을 싣고 모하르로 떠나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기밀문서에 해당하는 모하르 령의 군부대 재배치와 군대 양성 계획서가 담겨 있었다. 뱀을 잡으며 틈틈이 정리해둔 서류다.
김수훈은 일주일 동안 파 들어가도 아무런 기미가 없자 이제는 조금 마음을 비웠다. 석유가 안 나오고 지하수가 나와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라도 나와야 떠나는데 시간만 흐르네.’
김수훈의 초조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벌써 200미터까지 파고 들어갔으나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내가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냐?’
기대와 달리 별로 효과가 없으니 답답했다. 느낌으로는 그렇게 깊은 곳에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가깝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어느새 11월 중순이 되자 사막에서 보내는 밤의 날씨는 무척 살살해졌다. 귀국할 생각이던 김수훈은 이곳에서 어떤 끌림으로 인해 주저앉아 버렸다.
‘휴우! 여기서 또 발목이 잡혔네. 아무것도 안 나오면 시간만 공연히 소비하는 건데.’
자신이야 어떤 이끌림으로 고생을 자초하고 있지만 경호원들의 고생은 너무 심했다. 국왕이 야지에서 텐트만 치고 지내니 경호하기 위해서 거의 대부분이 잠을 설치고 있었다.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물이 부족해 목욕도 하기 힘들고 야간 보초로 인해 피곤은 점점 누적되고 있었다.
무전을 통해 김수훈은 자주 모하르로 연락하고 있었다.
새롭게 늘어난 영토에 대한 개발계획들을 직접 결정해 주기 위해서다. 비밀스럽지 않은 내용이라 평범하게 무전으로 연락하며 지침들을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전에 사온 10마리의 양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놈을 잡아 놓고 먹고 있었다. 이제 양도 다 떨어지고 그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고 있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시추공만 뚫으며 야지에서 한해를 다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두두두.
이때 북쪽 하늘에서 헬기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경호원들은 급하게 AK-11 기관단총을 들고 경계하거나 무전으로 급하게 외쳤다.
“델타 헤드! 델타 헤드 나와라!”
“델타 제로! 여기는 델타 헤드!”
익숙한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긴장하던 경호원들이 AK-11 기관단총을 내려놓고 있었다. 2대의 수송헬기는 수시로 지잔으로 가서 보급품을 가지고 오고 있었다.
어둠을 뚫고 수송헬기가 도착하자 리비아로 갔던 두 수석비서관이 내리고 있었다.
머리를 감싸며 달려온 두 비서관이 모닥불 옆에 앉아 있는 김수훈을 보고 급하게 인사했다.
“폐하, 다녀왔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김수훈의 옆에 앉은 두 비서관 주변을 돌아보며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표정들이다.
“우선 고기라도 먹고 나중에 헬기로 가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넷!”
두 비서관은 급하게 오느라 식사를 못해서 그런지 보급품으로 가져온 사발라면을 먹으며 양고기도 같이 먹고 있었다. 사발라면을 먹던 스카레일이 입을 열었다.
“폐하, 리비아에서 델타식품에서 생산하는 뽕라면을 많이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래요? 왜 하필 뽕라면이죠?”
“이집트를 통해 보내진 뽕라면을 먹어보고 아마 군인들 사이에 인기가 좋아 사기를 올리자는 차원에서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별 이상한 것으로 패배한 군대의 사기를 올리려고 하는 군요.”
“폐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델타 방송에서 제작한 뽕이라는 드라마도 리비아에서 아주 유명해 뽕 상품은 대단한 인기입니다.”
“그래요?”
아프가니스탄 델타지역의 델타식품에서는 뽕라면, 뽕컵라면, 뽕사발라면을 대량으로 생산해 아랍권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라면에 뽕잎 가루를 넣어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품명이 모두 뽕이다.
뽕잎 가루가 들어가서 그런지 라면을 먹어도 소화가 아주 빨라지는 특징을 지녔다.
“이번에 뽕쌀밥과 뽕차도 제품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그런 정도면 이제 델타 식품도 큰 기업으로 변하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생산 공장을 타지방에도 건설하는 중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수도인 카불이나 델타 지역에 공장을 신설하기보다 이제는 지방 발전을 위해 분산해서 생산 공장들을 개설하고 있었다.
“장관들이 잘하고 있겠지만 경제수석이 잘 확인하도록 해요.”
“넷! 폐하의 지침이라 다들 지방 발전에 신경들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너무 편중된 경제 발전은 나중에 크게 문제가 됩니다. 그러니 잘 챙기세요.”
“넷!”
잠시 이런 대화를 나누다가 김수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송헬기로 향했다. 그러자 두 비서관도 급하게 서류가방을 들고 따라가고 있었다.
수송 헬기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은 세 사람은 리비아에서 요구하던 전후 복구 사업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경제수석에게는 뭐를 요구하던가요?”
“폐하, 리비아에서는 전후 복구에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고 해서 30억불을 단기 차관으로 보내달랍니다. 돈을 리비아로 직접 보낼 필요는 없고 모하르 은행에 예치해둔 상태로 전후복구 자금으로 정산을 하잡니다.”
김수훈은 모하르 은행으로 유입된 사우디왕가의 자금이 많았다. 다른 아랍왕국의 왕족들의 자금도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런 정도의 자금은 차관으로 처리해도 충분했다. 사우디 왕가에서 예금한 자금을 굴려야 될 상황에 적당한 투자처가 생긴 셈이다.
“자금이야 충분히 있으니 빌려주면 되지만 리비아 정부에서 차관 자금의 상환은 어떻게 처리하려고 하는지요?”
“폐하, 상환 방법은 리비아에서 생산되는 원유나 천연가스를 모조리 가지고 가랍니다.”
“그럼, 리비아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모두 TIB 정유회사로 일괄해서 넘긴다는 이야긴가요?”
“그렇습니다. 어차피 미국 정부의 방해로 리비아는 원유 수출길이 막힌 상태라 그런 식으로 편법을 사용해 판매해보려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리비아를 테러지원국이라고 지목했다. 자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유럽 국가들과 같이 무역거래를 봉쇄하는 공동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리비아에서 일괄해서 TIB 정유로 판매한다지만 원유가격이 문제다.
“배럴당 얼마에 넘긴다고 하던가요?”
“아주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배럴당 30달러에 넘기겠답니다.”
현재 배럴당 60달러까지 올라 있는 원유가에서 반토막으로 거래한다니 가히 파격적인 가격이다. 리비아 사태가 진정되어 원유가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라면 잘하면 40달러까지 하락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낮은 가격임에는 틀림없었다.
“좋아요. 그렇게 하겠다고 통보해요.”
“넷!”
김수훈은 이어서 다른 문제에 대해 물었다.
“항만복구와 확장 공사 이외에 무슨 복구공사를 해달라고 하던가요?”
“폐하, 파괴된 공항과 청사건물 그리고 도로와 철도를 복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우선 그렇게 해주면 추후에 계속 공사를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리비아로 많은 건설 중장비를 보내도 별로 문제는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일단 경제적인 협력문제에 대해서는 해결되었다고 판단한 김수훈은 안보수석 비서관인 니살론에게 물었다.
“리비아에서는 무슨 무기를 산다고 하던가요?”
“살수만 있다면 핵무기를 사고 싶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것은 그냥 원하는 정도고 대공무기를 많이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리비아는 미국 함재기들에게 심하게 당해서 그런지 대공무기를 구매하려는 것 같았다.
“다른 무기는 없고요?”
“있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잠수함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잠수함을 원한다는 소리에 김수훈은 카다피가 여전히 미국과 또 다시 한바탕 할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군. 그만큼 미국에게 호되게 당했으면 이제 알아서 꼬리 내리지 무슨 똥고집으로 또 해보려는지 모르겠네.’
잠수함은 팔려면 아주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니 신중하게 처리해야 될 문제다.
“그래서 잠수함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왔습니까?”
“어렵다고 했습니다.”
김수훈은 잠시 생각하다 리비아에 대공무기만 공급해 주기로 결정했다.
“일단 대공무기는 보내 주겠다고 연락해 주세요.”
“넷!”
무기야 한국제를 보내줘야 하니 한국으로 가서 협상해 주선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과 전쟁을 벌인 리비아로 무기를 수출하기는 어려운 처지다. 미국에서 한국정부에게 문제를 삼기가 쉬웠다.
‘우선 한국으로 가서 주선해 보다 안 되면 러시아에서 사서 보내면 되겠네.’
두 사람은 국왕의 지시를 받자 수송헬기를 타고 지잔으로 떠났다. 또다시 리비아로 가서 국왕의 결정을 통보해 주고 서류로 작성해야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시추작업은 시작되었다. 오후가 되자 기술자가 크게 외쳤다.
“폐하, 석회암층입니다.”
“그래요?”
석회암층이 나온다는 대규모 유전을 발견하기는 이미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이, 좋다 말았네.’
드르륵 드르륵.
큰 소리를 내며 지하로 파 들어가던 시추공이 의외로 자꾸 위로 밀려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폐하, 아무래도 뭔가 아래에 압력이 센 뭐가 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 갑자기 커다란 울림이 지하에서 일어났다.
구구구구궁!
마치 지진이라도 나는 것처럼 괴음이 지하에서 들리더니 갑자기 시추공에서 물이 품어져 나오고 있었다.
쏴아!
커다란 소리를 내며 지하수가 하늘 높이 품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름이 20센티미터가 되는 시추공에서 50미터는 하늘로 강하게 물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졸지에 김수훈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물에 흠뻑 젖었다. 물은 매우 차갑고 이상하게 톡 쏘는 맛이 나고 있었다.
‘이상하네. 이게 무슨 물이지?’
힘차게 품어 나오는 물을 보며 사백호는 입을 떡 벌리며 감탄하고 있었다. 품어져 나오는 지하수의 양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폐하, 엄청난 지하수를 개발했습니다.”
기술자들이 급하게 시추공을 막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미리 준비된 기구와 연결하고 주변에 오염물이 관을 타고 지하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작업을 했다.